7화. 새 둥지(3)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나오자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식사 중인 아세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빵을 입에 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모습.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다.
‘오늘도 맛있네.’
새삼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음식 솜씨는 뛰어났다.
고기와 채소, 과일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식단이지만 먹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와서 곧바로 체력 단련실로 향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가장 먼저 스트레칭부터.
고작 3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근육이 제법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아침 훈련 전 2시간, 저녁 훈련 후 2시간.
총 4시간으로 이루어진 스트레칭은 내 몸을 빠른 속도로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호오, 다행히도 스트레칭은 꾸준히 하시는군요.”
스트레칭이 끝나갈 즈음, 어느새 나타난 아세리안이 말했다. 그녀의 손엔 무언가를 필기하기 위한 종이와 볼펜이 들려 있었다.
내 훈련법을 보면서 필기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나쁘지 않은데?’
요 며칠, 아세리안의 평가가 계속 좋은 쪽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회사에 막 들어온 신입사원처럼 무언가 배울 점이 있으면 꼭 필기하는 습관이 있었다.
“기본적인 게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아주 좋네요. 자, 그럼 이제 뭐부터 하실 건가요?”
“시작 전에 지어주셨으면 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네, 어떤 걸로 지어드려요?”
“휴식의 방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레벨 3 이상으로.”
그러자 아세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훈련을 시작한다고 해놓고 쉴 생각부터 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레벨 3 이상이라면 꽤 많은 포인트가 필요한데요. 차라리 그 포인트로 대련실이나 체력 단련실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쉽지만 제가 그렇게 많은 포인트를 융통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보시면 압니다. 왜 휴식의 방이 필요한지.”
내 말에 아세리안이 검지를 입가에 댄 채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차피 언젠가는 만들었어야 할 건물이니까.”
그녀가 허공에 터치 몇 번을 하자 바깥에서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휴식의 방이 지어지는 소리였다.
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졌다.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곧장 체력 단련실 한쪽에 놓여있는 방독면을 집어 들었다. 미리 중개 거래소에서 구입해둔 물건이었다.
방독면을 쓰자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후읍- 후읍-
그리고 이어지는 팔벌려뛰기. 가벼운 몸풀기 운동인데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다 보니 급격하게 숨이 차올랐다.
옆에서는 아세리안이 내 사소한 행동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팔벌려뛰기 30회 종료.
코와 입을 통해 최대한 산소를 빨아들인다. 그러면서 상태창 우측 하단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팔벌려뛰기가 끝난 지 10초가 지나자 나는 곧바로 버피 테스트를 시작했다. 개수는 20개.
‘끄윽. 벌써부터 죽을 것 같네.’
산소가 부족하니까 머리가 핑 돌았다. 체력 스텟이 어느 정도 오른 덕분에 이제는 10킬로미터도 어렵지 않게 뛸 수 있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았다.
[남은 체력 : 87%]
버피 테스트 20개를 마무리하자 온몸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여기까지 체력 소모는 13%.
시작한 지 이제 2분이 지나있었다.
이번에도 10초 휴식을 하고 곧장 다음 자세로 전환한다.
엎드린 채 양 무릎을 교차로 차올리는 자세.
바로 마운틴 클라이머 였다.
“끄아아악.”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아서 악을 질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산소 부족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무호흡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30개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헉, 헉, 헉, 헉.”
이제는 거의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참아야 한다.
훈련은 이제 시작했다.
시계를 힐끗 보자 7시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참고로 훈련은 7시부터 시작했다.
“괜찮으신가요, 안우진님?”
옆에서 우려 섞인 아세리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아주 짧은 대답이나 사소한 동작도 할 여유가 없었다. 1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산소를 빨아들이며 숨을 골라야 한다.
찰나와 같은 휴식 시간이 끝나자 나는 곧바로 다음 운동을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점프했다가 내려오는 반동과 함께 무릎을 90도까지 꺾는, 점프 스쿼트였다.
“헉, 헉.”
눈앞이 핑 돌았다. 폐는 당장 더 많은 산소를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육체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건 아직 맛보기에 불과하다. 아직 1세트도 끝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세트들은 정말 지옥을 맛보게 될 터.
점프 스쿼트 20개를 끝내자 몸이 축 늘어지려고 했다.
“허업, 허업, 허업.”
이제는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들이쉰 게 없으니 나오는 것도 부족한 게 당연한 이치이긴 하지만.
다 왔어.
조금만 더 하면 돼. 그럼 잠시 쉴 수 있어.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느새 10초가 지나있었다.
이제 마지막 동작이야.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푸쉬업을 시작했다. 개수는 30개.
“끄으으윽!”
마지막엔 이를 악문 채 숨도 안 쉬고 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푸쉬업을 끝내자마자 나는 방독면부터 벗어 던졌다.
그제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헉, 헉, 헉, 헉.”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숨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아세리안이 뛰어나가더니 다급하게 물 한 병을 들고 와 내게 건넸다.
“헉, 아뇨, 헉, 헉. 아직. 헉, 헉.”
나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손을 흔들었다. 숨 쉬는 것 때문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괜찮으신가요? 효율이 좋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하실 줄은······.”
“헉, 헉, 헉, 헉.”
“고작 5분밖에 안 지났는데······.”
“헉, 헉, 헉, 헉.”
그녀가 뭐라 떠들어 대든 다 무시했다.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곧 있으면······.
‘하, 벌써 2분이 지났네.’
나는 땀에 젖어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방독면을 주웠다.
[남은 체력 : 62%]
“지금 뭐 하시는······?”
“헉, 헉. 다음 세트. 헉, 헉.”
“네······?”
놀라는 그녀의 얼굴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세트도 죽을 것 같았는데, 두 번째 세트를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의문으로 다시 시작된 두 번째 세트.
인간은 정말 위대하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진 않는다.
그러한 교훈을 되새기며 나는 끝끝내 세 번째 세트까지 마친 채 실신하듯 쓰러졌다.
[남은 체력 : 18%]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분명 나는 체력 단련실에서 쓰러졌는데.
여기가 어디지?
[휴식의 방 Lv.3 에서는 휴식의 효율이 3배 상승합니다.]
[남은 체력 : 92%]
눈앞에 떠 있는 알림창을 통해 내가 휴식의 방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세리안이 나를 업어다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나이스, 아세리안.
정신을 잃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미리 얘기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그녀가 센스 있게 나를 휴식의 방에 눕혀주었다.
현재 시각은 9시 17분.
내가 7시부터 훈련을 시작해서 7시 20분쯤에 3세트를 끝마쳤으니, 대략 2시간쯤 쓰러져 있었던 셈이다.
휴식의 방에서는 효율이 3배 상승하니까, 내 육체는 대충 6시간의 휴식을 취한 것이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미정)] [소속 : Team 투지]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6] [민첩 : 7] [체력 : 11]
[정신 : 87] [지력 : 12] [마력 : 0]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중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보유 스킬(0/5) : 없음]
[업적 특전 : 없음]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남은 체력 : 97%]
스텟을 확인해 보니 민첩이 1, 그리고 체력이 1 상승했다.
고작 20분 운동했는데, 총 2의 스텟이 오른 것이다.
아세리안과 함께 훈련한 3일 동안 7이 올랐으니, 이런 식으로 4번만 더 훈련하면 그녀를 이길 수 있다.
띠링!
[체력이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몸에 있던 피로감이 모두 사라집니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있는 사이 기다리던 메시지가 떴다.
문을 열고 휴식의 방을 나서자, 숙소 앞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아세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나를 발견하곤, 보고 있던 서류를 내팽개친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깨어나셨나요?”
“아, 네. 다시 훈련하러 가야죠.”
“······아까 그 훈련을 또 한다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맞습니다만.”
내가 대답과 함께 체력 단련실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녀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체력 단련실.
내부는 이미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마 내 체력 단련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나 보다.
후-
방독면을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손발이 벌벌 떨린다.
곧 이어질 고통스러운 시간 때문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마치 고문을 당하기 직전인 것처럼.
이 훈련 방법이 효과 하나는 확실한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
훈련 강도가 토 나올 정도로 극악 수준이라서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면 오래 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해내야 한다.
포인트를 쓰지 않으면서 상위리그까지 올라가려면.
이 정도 훈련량은 되어야 포인트로 스텟을 구매하는 플레이어들을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오늘 깔끔하게 세 번만 더 하자.’
전투에 나서는 것처럼 비장한 각오로 방독면을 썼다.
이 고통에 익숙해져야 해. 습관처럼 굳어지면 괜찮아.
습관으로 형성만 되면 그 고통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오늘 하루 동안 근력 1, 민첩 2, 체력 4를 올릴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식당으로 갔다.
어제와 다를 게 없는 하루.
그런데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어제와 다른 것이 존재했다.
아세리안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저 표정은.
“일어나셨어요?”
내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왜 이러지? 설마 내기를 무효로 해달라고 저러는 건가?
“······예.”
“어서 식사하셔요. 식기 전에 먹어야 더 맛있으니까.”
평소와 다르게 살갑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고기를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왜 스텟이 그렇게 빨리 오르는 거죠? 어차피 체력을 소모시켜서 훈련하는 건 똑같은 거 아닌가요? 휴식의 방은 왜 필요한 거예요? 어차피 훈련 끝나고 명상을 하면서 체력을 회복시키면 효율이 더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제 방식보다 더 효율이 좋은 거죠?”
그녀가 다다다다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움찔하며 입가로 가져가던 포크를 멈췄다.
아, 그게 궁금한 거였나.
전부터 느낀 거지만 그녀는 배우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콜로세움에 장학생이라는 시스템이 있다면, 분명 아세리안이 되었을 것이다.
“······스텟이 상승하는 메커니즘이 궁금하신 거군요.”
“네 맞아요! 도대체 제 훈련법과 뭐가 달라서 그렇게 효율이 차이 나는 거죠? 저와 했던 일정도 절대 쉬운 게 아니었는데······.”
밤새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눈빛이 초롱초롱했구나.
나는 포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아침 식사는 잠시 뒤로 미뤄둬야 할 것 같았다.
“모든 스텟들이 체력을 소모하면서 상승하는 건 아시겠죠.”
“네, 그래서 최대한 체력을 많이 소모시킬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짰죠.”
“거기서 요점은 딱 두 개입니다. 첫 번째로는 체력 소모가 극심할수록 스텟이 빨리 오릅니다. 한마디로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스테미나 소비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자 아세리안이 아하, 하는 추임새와 함께 열심히 필기를 시작했다.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무언의 집념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 번째로 피로도입니다. 체력 회복이 100%가 되면 피로가 모두 사라지는 건 아시겠죠?”
“아, 그래서 휴식의 방을 지어 달라고 하신 거군요! 그것도 레벨 3씩이나 되는 걸로요.”
“네. 피로감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하지 않으면 스텟이 오르는 효율이 떨어지게 되죠. 몸에 데미지가 남아 있는 상태로 훈련을 하게 되면 훈련이 아니라 혹사가 됩니다. 그게 심해지면 가끔 스텟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아세리안의 손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추었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메모하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아, 그래서 그랬군요. 안우진님은 이런 내용들을 다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정말 대단하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연구했습니다, 라는 짧은 말을 끝으로 다시 포크를 집어 들었다.
굳이 내가 회귀자라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의 질문 폭격은 없었다.
이제야 좀 식사를 할 수 있겠네.
아세리안은 내가 식사를 집중하는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적을 게 저렇게 많나?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식사를 끝마친 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오늘의 일과도 어제와 똑같다.
몸을 충분히 풀어준 후, 어제 했던 육체 단련을 반복한다.
그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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