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5화 (5/205)

5화. 새 둥지(1)

팀 ‘성장’의 최고 관리자, 시노엘.

그녀는 팀을 소유하고 있는 신에게 전권을 부여받아 랜덤 뽑기부터 시작해서 플레이어들의 육성, 판매, 건물 관리, 그리고 재정까지 모든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팀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퍼센트를 급여로 가져가고 있었다.

‘요즘 실적이 너무 안 좋은데.’

육성을 통해 팔리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너무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악성 재고로 쌓여가는 녀석들을 ‘더미’로 털어내며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지만, 최근엔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팀 ‘성장’ 처럼 공장 컨셉으로 팜을 운영하는 팀들이 전부 죽을 쑤고 있는 상황. 그러다 보니 최근엔 ‘더미’로 악성 재고를 처리하는 것도 경쟁이 붙어 버렸다.

공장 컨셉이 플레이어들의 하위리그 첫 경기 사망률을 크게 낮춰준다는 것 때문에 구매자가 증가하면서 크게 유행했던 것도 이젠 옛말.

하위리그의 미션들이 난이도가 점차 상승함에 따라 공장에서 찍어낸 플레이어들의 사망률이 크게 높아지면서 구매자의 수가 줄어든 것이다.

‘우리 팀도 변화에 따라가야 해. 공장은 이제 미래가 없어.’

이제 공장 컨셉은 끝났다. 팀 ‘성장’도 플레이어들을 육성시켜 콜로세움 대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 결심을 하고 있는데 게임 메이커에게 연락이 왔다. 갑자기 ‘더미’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악성 재고를 다 털어내고, 새 출발을 하려던 참이었다.

시노엘은 곧장 수락하며, 최근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을 위주로 더미에 밀어 넣었다.

기존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육성이 된 상태.

그러므로 신규 플레이어들을 쳐내는 건 어떻게 보면 그녀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자, 다음 경기에 출전할 인원을 호명하겠다. 로이, 파브로, 필립, 그레디······.”

안 그래도 요즘 팀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크게 늘면서 팜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시노엘은 속 시원한 마음으로 가장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플레이어들을 더미로 출전시켰다.

중간에 트레이너엔젤을 맡고 있는 피넛엘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후. 한숨 돌릴 수 있겠네.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나 관람할까?’

팀의 플레이어가 출전하는 경기에 한해서, 소속팀 천사들은 경기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사실상 기초 스텟 육성법 말고는 문외한인 시노엘은 이번 기회에 하위리그 플레이어들을 어떤 방향으로 육성하는지도 참고할 겸 경기를 관람했다.

그런데.

―오, 저 플레이어 정말 흥미롭군요. 벌써 세 명째입니다.

―스텟은 낮은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군요. 무림 출신일까요? 움직임이 무척 간결하고 효율적입니다.

―더미로 출전할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깽판을 치기 위해 일부러 투입한 네임드일까요?

―하하, 그건 아닐 겁니다. 닉네임이 ‘미정’으로 되어있는 걸로 보아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 같은데요. 팀 ‘성장’은 공장 컨셉으로 팜이 운영되고 있죠. 그리고 이런 더미 경기에서 주로 악성 재고로 남은 플레이어들을 내보내고요. 아마, 기초 스텟이 낮아 보이니까 그냥 던진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엄청난 원석이었던 거죠. 아, 말씀드리는 순간 닉네임 ‘미정’이 네 명째를 베어 넘깁니다.

―팀 ‘성장’이 엄청난 원석을 챙겼군요. 아, 경기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된다면 말입니다.

시노엘의 귀에는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신들의 목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아름다워.’

남들이 보기엔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 같지만, 시노엘은 그가 최고의 효율을 위해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공격을 피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멍하니 경기를 지켜보던 시노엘이 화들짝 놀랐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서둘러 시스템 창을 켰다.

그러자 눈에 나타나는 5개의 인터페이스.

시노엘은 그 중 [중개 거래소]를 눌렀다.

서둘러 판매 취소를 해야 한다.

팀 ‘성장’은 랜덤 뽑기로 플레이어를 뽑음과 동시에 경매소에 판매 등록이 올라간다.

금액은 랜덤 뽑기의 비용인 1,000 포인트보다 200포인트 더 높은 1,200 포인트.

그러므로 지금 경기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정’도 판매 등록이 되어있을 것이다.

시노엘이 발을 동동 굴렀다.

‘부디 늦지 않았길······!’

가능성은 아직 있었다.

닉네임이 ‘미정’이기 때문에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는 이제 막 시작했다.

녀석이 죽을지 안 죽을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 구입하고 싶은 신이 있더라도 망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노엘의 기대는 판매 현황을 보는 순간 철저하게 부서졌다.

[판매 완료]

[닉네임 : 미정]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3] [민첩 : 4] [체력 : 8]

[정신 : 87] [지력 : 12] [마력 : 0]

[판매 금액 : 1,200 P ]

그사이 어떤 신이 녀석을 사 간 것이다.

“안 돼!”

시노엘이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12만 포인트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플레이어가.

1,200 포인트에 판매되어 있었다.

* * *

내 몸을 감싼 하얀 빛이 사라지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휑한 공터가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띠링!

[경기 도중 플레이어의 소속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팀 ‘투지’ 의 팜으로 이동합니다.]

‘아, 다른 팜이었구나.’

어쩐지 원래 보였어야 할 숙소와 식당 같은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한 경기 만에 공장 컨셉의 팜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 경기를 보고서도 나를 팔았다고?

혼자서 하위리그를 몇 경기씩은 뛰었던 놈들을 학살하고 다녔는데?

팀 ‘성장’이 무슨 생각으로 날 팔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라면 절대 안 팔았을 텐데.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나는 서둘러 주위를 살펴봤다.

이제부터 여기가 내가 지내야 할 새로운 팜.

일단 어떤 컨셉으로 운영되는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울타리가 쳐져 있고, 그 위로 반투명한 파란색 막이 쳐져 있는 건 팀 성장과 똑같다.

그런데 공터에는 아무 건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한 개도.

그리고 공터의 폭이 엄청 좁아졌다. 원래 직경 500미터 정도 되던 팜의 크기가 1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건 마치.

‘방금 막 팜을 만든 것 같은데?’

그때 내 바로 앞에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빛무리는 이내 젊은 여인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싸울 때 효율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풀거리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검은 커녕 작은 비수 하나 막아주지 못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그대가 소속된 팀 ‘투지’의 주인, 아세리안이라고 합니다.”

“안우진입니다.”

“경기 정말 잘 봤어요. 어찌나 잘 싸우시던지, 보자마자 가슴이 콩닥콩닥했답니다. 특히 마지막에······.”

“그런데 건물은 왜 하나도 없습니까? 여기는 어떤 컨셉으로 운영되는 팜이죠?”

내 말에 여신이 길게 흘러 내려와 도망칠 때 붙잡히기 딱 좋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베베 꼬았다.

“아······사실 이제 막 만들어진 팜이거든요. 그러니까, 안우진님이 팀 ‘투지’ 소속의 첫 번째 플레이어인 셈이죠.”

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공장 컨셉 다음은,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신생 팜이라······.

2회차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기껏 시간을 되돌려서 왔는데, 그 소중한 시간들을 제대로 쓸 수 있는 팀을 만나기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

“호호······. 그런 표정 짓지 마셔요. 안우진님을 서포팅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

뭐지?

왜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거지?

보통 신들은 플레이어들을 인격체로 취급해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우리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만약, 제 훈련을 제대로 서포팅하지 못한다면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 주시겠습니까?”

“어······그건 힘들겠지만, 뭘 우려하시는지는 알아요. 근데 걱정하지 마셔요. 제가 팀을 창설하기 전에 얼마나 콜로세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는데요?”

아세리안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그 모습을 보자 믿음이 가질 않았다.

“혹시 천사들도 없습니까?”

“네, 제가 혼자서 할 거예요.”

가관이다.

팀을 운영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천사들이 필요하다.

팜을 관리할 천사도 있어야 하고, 훈련을 도와줄 천사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재정적인 부분도 담당할 천사가 필요하고, 이래저래 할 일이 많다.

그 모든 일들을 눈앞의 여신이 혼자서 감당한다는 뜻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을 텐데요.”

“아, 괜찮아요. 어차피 당분간은 안우진님 한 명만 케어할 예정이니까.”

이거였군.

어쩐지 너무 저자세로 나온다 싶었다.

한마디로 가능성이 보이는 소수 정예로 이끌어나갈 생각인데, 그런 녀석들을 쉽게 얻을 리도 없고.

결국 당분간 내가 팀 ‘투지’의 유일한 수입원이라는 뜻.

‘어쩔 수 없군.’

눈치를 보아하니 나를 프리 에이전트로 놓아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태업을 해서 어떻게든 나를 다른 팀으로 팔아넘기게끔 하던가.

아니면 이곳을 내 입맛대로 끌고 가던가.

다행히 나는 팀 ‘투지’의 첫 번째 플레이어.

당분간은 모든 서포팅이 집중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맞춰 팜을 꾸려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장점만큼 단점도 크다.

전문적인 케어를 받기 힘들다는 것.

혼자서 훈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괜히 지구에서 격투기 선수들이 체육관에 소속되어 관리받으면서 훈련하는 게 아니다.

혼자서 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막 팀을 창설한 아세리안이 플레이어 육성법을 제대로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훈련은 내일부터 하기로 하고. 일단은 숙소를 지어드릴게요.”

아세리안이 허공을 몇 번 터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 순식간에 1층짜리 집이 생겨났다.

레벨 1짜리 숙소였다.

“아마 안우진님이 제 서포팅을 못마땅해하실 일은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럼 오늘은 푹 쉬시길.”

뿅!

아세리안이 환하게 웃더니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금 막 지어진 숙소로 들어갔다.

첫 번째 경기에서 5,600 포인트를 벌었다. 첫 경기를 뛰는 신입 플레이어의 기본급이 1,000 포인트니, 나는 그 5배를 번 셈이었다.

포인트는 지구의 돈으로 환산한다면 대략 1포인트당 1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

그러니 한 경기 만에 5천만 원의 수익을 올린 것.

나는 침대에 철퍼덕 누워 상태창에서 ‘시스템 상점’으로 접속했다.

[체력 스텟을 구매하시겠습니까?]

[1스텟 당 500 P 가 소모됩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경기를 통해 번 포인트로 스텟을 상승시킨다.

이곳은 약육강식의 세계. 약한 자는 도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스텟을 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스텟을 올리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인 일이니까.

‘당분간은 훈련으로도 충분히 올릴 수 있어.’

1회차에서 포인트가 생기는 즉시 스텟을 올리고 크게 후회했었다.

스텟이 높을수록 훈련을 통해 올리기가 힘들어진다.

물론 스텟이 10단위로 올라갈수록 포인트를 통해 올리는 가격 또한 500씩 상승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계산해보면 당장 올리지 않는 게 훨씬 이득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스텟 10 이하에서 1 스텟 올릴 때 드는 포인트가 500 포인트.

그리고 20에서 1 스텟 올릴 때 드는 포인트가 1,000 포인트다.

2배의 상승.

그런데 훈련으로 올리는 건 20% 정도 더 고생할 뿐이었다.

‘근데 그 상승폭이 위로 올라갈 수록 커지지.’

그런데 61에서 1 스텟 올릴 땐 3,500 포인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71에서 1 스텟 올릴 땐 4,000 포인트가 든다.

대략 14%의 상승.

하지만 훈련으로 올리는 데엔 그보다 몇 배나 되는 노력이 필요하다.

‘토나올 정도지.’

그렇다고 당장 강해진다고 해서 경기를 많이 뛸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

오히려 빠르게 강해질수록, 그 수준에 비슷한 플레이어들과 매칭이 되기 때문에 차라리 저스텟 구간에서 오래 있는 게 이득이다.

적어도 저 스텟 구간에선 테크닉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을 테니까.

코메인 이벤트나 메인 이벤트까지 올라가면 상위리그에 도전하는 컨텐더들이 넘쳐난다.

‘당장 포인트로 스텟을 올리지 않아도 돼.’

그리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특전과 테크닉, 그리고 경험.

내겐 남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강점이 있으니까.

그리고 스텟으로 안 되면 스킬과 장비빨로 밀어붙이면 된다.

남들보다 월등한 스킬과 템트리를 세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일단 훈련만으로 근력과 민첩, 체력 스텟을 80까지 상승시키자.’

그동안 벌게 될 포인트는 모두 모아둔다.

그리고 근, 민, 체 스텟이 80을 넘는 순간······.

모아뒀던 포인트를 한방에 터트릴 것이다.

띠링!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1 경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마침 내가 더미로 뛰었던 리그가 끝이 났다.

후기라도 볼까 해서 커뮤니티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띠링!

[과반수 이상의 관객들이 당신을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로 선정하셨습니다!]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 보너스로 7,000 P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3,000 P 차감)]

“······!”

멍하니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에 선정됐다고?’

믿겨지지가 않았다. 1회차에서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었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내가 퍼오블에 선정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는 그날 경기를 뛴 모든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선정한다.

그리고 하위리그는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데, 보통 10개의 시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퍼오블 보너스는 그날 콜로세움에서 가장 압도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단 한 명의 플레이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콜로세움에는 퍼오블 보너스뿐만 아니라 가장 잘 싸운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파이트 오브 더 블러드’ 라는 보너스도 존재했다.

‘잠깐, 그럼 오늘 하루동안 번 포인트가 얼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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