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더미(3)
띠링!
[모든 상태를 100%로 회복합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낯익은 경기장의 모습이 보였다.
내부엔 이미 100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자리해 있었다.
다른 네 개의 팀이 더 참석한 것이었다.
젠장.
오늘의 메인 이벤터가 제법 네임드급으로 예정되어 있는 모양이다.
빅매치 전에 100명이 넘는 더미들의 피로 흥을 돋우겠다는 의미였으니까.
곤란한데.
그렇다는 건 우리를 잔인하게 죽이러 들어올 상대편의 숫자도 제법 될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상대편을 모조리 죽여야 하는데······.
더미는 아무리 많아도 도움이 되질 않으니, 결국 나 혼자 해내야 했다.
‘어려운 경기가 되겠군.’
띠링!
[경기 :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1 의 2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형 : 팀 대항전(개인 PvP)]
[게임명 : 학살의 밤]
[맵 : 원형 투기장(소)]
[관객 수 : 17,204 명]
눈앞에 알림창이 나타났지만 나는 무시하고 입구의 반대쪽으로 뛰었다.
현재 내 체력은 8.
처참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낮다.
띠링!
[승리 조건 : 적들을 모두 섬멸하세요.]
[현재 상황 : R 30 vs B 100]
[보너스 포인트 조건이 있습니다.]
[많은 적을 죽일수록 보너스가 상승합니다!]
[킬 수 현황 ― 없음]
[3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부터 상대편 녀석들의 표적이 되어선 곤란하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플레이어들이 많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은 피한다.
저곳으로 제일 많은 어그로가 끌릴 것이다.
[2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1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경기장의 8시 방향 구석.
저곳이라면 적들과 일대일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시작!]
상태창이 경기 시작을 알려왔다.
직경 200미터 정도의 조그마한 공간.
12시 방향 쪽에 달려 있던 쇠창살 문이 열리더니 상대편 녀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숫자는 총 30명.
레드 팀 플레이어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다.
포인트를 벌어 장비 업그레이드를 많이 했다는 의미이다.
반면, 우리는 처음 콜로세움에 입장했을 때 받은 기초 가죽 상하의를 입고 있었다.
장비에서도 확실한 열세.
녀석들은 경기장에 들어오자마자 우리팀 플레이어들이 제일 많이 몰려 있던 곳으로 달려들었다.
화살과 마법이 날아들고, 검과 도끼가 춤을 추었다.
“꺄아아악!”
“으악!”
순식간에 관객들에게 바치는 붉은 피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공포와 광기가 경기장을 잠식했다.
내가 있는 방향에서도 학살이 벌어졌다.
“으으, 저리 가!”
“크흐흐흐, 그걸 검술이라고 휘두르는 것이냐? 마치 한 마리의 싱싱한 생선 같구나.”
내 앞에 있던 더미를 향해 바이킹 투구를 쓴 레드 팀 플레이어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더미는 높이 5미터의 외벽에 물러설 곳이 없어지자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꽥!”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른 검이 상대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레드 팀 플레이어들은 모두 하위리그를 몇 경기는 치른 베테랑들.
가볍게 검을 피한 바이킹 투구가 거대한 도끼로 더미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더미는 단말마와 함께 두 동강이 나서 바닥에 허물어졌다.
곧이어 바이킹이 혀를 낼름 내민 채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녀석의 입가에는 악마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표정이었다.
다음 타깃은 바로 나였다.
‘역천자 칭호 적용.’
띠링!
[<신화업적:역천자>을 적용합니다.]
[칭호의 효과로 모든 스텟이 + 20% 상승합니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미정)-지구] [소속 : Team 성장]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4(+1)] [민첩 : 5(+1)] [체력 : 10(+2)]
[정신 : 104(+17)] [지력 : 14(+2)] [마력 : 0(+0)]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중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보유 스킬(0/5) : 없음]
[업적 특전 : 모든 스텟 + 20%]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남은 체력 : 97%]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내 몸을 억누르고 있던 부담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 자리를 넘은 정신 스텟은 나를 단번에 고요한 상태로 만들었다.
“네 놈은 어디를 썰어 줄까? 응?”
거대한 도끼에서 피가 뚝, 뚝 떨어진다.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찔렀다.
두근. 두근.
녀석의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다. 온몸에 피를 머금고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바닥을 쓸며 빠르게 달려든 녀석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후웅!
공기를 찢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상하다.’
혈향을 머금은 거대한 도끼가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뭔가 싱크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피하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는데 한참 뒤에서야 내 몸이 움직이는 느낌.
감각이 따로 놀고 있는 것 같았다.
후웅!
다시 한번 도끼가 날아든다.
‘젠장.’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방패를 내밀었다.
콰앙!
끄윽.
무시무시한 힘에 몸이 튕겨져 나갔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팔목까지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근력 스텟이 못해도 20은 넘을 것 같았다.
왜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혹시?’
나는 눈을 감았다.
후우우욱-
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날에 묻은 피냄새를 맡는다.
몸을 비틀자 곤두선 온몸의 신경이, 도끼가 지금 내 곁을 스쳐 갔다는 것을 느낀다.
‘눈 때문이었군.’
초감각은 무척 다루기 어려운 각성 능력이다.
온몸의 신경을 최대한 예민하게 만들어 섬세한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각이 증폭되는 만큼 조금만 감각이 틀어져도 크게 느껴진달까.
결국 내 새로운 육체에 초감각이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익숙해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어야겠군.’
그래도 시각을 제외하곤 모두 익숙한 감각들이기에 적응이 빨라서 다행이었다.
“크하하하, 한 놈은 검을 들고 춤을 추질 않나, 한 놈은 무서워서 눈을 감는 꼴이라니!”
눈이 보이지 않아도 녀석의 공격을 피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난 원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싸워왔으니까.
한참을 피하는 것에 집중하자 어긋났던 감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떠볼까?
미약하게 실눈을 뜨자 녀석의 도끼가 쇄도하는 게 보였다.
‘음, 아까보단 훨씬 낫네.’
여전히 조금씩 감각이 뒤틀렸지만, 피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눈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들을 안정시켜놓은 덕분이었다.
후웅!
녀석은 나보다 훨씬 강하고, 빨랐다. 스텟의 차이가 배 이상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흐흐, 제법 잘 피하는구나. 옳지, 일단 그 다리부터 잘라줘야겠다.”
또다시 녀석의 도끼가 날아든다.
‘이게······.’
위협적인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척 여유로웠다.
녀석의 도끼가 느리게 보였다.
‘빈틈!’
나는 방패를 앞세우며 녀석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쾅!
근력이 얼마나 센지, 방패로 막았는데도 뒤로 한 움큼 밀려났다. 하지만 내 검은 이미 녀석의 가슴에 들어갔다 나온 후였다.
띠링!
[플레이어 ‘조나스’ 를 처치했습니다.]
바이킹 투구를 쓴 녀석이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손에 쥔 검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바닥을 때린 핏방울이 잘게 쪼개지며 튀어 올랐다.
그 모든 광경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검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낯선 감각이 바로 시력의 초감각 능력.
생소한 느낌이지만.
보인다는 것은 무척 좋은 거구나.
“놈! 제법이구나!”
그때 곁에서 더미들을 학살하고 있던 검은 무복의 플레이어가 내게 달려들었다.
바닥을 박차는 허벅지.
허리를 트는 움직임.
그 회전이 어깨를 거쳐, 녀석의 팔을 지나, 검으로 전해진다.
그 일련의 동작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푹-
나무 방패로 녀석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바이킹한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녀석의 빈틈에 검을 찔렀다.
“컥······!”
띠링!
[플레이어 ‘하태충’ 을 처치했습니다.]
그러자 무복을 입은 사내 역시 너무나 쉽게 죽었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이렇게 쉽게 쓰러진다고?
1회차의 난 언제나 내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시작부터 남들보다 크게 떨어지는 스텟.
검을 한 번도 쥐어보지 않은 물렁한 손.
살인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연약한 멘탈까지.
나는 언제나 콜로세움의 최약자였다.
그리고 최약자의 삶은 상위리그까지 이어졌다.
이전보다 좀 더 강해졌을지 모르지만, 상위리그엔 나보다 더한 괴물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두 명이나 쓰러트리는 걸 본 상대편 플레이어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더미 주제에!”
“죽어!”
휘익-
날아드는 두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창.
두 자루의 검은 방패로 막고, 한 자루의 창은 몸을 비틀어 가볍게 피했다.
그사이 나는 제일 왼쪽에 있던, 갑옷을 입은 녀석의 목에 검을 쑤셔 넣었다.
갑옷의 연결부에서 찰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녀석은 검을 놓친 채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띠링!
[플레이어 ‘루카스’ 를 처치했습니다.]
“노옴!”
검을 비틀어 빼내며 뒤로 물러서자 눈앞에 검이 그려낸 작은 실선이 생겨났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검은 내 앞머리 몇 가닥을 자른 채 목표를 잃고 지나갔다.
“큭!”
방패의 아랫부분으로 검을 든 녀석의 무릎을 찍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목을 잃은 또 한 명의 플레이어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띠링!
[플레이어 ‘루벤’ 을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바닥을 굴렀다. 창이 아슬아슬하게 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아, 하아.”
창을 든 동양인이 숨을 헐떡거렸다.
녀석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창을 들고 있는 녀석의 어깨가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저렇게 몸이 굳은 상태로는 창을 휘둘러도 무서울 것 같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내 호흡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남은 체력 : 71%]
네 명이나 처치했는데 체력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간결하고 효율적인 동작으로 체력의 소모가 별로 없었다.
현재 내 체력 수치는 업적 특전의 적용을 받아 10.
지구에서라면 평범한 일반인 정도의 체력이었다.
실전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빠진다.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몸은 끊임없이 열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무척 고요하다.
칼이 날아들고, 피가 튀는 전장에 서 있는 것 같지 않았다.
100이 넘은 정신력은 내 체력 소모까지 잡아주었다.
“끄억······컥.”
띠링!
[플레이어 ‘진진’ 을 처치했습니다.]
녀석을 발로 차 검을 뽑아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잘려 나간 팔다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사지가 통째로 뜯어진 채 몸통만 남아 있는 시체도 있었다.
대부분이 더미들의 시체였다.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나와 가장 근처에 서 있던 사내가 거대한 철퇴를 빙글빙글 돌리며 다가왔다.
녀석의 발걸음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으랴아아앗!”
철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왔다.
고작해야 나무로 이루어진 방패로는 막자마자 산산조각이 나버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콰앙!
막지 않고 피하면 되니까.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철퇴로 인해 움푹 들어갔다.
나는 옆으로 가볍게 피해 녀석의 경동맥을 슥- 하고 그을 뿐이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나를 적셨다.
씁쓸하고 비릿한 피냄새가 났다.
띠링!
[플레이어 ‘쿠마르’ 를 처치했습니다.]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녀석에게 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을 한번 죽 훑어봤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들이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녀석들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콜로세움의 최약자였던 나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눈빛이었다.
아마도 부채 여인을 바라볼 때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저러지 않았을까.
포식자를 바라보는 피식자의 눈빛.
나는 상위리그까지 올라갔던 플레이어였다.
현재 스텟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나는 그동안의 실력과 경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거기에 지금은 시력까지 되찾으면서 ‘완성된 초감각’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기에 하위리그에 서 있는 나는 저들에게 있어서 포식자인 셈이었다.
낮은 스텟?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잘못된 표현인지 깨달았다.
호랑이는 이빨이 없어도 포식자다.
여전히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고, 피식자를 위협하는 압도적인 기세를 가지고 있다.
호랑이가 이빨이 빠졌어도, 초식 동물들은 호랑이를 사냥할 수 없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스스로를 포식자로 여기고 있는 사냥감들에게 누가 진정한 포식자인지를 알려줘야 할 때였다.
이제부터는 내 ‘사냥 시간’ 이었다.
[플레이어 ‘에런’ 을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브래들리’ 를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코빈’ 을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공진우’ 를 처치······.]
[플레이어 ‘프랭키’ 를······.]
[플레이어 ‘안여여’ 를······.]
결국, 나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처치할 수 있었고.
띠링!
[상대편의 모든 플레이어를 처치했습니다!]
[‘블루’ 팀 승리!]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미 측이 승리한 것이다.
[남은 체력 : 23%]
“헉, 헉.”
혼자서 30명의 플레이어를 전부 상대하는 것은 역시 힘들다.
하지만 내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왜냐하면 곧.
[기본급 x 1 의 승리 수당이 지급됩니다.]
[킬 수에 따른 보너스를 책정합니다.]
[킬 수 ― 30 킬]
[놀라운 업적!]
[홀로 모든 적을 처치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띠링!
[30 킬을 달성하셨기 때문에 기본급 x 3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혼자서 모든 상대편 플레이어를 처치했기 때문에 추가로 x 2 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1 의 2경기를 종료합니다.]
띠링!
[파이트 머니로 5,600 P 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2,400 P 차감)]
[다음 경기부터는 기본급을 2,000 P 로 책정합니다.]
[소속된 팀의 팜으로 이동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포인트가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미로써 출전한 첫 번째 경기에서.
나는 내 안에 숨어있던 포식자의 피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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