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3화 (3/205)

3화. 더미(2)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한 방 안이었다.

한쪽에 딸린 책상에 내가 벗어놓은 옷들이 보였다.

내게 배정된 방이었다.

“으윽.”

상체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온몸에서 비명을 질렀다.

‘상태창.’

띠링!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미정)] [소속 : Team 성장]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3] [민첩 : 4] [체력 : 8]

[정신 : 87] [지력 : 12] [마력 : 0]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중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보유 스킬(0/5) : 없음]

[업적 특전 : 없음]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남은 체력 : 24%]

띠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1개 있습니다.]

고작 10킬로미터를 뛰었을 뿐인데 근력 스텟 1, 민첩 스텟 2, 체력 스텟 7이 올라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스텟이 상승하지 않는다.

내 초기 스텟이 워낙 낮기도 했고, 체력 30% 미만 구간에서 오래 버틸 수 있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게 모두 정신 스텟 덕분이었다.

체력 30% 미만 구간부터는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버틸 수 없으니까.

‘아, 이걸 확인 안 했군.’

상태창 밑에 미확인 메시지가 떠 있었다. 아까도 봤었는데, 피넛엘에게 보급품을 받는 바람에 미처 확인하지 못했었다.

띠링!

[피조물 중 최초로 시간을 역행하셨습니다.]

[신화에서나 나오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보상으로 <신화업적:역천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신화업적:역천자>]

[피조물 중에서 최초로 시간을 역행한 자에게 지급되는 칭호.]

[적용 시 모든 스텟이 + 20% 상승합니다.]

[<신화업적:역천자> 칭호를 적용하시겠습니까?]

[Yes / No]

“······.”

메시지창을 보던 나는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예상치 못한 내용에 정신이 멍했다.

신화 업적?

모든 스텟 20% 상승?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20% 상승이면 어느 정도지?

나는 그 상승 폭을 가늠해보았다.

아마 내가 죽기 직전에 싸웠던, 고위리그에서 내려온 플레이어와 내 스텟 차이가 20% 정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나는 상위리그 하위권에서 단번에 고위리그까지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특전을 얻게 된 거였으니까.

딱딱한 침대에 누운 채로 양 주먹을 꽉 쥐었다.

갑자기 온몸의 통증이 가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후, 침착하자.

정말 대단한 칭호를 얻긴 했지만, 그래봤자 나는 이제 막 하위리그에 들어온 새내기에 불과하다.

스텟이 아무리 높아져도 여전히 초월리그는 꿈도 못 꿀 수준.

부채를 사용하던 그 여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높은 스텟을 가지고도 고위리그에서 버티지 못하고 다시 상위리그로 내려왔으니까.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초월리그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을 뿐.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역천자:신화업적> 칭호를 적용하시겠습니까?]

[Yes / No(선택)]

나는 일단 칭호 적용을 보류했다.

칭호를 적용하는 순간 높아진 만큼 훈련으로 스텟을 올리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회귀 전에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경기에 들어가는 순간에만 특전을 적용시켰다.

땡! 땡! 땡! 땡! 땡! 땡!

상태창을 보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울렸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모두 식당으로 내려오도록!”

분명 뛸 때만 해도 환한 대낮이었는데,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공터에서 쓰러진 지 제법 시간이 흘렀나 보다.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일수록 식사를 잘 챙겨야 한다.

앞으로의 큰 그림을 잡는 건 자기 직전에 해도 충분할 터.

일단은 당장 닥친 일부터 차분하게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

나는 식판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올라와 있는 것은 내 손바닥만 한 빵 한 개와 수프가 전부였다.

혹시 내가 늦게 와서 그런 건가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식판을 받은 상태였다.

내 안색이 굳어졌다.

누가 보면 쪼잔하게 음식 가지고 그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곳은 콜로세움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장에 서서 피를 뿌리며 싸울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콜로세움에 출전하지 않을 때에는 훈련이 정말 중요한데, 이런 식단으로는 훈련의 효율성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몸을 고되게 움직이는 것만이 훈련의 전부가 아니다.

휴식도 훈련의 한 부분이고, 충분한 영양분 섭취는 휴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런 식단이 나온다고?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나는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왔다.

팜에 있는 건물은 네 개.

하나는 숙소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내가 나온 식당이다.

다른 두 개의 건물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서둘러 다른 두 개의 건물에 들어가 보았다.

“······.”

젠장.

최악의 팜에 걸린 것 같았다.

다른 두 개의 건물은 육체 스텟 단련실과 정신 스텟 단련실이었다.

가장 중요한 대련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공장 컨셉이었군.’

공장 컨셉의 팜은 경기를 뛰지 않는다. 아니, 뛰긴 하지만 주 수익원은 경기를 통한 수수료가 아니다.

랜덤 뽑기로 뽑은 플레이어들에게 기초 교육을 하고, 스텟을 올려서 조금의 이윤을 붙여 다른 팀에 파는 식으로 수익을 올린다.

그러므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악착같이 굴리면서도 식사는 개같이 나오기로 유명했다.

아, 그리고 공장 컨셉의 팜에서 경기를 뛰는 경우는 딱 한 가지뿐이다.

‘악성 재고로 팜에 남은 플레이어들을 더미로 내보내는 것.’

처음 두 경기는 관객들이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한다. 이제 막 입장했기에, 그들에게도 경기에 빠져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위리그의 처음 두 경기에서는 플레이어들이 피를 뿌리고, 잔인하게 죽으며 경기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했다.

그 잔인하게 죽는 용으로 출전하는 플레이어들을 ‘더미’라고 불렀다.

플레이어가 죽어도 경기 포인트는 지급된다. 다만, 원래대로라면 플레이어 7, 팀에서 3을 가져가는데 플레이어가 죽었기 때문에 팀에서 10을 모두 가져간다.

대전 포인트가 낮아도 수익이 쏠쏠한 것이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이곳에서 최대한 훈련해서 빠르게 스텟을 끌어올린 다음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쪽으로 계획을 잡아야겠다.

이곳은 나를 좋은 플레이어로 성장시켜 수수료로 돈을 벌 생각이 없는 곳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숙소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하늘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피넛엘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피넛엘이 날개를 접으며 우아하게 내 앞에 착지했다.

“호오, 감각도 뛰어나구나. 내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다니. 근데 벌써 깨어났는가? 조금 더 쉬지 않고.”

“······.”

“오늘 정말 멋있었다. 이곳에서 트레이너엔젤을 맡은 이후로 그대처럼 미래가 기대되는 플레이어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아, 네.”

“앞으로도 꾸준한 활약상을 기대하겠다.”

피넛엘이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녀의 칭찬에도 나는 시큰둥했다.

하필 공장이라니.

나는 포인트가 무척 필요하다. 지금 시기라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히든 피스들이 중개소에 넘쳐날 테니까.

그것들을 쓸어모아 빠르게 강해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계획이 어그러졌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젠장.

2회차는 시작부터 더럽게 꼬였네.

“피넛엘!”

“아, 시노엘님.”

피넛엘과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 위에서 네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빠르게 날아왔다. 그녀는 피넛엘 바로 코앞에서 멈추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당장 모든 플레이어들을 집결시켜라.”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더미로 출전할 플레이어들을 뽑을 것이다.”

“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더미를 제공하기로 했던 팀에 무언가 변고가 생긴 것 같다. 우리 팀에서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시간이 없다. 잠시 후면 바로 경기가 열릴 것이다.”

네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 시노엘은 그 말을 끝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피넛엘은 시노엘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응시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공터로 나온다! 늦으면 큰 벌을 내릴 것이다!”

피넛엘의 음성이 팜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러자 식당과 숙소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물밀듯이 빠져나왔다.

나는 나대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필 이런 시기에 더미로 출전할 플레이어들을 선발한다니.

‘더미로 출전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해.’

물론 상위리그까지 올라갔다 왔던 경험과 실력이 있기 때문에 더미로 출전하더라도 극복해낼 자신은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더 큰 기회를 노릴 수 있다.

문제는 지금 내 수준에는 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리스크가 너무 컸다.

피넛엘에게 어필해볼까?

아니, 그녀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좋지?’

머리를 굴려봤지만 뚜렷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제길, 이렇게 두 손 놓고 잘 되길 기도하는 것은 딱 질색인데.

플레이어들이 다 모이자 사라졌던 시노엘이 다시 우리 앞에 등장했다.

“갑작스럽게 우리 팀이 콜로세움에 출전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콜로세움에 입장할 인원들을 호명하겠다. 신들 앞에서 기량을 뽐낸다는 것은 플레이어로서 영광과 같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자부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더미로 출전한다는 것은 죽으러 간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더미의 상대편으로는 하위리그를 몇 경기 치른 베테랑들이 나올 것이다. 그들은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더미들을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려고 할 것이고.

“호명하는 자는 앞으로 나온다. 에이든, 브로디, 코비, 단테, 김민지······.”

시노엘이 20명의 인원을 호명했다. 거의 대부분이 나와 같은 시기에 랜덤 뽑기로 팀에 소속된 자들이었다.

다행히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휴.’

콜로세움에 입장한 첫날.

하마터면 훈련다운 훈련도 하지 못한 채 더미로 콜로세움에 내몰릴 뻔했다.

현재 내 스텟은 아직 일반인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

아무리 내가 상위리그 플레이어였다고 할지라도, 절대적인 피지컬 차이를 무시할 순 없었다.

경기에 뛰려면 못해도 1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더미로 호명된 사람들은 다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앞으로 나갔다.

보통 경기가 잡히면 1달 전에서 늦어도 1주일 전에 알려주는 게 관례다. 그래야 필요한 것을 준비할 수 있고, 그에 맞춰 계획도 세우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호명된 자들은 갑작스럽게 출전이 통보된 상황이다.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공터 앞에 하얀색 바탕의 동그란 원이 생겨났다. 경기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워프 게이트였다.

“입장하라!”

시노엘의 성화에 한 명씩 쭈뼛거리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호명된 인원이 모두 들어가자 게이트가 까맣게 변했다.

정원이 가득 찼다는 뜻이다.

“남은 인원들은 해산시킬까요?”

“아니. 한 경기가 더 남아있다.”

피넛엘과 시노엘의 대화에 안도의 한숨을 뱉던 나와 플레이어들의 몸이 다시 경직됐다.

무거운 침묵이 공터에 내려앉았다.

시노엘과 피넛엘은 허공을 응시한 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는데, 아마 시스템으로 경기를 보고 있을 것이다. 천사들과 달리 플레이어들은 경기를 볼 수가 없기에 손가락만 꼼지락대며 기다릴 뿐이었다.

“엇, 다시 색깔이 변한다!”

누군가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보니 게이트가 다시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의 내부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 죽었군.’

“애석하구나. 아쉽게도 출전한 인원 모두가 전사했다. 잠시 그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갖겠다.”

“······.”

“자, 다음 경기에 출전할 인원을 호명하겠다. 로이, 파브로, 필립, 그레디······.”

시노엘이 다시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앞으로 나가는 대다수 인원이 나와 같은 시기에 들어온 자들이었다.

“······조지, 게빈, 안우진.”

가만히 듣고 있는데 시노엘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

젠장.

부디 난 아니길 바랐는데.

나는 곧바로 검과 방패부터 챙겼다.

이미 결정된 이상 되돌릴 순 없겠지.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주겠어.’

회귀한 첫날.

나는 ‘더미’로 지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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