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더미(1)
정신을 차리자 천장에 걸려 있는 밧줄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니 익숙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방. 벽 한쪽에 걸려 있는 에반게리온 브로마이드,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꽂이 등.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위태롭게 나를 지탱하고 있던 의자에서 내려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금부터 시작해서 실핏줄까지, 눈에 생생하게 보였다.
손을 내리자 손바닥은 점점 멀어지고, 내 시야도 점점 넓어졌다.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
내 두 눈이 보이던 그 때로.
띠링!
[콜로세움에서 초대권이 도착했습니다.]
[콜로세움의 챔피언이 되면 소원을 한 가지 이루어드립니다.]
[당신은 10초 뒤에 죽을 운명이므로 입장을 거절하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콜로세움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es / No]
내 시야에 반투명한 메세지창이 나타났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콜로세움에 처음 입장했을 때부터.
고위리그라는 벽에 직면해 절망하던 순간까지.
고통스럽지 않은 나날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지은 죄가 너무 컸으니까.
이 괴로움은 내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내 원죄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였다.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한 기억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Yes(선택) / No]
나는 망설임 없이 입장을 눌렀다.
내 몸을 감싼 하얀 빛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주변에선 하얀 빛무리와 함께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주위엔 동그랗게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 위로 반투명한 파란색 막이 쳐져 있고, 하늘 위에는 낮인데도 온갖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눈을 잃기 전까지 매일 보던 풍경이었다.
다시 팜(Farm)에 들어왔다.
잠시 후 빛무리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자 하늘 위에서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우리 앞으로 날아왔다. 그녀는 우아하게 날개를 접으며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반갑다. 나는 앞으로 그대들을 가르치고, 인솔할 7급 권천사權天使 피넛엘 이다.”
“처, 천사다······!”
“천사라니. 도대체······!”
“조용, 조용!”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웅성대자 피넛엘이 호통쳤다. 순식간에 공터가 침묵으로 감돌았다.
“그대들은 천계에 있는 콜로세움에 입장한 것이다. 앞으로는 나와 같은 천사들을 자주 볼 것이니,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된다. 지금부터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할 것이다. 딱 한 번만 얘기할 것이니, 집중해서 듣도록.”
피넛엘이 콜로세움의 시스템과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기에 나는 신경을 끄고 주위를 둘러봤다.
팜은 익숙하면서 동시에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뭐지?
분명 시간을 되돌려 왔으니, 처음 소속되는 팜도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내가 처음 들어왔던 곳이 아니지?
나는 서둘러 상태창을 열었다.
띠링!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미정)] [소속 : Team 성장]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2] [민첩 : 2] [체력 : 1]
[정신 : 87] [지력 : 12] [마력 : 0]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중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보유 스킬(0/5) : 없음]
[업적 특전 : 없음]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남은 체력 : 100%]
띠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1개 있습니다.]
가장 먼저 빈약한 스텟들이 눈에 들어왔다.
감옥에 갇혀있다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내 육체 스텟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어? 근데 정신 스텟이······87?
87이면 내가 회귀하기 전의 스텟이었다.
아, 하긴. 나는 그동안의 경험들을 온전히 가진 채 과거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경험이 쌓여있으니, 정신 스텟도 그대로인 게 당연한 거였다.
어쩐지,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의 팜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신 스텟으로 인한 나비효과였나 보다.
이렇게 되면 육체적 스텟이 낮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될 것이다.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중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그 이후에 눈에 들어온 건 각성 능력이었다.
이건 정말 희소식이었다.
그중엔 내가 눈을 바쳐 얻어낸 <초감각>도 들어있었으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거로 회귀한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날 정도였는데, 정신 스텟과 각성 능력까지 온전히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니.
할 수 있어.
이 정도면 고위리그까진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거야.
나에게 절망을 선사했던, 그 높다란 벽이.
더 이상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팀 ‘성장’ 이라.
이곳은 과연 어떤 컨셉의 팜일까.
“······그리하여 지금부터 바로 본격적인 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각자에게 장비와 숙소를 배정해 주겠다. 장비를 건네주면 곧바로 방에 가서 갈아입고 다시 이곳으로 나온다. 그럼 한 명씩 앞으로 나오도록.”
앞으로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사이, 장황하게 이어지던 피넛엘의 설명이 끝났다. 그러자 피넛엘과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던 사람을 시작으로 한 명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어느새 내가 나갈 차례가 되었다.
피넛엘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가죽으로 된 상하의와 부츠를 내밀었다.
“이름.”
“안우진입니다.”
“안우진이라······여기 있군.”
내게 보급품을 건네주던 그녀가 상태창을 열어 내 스텟을 확인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랜덤 뽑기’로 팜에 소속된 자들. 그렇기에 어떤 스텟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보급품을 주면서 한명 한명 확인하는 것이다.
“하, 스텟이 미쳤군. 정신이 87? 근력과 민첩은 왜 이래?”
“······.”
“너, 복장을 딱 보니 지구인이군. 전에 하던 일이 뭐지?”
“상인입니다.”
그러자 피넛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휴, 간만에 대박을 건지나 했는데 하필이면 지구인에다가 쓸모도 없는 정신 스텟이라니······”
피넛엘이 고개를 저으며 내게 이동하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난 상위리그까지 올라갔던 플레이어.
곧 이 안에서 두각을 드러낼 테니까.
내게 배정된 방은 고시원 정도 크기의 좁은 방이었다.
이건 완전 닭장 수준인데?
내가 현재 소속된 팀은 ‘성장’.
‘성장’ 팀의 팜이 어떤 컨셉으로 운영되는지 모르지만, 이 정도로 열악한 숙소는 처음이었다.
팀의 재정이 안 좋나?
서둘러 장비를 착용하고 공터로 나서자 바닥에 검과 방패가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검과 방패 하나를 하나씩 챙겨라.”
검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무기였다. 콜로세움에 입장한 초기에는 검을 사용했었다. 물론, 이후에 창으로 바꾸긴 했지만.
검의 무게는 대략 2킬로그램 정도였다.
방패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크기가 내 몸통만 해서 5킬로그램 정도 나갔다.
뭘 하려는 거지? 곧바로 훈련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대련부터 시키려는 걸까?
“다 모였군. 그대들은 지금부터 이 공터의 외곽을 3바퀴 돌 것이다. 완주하지 못하면 오늘 식사는 없으니, 무조건 끝까지 뛰어야 한다.”
그러자 앞줄에 서 있던 남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이 검과 방패를 들고 뛰어야 합니까?”
“물론이다. 콜로세움은 서로에게 검을 겨누면서 싸우는 전장이다. 힘들다고 무기를 내팽개칠 텐가?”
“······.”
팜의 크기는 대략 반경 500미터 정도. 3바퀴라고 했으니까, 10킬로미터 정도 된다. 그 거리를 무게가 7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검과 방패를 들고 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 혹시 그대들 중에 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완주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체력 훈련을 열외시켜주지.”
피넛엘이 발치에 놓여있는 모래주머니를 툭, 찼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없군. 이번 기수도 고작 이 정도인······.”
뚜벅뚜벅.
“제가 착용하겠습니다.”
내가 앞으로 나서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피넛엘도 나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하겠는가? 완주하지 않는 이상 훈련 열외는 없다.”
“하겠습니다.”
“음,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것인가? 그대의 체력 스텟이 1이라는 걸 내 모르지 않거늘······.”
피넛엘이 작게 읊조리더니 고개를 획 돌렸다.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바닥에 놓여있는 모래주머니 네 개를 팔목과 발목에 착용했다.
모래주머니의 무게는 대략 2킬로그램 정도 나갔다. 착용하자마자 온몸이 늪에 빠진 것처럼 무거웠다.
“그럼, 더 이상 착용 희망자가 없는 걸로 알겠다. 출발!”
피넛엘의 외침에 나는 사람들과 섞여 외곽을 뛰기 시작했다.
후, 몸 상태가 최악이긴 했구나.
뛰기 시작한 지 고작 1분도 되지 않아서 숨이 가빠졌다.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검과 방패를 쥔 손은 무게를 못 이겨 허공을 휘저어댔다.
얼마 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몰랐다. 회귀 전에는 체력 스텟이 70을 넘었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도 그다지 힘들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죽을 것 같네.’
첫 바퀴 반의반도 뛰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몸이 휘청거렸다. 다리가 풀려 바닥에 쓰러질 것 같았다.
격렬하게 호흡하고 있지만,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현재 내 체력으로는 검과 방패가 없어도 완주를 할 수 있을까 말까.
그런데도 모래주머니까지 착용한 것은 관심을 끌거나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착용한 것뿐이었다.
언제 하위리그 첫 번째 경기를 치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전에 최대한 체력 스텟을 올려두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진 비교적 편안해 보였다. 그들은 벌써부터 허우적대는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관심병자 새끼였군.”
“꼭 저렇게 나대는 애들이 있지.”
작게 읊조리는 말들이었지만, 초감각이 있는 내겐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내 목표는 초월리그의 챔피언. 저들은 내 경쟁상대가 아니다. 그런 녀석들에게 낭비할 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슬슬 오를 때가 됐는데.’
멈추고 싶은 유혹이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나자빠지기엔, 그동안 내가 겪어온 지옥 같은 시간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또다시 절망에 빠지고 싶지 않다.
반드시 초월리그의 챔피언이 돼서 이뤄야 할 소원이 있었다.
띠링!
[체력이 3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체력 스텟의 상승률이 증가합니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메시지가 떴다.
이제부터는 체력 스텟이 미친 듯이 상승한다. 물이 일정한 온도에 도달해야 끓듯, 모든 육체적 스텟은 일정 구간 이후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보통은 30% 미만이 남으면 지쳐 쓰러지겠지만, 높은 정신 스텟을 가지고 있으면 이 구간을 오래 버틸 수가 있었다.
내가 정신 스텟을 가장 좋은 능력치로 꼽는 이유가 이거였다.
열을 맞춰 뛰던 초반과 달리,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달리는 사람 간의 격차가 벌어지며 줄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그 끄트머리에서 이를 악문 채 악착같이 따라갔다.
띠링!
[체력 스텟이 1 증가합니다.]
한 바퀴를 돌 때쯤에는 거의 다리를 질질 끌듯이 뛰고 있었다.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쳤고,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띠링!
[체력이 2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생명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느리더라도, 계속 뛰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많은 사람을 추월할 수 있었다. 지나친 사람의 대다수가 지쳐서 걷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엔 바닥에 쓰러져있는 사람도 있었다.
우웩-
머리가 핑 돌았다. 토악질이 나오고, 내 몸은 꼿꼿하게 서 있는 것도 힘들어 구부정한 자세였다. 팔다리에선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띠링!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간간이 뜨는 메시지는 그런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체력 스텟이 눈에 띄게 오르는 걸 본 나는 계속해서 달릴 수 있었다.
띠링!
[체력이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뛰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10% 미만으로 떨어지자 한계에 달했다.
가장 빠르게 체력 스텟이 오르는 구간이지만, 가장 버티기 힘든 구간이기도 했다.
“헉, 헉.”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래, 맞아. 뛰고 있었어.
왜 뛰고 있었더라······.
아, 우리 가족들한테 가고 있었지, 참.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고 뛰고 있었던 거야.
만나서,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온몸을 잠식했던 고통도 모두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그만!”
“헉, 헉.”
누군가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자 나는 곧바로 땅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손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몸의 통제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정말 대단하다! 결국 끝까지 완주하다니. 근성이 대단하군!”
결국 다 뛰었구나.
체력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얼마나 버텼지?
나는 서둘러 상태창을 열었다.
[체력 : 8]
어느새 체력이 8배나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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