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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화 (1/205)

1화. 회귀

쏴아아아아아-

굵은 빗방울이 내 몸을 두드렸다. 간간이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물방울 때문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헉, 헉.”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진 것 같았다. 젠장, 괴물 같은 자식. 왜 이런 경기에 고위리그에서 내려온 플레이어가 참가한 거지?

나는 근처에서 느껴지는 제법 거대한 나무의 뒤로 돌아가 숨었다. 엉킨 덤불들이 부디 나를 숨겨주길.

[<은신> 스킬을 사용합니다.]

“흡.”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 꾸욱 참았다. 펼쳐두었던 마력장도 거두어들였다. 상대는 아주 미세한 마나의 흐름만으로도 내 위치를 알아챌 만큼 대단한 고수.

아마 내가 숲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상대도 알고 있겠지. 하지만 빽빽하게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귀를 쫑긋 세우자 누군가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싸늘한 냉기를 머금은 한줄기 삭풍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제발 지나쳐가길. 부디 나를 발견하지 못하길. 이 위기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기를.

내 바램은 근처에서 뚝 멈춰서는 소리와 함께 바스러졌다.

“어디에 숨었나요? 이런 날씨에 숨바꼭질이라니, 좋지 않네요.”

옥구슬이 구르듯 아름다운 목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듣는 순간 단두대에서 목이 내리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빗방울인지, 땀인지 모를 무언가가 등허리를 타고 흘렀다.

아직 모른다. 저년이 혹시 나를 시험하는 걸 수도 있다. 내가 있는 위치를 알았다면 저따위 말이 아닌, 부채부터 휘두르고 봤을 것이다.

투둑투두둑-

그녀가 들고 있는 우산에 빗방울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야. 마력장이 없어서 소리와 냄새만으로 위치를 파악해야 했는데.’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의 소리는 그녀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려주는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어쩔 수 없군요. 불쌍한 나무들아, 부디 날 욕하지 말고 숨어있는 쥐새끼를 원망하렴.”

슈우우우우

갑자기 그녀의 주변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에 겪어보지 못한 기현상에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혔다.

뭘 하려고 저러는 거지?

불안감이 차올랐다. 상대가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진 않을 터.

지금이라도 피해야 하나?

“폭풍화우暴風花雨!”

순간 그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양의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마나들은 뭉실뭉실 솟아오르더니 그녀의 주위로 몰려든 바람을 강하게 회전시켰다.

콰과과과과광!

이게 무슨 소리지?

마치 여러 개의 회오리가 생겨나더니 그녀의 주변을 난도질하며 점점 커져가는 것 같았다. 굉음은 내가 숨어든 곳까지 휩쓸며 다가오고 있었다.

미친!

참았던 호흡을 내쉬며 서둘러 몸을 뒤로 뺐다.

젠장. 회오리에 공간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를 인식할 수가 없었다.

급히 마력장을 펼쳤지만, 마나를 머금은 회오리는 내 마력장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내 <초감각>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쐐애애애액!

그때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미세한 파공음이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창에 마나를 담아 휘둘렀다.

그러자 소름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내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부딪히고 나서야 날아온 게 마나를 머금은 바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휴우, 폭풍화우는 되도록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바람 때문에 머리가 엉망이 됐잖아요?”

서서히 회오리가 멎어 들자 마력장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거리는 50미터. 처음 서 있던 자리 그대로였다.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상위리그 네임드 플레이어들도 나를 상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했는데, 설마 두 눈도 보이지 않는 분이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이야.”

그녀가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옷에 묻은 빗방울들을 툭툭 털었다.

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콜로세움에서 우산이라······.

뭐랄까, 그녀의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부러웠다.

압도적인 강함이 있기 때문에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마력장에 느껴진 주위는 조금 전 그녀의 기술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가거나, 그게 아니라면 작은 부스러기들을 남기고 조각조각 났다.

날 숨겨줄 수 있는 엄폐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망치는 건 포기.

상성은 최악에 가깝다. 그녀가 일으키는 마나를 머금은 바람은 내 마력장을 흐트러트린다. 싸우는 도중에 마력장으로 그녀의 행동을 느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필이면 날씨마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쏟아지는 빗방울은 그녀의 기척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었다.

“후후, 더 놀아볼까요?”

후욱!

부채를 휘두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마나를 머금은 싸늘한 바람이 내게 불어왔다.

가장 문제는 먼 거리에서 뿌려대는 저 강기 공격이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일단 그녀에게 가까이 붙어야 한다.

흐읍!

날아오는 강기를 피하며 그녀를 향해 질주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데도 그녀는 호호 웃으며 팔랑팔랑 부채만 휘두를 뿐이었다.

쐐애애액!

강기가 소름끼치는 파공음을 내며 스쳐 지나갔다. 순간 귓불에서 따끔한 느낌이 났다. 범위를 잘못 계산한 것인지 귀 끝이 조금 잘려 나간 것 같았다.

최소한으로 피하며 돌진한 덕분에 어느덧 그녀와의 거리는 10미터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폴짝 뛰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내가.

놓칠 것 같아?

[<귀영환령보> 스킬을 사용합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전보다 확연히 빨라진 속도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그녀의 앞에 도달했다.

휘익-! 휘익-!

하지만 내 창은 허공 가르는 소리만을 남길 뿐이었다.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마다 창을 휘둘러 보았지만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과 같았다. 자유롭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후후.”

흡!

나는 가쁜 숨을 들이켰다.

이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적어도 내가 공격하는 동안엔 부채를 휘두르지 못할 터.

하지만 내 예상을 비웃듯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서는 듯하던 그녀가 한순간 엄청난 속도로 내게 파고들어 왔다.

파앙!

내디뎠던 무릎이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나갔다.

이게 부채로 때린 거라고?

마치 쇠몽둥이로 후드려 맞은 것 같았다.

파앙! 파앙! 파앙!

어깨와 허벅지, 쇄골에 화끈한 느낌이 났다. 엄청난 고통에 한순간 창을 놓칠 뻔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 창을 휘둘렀다. 방어를 버린, 공격 일변도였다.

여기서 물러서면 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는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붙어서 기회를 노려야 해.’

하지만 나의 그 무엇도 그녀의 옷깃 하나 닿지 않았다.

그녀와 내 스텟 차이는 절망적일 정도였다. 움직임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짜악!

부채에 내 왼팔이 터져나갔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아마 저 공격에 맞으면 머리가 터져 죽겠지.

씨발, 이판사판이다.

‘죽더라도 반드시 몸에 구멍 하나는 내주겠어.’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은 한 팔로 창을 찔러 넣었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쉽게 죽어줄 마음도 없다.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맞찔러 들어가자 그녀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가팔라졌다.

“앗!”

그녀가 경악성과 함께 휘두르던 부채의 방향을 급히 꺾는 게 느껴졌다.

됐어, 기회가 왔어!

그녀의 부채로는 내 창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이대로 찔러 들어가면서 숨겨둔 단검을 꺼내 목을 그으면······!

빠악!

순간 엄청난 통증이 내 몸을 휘감았다.

한동안 내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크윽. 도대체 뭐에 당한 거지?

무엇에 당했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한참을 날아가다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쿨럭.”

목구멍 너머로 피가 솟구쳐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나는 마력장을 펼쳐 그녀의 모습을 확인했다.

젠장.

그녀의 우산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아. 쫄딱 젖어버렸네.”

이전과 다르게 싸늘한 목소리.

그녀가 곁에 떨어져 있던 내 창을 들고 다가왔다.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푹-

“정말 터프한 분이시군요. 깜짝 놀랐네요. 싸움을 좋아하시는 분 같은데, 아마 저승에 가서도 싸우실 일이 많으실 거예요.”

“쿨럭, 쿨럭.”

가슴에 무언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져갈 때 잃어버리지 말라고 가슴에 박아드리는 거니까 고. 맙. 게. 생각하세요.”

손을 탁, 탁 턴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우산을 줍더니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온몸에 가득했던 통증들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포션을 쓰면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해. 창은 정확히 내 폐를 관통했어.

수십 경기를 치르며 많은 상처를 입어봤기에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빗방울들이 포기하라며 내 몸을 두드렸다.

띠링!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체력이 1% 남았습니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안우진)] [소속 : Team 정의]

[리그 : 상위리그]

[근력 : 73(+5)] [민첩 : 76(+5)] [체력 : 71(+5)]

[정신 : 92(+5)] [지력 : 37(+5)] [마력 : 82(+5)]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중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보유 스킬(5/5) : <은신> <귀영환령보> <살혼> <뇌룡아> <회광반조>]

[업적 특전 : 전체 능력치 +5]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남은 체력 : 1%]

젠장. 이렇게 죽는 건가.

어떻게 상위리그까지 올라왔는데······.

살이 찢기고, 뼈가 갈리는 나날을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는데······.

억울했다. 너무 허무했다.

이를 악물고 창을 휘둘렀는데도 고위리그에서 내려온 플레이어의 옷깃 하나 스칠 수 없다니.

내 지난 나날들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에게도 조금만 재능이 있었더라면. 다른 차원의 플레이어들처럼 뭐라도 재능이 있었더라면.

목구멍에서 울컥, 피가 솟아 나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반드시 이뤄야 할 소원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포기할 거 같아?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등급 알 수 없음>을 꺼냈습니다.]

손끝에서 어렴풋하게 무언가가 만져졌다. 나는 그걸 가슴 위에 올리고, 소매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냈다.

단검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띠링! 띠링! 띠링!

[관객들이 당신이 꺼낸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관객들이 당신이 꺼낸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관객들이 당신이 꺼낸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푹-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책에 찔러넣었다.

띠링! 띠링! 띠링!

[관객들이 당신이 꺼낸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관객들이 당신이 꺼낸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관객들이 당신이 꺼낸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잠이 쏟아지고, 감각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갈 때였다.

내 귓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빗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숲에 가득했던 풀 내음도, 싸늘하던 비바람도, 내 온몸을 잠식하고 있던 통증들도. 그리고 숨 막히던 고통도.

모두 사라졌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때 무시무시한 귀곡성이 퍼져나갔다.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살을 찢어발기듯 엄청날 정도로 악의에 찬 음성이었다.

모골이 송연했다. 엄청난 존재감이 나를 짓누르며 나타났다.

―모습이 말이 아니구나.

“왕이여······.”

―내게 두 눈을 바쳐 초감각을 얻고도 그런 한심한 모습이라니.

“하, 그래봤자 상위리그가 한계던 걸.”

―나를 탓할 것 없다. 그대의 재능이 여기까지였을 뿐.

왕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옥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끔찍했다.

―날 왜 불렀는가. 또 바칠 것이 남아 있는가.

“아직 남아 있지. 바로 내 영혼.”

―영혼이라······. 무척 구미가 당기긴 하다만, 영혼의 지급은 죽은 이후로 미뤄지겠군.

“당연하지.”

―후후, 영악한 놈이로고. 초월리그에 올라가면 반신半神이 돼서 내가 영혼을 수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겠군.

“왜, 쫄려?”

순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제발. 물어라. 물어라. 물어라. 나는 초조하게 왕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놈의 영혼을 유황불에 던져넣고 영원히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지.

후-

정말 다행이다. 왕이 미끼를 물었다.

나는 그제야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상관없어. 보잘것없는 이 한 몸뚱이 바쳐서라도 초월리그의 챔피언이 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내 소원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 지옥에 묶여 평생 고통받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귀곡성이 점차 잦아들고, 왕의 존재감도 희미해져 갔다. 마치 열린 문이 조금씩 닫혀가고 있는 것 같았다.

―좋다. 그대의 영혼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노라. 초월리그까지 올라가지 못한다면 그대의 영혼은 내 것이 될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를 짓누르던 왕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쏴아아아아-

빗방울이 다시 내 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숨을 쉬지 못해 고통스러웠던 통증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미친 듯이 시스템 창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에 알 수 없는 힘이 개입을 시도합니다.]

[시스템에 알 수 없는 힘이 개입을 시도합니다.]

[시스템에 알 수 없는 힘이 개입을 시도합니다.]

[시스템에 알 수 없는 힘이 개입을······.]

[시스템에 알 수 없[email protected]

#$#!%$!]

띠링!

[콜로세움에 처음 입장했던 때로 시간을 되돌립니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환한 빛이 나를 감싸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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