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 아프리카의 사자 (1)
이손초에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한창 멱살 잡고 싸우고 있던 1913년 12월 5일.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는 겨울이 찾아온 유럽과 달리, 여전히 뜨겁게 내리쬐는 이집트의 사막에서 도열해 있는 3만여 명의 아스카리들을 내려다보았다.
적어도 10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적군과 비교하면 부족한 병력이다.
물론, 본국에서도 이를 알기에 서둘러 추가 병력을 보내 준다고는 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이 시일이 걸리는 일.
이미 리비아 방면에서 이탈리아군과 프랑스군이 진격해 오는 중이니, 레토포어베크는 이들과 소수의 슈츠트루페 장교들만으로 적을 맞이해야 했고, 명백한 열세에 처한 장교들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사령관님, 정말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프랑스군과 이탈리아군 또한 2선급 식민지 부대로 이루어져 있다곤 하지만, 병력의 차가 너무 큽니다. 게다가 우리 병사들은…….”
흑인이다.
백인에 비해 지능도 낮고, 전투력도 떨어지는 흑인이다.
최소 3배에 달하는 적을 상대로 증원군이 올 때까지 이집트를 지켜 낼 수 있을까?
독일 장교 상당수는 도저히 장담할 수 없었다.
“괜찮다. 우리 병사들은 제군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용감하다. 충분히 맡은 임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토포어베크는 독일인 장교들이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는 흑인들은 병사로 쓰지 못할 정도로 미개하지도 나약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미 헤레로 전쟁 때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토포어베크는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찬 두 눈동자로 탄자니아 출신의 검은 전사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스카리! 그대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투의 시간이 다가왔다.”
레테포어베크의 우렁찬 외침에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아스카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사령관에 대한 존경심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백인 장교들은 그들을 언제나 무시하거나 하찮게 대했지만, 레토포어베크는 그들을 언제나 독일 제국의 군인이자 한 사람의 전사로 대했다.
당장 지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독일어가 아닌 탄자니아의 공용어인 스와힐리어.
대체 어느 백인 장군이 흑인 병사들의 쓰는 언어로 명령을 내리고 연설을 하겠는가?
아스카리들로선 레토포어베크라는 남자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대들의 주적은 이곳 이집트를 향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이탈리아군이다. 그러나 백인이라고 두려워할 것은 없다. 리비아의 이탈리아군은 2선급 식민지 주둔 부대일 뿐이고, 적의 사령관 또한 뛰어난 인물은 아니다. 그대들은 그저 과거 에티오피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면 그만이다.”
“하하하하!”
아스카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만큼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 아드와 전투에서 에티오피아군에게 포위 섬멸당한 이탈리아군의 전설은 이미 그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탈리아군을 보조하며 함께 진군 중인 프랑스군은 이탈리아군과 다르다.”
그러나 레토포어베크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말하자 웃음을 터트리던 아스카리들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프랑스군을 구성하는 것은 모로코의 구미에(Goumier)와 알제리의 주아브(Zouaves), 세네갈 티라이외르(Tirailleurs).”
북아프리카 사막 출신의 거친 전사들로 영국에 구르카가 있다면 프랑스엔 이 세 부대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미 서부전선에서 그 명성을 절찬리에 펼치고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식민지인 부대들이다.
“구미에는 아틀라스산맥 출신의 산악병들로 구르카들과 비견되는 호전적인 이들이다. 주아브는 공포를 모르는 전사들이라고 오래전부터 유럽에 정평이 나 있지. 그리고 세네갈 티라이외르는 서부전선에서도 항상 선봉에 서는 것으로 유명한 용맹한 병사들이다.”
사실 프랑스군이 세네갈 티라이외르를 선봉 부대로 사용하는 것은 ‘흑인들은 야만스러운 전사들이니까 선봉에 세우면 잘 싸우겠지?’라는 참으로 레이시스트 적인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자랑스러운 와헤헤와 앙고니의 전사들이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용맹한 이들이라 믿고 있다. 그러니 적들을 향해 그대들이 우리에게 배워 온 전쟁 기술을 마음껏 뽐내라. 진정한 아프리카의 전사가 누구인지 북아프리카 사막 출신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는 거다!”
“Ndiyo, Amiri(예, 사령관님)!”
척!
아스카리 병사들이 자신감 넘치는 대답과 함께 일제히 레토포어베크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아프리카의 사자들이 사하라의 대지에서 우렁차게 포효하는 순간이었다.
* * *
“자, 달려라. 달려. 이집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바 이탈리아! 에비바!”
한편 리비아의 이탈리아군은 참전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미리 리비아에서 대기하고 있던 프랑스 식민지 부대들과 함께 서둘러 이집트로 진격했다.
정보부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리비아-이집트 국경을 지키고 있는 것은 고작 3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 흑인들.
영국군은 반대쪽에서 진격하고 있는 오스만군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고, 유럽에서 적의 증원군이 도착하려면 최소 며칠에서 몇 주는 걸릴 테니, 이탈리아에 있어선 이집트란 너무나도 먹음직한 영토를 손쉽게 차지할 둘도 없는 기회였다.
물론, 이탈리아군의 흑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그놈의 아드와 전투란 전례가 있었지만.
하지만 그건 거의 20년 전 이야기였고, 그때의 이탈리아군과 지금의 이탈리아군은 다르다.
아도와 전투 때 이탈리아군이 보급난과 정부의 무리한 공세 요구에 시달렸지만, 이번엔 프랑스라는 친구도 함께이니까.
그러니 우월한 전력을 앞세워 독일과 영국의 증원군이 오기 전에 속전속결로 아스카리를 깨부수고 오스만군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영국군의 뒤통수를 박살 낸 뒤, 이집트를 이탈리아의 손에 넣는다.
물론, 과거 영토였던 이집트에 대한 미련이 있을 오스만 제국은 불만을 품겠지만, 우리가 먼저 이집트에 눌러앉으면 케밥들이 뭘 어쩔 것인가?
게다가 이집트는 엄연한 고대 로마 제국의 일부.
그러니 이집트가 진정한 로마의 후예인 이탈리아 품에 돌아오는 것 또한 당연한 순리인 법이다.
“사, 사령관님!”
“무슨 일인가?”
“토부룩에서 급보입니다! 독일군이 토부룩을 점령했습니다!”
“뭣?”
전령의 보고에 이탈리아군 사령관이자 훗날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알프레도 구초니(Alfredo Guzzoni)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보고에 따르면 독일군은 고작 해 봐야 3만 명의 흑인이 전부라고 하지 않았나?”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감히 제 주제도 모르고 먼저 리비아로 넘어와?”
구초니는 적 사령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아마 지켜야 할 전선에 비해 병력이 적으니, 아예 먼저 선수를 쳐 이집트로 가는 길목을 틀어막겠다는 생각 같은데, 얼마나 자신들을 우습게 보았으면 이런 건방진 행동을 하는 것인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에겐 매가 약이지. 오히려 잘되었다. 이참에 토부룩에서 독일군을 완전히 섬멸한다.”
“옛, 사령관님!”
겁도 없이 스스로 사지에 걸어 들어온 독일군에게 본때를 보여 줄 기회다.
구초니와 이탈리아군은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얼굴로 서둘러 토부룩으로 이동했다.
* * *
“전방에 적 발견!”
“사격 개시!”
1913년 12월 8일.
토부룩을 점거한 독일군과 이집트로 가는 길목인 토부룩을 탈환하고, 방해되는 독일군을 쓸어버리기 위한 이탈리아·프랑스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타다다다다! 타다다다다!!
“사령관님! 적의 화력이 너무 강합니다!”
“에잇, 적은 고작해야 아프리카 흑인들이다! 고작해야 야만인들 하나 못 밀고 나약한 소리를 해서야 되겠나?!”
그리고 이탈리아군은 자신들이 왜 이탈리아군인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북아프리카란 땅이 그들을 약해지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손초의 이탈리아군은 장군들은 무능할지라도 병사들은 오랜 숙적인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이번 기회에 쓰러트리겠단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그 어떤 전장에서보다 잘 싸우고 있었으니까.
해발 2,000m에서 3,000m를 넘나드는 서부전선의 참호전보다 더 지옥 같은 산악전이란 환경 탓에 그리 티는 잘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알라 후 아크바르!!”
“7시 방향에 세네갈 티라이외르! 도저히 저지할 수 없습니다!!”
“백병전 준비! 백병전 준비!”
그에 비해 프랑스의 식민지인 부대들은 사막의 더위에 맛이 가 버린 파스타들보다 훨씬 잘 싸웠다.
애초에 북아프리카의 사막은 그들의 홈그라운드.
사막의 끔찍한 더위는 그들에게 있어선 일상이었고, 이들은 그 이점을 잘 사용해 끊임없이 독일군의 측면을 노렸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크악!”
“으아아악!!”
그러나 아스카리들은 독일 장교들에게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기관단총과 저격총, 영국군에게 받아 온 루이스 경기관총을 앞세우며 세네갈인들의 거침없는 돌격에도, 주아브의 저격에도, 구미에의 침투에도 무너지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켰다.
“포병대 12시 방향 사격 개시!”
“포이어!”
퍼버벙! 퍼벙!!
그리고 레토포어베크의 적절한 화력 지원은 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는 아스카리들의 부담을 크게 줄여 주고 있었다.
거기다 핀란드만 해전 이후 지중해에 온 카이저마리네도 함포를 이용해 토부룩의 아군들을 지원해 주고 있었으니.
결국,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지나도 토브룩은 함락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렇게 시간이 소요되면 안 되는데…….”
“본국에서 보내 준다는 지원 병력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이손초에서 싸움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야. 게다가 유보트들이 우리 수송선들을 노리고 있으니.”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고도 어떠한 성과도 없이 야속할 정도로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에 이탈리아군과 프랑스군은 점점 초조해졌다.
적의 증원군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독일군은 아직도 굳건했고, 자신들의 증원군은 지중해 전역에 깔린 유보트에 의해 항구에 닿기도 전에 수송선 채로 바닷속으로 꼬르륵 가라앉기 일쑤였다.
게다가 당장 얼만 전엔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폰 트랩인가 트라프인가 하는 소령이 지휘하는 유보트에 이탈리아 순양함이 당해 도크에 들어가기까지 한 판국.
듣자 하니 그자의 아내가 세계 최초의 현대적 어뢰인 화이트헤드 어뢰를 개발한 영국의 로버츠 화이트헤드(Robert Whitehead)의 손녀라는데, 영국 어뢰와 독일 유보트의 조합이라니 가뜩이나 불리한 처지인 동맹국 해군에겐 참으로 끔찍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오스만군은 영국군에 가로막혀 여전히 이집트 땅을 못 밟고 있으니 원.”
“그쪽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오. 유럽의 환자가 어디 그냥 붙은 별명이겠소?”
어쨌든 이대로라면 좋지 않다.
최악의 경우 수에즈를 차지하긴커녕 역으로 적들이 리비아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
“사령관님, 큰일 났습니다!”
“또 무슨 일인가!”
“베르베르입니다! 베르베르 기병들이 아군의 후방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맹국의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약속대로 우리 부족원들이 이탈리아인들과 프랑스인들의 보급로를 공격하기 시작했소.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 소장.”
“감사합니다. 독일 제국은 아마지그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지그, 흔히 베르베르(Berbers)란 멸칭으로 알려진 북아프리카 유목민 족장들은 다른 오만한 백인들과 달리, 예의 바른 레토포어베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물론, 그들의 미소엔 레토포어베크와 독일이 준 금도 한몫했지만.
‘고작 금 정도로 이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면 충분히 싼 대가지.’
레토포어베크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근무하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현지 병력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헤레로 전쟁 때도 나마족의 협력이 없었더라면 꽤 고생했을 테니까.
그리고 드넓은 사하라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자 고대 누미디아 시절부터 지중해 전역에 전투민족으로 명성을 떨쳤던 아마지그인들은 적의 후방을 공격하는 게릴라이자 기동 전력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존재였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오. 이탈리아는 우리 아마지그에게 있어서도 적. 독일이 충분한 대가를 준다면 우리의 검은 계속 그들을 향할 것이오.”
아마지그 족장들의 든든한 말에 레토포어베크는 미소를 지었다.
곧 본국에서도 증원군이 도착한다.
패가 모두 갖춰졌으니, 이제는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전환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