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92화 (192/193)

192화 : New Frontline

12월이 다가오며 유럽에 어떤 의미론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는 사이 이탈리아와 오스만 제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대전쟁의 불길 또한 더욱 거세졌다.

“빌어먹을 처칠과 영국 놈들 때문에 참전한 전쟁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승리해야지. 아흐메드 제말 파샤, 나는 페르시아로 가겠소. 그대는 이집트 공격을 맡아 주시오.”

“알겠소.”

본의는 아니었지만, 처칠이란 이름의 혐성맛 재앙에 의해 세계대전에 참전한 오스만 제국은, 우선 영국이 장악하고 있는 페르시아와 이집트로 진군해 각각 페르시아 전선과 중동 전선을 개막했다.

수에즈 운하가 있는 이집트의 전략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페르시아는 다들 알다시피 영국의 주요 석유 생산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국 또한 러시아가 동부전선에 정신이 쓸림 틈을 타 대리전을 관두고 직접 인도군을 보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모하메드 알리 샤와 왕당파를 쓸어버린 뒤 페르시아를 보호국으로 삼아 완전히 장악한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비행기, 장갑차에 이어 전차의 등장으로 석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만큼 동맹국으로선 불리한 판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페르시아 석유 공급을 반드시 차단할 필요가 있었고, 그 역할은 자연스럽게 페르시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오스만 제국이 맡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페르시아를 노예로 삼기 위해 오고 있다!”

“페르시아인이여,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라!”

물론, 오스만 제국이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페르시아인들은 그야말로 분기탱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르시아와 오스만 튀르크는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오랜 악연을 지닌 관계였고, 오스만 제국의 진군은 페르시아인들이 보기엔 침공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왕 참전한 거 한때 제국의 영토였던 페르시아 정복을 진지하게 노리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대로 페르시아의 독립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스만 제국에게 잃을 수는 없는 일.

비록 영국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모하메드 알리 샤와의 내전에 승리하면서 권력을 잡은 페르시아 입헌파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 일치단결할 것을 호소했고, 수니파인 오스만 제국에 위협을 느낀 시아파 이맘들 또한 이에 동참했다.

“페르시아인들이 전쟁 수행에 생각보다 적극적이군요.”

“흐흐, 우리 영국에는 잘된 일이지요.”

페르시아를 어떻게 지켜야 하나 고민하던 영국에는 그야말로 생각지도 않던 행운이 제 발로 굴러들어 온 격.

“망할 페르시아 놈들. 영국의 노예로 전락한 주제에 귀찮게 구는군!”

직접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진격해 오던 이스마일 엔베르에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술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함락에 대비해 정부를 콘스탄티니예에서 바다 건너 아나톨리아로 옮기기까지 한 마당에 인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

검을 뽑은 이상 케밥이라도 썰어야 하는 법이고,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는 사파비 시절 이후 오랜만에 서로의 국운을 걸고 검을 부딪쳤다.

“모두 차렷! 카도르나 총사령관께 경례!”

그리고 그사이 이탈리아 또한 숙적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 * *

1913년 11월 25일.

이탈리아 왕국군은 트리에스테 직할령, 그리고 빈으로 가는 관문인 이손초(Isonzo) 강에 집결했다.

이탈리아 병사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전투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을 이끄는 이탈리아 참모총장 겸 총사령관인 루이지 카도르나(Luigi Cadorna)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콧수염을 배배 꼬았다.

“자랑스러운 이탈리아의 병사 제군! 드디어 이탈리아인이 염원하던 이탈리아의 정당한 영토들을 되찾을 시간이 왔다.”

잠시 말없이 자신의 병사들을 뿌듯한 눈으로 둘러본 카도르나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압제를 시달리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을 해방할 것이다. 트렌티노와 볼차노(쥐트티롤)를 해방할 것이다. 트리에스테와 이스트리아를 해방할 것이다. 고리치아-그라디스카를 해방할 것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굴복시키고 합스부르크와의 오랜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이손초 강 유역에 울려 퍼지는 이탈리아 왕국군의 거대한 함성.

이들의 얼굴엔 단 일말의 불안과 두려움은 없었다.

오로지 투지, 미회복영토를 되찾고 신성로마제국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상전으로 굴어 온 건방진 합스부르크를 무릎 꿇리겠다는 투지로 가득했다.

그만큼 이탈리아인들이 가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한 악감정과 미회복영토들을 향한 염원은 정부조차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광기가 되어 있었단 증거였다.

“가자, 이탈리아 왕국이여! 진정한 로마의 후예가 누구인지 저 게르만 참칭자들에게 똑똑히 보여 줄 시간이다!”

“비바 이탈리아, 에비바(Viva l'Italia, Evviva)!”

만세 소리와 함께 22만 명이 넘는 이탈리아군이 일제히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전선의 개막이오, 악명 높은 이손초 전투의 시작이었다.

* * *

“보이나 사령관님, 이탈리아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시작이군.”

본래 동부전선에 있다가 5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탈리아 전선을 맡은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 폰 보이나(Svetozar Borojević von Bojna)는 부관의 보고에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엔 11만 명이 조금 넘는 규모의 오스트리아-헝가리 병사들이 그가 명령을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용감한 병사 제군.”

보이나가 말했다.

“모두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이탈리아군이 지금 우리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은 없다. 그대들은 이미 적을 맞이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급히 전장으로 달려오느라 준비가 하나가 안 되어 있으니까.”

보이나 사령관의 말에 오스트리아-헝가리 병사들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는 진실이었다.

이탈리아의 전 총리 졸라티가 우려하던 것처럼 이탈리아군은 이탈리아-튀르크 전쟁과 그 이후 리비아에서 발생한 식민지 반란으로 얻은 손실을 아직도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그러니 그대들의 임무는 단 하나, 이곳 이손초를 빈틈없이 지키는 것이다. 저들에게 알프스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 주자!”

“와아아아아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만세! 우리의 스베토 만세!”

오스트리아-헝가리 병사들은 세르비아와 갈리치아 때와 달리 사기 충만한 목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내의 가장 큰 불안 요소였던 남슬라브계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사령관인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 폰 보이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슬라브인(정확히는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인)이었고, 게다가 인품도 좋아서 병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출신 성분이 문제가 되어 민족주의에 대한 무관심과 제국과 황제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 전선엔 단 한 번도 배치된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정말 오랜만에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투지에 불타 있었고, 얼마 안 가 마찬가지로 에티오피아와 리비아 때와 달리 사기 충만한 얼굴로 진군하고 있던 이탈리아군과 맞닥뜨렸다.

그리고 두 군데는 지금까지의 졸전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다다!!

“쏴라! 쏴! 계속 쏴!!”

“이탈리아 놈들이 방어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해!”

“전진! 전진! 산맥 따위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계속해서 나아가라!”

“Avanti Savoia(사보이아 만세,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전투 함성)!!”

해발 2,000m에서 3,000m에 달하는 알프스산맥 위에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치열한 산악전이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이손초 전투는 병사들의 고생이란 측면에선 서부전선의 참호전보다 더 끔찍한 전투였다.

양군은 포격으로 발생한 낙석과 돌 파편을 피하며 피켈과 밧줄을 들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고, 산사태와 눈사태는 일상다반사였으며 적의 총탄에 맞는 것보다 절벽에서 낙상하는 것을 더 조심해야 했다.

“보이나 사령관님, 이탈리아군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잘 싸웠다. 제군들! 그러나 방심하지 마라. 이탈리아인들은 얼마 안 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테니까.”

치열한 전투 끝에 양차 대전 통틀어서 가장 특이한 형태의 전투라 할 수 있는 이손초 전투의 첫 승리는 2배나 많은 적을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자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가져갔다.

방어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산악전의 이점을 잘 이용한 덕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이탈리아 병사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상대로 여느 때처럼 졸전을 펼쳤다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탈리아군은 이손초 전투에서 이전의 전쟁과 이후의 전쟁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싸웠기 때문이다.

“아르디티(Arditi) 돌격!”

“O La Vittoria, O Tutti Accoppati(승리가 아니면, 다 같이 죽음을)!”

게다가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독일군의 돌격대를 본떠 만든 특수부대인 아르디티 부대까지 운용했다.

빗발치는 총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중갑을 입은 아르디티들은 단검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채 모 유명 온라인 게임에서 많이 들어 본 것과 비슷한 구호를 외치며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방어선에 어떤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었고, 이는 꽤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군은 첫 번째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후퇴하지 마라! 돌격! 돌격해라! 그깟 총알 따위에 겁먹지 말고 계속 돌격하란 말이다!!”

루이지 카도르나를 비롯한 이탈리아 장군들이 똥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병사들이 멀쩡해지니 그만큼 장군들이 무능해지는, 그야말로 환장이 따로 없는 광경이다.

이탈리아 장군들이 얼마나 무능했냐면 이들에 비하면 세르비아에서 수십만을 묻었던 포티오레크가 유능해 보일 지경이었고 보이나 사령관은 인품을 겸비한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카도르나 총사령관님, 더는 무리입니다! 지금은 다음을 기약하며 후퇴해야 합니다.”

“크윽, 이대로 끝일 거라 생각하지 마라. 우리 이탈리아군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카도르나는 그 말을 지켰다.

그는 이손초에 무식하게 병력을 들이박았다.

끊임없이, 또 끊임없이.

“사령관님! 이탈리아군이 또 돌격해 옵니다!”

“……허.”

계속되는 이탈리아군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돌격에 보이나 사령관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정말 이게 맛나라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용감하게 싸우는 이탈리아 병사들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군은 진작에 붕괴하여 전멸 엔딩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니까.

“루이지 카도르나, 이자는 대체 뭘 하길래 이혼 초강 하나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아까운 병사들만 계속 날리는 것이오!”

“서둘러 그를 해임하고 다른 이로 교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후……. 전투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니, 일단 지켜봅시다.”

이탈리아를 전쟁에 끌어들인 장본인 중 하나인 총리 안토니오 살란드라의 말에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카도르나를 대신할 만한 인물도 없었고.

“게다가 아직 이집트가 남아 있소. 이집트를 지키는 협상국 병력은 한 줌도 되지 않은 데다가 독일군은 태반이 흑인 부대인 아스카리고 영국군은 오스만군을 막느라 바쁘니 이손초와 달리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오.”

살란드라 총리와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제발 그러기를 바라며 하늘의 계신 주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레토포어베크 사령관님, 병사들이 전부 집결했습니다.”

“전투의 시간이군. 가세나.”

그 아스카리들을 이끄는 자는 그 히틀러조차 감히 손을 못 댄 제1차 세계대전 최고의 명장 중 하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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