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91화 (191/193)

191화 : 영국의 혼란

[죽다 살아난 영국 원정군, 사상자만 10만이 넘어.]

[대영제국 역사상 최악의 참패.]

[가족들과 지인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 애스퀴스와 프렌치는 우리 아들들을 살려 내라!]

[총리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이 영국 전역에서 일어나다! 애스퀴스 내각 몰락의 신호탄인가?]

“후……. 기껏 불을 꺼트렸는데, 망할 언론은 놈들은 계속 장작을 던져 대는군.”

애스퀴스는 자신의 비판, 비판, 그리고 비판으로 가득한 신문을 휴지통에 던지고 양손으로 축 처진 얼굴을 덮었다.

이프르의 아군이 탈출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야 당연하다.

13만, 자그마치 13만에 달하는 영국의 아들들이 이프르의 참호 속에서 죽거나 다쳤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여론의 분노는 가장 먼저 전시 지도자인 애스퀴스 총리를 향했다.

“이 빌어먹을 전쟁은 나를 계속 괴롭히기만 하는군.”

자신이라고 이런 결과를 바라고 그랬던가?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프렌치에게 공세를 주문한 것은 맞지만, 굳이 이프르를 공격하라 한 적도 없고, 프랑스군의 함정으로 들어가라 하지도 않았단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적들은 물론, 친구들마저 모두가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심지어 존경하는 국왕 폐하마저도 말이다.

당장 든든한 아군인 줄 알았던 재무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자신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며 입을 쉴 새 없이 놀리고 있었다.

자신은 전시 지도자로선 부적절한 사람이며 이대로 자신을 총리 자리에 놔두면 자유당 내각이 완전히 붕괴하고 말 것이라며 말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스퀴스는 평화로운 시기에는 괜찮은 지도자였을지 몰라도, 전시 지도자로선 전쟁 초기부터 행동이 느리고, 결단력이 없다고 비난 어린 평가만을 받은 인물이었으니까.

‘……어쨌든 로이드 조지의 행동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순 없어.’

로이드 조지의 배신에 의회는 물론, 내각 장관들까지 흔들리고 있다.

당장 자신의 확고한 지지자였던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도 오스만 문제에서 처칠의 손을 들어준 것에 빈정이라도 상했는지 자신에게 등을 돌렸고, 하원 의장이자 강경 반러파인 블랙번 자작 존 몰리(John Morley)도 로이드 조지에게 넘어갔다.

‘그나마 키치너나 내무장관 레지날드 맥케나(Reginald McKenna)는 아직 나를 지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언제까지 갈까?

이미 신뢰했던 이들의 배신을 경험한 애스퀴스는 도저히 확신할 수 없었다

처칠은…… 뭐, 처칠이었고.

‘어쨌든 이대로 책임을 물 순 없다.’

억울한 것도 억울한 것이었지만, 신문과 라디오가 제멋대로 떠드는 것처럼 최악의 경우 총리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배신자 로이드 조지나 보수당을 이끌고 있는 앤드루 보너 로(Andrew Bonar Law)에게 넘어갈 테고 말이다.

“존 프렌치를 교체해야겠어.”

“……진심이십니까, 총리님?”

애스퀴스의 말에 비서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프렌치의 성격이 순한 양보다는 사나운 들개 같다는 것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들개는 궁지에 몰리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물어뜯는 생물.

비서로선 그것이 총리가 될까 두려웠다.

“누군가는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하네. 그건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애스퀴스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영국 국민은 가족들을 잃은 분노를 달래 제물을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패장인 존 프렌치는 그 다른 사람이 되기에 차고 넘치는 인물이었다.

“키치너 전쟁장관을 부르게. 그도 프렌치와는 사이가 별로이니 딱히 반대는 하지 않겠지.”

존 프렌치로서도 사령관 자리에서 순순히 내려오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불명예스럽게 군복을 벗는 것보단 기회를 줄 때 명예롭게 물러나는 것이 낫다는 것을 그도 잘 알 테니까.

게다가 여긴 문민통제를 소시지랑 바꿔 먹은 독일 제국이 아니라 대영제국이다.

총리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데, 사령관이 무슨 수로 버티겠나?

* * *

“날 교체하겠다고? 하! 공세를 명령할 땐 언제고 지금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리겠다는 건가?!”

그러나 애스퀴스의 생각은 얕았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당장 자신을 희생양으로 세우겠다는 애스퀴스와 키치너의 결정에 존 프렌치가 게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켰으니까.

“빌어먹을! 이대로 나 혼자 죽을 것 같아?!”

독일과 벨기에를 비롯한 동맹국 장성들은 물론, 같은 영국군 장성들에게도 ‘미쳤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격이 거칠고 뒤끝 또한 더러운 프렌치다.

물론, 본국에서 자신을 교체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이상 이를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혼자만 대역죄인이 되어 이프르의 패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쫓겨나는 것만은 참아 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프르 공세는 어디까지나 애스퀴스 총리와 키치너 전쟁장관의 강력한 요구에 의한 것이었단 겁니까?”

“그렇습니다. 게다가 가을부터 우리 원정군이 만성적인 포탄 부족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애스퀴스 총리와 키치너 장관은 그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계속 포탄 보급을 요청했는데 말입니다.”

“허…….”

“게다가 나중에 조사해 보니, 정부가 이프르 공세를 위해 마련해 준 포탄들도 상당수가 불량품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 영국 원정군은 사실상 내각의 무책임과 무능 때문에 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며칠 후, 더 타임스 일면에 존 프렌치 원수의 단독 인터뷰가 실렸다.

그 내용이란 원정군은 애초에 포탄 부족 등 공세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각의 강요로 인해 공세에 나섰으며 이때 사용한 포탄도 대부분이 불량품이었단 것이었다.

물론, 그 인터뷰에는 존 프렌치의 잘못에 대해선 그저 변명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영국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패장의 변명 따위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영국의 아들들이 제대로 된 포탄도 받지 못한 채 정부의 무리한 공세 주문으로 인해 이프르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진실이었다.

“우리 병사들이 포탄조차 없어서 제대로 된 공세조차 못했다는 게 사실이오?!”

“이프르에선 아예 불량품을 주었다지?”

“해명하시오, 총리!”

이프르 전투의 패배로 활활 타오르고 있던 여론이 존 프렌치 원수가 쏘아 올린 포탄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로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시베리아의 거지 러시아도 아니고, 천하의 대영제국이 전선의 병사들에게 포탄 하나 제대로 보급 못 해 전투에 지장이 생겼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영국 정계가 발칵 뒤집혔고, 애스퀴스와 키치너는 어떻게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프렌치의 주장은 과장된 억측에 불과하다 주장했지만, 이는 도리어 역효과만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사실 영국군에 포탄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단 병사들조차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키치너 장관님! 이번 포탄 위기가 발생한 것에 장관님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 주장이 일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전쟁 초기에 포탄 부족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프르 공세 당시엔 이미 해결된 문제였습니다. 아니면 이 키치너의 말이 틀렸다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나마 키치너는 마흐디 반란을 끝낸 전쟁영웅이란 타이틀 덕에 언론도 그를 건드리기엔 부담스러웠는지 아직까진 무사했지만, 애스퀴스는 아니었다.

애스퀴스 총리에겐 그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 존재했으니까.

“포탄 위기는 대영제국 역사상 둘도 없는 추태입니다. 우리는 신속하게 새로운 군수법을 제정해 작금의 방만한 군수품 생산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고, 엄격히 통제해야 합니다!”

당장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군수법 제정을 주장하며 자신은 애스퀴스와 달리 유능하다 선전함과 동시에 우회적으로 애스퀴스 총리를 비판했다.

“보수당은 이번 일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영국의 용감한 남아들이 정부의 무능 때문에 죽어 가고 있습니다! 애스퀴스 총리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거기다 앤드루 보너 로와 보수당도 ‘이때다!’ 하고 애스퀴스 총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정권이 교체되면 좋고, 교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연립정권을 만들어 기회를 엿볼 수 있을 테니까.

어느 쪽이든 보수당으로선 손해 볼 것이 없는 일이었다.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날 몰아내지 못해 안달이로군!”

“당장은 키치너 장관의 명성이 있으니 언론도 이 이상 강하게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입니다.”

“하아…….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윈스턴?”

“상황을 반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패배를 덮을 승리가 필요합니다.”

“젠장, 그 이프르 전투가 그러다가 말아먹은 거 잊었소? 게다가 우리 육군은 만신창이요. 당장 공세를 펼 여력 따윈 없소!”

“해군은 아니지요.”

지금 장난하냐는 총리의 호통에 윈스턴 처칠이 벗겨지기 시작한 자신의 넓은 이마를 반짝이며 말했다.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무슨 계획 말이오.”

“갈리폴리에 상륙해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온전히 차지하고, 콘스탄티니예를 점령하는 겁니다. 마침 그리스군이 오스만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는데, 우리로선 영국이 다시 전쟁에서 목소리를 낼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더 말해 보시오.”

애스퀴스가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어디 들어나 보자는 얼굴로 말하자 갈리폴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자, 처칠이 입꼬리를 올렸다.

파국이었다.

* * *

“……그러니까 지금 영국이 갈리폴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장관님.”

“돌겠네, 진짜.”

특별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거쳐 루마니아를 가는 도중 받은 보고에 나는 한숨 쉬며 고래를 내저었다.

아이고, 처칠아.

그렇게도 미스터 갈리폴리가 되고 싶더냐.

“다만, 영국군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해서 아직까진 논의 단계에 그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나치게 위험성이 큰 계획이니까요. 어디 상륙작전이 쉬운 것도 아니고.”

아직 제대로 된 상륙주정조차 없는 시대다.

게다가 갈리폴리 반도를 지키는 거기 해안 요새들을 건설한 것이 다름 아닌 우리 독일이고, 갈리폴리를 지키는 지휘관은 오스만 제국 최후의 희망이자 튀르키예 공화국의 국부인 그 무스타파 케말이다.

아무리 세계가 달라졌다 한들, 다시 한번 생각해도 처칠과 영국이 갈리폴리 전투에서 승리하는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도와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처칠의 무의미한 공세에 병력을 낭비하기도 싫고.

“그쪽은 영국이 지지든 볶든 알아서 하라고 합시다. 애초에 우린 그쪽을 도와줄 여력도 없어요.”

“의외군요. 전 장관님이 이프르 때처럼 영국군을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이프르야, 안 도와줬다간 영국 원정군이 전멸해 버렸을 테니까요. 그에 비해 갈리폴리 전투는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솔직히 뻘짓입니다.”

그러니 처칠은 혼자서 잘해 보라고 내버려 두자.

갈리폴리 한다고 영국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영국의 영향력을 제 손으로 줄여 주겠다는데, 나야 반대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나저나 곧 겨울이군요. 우리 병사들이 크리스마스를 참호 안에서 보내게 생겼습니다.”

물론, 그건 소강상태에 빠진 서부전선 이야기고, 동부전선에선 눈 덮인 러시아의 대지를 뛰어다녀야겠지만.

‘크리스마스 하니까 생각난 건데, 크리스마스 휴전이 여기서도 일어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 휴전은 원 역사에선 어디까지나 영국군과 독일군을 중심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벨기에 같은 경우는 벨기에 학살 건도 있고, 프랑스도 조국이 침공받은 상황이라 독일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었던 상황이니까.

‘물론 프랑스군, 벨기에군과 독일군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휴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긴 하지만, 일부 프랑스 병사들이 크리스마스 때 독일군과 신문과 담배를 교환했다는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고, 벨기에 병사들도 점령지 내의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며 독일 병사들에게 편지를 부탁했다는 일화도 있으니까.

그래도 아마 여기선 전쟁 속에 일어난 기적이 아닌 양군의 암묵적인 휴전 정도로 그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스 날에 병사들에게 적 참호로 돌격하라 말했다간 불만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말 테니까.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군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죠?”

“예, 이탈리아 왕국 총사령관 루이지 카르도나(Luigi Cadorna)가 지휘하는 이탈리아군이 이손초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리비아의 병력이 프랑스 식민지 부대와 함께 이집트 방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요.”

오스만군도 이에 맞춰 이집트와 페르시아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세계대전에 새로운 전장들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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