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84화 (184/193)

184화 : 동맹국의 역습 (2)

쾅! 콰광!! 쾅쾅!

“Fire! Fire!”

1913년 10월 28일.

“인도 포병대 계속 쏴라!”

“바게트 놈들 참호를 아예 갈아엎어 버려!”

수백 문에 달하는 영국군의 18파운더 곡사포가 일제히 강철의 포탄을 토해 냄과 동시에 이퍼르로 진격하기 위한 영국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쾅! 콰광!!

영국군의 포격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벨기에의 수공으로 인해 물웅덩이로 가득한 저지대에 길게 늘어선 프랑스군 참호를 향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포탄이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떨어졌다.

평소 만성적인 포탄 부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영국군이 이번 공세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또 얼마나 영혼을 끌어모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음, 이만하면 프랑스 참호도 충분히 무너졌겠지. 진격 개시해.”

“Yes sir!”

그리고 포격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개구리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때가 왔다, 제군들. 전원, 돌격 앞으로───!!!”

“와아와아아!!”

“국왕 폐하 만세!”

캐나다군, 인도군을 포함한 약 35만에 달하는 토미들이 일제히 참호 밖을 뛰쳐나가 프랑스군 참호로 진군을 시작했다.

“전진, 전진!”

“Go! Go! Go!”

영국 보병대는 부족한 기관단총 수량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루이스 경기관총을 대량으로 앞세우며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무인 지대를 건넜다.

“중대장님! 프랑스군 참호가 텅 비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이 긴장한 얼굴로 그동안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던 프랑스군 참호선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그토록 괴롭혀 왔던 프랑스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아무래도 개구리들이 우리 포격을 못 버티고 도망친 모양이군.”

“하긴 그렇게 포탄을 뿌려 대었는데, 그놈들이 멀쩡하면 더 이상하지.”

“하하하하하!”

영국군은 그제야 긴장을 내려놓고 서로의 어깨를 두들기며 환호성과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는 보고를 받은 영국군 사령부도 마찬가지였다.

“사령관님, 아군 병사들이 프랑스군 참호를 성공적으로 장악했습니다!”

“하하하하! 포병대가 일을 확실히 했나 보군! 잘하고 있다. 이대로 이퍼르까지 프랑스 놈들을 쭉쭉 밀어붙여라!”

공세가 생각보다 잘 풀리자 오랜만에 마음껏 폭소한 존 프렌치는 곧바로 이퍼르를 향해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답답한 서부전선에 숨구멍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영국군의 활약으로 말이다.

언제나 오만하게 구는 팔켄하인과 독일군 사령관들도 자신을 인정할 것이고, 시끄럽게 본토에서 잔소리나 해 대는 애스퀴스나 키치너도 입을 다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은 물론, 보어전쟁에 이어 다시 한번 영웅이 될 것이다.’

듣자 하니 얼마 전에 동부전선에서 큰 승리를 거둔 빌헬름 황태자는 바르샤바의 해방자라 불리고 있다든가?

그렇다면 자신도 벨기에의 해방자란 칭호를 못 얻어 낼 것도 없다.

‘게다가 잘만하면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처럼 전후 총리 자리를 노려볼 수도?’

아직 이퍼르에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인생 계획을 마친 존 프렌치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포슈 사령관님. 영국군이 이프르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멍청한 로스비프(Rosbif) 놈들. 제 발로 함정으로 걸어 들어오는군. 모두 준비해라. 여기서 영국군을 잡고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다!”

“Oui!”

그러나 프렌치와 영국군은 모르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의 포격에 겁먹고 물러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국군을 이프르 깊숙이 끌어들이려고 일부러 물러난 것이란 것을.

그리고 영국군의 공세를 이용해 역으로 이들을 잡아 버릴 반격 작전을 준비 중이었단 것을.

* * *

쾅! 콰광! 쾅! 쾅!

“발사! 발사!”

공세가 시작된 지 10일째 되는 1913년 11월 7일.

슬슬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을 느끼며 마침내 이퍼르 코앞까지 당도한 영국군은 공세 시작 때처럼 이퍼르를 지키고 있는 프랑스군 방어선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크나큰 런던에 어느 날 아일랜드 청년이 왔네. 모든 길은 금으로 덮여 있었고 모두가 행복했네~♪”

그리고 영국군 보병대는 이번에도 손쉽게 프랑스군을 몰아낼 수 있으리란 생각에 여유로운 표정으로 노래까지 부르며 프랑스군 참호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피카딜리 광장, 스트랜드 거리, 레스터 광장에 대해 노래하니 우리의 신난 아일랜드 촌놈이 말하길~”

티퍼레리까지 가는 길은 참 멀구나, 가기엔 참 멀기도 하지(It's a long way to Tipperary, It's a long way to go).

영국군은 물론이고, 동맹인 독일군과 적군인 프랑스군도 즐겨 부르던 제1차 세계대전 최고의 히트곡이 저지대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영국군의 노래는 그 끝을 맺지 못했다.

“안녕, 피카델리야. 잘 있거라, 레스터 광장아!”

휘이이잉~

“티퍼레리까지 가는 길이 멀기도 멀지만 내 마음은 그곳에…….”

콰앙!!

산책하는 기분으로 전장을 걸어가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던 영국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프랑스군의 포탄이 작렬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

그리고 동시에 프랑스군 참호에서 기관총의 납탄이 그들을 향해 빗발치기 시작했다.

“으악!”

“크아악!!”

“뭐, 뭐야? 프랑스군 참호는 지난번처럼 우리 포격에 무너졌을 거라며?!”

아니었다.

애초에 그땐 프랑스군이 참호 안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영국의 포격 또한 프랑스군에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영국 정부가 공세를 위해 대량의 포탄을 급하게 준비한 탓에 포탄 품질이 엉망이 되어 불발탄이 상당히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멀쩡한 포탄들조차 물웅덩이와 진흙으로 가득한 이퍼르의 무른 대지에 부딪혀 심심찮게 불발을 일으켰고, 운 좋게 프랑스군의 참호에 명중하더라도 프랑스군 참호가 깊어서 피해를 제대로 주지도 못했다.

“죽여! 영국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겁도 없이 노래까지 부르면서 여길 기어들어 와?”

“집에 가서 로스트비프나 처먹어라! 로스비프 새끼들아!”

곧 사방에서 고함과 욕설 소리와 함께 프랑스군의 매서운 반격이 시작되었다.

수만에 달하는 영국군 병사들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프랑스군의 무자비한 총탄에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프렌치를 비롯한 영국 원정군 사령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비명을 질렀다.

“프렌치 사령관님, 큰일 났습니다! 프랑스군이 이퍼르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뭐?!”

그러나 영국군의 불행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릴 방면에서 대규모 프랑스군이 나타나 이프르의 아군 병력의 측면과 후방으로 우회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벨기에 전선의 나머지 병력은 독일군과 벨기에군이 붙잡고 있질 않나!”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새롭게 나타난 프랑스군의 병력은 벨기에 전선의 병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엔.

다름 아닌 엔 전선에서 온 병력이었다.

엔 전선을 맡은 페탱이 전선의 병력 소모를 최대한 억제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덕분에 프랑스군은 꽤 많은 수의 여유 병력을 얻을 수 있었고, 참호의 방어력을 믿고 과감하게 이들을 이프르로 돌렸다.

물론, 전선에서 일부 병력을 빠져나가는 것을 독일군이 눈치 못 채게 만들기 위한 프랑스군 수뇌부의 눈물겨운 노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예비병력을 전부 투입해서 막아라! 포위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옛!”

프렌치의 비명과도 같은 명령이 사령부에 울려 퍼졌다.

지금 이퍼르에 가 있는 병력은 영국 원정군의 전 병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들이 프랑스군에 포위된다?

프렌치 아니, 영국에 있어서 최악의 악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헤이그 장군님, 포탄 재고가 바닥이 났습니다!”

“젠장, 프렌치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영국에 미소를 지어 주지 않았다.

하필이면 지금 이때 영국군이 준비한 포탄이 바닥나면서 포탄 부족이란 지긋지긋한 고질병이 각설이마냥 또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반격 작전에 모든 것을 건 프랑스는 포위망을 어떻게든 분쇄하려는 영국군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금단의 무기까지 전장에 풀었다.

푸쉬시이이익────

“어? 뭐지, 이 연기는?”

“글세…… 커헉?!”

갑자기 자신들 쪽으로 불어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영국군 병사들이 목을 붙잡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아니,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괴롭다.

“커헉…… 커허허헉……!!”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영국군 병사들이 구토하며 지면에 쓰러졌다.

가장 앞장서서 나아가던 장교들도, 뒤따라오던 병사들도 모두 똑같이 끔찍한 고통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염소가스.

1785년 프랑스 화학자 베르톨레에 의해 염소 기체가 실용화된 이래 제1차 세계대전이란 대전쟁으로 인해 끝내 살상용으로 마개조된 화학병기가 전장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커, 커헉, 커컥……!”

“우웩! 우웨에엑!!”

“살, 살려 줘!”

죽음의 연기와 함께 전장 곳곳에서 그 어느 때보다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곳에 계급차별은 물론, 인종차별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인도, 캐나다인도, 인도인도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도 평등하고 공평하게 죽어 갔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쾅! 콰광!!

“돌격!”

“비브 라 프랑스!!”

영국군의 포격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강렬한 포격이 전선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와 동시에 수십만의 프랑스군 병사들이 독가스 공격으로 인해 무너진 영국군을 짓밟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포탄도 바닥난 데다가 갑작스러운 독가스 공격에 당황한 영국군으로선 더는 프랑스군을 저지할 수 없었고, 결국 얼마 안 가 영국군은 이퍼르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안 돼! 안 돼에!!!”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존 프렌치는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이 비열한 개구리 새끼들! 쓰레기 같은 야만인 놈들!!”

독가스, 독가스라니!

프랑스 놈들이 기어코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

정녕 이 망할 전쟁을 더욱 끔찍하게 만들면서까지 끝장을 보겠다는 것인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30만, 자그마치 30만에 달하는 병력이 이퍼르에 갇혔습니다!”

“빨리 구출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독일군, 독일군을 불러.”

공황에 빠진 존 프렌치가 그 어느 때보다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당장 독일군에게 지원을 요청해!”

영국 원정군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다.

더는 자존심이나 전쟁의 주도권 운운할 때가 아니었다.

* * *

“영국군이 프랑스군에게 포위당했다니, 이게 갑자기 무슨 개소리입니까?!”

바르샤바에서 평소처럼 서류와 싸우고 이거 해 달라 저거를 해 달라 매일 같이 아우성치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인들과 싸우는 나날이 계속되는 와중 서부전선에서 날아온 뜬금없는 보고에 베를린으로 급히 달려와 소리치자 팔켄하인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영국 정부와 존 프렌치가 우리 군에게 다급하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에 벨기에 전선의 병력이 영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나섰습니다만, 이미 자리를 굳힌 프랑스군에게 가로막힌 상황입니다.”

“엔 전선의 병력 일부를 벨기에에 돌릴 순 없습니까?”

내 말에 팔켄하인이 그것 또한 무리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또한 그러고 싶지만, 엔 전선에서도 독가스를 동반한 프랑스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셈이겠죠.”

“이 개자식들이…….”

전쟁 초기부터 최루탄 뿌려 댈 때부터 알아봤지만, 기어코 그놈의 독가스까지 꺼내 들었다 이거지?

물론, 그만큼 프랑스도 몰려 있다는 뜻이겠지만, 기어코 선을 넘은 프랑스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욕이 절로 나온다.

“아르덴 숲의 병력은…… 뺄 수 없겠죠. 그곳의 프랑스군이 엔 전선의 측면을 노릴 테니.”

“예, 여러모로 머리가 아픈 상황입니다.”

30만, 자그마치 약 30만의 영국군이 포위되었다.

얘들을 서둘러 구출하지 못하면 영국 원정군이 사실상 전멸하는 것은 물론, 벨기에 전선의 한 축이 완전히 무너진다.

우리로선 당장 병력을 빼 올 곳도 없으니까.

“우선, 전선 부대에 방독면부터 보급합시다. 혹시 모를 화학전을 대비하여 생산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까요.”

수량은 많지 않지만,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들은 그 악명과 달리 기술적으로 완전한 물건들이 아니라서 암모니아, 즉 오줌 묻은 수건으로도 일단은 대처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선의 병사들에게 미안하지만, 더러워도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써먹을 수밖에.

‘그나저나 이렇게 된 이상 하버 박사에게 연락해야겠군.’

웬만하면 독가스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저들이 먼저 화학전을 시작한 이상 우리도 더는 참아 줄 이유가 없다.

니들이 먼저 시작한 화학전이다.

어디 악으로 깡으로 버텨 봐라.

“장관님! 장관 나이임──!”

독가스까지 꺼내게 만든 프랑스에 이를 가며 팔켄하인과 대책을 고민하던 사이 복도 끝에서 비서의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저씨가 저러면 또 무슨 큰일이 터졌다는 건데…… 설마?

“큰, 큰일이 났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이 방금 삼국동맹 이탈을 선언하고 우리 독일과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를 향해 선전포고했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이탈리아가 그새를 못 참고 하필 여기서?

“팔켄하인 참모총장님!”

“예, 오스트리아-헝가리, 영국에게 미리 계획해 놓은 대로 움직이라고 전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이탈리아 친구들이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박살을 내기 직전까지 가니까 기어코 눈이 돌아간 모양이다.

후……. 괜찮다. 이탈리아의 참전은 이미 예상한바.

이미 대비란 대비는 모두 해 놨다.

이탈리아가 진격해 올 곳이라고 해 봐야 이손초랑 북아프리카 말고 없으니까.

그러니 그 두 곳만 잘 틀어막고 있으면 걱정할 것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해군이 좀 위협적이긴 한데 영국 지중해 함대에 우리 카이저마리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유보트 함대 정도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테고.

그러니 침착하자. 침착해.

영국군의 포위, 이탈리아의 참전.

다 침착하게 대처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여기서 또 문제가 터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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