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 동부 대공세 (4)
“와아아아아!”
“바르샤바 해방 만세! 폴란드 독립 만세!”
“바르샤바는 바르샤바의 해방자들을 환영합니다!”
전투가 끝나고, 빌헬름 황태자를 비롯한 독일군이 바르샤바에 입성했다.
시내 곳곳에서 함성과 함께 독일의 흑백적기와 폴란드의 백적기가 함께 어우러져 휘날리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고, 독일 장성들과 병사들도 영웅 취급받는 게 나쁘지는 않았던지 웃는 얼굴로 바르샤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거나 화환을 목에 걸었다.
“바르샤바의 해방자가 된 기분이 어떠십니까? 황태자 전하.”
“생각보다 쑥스러운 기분이군.”
빌헬름 황태자는 폴란드인들에게 자신들이 이 정도로 환영받을 줄은 몰랐던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이 환영하는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테지만.
‘그나마 거듭되는 승리의 여유 덕분인지 아직까진 우리 병사들이 폴란드 내에서 사고를 쳤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는 모양이니 조금은 안심이네.’
물론, 민간인들과의 충돌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순 없었다.
다섯 명이 모이면 그중 하나는 반드시 쓰레기라는 유명한 격언처럼 100만이 넘는 대병력 중에서 일탈을 꿈꾸는 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도 지난번 내 경고가 통한 모양인지 이런 자잘한 일들은 엄정한 군기 속에서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헌병대 선에서 바로 컷 되고 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게 정상이지만.’
우리 병사들은 무슨 피에 굶주린 바바리안이 아닌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정부와 군이 똑바로 일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일어날 여지도 없다.
원 역사의 독일 제국은 그러질 않아서 문제였지만.
“그나저나 한스 넌 한동안 바르샤바에 남을 생각이라고?”
“예. 폴란드인들과 할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으니 말입니다.”
폴란드 독립 문제부터 임시정부를 어떻게 꾸릴지에 대한 논의, 폴란드인 징집, 전후 영토분배 등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걸 모두 내가 해야 한다.
아무래도 당분간 야근은 피할 수 없게 생겼다.
“큭큭, 네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구나. 게다가 새로 폴란드 국왕이 될 사람도 물색해야 하니. 역시 내 동생 중 한 명이 되려나?”
“카이저께선 그걸 원하시는데, 베틴 가문에서도 폴란드 왕위에 관심을 보여서요.”
“작센 왕국 말이군. 하긴 굳이 정통성을 따지자면 그 쪽에게 명분이 있긴 하니.”
왜냐하면,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를 비롯한 작센 선제후들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이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작센 선제후들은 폴란드 왕위를 얻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그 영향으로 베틴 가문, 정확히는 작센 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알브레히트계는 절대다수가 개신교를 믿고 있는 작센 사람들과 달리 가톨릭교도였다.
‘게다가 현 작센 국왕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는 소탈하고, 겸손한 데다가 참정권 확대 정책을 펼치는 등 진보적인 면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단 말이지.’
그래서 나도 베틴 가문이 폴란드 왕위를 다시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우리 장인어른은 처남 중 한 명을 꼭 폴란드 국왕에 앉히고 싶어 해서 나도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
“그래서 일단 이 부분은 더 많은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아직 전쟁 중이고 하니, 그 문제는 종전 후에 결정해도 될 테니까.”
나는 황태자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고 머니까.
* * *
바르샤바가 해방된 후에도 동부전선에서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자유다!”
“리투아니아 만세! 독일 제국 만세!”
바르샤바가 함락된 지 바로 다음 날인 1913년 10월 11일.
러시아군이 리투아니아에서 후퇴하면서 카우나스와 빌뉴스를 포함한 리투아니아의 모든 도시과 마을들이 독일 제국에 손에 들어왔다.
덕분에 난 하루도 안 지나서 폴란드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의 뒤처리까지 떠맡게 되었고,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는 몇 배로 늘어났다. 물론 다 내 업보이긴 하다만.
“바르샤바는 시작일 뿐이다. 기세를 몰아 폴란드 전역에서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내자!”
한편, 빌헬름 황태자가 이끄는 동부집단군은 바르샤바를 기점으로 동과 남으로 계속해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함락시켰다는군.”
“러시아 놈들 꽁무니에 불이 붙었다는 소리군요.”
“그래. 지금이야말로 나아갈 때다. 이 기회를 몰아 러시아 놈들을 밀어붙이자!”
이 소식을 전해 받은 회첸도르프와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또한 러시아 남서전선군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니, 바르샤바 함락으로 가뜩이나 침울했던 브레스트-리토프스크의 러시아군 총사령부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총사령관 각하. 독일 10군이 비아위스토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이곳 브레스트도 위험합니다.”
“북서전선군 병력을 어떻게든 재집결시킬 순 없나?”
“사령관인 루즈스키부터가 바르샤바에서 꽁지 빠지라 도망친 판국입니다. 북서전선군 병력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계속 후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바르샤바에 있는 한스 폰 초이가 독일군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해방자로 선전하면서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바다 건너 핀란드까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미 몇 군데에선 벌써부터 소요사태가 일어나고 있단 보고까지 들어왔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계속해서 들려오는 참상을 도저히 맨정신으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러나 그에겐 불행하게도 비보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서전선군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버텨 주었지만, 연합군의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바노프 사령관 또한 이대로라면 오래 버티기 힘들다며 계속 후퇴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갈리치아는 우리 제국이 이번 전쟁에서 유일하게 성과를 거둔 곳이다. 이곳을 포기했다간 페트로그라드가 또 한 번 뒤집힐 거야.”
친애하는 사촌인 키 작은 니콜라이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프랑스인들과 내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모스크바 정부 이전 건을 진짜로 실행에 옮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독일 8군과 9군이 곧장 갈리치아를 향해 남하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최악의 경우 남서전선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독일군에게 앞과 뒤로 포위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남서전선군마저 무너진다면 동부전선의 상황은 더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무리 러시아 제국에 병사로 쓸 이반이 넘쳐난다고 해도, 그놈의 무기 부족 문제 때문에 병력 충원엔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답이 없는가.’
어려운 결정이었다.
니콜라이 대공은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 내 해결책을 찾아내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후퇴해서 전선을 재정비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동부전선 전체에 퇴각 명령을 내려라. 방어선 전체를 뒤로 물린다. 이미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많이 놓친 상황이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예, 각하.”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니콜라이 대공은 퇴각 명령을 입에 담았다.
이제 그가 러시아군 총사령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아군 병력의 피해를 줄이는 것뿐이었다.
물론, 친애하는 사촌인 니콜라이 2세의 분노와 질책이 두렵긴 했지만, 지금은 이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제국은 갈리치아도, 폴란드도, 리투아니아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 * *
“동부전선의 모든 러시아군이 일제히 후퇴하고 있습니다.”
루덴도르프의 보고에 바르샤바에 새롭게 꾸려진 동부집단군 사령부에 승리로 인한 환희와 함께 묘한 고양감이 감돌았다.
러시아군의 대후퇴.
그리고 이는 곧 이 자리에 모인 장군들에게 있어선 공훈을 세울 절호의 기회를 뜻했으니까.
특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역시나 갈리치아였다.
과거 러시아 남서전선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밀어붙이며 영토 안쪽으로 상당히 깊숙이 진격하면서 현재 갈리치아엔 상당한 크기의 돌출부가 형성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놈 참 맛나 보이네.’
루덴도르프와 장군들은 너무나도 맛나 보이는 러시아군 돌출부에 도저히 침을 흘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돌출부를 잘라 러시아군을 고립시킬 수만 있다면, 독일군으로선 타넨베르크와 마주리안 호수 전투에 이은 대승리를 다시 한번 거두는 셈이었다.
포위섬멸 성애자인 독일 제국의 장군 참모들로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
쿵!
“남서전선군이 갈리치아를 빠져나가기 전에 퇴로를 막고 놈들을 항아리 안에 가둬야 합니다!”
루덴도르프가 가볍게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말했다.
이의나 반대는 없었다.
곧 독일군은 속도를 올려 갈리치아로 달리기 시작했고, 러시아 남서전선군은 새까맣게 몰려오는 독일군의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 * *
콰광! 쾅!!
“허억, 헉…… 으아악!”
“유리가 당했다!”
“젠장, 이미 늦었어. 너희들도 저렇게 뒈지고 싶지 않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갈리치아는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러시아군의 비명과 고함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처음 러시아군이 갈리치아에 왔을 때 러시아 병사들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허약하고 허술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려온 군대지만, 기왕 전쟁터로 나온 거 패배보단 승리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대로만 간다면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란 생각이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주도 안 되어 독일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돕기 위해 나타났을 때부터였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정신 차리라는 독일군의 지원에 호흡이 돌아오며 점점 제정신을 찾기 시작했고, 덩달아 전선도 정체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 병사들은 약간의 불안감을 품을망정 절망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잠시 전투가 지지부진해졌을 뿐, 아직 러시아군은 패배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북쪽 프로이센에 간 북서전선군이 독일군에게 박살 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적어도 자신들은 운이 좋다.
자신들은 밀려나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젠 더는 그 누구도 자신들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뒤에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그동안 얻어터지며 응어리진 한을 갚겠다는 듯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었고, 바르샤바를 함락한 독일군이 갈리치아로 내려오며 그들을 갈리치아에 가두려고 하는 중이다.
러시아 병사들의 머릿속엔 이제 어떻게든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을 뚫고, 저 흉악한 슈퍼 게르만 브라더스로부터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치는 것밖엔 없었다.
부우우우웅───!
“적 비행기!”
“엎드려─!!”
그러나 독일군은 러시아군이 도망치는 것을 용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공적에 목마른 독일군 장교들은 끊임없이 길게 늘어진 러시아군 후퇴 행렬을 급습했고, 러시아군은 반격조차 꿈꾸지 못한 채 독일군의 공격을 온몸으로 맞아 가며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아군이 최대한 많이 빠져나갈 때까지 어떻게든 포위망이 닫히지 않게 우리가 최대한 버텨야 한다!”
“예! 브루실로프 장군님!”
“그리고 데니킨! 자네는 이바노프 사령관에게 가서 어떻게든 포병 지원을 받아 오게. 우리에겐 지금 화력이 필요해!”
하지만 남선전선군의 모든 러시아 병사들이 도망치기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남선전선군 소속 야전군 중 가장 상태가 멀쩡했던 러시아 8군과 브루실로프는 포위망이 닫히는 것을 막기 위해 앞장서서 몰려오는 독일군에게 맞섰다.
“브루실로프가 포병을 지원해 달라 했다고? 우리 사령부라고 대포가 남아도는 줄 아나?”
“지금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것은 저희 8군뿐입니다. 우리까지 밀리면 어떻게 될지 사령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쯧, 알겠네.”
8군 병참장교 안톤 데니킨(Анто́н Ива́нович Дени́кин)의 말에 남서전서군 사령관 니콜라이 이바노프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이바노프는 전형적인 러시아 제국의 똥별이었던 데다가 계속해서 전공을 올리며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브루실로프를 싫어했지만, 지금 그와 8군을 돕지 않았다간 남서전선군 전체가 끝장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브루실로프가 어떻게든 독일군 상대로 분전하는 사이,
“젠장, 진격 속도가 늦어지고 있어!”
“하필 이럴 때 보급망에 과부하가 걸리다니!”
독일군의 쾌진격은 보급 문제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마주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