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 동부 대공세 (3)
“전군 공격을 시작하라.”
“포병대 사격 개시!”
콰광! 콰광!
이틀간의 공격 준비가 끝나고,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자마자 빌헬름 황태자의 명령과 함께 바르샤바, 그리고 비스와강을 향한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무수한 숫자의 중포와 곡사포들이 강 건너편에 있는 러시아군 방어선과 토치카를 깨부수기 시작했고, 군인적인 의미로 모가지가 잘린 질린스키를 대신해 새롭게 북서전선군 사령관이 된 니콜라이 루즈키는 연신 땀을 흘리며 부하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입을 여닫았다.
“이대로 적 대포들이 마음껏 활개 치게 놔둔다면 아군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둘러 적 포병의 위치를 특정하고 대포병사격을 실시하라.”
“예, 사령관님.”
“사령관님! 상공에 적 비행기입니다!”
“대공포는 두었다 뭐 하나? 당장 떨어트려!”
펑! 퍼펑! 타다다다다!!
이젠 질릴 정도로 익숙해진 독일 제국 항공대의 공습에 바르샤바 곳곳에 배치된 러시아 대공포들과 대공 기관총들이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불을 뿜었다.
동프로이센에서 독일 전투기들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도 모자라 체펠린 비행선에 수도 페트로그라드를 폭격당한 러시아군은 서둘러 자국군의 PM M1910 기관총과 76.2mm 야전포를 대공기관총과 대공포로 마개조해 전선에 배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프랑스군과 달리 전 전투기를 제압할 항공 전력이 너무나도 형편없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독일군 전투기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에 당연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들은 처음부터 대공무기로 설계되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으로 급히 만들어진 초기 대공무기란 한계 탓에 그 성능은 도저히 좋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지만.
러시아군의 대공기관총은 그 무겁기로 유명한 맥심 기관총 4개를 이어붙여 만든 것에 불과했고, 대공포의 베이스가 된 야전포 또한 사람을 잡으라고 만든 거지 비행기를 잡으라고 만든 무기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비행선이라면 모를까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비행기로 상대론 아무래도 명중률은 극악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타다다다다다다! 펑! 퍼퍼펑! 펑!
“젠장, 도시에 접근을 못 하겠어!”
“일단 물러나!”
그러나 지상에서 쏟아지는 불꽃 세례가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위협적이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가벼운 나무와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복엽기들에겐 특히나 말이다.
덕분에 대공 포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일 파일럿들도 이전과 달리 마음껏 지상에 있는 러시아군을 공격하지 못한 채 주변 하늘 위를 붕붕 맴돌 뿐이었다.
“적 공습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그러나 껄끄러운 적 항공 전력을 쫓아냈다 하더라고 루즈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엔 일렀다.
가장 위협적인 적 포병대는 여전히 건재했으니까.
물론, 루즈키도 대포병사격을 실시하며 어떻게든 적 화력을 깎아 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대포 숫자의 부족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니콜라이 대공도 이를 알았기에 어떻게든 부족한 포병 전력을 끌어모아 루즈키에게 안겨 주었지만, 고작 해 봐야 목이나 조금 축이는 수준이었다.
“후우……. 이젠 화도 안 나는군.”
전선의 병사들에게 대포 한 문, 총 한 정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현타가 온 루즈키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러시아 제국은 더는 제국이라 칭할 자격도 없었다.
땅덩어리만 큰 이 병신 같은 나라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제3의 로마라 자칭하겠는가?
“이게 다 무능해 빠진 차르 때문이다.”
누군가가 들었으면 불경죄로 체포당해도 발뺌하지 못할 충분한 발언이었지만, 그만큼 루즈키는 차르와 황실에 실망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나마 총사령관인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로마노프 왕족 중에선 유능한 편이라지만, 정작 황제가 저 모양 저 꼴인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은 비단 루즈키 뿐만 아닌 러시아인 대부분의 생각이었고, 가뜩이나 적국인 독일 출신이라 평판이 안 좋은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과 관련된 온갖 추잡한 루머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소문에 계속 장작을 집어 던졌다.
오죽했으면 이젠 황녀들마저 라스푸틴의 아랫도리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질 나쁜 소문까지 퍼질 지경이겠는가?
‘이대로 차르을 가만히 둬선 안 된다!’
루즈키는 주먹을 꽉 쥐고 그리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황제의 군인으로선 불경한 생각이었지만,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전황은 루즈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러시아를 위해선 니콜라이 2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고 있었다.
“루즈키 사령관님!”
“후우, 또 무슨 일인가?”
“봉, 봉, 봉기입니다.”
“……뭐?”
“바르샤바가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폴란드인들이 무기를 들고 도시를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루즈키는 러시아 제국의 미래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피우수트스키의 장담대로 바르샤바가 일어났다.
이제 루즈키와 러시아군은 자신들의 목숨부터 걱정해야 했다.
* * *
“존경하는 바르샤바 시민 여러분, 무기를 들고 일어나십시오! 피우수트스키 장군이 폴란드 군단을 이끌고 비스와강을 건너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함께 러시아의 오랜 압제를 깨부수고 폴란드의 자유와 독립을 되찾읍시다!”
“폴란드 독립 만세! 바르샤바 만세!”
“러시아인들에게 죽음을! 차르에게 죽음을!”
바르샤바 시내를 가득 메운 폴란드인들이 무기 들고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이날만을 위해 러시아인들 몰래 집안에 숨겨 둔 소총과 엽총, 그리고 독일 제국에서 지원받은 독일제 무기를 손에 들고 비스와강 건너편의 독일군에만 신경이 쏠려 있던 러시아군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쳤다.
타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다!!
“시발, 왜 여기서 기관단총이 튀어나오는 거야?!”
“독일, 또 독일 놈들 짓이야!”
“전쟁 한번 더럽게 하네, 진짜!”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해 버린 바르샤바 곳곳에서 기관단총의 경쾌하고도 무감정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르샤바 시민들은 피우수트스키가 봉기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한 것이 무색하지 않게 순식간에 골목길마다 바리케이드를 쌓고, 러시아군 무기고를 습격하고, 보급 창고에 화염병을 던지며 바르샤바 곳곳에 만들어진 러시아군 대공 진지를 공격했다.
“모두 정신 차리고, 침착하게 대응하라! 놈들은 고작 폭도일 뿐이다!”
“거리에 나와 있는 폴란드인들을 보이는 족족 모조리 죽여라! 저놈들은 더는 제국의 신민이 아니다. 제국과 황제 폐하께 반기를 든 역도에 불과하다!”
러시아 장교들의 다급한 외침에 러시아 병사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퍼부었다.
독일군이 바르샤바의 목전까지 다가온 상황이다.
이 봉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잠재우지 못한다면 그땐 정말 끝장이다.
탕! 타타탕! 타탕!
“으악!”
“쏘지 마시오. 난 러시아인이…… 크악!!”
물론, 러시아 병사들의 총탄에 쓰러지는 이들 중엔 폴란드인이 아닌 그들과 같은 러시아인이나 다른 민족 출신 시민들도 있었지만, 패닉에 빠진 러시아군에는 이미 이를 구별할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바르샤바 노동자 동지들이여! 망치를 들고 공장을 나갑시다! 지금이야말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나 되어 단결할 때입니다!!”
“차르의 옥좌에 피를! 러시아에 복수를!!”
그러나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이 약속대로 수만에 이르는 공장 노동자들을 이끌고 봉기군에 합류하자 상황은 다시 바르샤바 시민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바르샤바 전체가 독일군이 진격을 돕기 위해 러시아군의 발목을 끊임없이 후려쳤고, 뒤가 없는 러시아군의 행동 또한 점점 과격해져만 갔다.
[우리의 깃발을 들어 올리자, 적대적인 폭풍우가 불고 있다 하더라도, 암울한 세력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더라도, 모두의 내일이 불확실하다 해도…….]
그러나 러시아군이 폴란드인을 쓰러트릴수록 봉기의 불꽃은 더욱 거세져만 갔고, 너희 러시아에 희망은 없다는 듯, 바르샤바 곳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바르샤바 시민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바르샤바 시민(Warszawianka).
피의 화요일로 촉발된 1905년 시위 당시 불렸던, 훗날 폴란드보다 저 멀리 스페인에서 더 유명해질 노래가 바르샤바 전역에서 울려 퍼졌다.
[오! 이는 전 인류의 깃발이고 성스러움 부름이며 부활의 노래라네. 이는 노동과 정의의 승리이며 인류 형제애의 여명이라네!]
부우우웅───타다다다다다다!
“게르만 놈들 전투기다!”
“젠장, 엎드려어어!!”
바르샤바 곳곳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구치고 덩달아 대공포화 또한 약해지자 바르샤바 주위를 맴돌고 있던 독일군 전투기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눈에 잘 띄는 흰색 상의를 입고 있던 러시아 병사들에게 달려들자 러시아 병사들이 머리를 감싼 채 땅바닥에 엎드린다.
“전진, 바르샤바! 피의 전투로! 성스럽고 정의롭도다! 전진, 전진, 바르샤바!”
“전진, 바르샤바, 전진(Marsz, Warszawo, marsz)!”
이 모습을 본 폴란드인들은 이반들의 꼴사나운 모습에 더욱 힘을 얻으며 더욱 힘차게 노래 불렀다.
바르샤바 시민들은 노래의 후렴구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대체 왜 아직도 봉기를 진압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루즈키 사령관님, 지금 봉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독일군이 도하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즉시 바르샤바를 탈출하셔야 합니다!”
“으으……! 으아아아아아아!!”
바르샤바의 사령부에서 루즈키의 절규와도 같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렌넨캄프처럼 꼴사납게 포로로 잡히는 것만은 피하고자 서둘러 짐을 싸고 바르샤바에서 빠져나가는 것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 * *
“장군님, 저길 보십시오. 바르샤바 곳곳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하하, 해방의 불꽃이 타오르는군!”
한편, 바르샤바 봉기로 러시아군 방어선이 흔들리자 독일군과 함께 비스와강을 건너고 있는 피우수트스키와 폴란드인들은 불타오르는 바르샤바에 모습에 사납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러시아인들의 비명이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쇼팽의 아름다운 음악만큼이나 감미로운 소리다.
“상륙! 상륙!”
“서둘러 말들을 내려라! 바르샤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군이 방어를 포기하고 서둘러 바르샤바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이, 마침내 비스와강을 넘은 피우수트스키가 부하들을 재촉했다.
이미 러시아군이 후퇴하기 시작한 상황이니 이리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폴란드의 심장은 피우수트스키를 그 어느 때보다 안달이 나게 했다.
“자, 가자! 동포들이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예, 장군님!”
히히힝──!!
곧 힘찬 말 울음소리와 함께 폴란드 기병대가 앞다투어 바르샤바 내로 진입했다.
“폴란드 군단! 돌격! 러시아 놈들을 우리 도시 안에서 모조리 내쫓아라!”
“기, 기병대다! 폴란드 기병대다!”
“으아아! 죽고 싶지 않아!”
“도망쳐!!”
러시아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바르샤바 시민들을 상대하느라 아직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러시아 병사들은 시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기병대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폴란드 기병대는 이젠 방해물조차 못 되는 이반들을 말발굽으로 짓밟으며 바르샤바 중심지로 들어갔다.
“저길 봐! 폴란드의 깃발, 폴란드의 깃발이다!”
“폴란드 군단이 왔다!”
“어헝…… 어허허헝!”
“울지마, 레프. 이 좋은 날에 왜 울고 그래!”
폴란드 기병대가 그들의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바르샤바 시내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바리케이드 위에 서 있던 폴란드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얼마나 꿈에 그리던 광경인가.
이 모습을 보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고 기다려 왔던가.
돔브로프스키와 포니아토프스키가 그토록 기다리던 독립이 드디어 왔다.
지금 바르샤바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폴란드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1913년 10월 10일.
바르샤바가 해방을 맞이했다.
1815년 빈 회의 이후 러시아의 지배가 시작된 지 98년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