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78화 (178/193)

178화 : 동부 대공세 (2)

“포병대, 발포 개시!”

콰광! 쾅! 쾅쾅!!

겨울이 빨리 찾아오는 동유럽답게 무더웠던 여름 더위가 사라지고, 슬슬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1913년 10월 1일.

“진격, 진격하라! 방어의 시간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겁도 조국에 발을 들인 이반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집으로 내쫓을 시간이다!”

“11군, 앞으로 전진! 오늘 저녁은 카우엔(Kauen, 오늘날의 카우나스)에서 먹는다!”

“와아아아아아──!!”

수백, 수천 문의 대포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동부전선 전역을 타격하는 독일군의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이중제국의 병사들이여. 기나긴 핍박과 모멸의 시간은 끝났다. 과거의 패배는 잊고, 내일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라. 돌아가신 프란츠 요제프 폐하의 영혼이 우리를 지켜 주시니, 신성 로마 제국의 후예들의 힘을 로마의 후예를 스스로 칭하는 저 러시아인들에게 똑똑히 보여 줄 시간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승리를, 합스부르크에 영광을!”

그리고 갈리치아 전선에서도 이와 동시에 숨 고르기를 끝낸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회첸도르프가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독일 제7군, 불가리아군, 그리스군과 함께 러시아 남서전선군을 향한 공세를 개시했다.

곧 동부전선 전역에서 비명과 함성, 포성과 총성이 하모니를 울리며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참혹하고도 끔찍한 협주곡을 만들어 냈다.

독일군의 105mm, 150mm 곡사포와 210mm 박격포,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스코다 305mm 곡사포가 전선 곳곳에 구멍을 만들고, 수십만 명의 보병들이 총검과 기관단총을 앞세우며 계속해서 전진한다.

독일군 전투기들은 일리야 무로메츠 폭격기를 제외하곤 변변찮은 전투기조차 없던 러시아군을 향해 끊임없이 총탄과 로켓을 떨구었고, 지상에선 에르하르트 장갑차들이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며 러시아군을 향해 사방에서 총탄을 흩뿌렸다.

다만, 러시아군이라고 독일군에 공세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대공 전하, 독일인들이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우리는 아직도 지난 패배의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러시아군 총사령관이자 같은 이름을 가진 니콜라이 2세의 사촌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러시아 제국 최고의 명장이자 불패의 대원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말했다시피 러시아 제국의 가장 큰 무기는 광활한 영토와 그 위에 살아가는 무수한 이반들이었던 만큼 인적 자원은 충분했다.

그러나 어디 전쟁이란 것이 인구수만 많다고 해결되는 것이던가?

병사들을 징집하고, 유지할 수 있는 행정력.

그리고 병사들의 손에 들려 줄 소총과 입힐 군복 등 보급 또한 충분해야 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의 행정력은 다들 잘 알다시피 처참한 수준이었고, 보급 쪽은 이젠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그래도 이대로 겁먹고 뒤로 물러날 순 없는 일.”

무슨 일이 있어도 몰려오는 폭풍우 속에서 꿋꿋이 버티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번 전투는 사실상 동부전선의 운명을 판가름할 전투니까.

그렇기에 니콜라이 대공과 러시아군으로서도 아군의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만큼은 물러날 수 없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양쪽 다 피로 얼룩진 피로스 대왕의 승리가 될지라도 말이다.

“황태자 전하, 러시아군이 오고 있습니다.”

“기병대를 내보내라. 저들이 맞서 싸우기로 마음먹었다면 받아 주는 것이 예의일 테니까.”

“야볼!”

곧 진격하는 독일군과 막으려는 러시아군이 폴란드와 갈리치아의 평원에서 충돌했다.

책략 따윈 존재하지 않는 상대방을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르기 위한 힘과 힘의 대결이 전장 곳곳에서 펼쳐지고, 전장의 신의 함성과 함께 수만 발의 포탄이 지상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이 전투를 가장 앞장서서 이끄는 것은 수천 년에 걸친 인류 역사가 그랬듯이 군마와 기수들이었다.

“가자, 폴란드의 아이들아. 폴란드 대지에 다시금 흰 독수리 깃발이 올랐음을 러시아 압제자들에게 알려라!”

“Niech żyje Polska(폴란드 만세)!”

“마자르 후사르, 돌격하라! 우리야말로 그 누구보다 진정한 후사르. 비렁뱅이 카자크 따위 두려워할 거 없다!”

“성 이슈트반 왕관에 영광 있으라!”

폴란드 기병대와 헝가리 후사르, 독일 기병대가 각각의 군기를 휘날리며 제각기 동유럽 평원을 질주하며 적을 향해 거침없이 돌격했다.

“카자첸키(казаченьки)! 창을 들어 올리고 샤쉬카(Шашка, 카자크 기병도)를 뽑아라! 어머니 러시아가 피를 원하고 있으니.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건방진 독일 놈들과 나라도 없는 폴란드 놈들에게 보여 줄 시간이다!”

“우라! 우라! 우라아아!!”

동시에 잔혹하고 무자비하기로 악명 높은 카자크를 주축으로 한 러시아 기병대 또한 지평선을 가득 메운 적 기병대를 향해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콰직!!

수 초도 안 되는 짧은 침묵이 지나고, 양군의 육중한 군마들이 부딪쳤다.

제벨(Säbel)과 샤쉬카가 불꽃을 튕기며 부딪치고, 마차 중세시대의 마상 경기처럼 기다란 창과 창이 교차하며 기수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참호와 기관총, 철조망 삼신기에 기병대가 멸종해 버린 서부전선과 달리, 오로지 광활한 평원이 주전장인 이곳 동부전선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협상국 기병대와 러시아 기병대는 아직 기병의 황혼이 오긴 멀었다는 듯 치열하게 싸웠고, 보병들도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서로 포탄과 포탄, 총탄과 총탄을 주고받으며 정면에서 힘 싸움을 벌였다.

쾅! 콰광!!

“부됸늬 상사님, 적의 포격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길, 우리 포병대는 대체 뭘 하는 건지! 어쨌든 이대로라면 전멸이다. 모두 후퇴한다!”

그리고 힘 싸움에서 이긴 것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 러시아군을 담금질하듯이 끊임없이 두들긴 독일군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군은 초전의 분전이 무색하게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 있던 니콜라이 대공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 * *

“대공 전하,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고, 아군 병력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뒤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벨로스토크(Белосток, 오늘날의 비아위스토크)가 위험합니다.”

“리투아니아는?”

“그곳도 틀렸습니다. 코브노(Ковно, 카우나스)는 이미 함락 직전이고, 아군은 빌나(Вильна, 빌뉴스) 방어를 포기한 채 라트비아와 벨라루스로 후퇴 중입니다.”

“후……. 쉽진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역시 화력의 차이가 커도 너무 크군.”

당장 독일군이 단독으로 동원한 대구경 중포가 최소 300문 이상에 곡사포는 수천 문에 달했던 비해 니콜라이 대공이 가진 중포는 열 손가락은커녕 다섯 손가락조차 다 못 채울 정도였고, 곡사포 또한 고작 수백 문에 불과했다.

포병의 화력은 대포의 수로 결정되는 것인 만큼 압도적인 적군의 화력에 아군이 밀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당연하다고 해도 이 참혹한 기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프로이센에서 잃어버린 대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너무나도 뼈아프군.”

“그래도 갈리치아에선 아직 방어선을 유지 중입니다.”

“음, 특히 8군 사령관인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중장의 활약이 크다던가? 아직 주께서 이 러시아 제국을 버리지 않으신 게지.”

러시아 제국 최후의 명장,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브루실로프(Алексе́й Алексе́евич Бруси́лов)는 그 명성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듯 여기서도 절찬리 활약 중이었다.

그는 개미 떼처럼 밀려오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협상국 병력을 상대로도 밀려나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덕분에 회첸도르프는 실시간으로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전투의 승패는 바르샤바를 지켜 내는가 지켜 내지 못하는가에 달린 것인가. 루즈키가 잘해 주어야 할 텐데.”

현재 바르샤바를 지키는 것은 얼마 전에 새로운 북서전선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 루즈키(Никола́й Влади́мирович Ру́зский)였다.

참고로 전임 북서전선군 사령관이었던 질린스키는 해임된 것도 모자라 추하게 포로로 잡힌 렌넨캄프의 죄까지 뒤집어써 법정에서 군적이 박탈되면서 군인으로서 인생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페트로그라드 폭격과 발트함대 전멸로 분노 게이지가 머리끝까지 차 있던 니콜라이 2세가 렌넨캄프가 명예를 지키고 죽은 삼소노프와 달리, 도주하다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에 말 그대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군부로선 분노한 차르를 달래기 위해 그에게 바칠 산 제물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렌넨캄프와 삼소노프의 상관이었던 질린스키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의 죄라곤 부하를 잘못 둔 죄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질린스키로선 그야말로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질린스키 다음으로 북서전선군 사령관이 된 것도 모자라 반드시 바르샤바를 지켜 내야 하는 루즈키의 양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니콜라이 대공 또한 이 점을 걱정했다.

“루즈키는 질린스키와 달리 신중한 인물입니다. 그라면 침착하게 바르샤바를 지켜 낼 겁니다.”

참모들의 말에 니콜라이 대공은 정말 그러길 바란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지켜 내지 못한다면 러시아 제국은 또다시 패배할 테니까.

그다음이 어찌 될지는 니콜라이 대공으로선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 * *

“피우수트스키 장군님, 저기 보이십니까?”

“보고 있네. 시코르스키.”

1913년 10월 7일.

낙오된 러시아 병사들을 구타하며 해방의 깃발을 흔드는 폴란드 농부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러시아군을 밀어내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 독일군과 폴란드 군단은 마침내 폴란드의 심장에 도착했다.

“바르샤바.”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피우수트스키가 눈시울이 붉히며 비스와강 건너편에 보이는 한 손에 잡힐 듯한 바르샤바에 눈을 떼지 못했다.

시코르스키와 다른 폴란드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피우수트스키 장군님. 황태자 전하께서 바르샤바에 먼저 발을 들일 영광을 폴란드 군단에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참 고마운 말씀이군.”

내 말에 감상에 잠겨 있던 피우수트스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내가 바르샤바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군. 아마 어렸을 때 내 형님과 함께 바르샤바에 잠시 들렸을 때였을 거요.”

여담이지만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형인 브로니스와프 피우수트스키(Bronisław Piłsudski)는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그 레닌의 형 맞다)와 함께 알렉산드르 3세를 암살 모의를 공모하다 걸려서 형제가 나란히 시베리아로 유배된 적이 있다.

실제로 젊은 날의 피우수트스키도 형의 영향 탓인지 빨간 맛에 빠져서 폴란드 사회당에서 활동한 전적도 있고.

심지어 NKVD와 KGB의 전신인 체카의 수장이었던 펠릭스 제르진스키는 피우수트스키의 같은 학교 1년 후배였다.

세상은 좁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래도 이렇게 돌아오셨잖습니까? 그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죠.”

“음. 어쨌든 드디어 얀 헨리크 돔브로프스키와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가 그토록 바랬던 숙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왔소. 그러니 전투에 나가기 전에 검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갈고, 심장을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구어야겠지.”

“저 또한 폴란드 군단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다만, 나로선 폴란드 국가의 주인공인 돔브로프스키는 몰라도 프랑스랑 싸우고 있는데, 나폴레옹의 26원수 중 하나였던 인물을 예로 드는 게 좀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피우수트스키의 기분은 이해한다.

바르샤바 공국이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지 거의 백 년 만에 다시 한번 폴란드의 독립을 목전에 두었으니, 그로선 아무래도 감명이 깊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바르샤바 시민들은 준비가 되었습니까?”

봉기를 지원하겠다고 병참감의 분노 섞인 잔소리를 참아 가며 기관단총 물량까지 어떻게든 빼 와서 은밀히 바르샤바 내로 들여보냈다.

여기서 못하겠다고 한다면 나로선 너무나도 곤란했다.

당장 비스와강 건너편의 러시아군 방어선이 생각보다 훨씬 튼실해 보이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봉기 없이 단기간에 바르샤바를 점령하는 것은 힘들어 보이니까.

“그 점에 대해선 전혀 걱정할 것 없소. 후작.”

그러나 피우수트스키는 그런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듯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바르샤바에서 우리 폴란드인들이 지난 백여 년간 얼마나 많은 봉기를 일으켰는지 아시오? 바르샤바 시민들은 봉기에 한해선 전문가 중의 전문가요.”

하긴, 러시아 제국 치하 시절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그 유명한 1944년 바르샤바 봉기를 일으키며 폴란드가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던 것이 바르샤바 시민이다.

봉기에 관해서는 그들을 따라올 사람들이 없다.

‘어찌 보면 지금 상황은 딱 그때랑 반대네.’

다만, 1944년의 바르샤바는 소련군의 방치 속에서 나치 인간 백정 3인방이 이끄는 무장 친위대에게 초토화 당했지만.

하지만 1913년의 바르샤바는 다를 것이다.

“러시아 놈들은 그동안 우리를 총칼로 짓밟았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오.”

피우수트스키의 맹세와도 같은 장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채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 공세의 운명, 그리고 폴란드의 운명을 결정지을 바르샤바 공방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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