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 동부 대공세 (1)
“아, 출세하고 싶다!”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마. 미친놈아.”
이제는 익숙해진 만슈타인의 외침에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는 담배를 꺼내 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난 전투에서의 인연으로 만슈타인과 친해진 시코르스키지만 융커 특유의 오만한 성격은 둘째 치더라도 그의 흘러넘치는 출세욕만큼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자네 나이에 벌써 대위를 달 정도면 이미 출셋길은 탄탄대로이지 않나. 뭘 그리 조급하게 구는 거야?”
“브와디스와프, 남자라면 언제나 정상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법이야. 어디 사람들이 산에 아무 이유도 없이 오르나? 높으니까 오르는 거지,”
“허.”
“그러니 이번 작전 회의 때 잘 좀 말해 주시죠. 시코르스키 대령님.”
못 말리겠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시코르스키.
부르릉~끼익!
그때 멀지 않는 곳에서 차량 여러 대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시코르스키는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팔켄하인 참모총장이랑 한스 폰 초이 후작이잖아?”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뜬 만슈타인의 말에 시코르스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고쳐 썼다.
“드디어 시작이군.”
동부전선을 향한 반격 공세.
그리고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그의 조국, 폴란드 해방의 때가 다가왔다.
* * *
“격조했습니다. 황태자 전하.”
“너도 오랜만이다, 한스.”
1913년 9월 24일.
팔켄하인을 비롯한 OHL 참모들과 함께 동부전선 사령부를 찾아온 나는 오랜만에 보는 빌헬름 황태자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타넨베르크의 영웅으로 루덴도르프, 호프만과 함께 베를린에서 한창 인기몰이 중인 황태자는 전선으로 떠나기 전 봤을 때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그가 집을 떠난 지 고작 두 달밖에 안 지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나저나 체칠리에랑 우리 애들, 루이제는 잘 지내지?”
“건강하다 못해 기운이 넘칩니다. 루이제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황태자비님, 왕자비님들과 함께 병사들을 간호하러 나가고 싶어 했는데 자신만 못 간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지금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니까. 그나저나 너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참 바쁘게 사는구나.”
“제 직업이 직업이니까요. 적어도 출산 예정일에는 포츠담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전쟁 때문에 밖에 나돌아 다녀야 하는 못난 남편이지만 적어도 루이제가 아이를 낳을 땐 옆에 있어 주고 싶다.
“그럼 네가 빨리 내 여동생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나와 루덴도르프 참모장이 더 열심히 뛰어야겠군.”
“8군에 대해선 언제나 기대가 큽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잠시 후.
“한스와 같이 앉아있으니 신선한 기분이군.”
“하하, 헤레로 반란 때가 떠오르는군요.”
“예. 그때 루덴도르프 중장님께 꽤 ‘신세’를 졌었죠.”
“크흠! 그, 그렇죠. 하하하하!”
8군 사령관인 빌헬름 황태자와 참모장 에리히 루덴도르프 중장.
“호프만 대령, 안경 좀 건네주겠나? 나이가 드니 눈이 침침하구먼.”
“여기 있습니다. 아이히호른 사령관님.”
백전노장인 9군 사령관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 대장과 타넨베르크 전투에서의 공훈을 제대로 인정받아 참모장으로 진급한 막스 호프만 대령.
“이번에도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 마음 같아선 직접 선두에 서고 싶은 기분이야.”
“제 심장이 못 버틸 것 같으니 그것만은 참아 주시죠. 마켄젠 사령관님.”
10군 사령관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대장과 참모장 한스 폰 젝트 대령.
“저 장군님……? 이제 일어나셔야 합니다만…….”
“으응……? 이거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그만 졸았군.”
원 역사에서 서부전선, 동부전선 가리지 않고 활약한 신생 11군 사령관 막스 폰 파베크(Herrmann Gustav Karl Max von Fabeck) 대장과 참모장 파울 그뤼네르트(Paul Ferdinand Alexander Grünert) 대령.
“드디어 모든 폴란드인이 꿈꿔 오던 순간이 왔네. 시코르스키 대령.”
“예, 어서 빨리 전장으로 가고 싶은 기분입니다. 피우수트스키 장군님.”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폴란드로 가고 싶어 안달 났는지 말없이 발만 구르고 있는 폴란드 군단 사령관인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와 참모장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까지.
갈리치아 전선에 나가 있는 7군 사령관 요시아스 폰 헤링겐 대장을 제외한 동부전선의 사령관들과 참모장들이 모두 한자리에 집결했다.
“그럼 모일 사람은 모두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부전선 야전군 사령관들과 참모들이 커다란 작전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가운데 공세의 중요성을 생각해 나와 함께 직접 동부전선까지 온 팔켄하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모두 아시다시피 이번 공세의 주요 목표는 러시아령 폴란드와 갈리치아 완전 탈환입니다. 그리고 언제 러시아 제국의 공격을 받을지 모를 메멜의 안전 확보를 위해 리투아니아도 추가로 확보하고 싶습니다.”
팔켄하인이 작전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지도 곳곳을 지휘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8군, 9군, 10군이 각각 세 방향으로 러시아군 방어선을 돌파, 폴란드로 진군하고 파베크 장군이 지휘하는 11군은 리투아니아 점령 및 차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진군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소.”
파베크가 맡겨 두라는 듯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실제로도 여러 야전군 사령관을 맡으며 유능하다 평가받았던 인물이니만큼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공세를 시작하면 회첸도르프 참모총장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헤링겐 장군의 7군 또한 갈리치아 전선에서도 공세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번에 불가리아군, 그리스군이 그쪽에 새로 합류했으니 지난번과 달리 추태를 보이진 않겠죠.”
동프로이센 전선에 이어 그나마 성과를 내고 있던 갈리치아 전선까지 무너지면 러시아 제국은 급격히 흔들리게 될 터.
그리고 지금쯤 스위스에서 세계대전의 흐름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을 우리의 공산천마 레닌 또한 더는 참지 못하고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동부전선 전체가 움직이는 것인가. 좋군. 다만 개인적으론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까지 이 기회에 진격하고 싶소만…….”
“아쉽게도 가을이 찾아오면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대에 라스푸티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겨울 때까진 참아 주시죠.”
내 말에 아이히호른 대장이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갈리치아 수복과 폴란드 점령만 해도 원래라면 1915년에 일어난 고를리체-타르노프 공세가 성공하고 나서야 이루어진 만큼 우리의 진격 속도는 충분히 빠른 상태니 여기서 더 조급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니 러시아의 그 악명높은 뻘밭에 병력이 발이 묶여 오히려 아까운 시간만 더 잡아먹는 것보단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갈리치아를 착실하게 장악한 뒤 동계공세를 준비하면서 그사이 계획대로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을 병력으로 징집하는 것이 베스트다.
“서둘러 폴란드를 점령하고 남하할 수 있다면 갈리치아의 러시아 남서전선군을 포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관건은 결국 격전지로 예상되는 바르샤바를 얼마나 빨리 떨어트리냐에 달렸겠군.”
마켄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령관들.
“피우수트스키 장군님. 폴란드 현지인들의 분위기와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직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이들도 많지만 적어도 독일군이 진군해 오면 독일군에게 다들 협조할 것이오. 바르샤바 내에서도 우리 시민들이 봉기를 준비 중이고.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할 수 있소.”
내 물음에 피우수트스키가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확실히 폴란드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다면 진격이 한층 더 수월해지는 것은 물론 천연장애물인 비스와강을 끼고 있어 공략에 난항이 예상되는 바르샤바 공격도 쉬워질 것이다.
다만 아직 불안 요소는 남아 있다.
다름 아닌 우리 병사들이다.
우리 독일군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이쪽 방면의 프로페셔널인 러시아 못지않게 전쟁범죄 쪽에 악명을 떨쳤던 이들이니까.
애초에 당장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곧 해방될 신생 폴란드와의 협의 및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외무장관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아군 병사들의 군기를 엄격하게 다잡아 줄 것을 사령관 여러분께 부탁드리겠습니다. 혈기가 지나친 나머지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에서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순간 향후 독일 제국의 전쟁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크흠, 명심하겠소. 장관.”
쉽게 말해 점령지에서 약탈이나 강간 같은 거는 꿈도 꾸지 말란 소리다.
가뜩이나 독일과 민족 감정이 좋지 않은 폴란드인들인데 해방군으로 왔다는 양반들이 깽판을 쳐 봐라.
그 순간 폴란드인들은 우리 독일 제국을 러시아 제국과 똑같이 여기게 될 것이고 그들을 병력으로 삼아 양면 전선의 압박을 줄이겠단 내 계획도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당장 전쟁 중 현지인들과의 불화가 무슨 결과를 불러왔는지는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당장 멀리 가지 않아도 독소전쟁 당시 우크라이나의 경우만 봐도 뻔했다.
소련과 강철의 콧수염 서기장에게 시달리던 우크라이나인들은 처음엔 나치 독일을 해방군으로 환영했지만 이내 나치들이 소련보다 더한 새끼들이란 것을 직접 온몸으로 겪게 되자 많은 이들이 차라리 소련이 낫다며 등을 돌렸으니까.
물론 전부는 아니고 스테판 반데라를 비롯한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소련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너무나도 컸던 나머지 나치와 손잡고 제노사이드를 벌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런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게 내 마음이었고 상당히 돌려 말하긴 했지만 내 경고를 알아들은 사령관들도 주의하겠다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하여튼 이번 공세는 동부전선, 서부전선 통틀어 가장 거대한 대공세가 될 것이오. 그러니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반드시 이번 공세를 성공시켜야 하오.”
빌헬름 황태자의 말에 회의실 안에 있는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전선에 다시금 울려 퍼질 포성을 기대하면서.
* * *
“모두 모였습니까?”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한편 이번 공세의 어떤 의미론 가장 핫한 장소가 될 예정인 바르샤바의 지하에서 은밀한 목소리들이 서로를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이들은 바르샤바의 시민 지도자들.
피우수트스키의 봉기 요청을 듣고 모여든 이들이었다.
“독일군의 공세가 곧 시작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곳 바르샤바로 오기 전에 서둘러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건 문제가 없소. 하지만 정말 독일인들을 믿어도 되겠소?”
“피우수트스키 장군의 말에 따르면 독립을 약속한 한스 폰 초이 후작와 함께 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우리를 기만하려는 속셈일 확률은 낮다고 할 수 있겠죠. 게다가 지금 우리가 찬물 더운물 가릴 입장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 대전쟁에서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은 협상국에 협력하는 길뿐이었다.
그 협상국의 주축이 하필이면 그 독일 제국이라 다들 믿기 힘들 뿐이지.
그러나 암울한 시대에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기 시작한 희망이다.
폴란드인들로선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피우수트스키 장군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입니다. 자, 그럼 모두 독일군의 바르샤바 공격에 맞춰 봉기를 일으키기로 동의하신 걸로 알아도 되겠습니까?”
그 말과 바르샤바 시민들의 시선이 한 곳, 정확히는 구석에 서 있던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을 향했다.
정작 사회주의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대체 왜 우릴 그런 눈으로 보는 거요?”
“하지만 당신들은 그거잖소. 그거.”
“젠장, 우리는 혁명에 미쳐 몸에 흐르는 피조차 배신한 로자 룩셈부르크와는 다르오. 우리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폴란드 독립이란 말이오!”
실제로 폴란드인이면서 계급투쟁을 우선시해 폴란드 독립운동을 등한시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평판은 혁명보단 반러시아 투쟁과 폴란드 독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에게 차르의 첩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물론 독일 제국과 협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그리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란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소!”
사회주의자들의 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외침에 다른 바르샤바 시민들은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모두 러시아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흩어집시다.”
그 말과 동시에 바르샤바 시민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곧 다가올 바르샤바의 해방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