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 외전 극동전선 (2)
쾅! 콰광!!
“계속 노를 저어라!”
“지나 놈들보다 우리가 먼저 하노이(Hà Nội)를 점령해야 한다!”
중화민국 VS 일본의 경쟁은 일본이 하이퐁(Hải Phòng)에 상륙하면서 그 막을 올렸다.
일본군은 역대 베트남 왕조의 유서 깊은 수도이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가 있는 하노이를 점령해 인도차이나의 주도권을 차지하려 했고, 그를 위해선 하노이로 가는 첫 번째 길목인 하이퐁부터 점령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총통 각하! 일본군이 하이퐁에 상륙을 개시했습니다!”
“뭣?! 제길, 왜노들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군. 펑궈장에게 우리도 당장 진격을 시작하라 전해라!”
그리고 위안스카이 또한 일본군의 하이퐁 상륙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안남 국경에서 진군을 준비하고 있던 펑궈장에게 서둘러 하노이를 향해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프랑스령 광저우만이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일본에 점령당했으니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여기서 안남까지 빼앗기면 자신의 체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게 될 것이고, 황제의 꿈 또한 또다시 저 멀리 날아가 버릴 것이 분명한바.
그렇게 대총통의 명령에 따라 구 북양군벌, 현 중화민국군은 국경을 넘어 하노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 놈들이나 일본 놈들이나 한스 폰 초이나 똑같이 눈 찢어진 원숭이 새끼들이 아주 우리 프랑스를 우습게 보는군!”
물론, 갑자기 국경에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중화민국군과 하이퐁에 상륙한 일본군과 맞서 싸우게 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의 눈에는 일본이나 중국이나 그놈이 그놈이었지만.
하지만 화가 난다고 해서 암울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당장 본토에서 병력 지원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질은 둘째 치고 적군과 비교해 병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고, 인도차이나 주둔군은 결국 제국주의 마인드를 발휘해 베트남 현지인들을 강제 징집, 해군의 지원을 받는 일본군과 수로 밀고 들어오는 중화민국군을 향해 고기 방패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타다다다! 타다다다다!!
“으아아악! 죽고 싶지 않아!”
“왜 우리가 프랑스 개자식들을 위해 싸워야 하는 거야?!”
그러나 이는 가뜩이나 프랑스의 핍박과 압제에 시달려 온 베트남인들의 분노에 불을 붙일 뿐이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독립운동 지도자 판보이쩌우(Phan Bội Châu)가 이끄는 베트남 광복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비엣남(Viet Nam)의 독립을 되찾을 때다! 일어서라, 비엣남이여! 프랑스인들의 손에서 황제 폐하를 되찾자!”
프랑스의 통치가 흔들리자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신음하고 있던 베트남에 독립의 물결이 퍼지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역에서 프랑스에 대항한 소요사태가 일어났고, 아직 그 명맥은 유지 중인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제11대 황제, 주이떤(Duy Tan Đế, 유신제) 또한 은밀히 이를 지원했다.
“아시아의 형제들이여, 일어나십시오. 우리 일본군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와아아아! 대일본제국 만세!”
그리고 영악한 일본군은 이를 이용했다.
그들은 베트남에서 해방자 행세를 하며 현지인들의 지원을 받아 수월하게 하노이를 향해 진군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알고 친일 조정의 적극적인 매국 행보 속에 외교권과 군권을 모두 잃은 채 합병을 눈앞에 둔 조선인들이 알듯이 이는 기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 아래 신음하고 있는 아시아인들에겐 여전히 동경을 받는 나라였고, 아직 그들의 실체를 모르는 베트남인들 또한 일본을 도우면 그들이 우릴 독립시켜 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타다다다! 타다다다다!!
“왜 이리 진격이 더딘 것이야?!”
“그, 그게 안남인들의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당장 후방의 보급로도 공격받는 상황이고…….”
“빌어먹을!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 없다. 일본군은 벌써 하노이의 코앞까지 다다랐단 말이다!”
이에 반해 중화민국군은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쾅! 콰광! 쾅!!
“포격이다!”
“포격이라니, 불란서인들은 후퇴하고 있는데, 대체 누가 우리를 쏘고 있단 말이냐?!”
“바다, 바다 쪽입니다. 장군!”
펑궈장은 부하의 보고에 쌍안경을 들고 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쌍안경에 비친 모습은 욱일기를 휘날리며 중화민국군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함포 사격을 가하고 있던 일본 해군 함선들이었다.
“저 왜노 새끼들이 미쳤나! 왜 우리한테 포를 쏘고 지랄이야?! 당장 멈추라고 신호 보내!”
“그거야 진작에 보냈죠. 그런데 저놈들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닌지 전혀 들어먹질 않고 있습니다!”
“뭐? 이런 개 같은……!”
펑궈장은 이를 갈며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저놈들 일부러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진격을 방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함장님, 중화민국군이 포격을 중지하라 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만.”
“보지 못한 척하고 계속 퍼부어. 안남을 냄새나는 지나 놈들에게 넘겨줄쏘냐.”
펑궈장의 예측은 정답이었다.
일본은 정말 중화민국군을 방해하기 위해 일단은 같은 편인 그들을 향해 함포를 쏘고 있었으니까.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군은 현지 베트남인들을 포섭해 중화민국군의 보급로를 공격하고, 진격로마다 함정을 팠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중화민국군을 괴롭혔다.
당장 쯩 자매, 레 러이 등등 중국과 베트남과의 역사가 역사고, 악연이 악연이다.
베트남인들이 보기에 중화민국군은 프랑스인들과 다를 바 없는 침략자(틀린 말은 아니었다)에 불과했다.
“대일본제국 반자이! 덴노헤이카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
결국, 중화민국군이 일본의 비열한 수단에 제대로 진격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 일본군은 여유롭게 하노이 레이스의 우승을 차지했다.
하노이 인도차이나 총독부에 걸려 있던 삼색기가 내려가며 일장기가 게양되었고, 인도차이나 총독부가 항복하자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프랑스인들도 저항을 포기하고 두 손을 들었다.
“펑궈장 이 무능한 자식이…… 어어엌!!”
“각하? 각하!”
이 소식을 들은 위안스카이는 난징의 대총통 관저에서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베트남 북부의 일부만이라도 점령했다면 모를까 펑궈장은 그것조차 해내지 못했으니.
물론. 펑궈장에게도 할 말은 많았지만.
그러나 계속되는 억까를 버티지 못하고 울화병이 도진 위안스카이는, 결국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화민국은 차기 대총통 자리를 두고 파벌 갈등에 불이 붙으면서 또다시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프랑스인들도 항복했으니 비엣남의 독립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아니, 우리 생각엔 안남은 독립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그러니 안남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대일본제국의 많은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뭐요? 잠깐, 이건 약속이 다르잖…… 읍읍!”
일본은 프랑스의 압제에 벗어나 다시 자유를 되찾을 것을 기대하고 있던 주이떤 황제와 판보이쩌우를 유폐하며 자신들의 새까만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안남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완 선생.”
“예. 일본군이 제 조국에 상륙했을 땐 조금이나마 기대를 품었습니다만, 선생님들께 들었던 대로 일본은 자신들을 해방자라 선전하면서도 정작 베트남의 독립에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더군요.”
완생공, 베트남어론 응우옌신꿍(Nguyễn Sinh Cung)이라 이름을 가진 23살의 젊은 베트남 청년이 어두운 얼굴로 말하자 정체를 숨기기 위해 중국풍 복장을 하고 있던 민영환과 최재형은 안타까운 얼굴로 청년과 청년의 고향에 애도를 표했다.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들, 결국 지금의 상황은 안남의 주인이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바뀐 것뿐이니까.
이곳 키아우초우에서 너무나도 가까운데도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의 조국, 조선처럼 말이다.
“세계대전이란 이름의 이 끔찍하고도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우리 조선인들이나 안남인들이나 많은 것을 잃는 것이 그저 애석할 따름입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세계대전은 대한자유정부와 한인 독립운동가들에겐 재난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여기 있는 자유정부와 협력관계에 있던 최재형을 비롯한 연해주의 한인들은 몰려오는 일본군을 피해 청나라를 거쳐 키아우초우로 도망쳐 와야 했으니 말이다.
민영환에게도 최재형에게도 너무나도 뼈아픈 일이었다.
민영환에게 있어 연해주는 독일인 교관들의 도움을 받아 독립군을 양성하는 자유정부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고, 최재형에게 있어선 그동안 그가 평생에 걸쳐 기반을 쌓아 올린 정든 제2의 고향이었으니까.
그러나 최재형으로서도 러시아 제국에서 받은 관직을 버리고 연해주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최재형은 아직은 한스 폰 초이와 독일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탓에 은밀히 움직여야 했던 자유정부를 대신해 얼굴마담으로 활동했고, 그 덕에 일본은 그를 잡아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당장 한인들의 영웅이자 선망의 대상이 된 안중근 또한 연해주에 있다가 최재형의 지시를 받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니 말 다 했다.
“그래도 최 선생님과 연해주의 조선인들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완 선생.”
청 정부의 도움 덕분이었다.
최재형과 연해주의 한인들을 잃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한스가 돤치루이와 접촉해 독일제 무기를 지원해 주는 것을 대가로 안전하게 청 영토를 통과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기 때문이다.
돤치루이로서도 독일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은 전혀 없었고, 독일의 무기 지원 덕에 북만주 탈환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으니, 한스가 좋아하는 윈-윈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연해주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그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입헌군주제를 추구하고 있던 자유정부와의 사이가 예전부터 극악이었던 탓에 민영환으로선 그들이 오겠다고 해도 받아 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게다가 얼마 전엔 독일 제국이 어쩌다 보니 일본과 같은 편이 되어 버린 탓에 독일의 후원을 받는 자유정부까지 싸잡아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자유정부 내에서도 일부 인사들이 정말로 독일을 계속 믿어도 되느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물론, 민영환이 생각하기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같은 소리에 불과했다.
후작과 독일 제국이라고 오지리(墺地利) 황제가 암살당하고, 그것이 열강 간의 대전쟁으로 번질 줄 알았겠는가?
이번 전쟁은 모두에게 있어서 뜬금없이 일어난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협상국 참전도 영일동맹의 존재와 일본이 러시아에 악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독일 제국이라고 아군 하나하나가 절실한 상황에 이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로선 오히려 이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를 생각해야지.’
이미 참전 문제를 두고 영일동맹이 삐걱대고 있었다.
게다가 민영환이 아는 일본은 고작 프랑스 식민지로 만족하고 끝낼 작자들이 아니었던 만큼, 잘 생각해 보면 오히려 차후에 독일, 영국과 대립할 확률이 높았다.
당장 최 후작도 편지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독일과의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민영환은 생각했다.
“당장 그치들이 키아우초우에서 안락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누구의 후원 덕분인데, 그런 소리를 하는지…….”
“민 선생님?”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잠시 딴 길로 샜군요. 그나저나 완 선생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안남으로 돌아갈 겁니까?”
“본래 계획대로 런던으로 갈 생각입니다. 아직 세상을 더 둘러보고 싶거든요.”
“음, 하긴 극동에서의 전쟁은 거의 끝났으니, 곧 바닷길이 다시 열리겠군요. 여행을 떠나기엔 좋을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몸조심하길 바랍니다.”
“예, 그동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민 선생님과 자유 정부와는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군요. 우리 비엣남과 조선의 처지가 같아질 것 같으니.”
“하하하…….”
민영환은 씁쓸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안남이 전후 일본의 식민지가 될 확률이 높은 것처럼 전쟁의 승리로 기세가 오른 일본이 더는 조선을 괴뢰국으로 남겨 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땐 자유정부도 일본의 발 닦개로 전락한 조정에 대항한다는 의미의 자유를 떼고 진정한 의미의 정부로 재탄생해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일본에 맞설 전우로서 같은 처지에 있는 안남의 독립운동가들과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은 민영환과 자유정부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 좋은 여행길 되시길.”
민영환과 최재형의 배웅을 받으며 응우옌신꿍, 훗날 호치민(Hồ Chí Minh)이라 불릴 베트남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는 자신의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새로 사귄 친구들처럼 언젠가 빼앗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