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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172화 (172/193)

172화 : 세르비아의 최후 (3)

쾅! 콰광!

“이젠 한계인가…….”

페타르 1세는 올 것이 왔다는 침중한 얼굴로 잿빛 연기와 함께 무너지고 있는 방어선을 바라보았다.

7일에 걸친 연합군의 공격이 기어코 굳건했던 베오그라드를 뚫어 낸 순간이었다.

“후퇴! 시가지로 후퇴하라!”

푸트니크 원수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세르비아 병사들이 도시 외곽 방어선을 포기하고, 시가지 내의 2차 방어선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군이 도시 안으로 후퇴합니다!”

“내 일주일 안에 베오그라드를 떨어트린다고 말했지.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전군 베오그라드 내로 진입해라!”

“옛!”

포티오레크와 연합군은 베오그라드를 함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베오그라드를 떨어트리겠단 일념으로 베오그라드 내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탕! 탕탕!

“막아! 막을 수 있는 데까지는 막아라!”

“쌓을 수 있는 물건은 있는 데로 가져와. 바리케이드를 보강해야 해!”

곧 시가지 곳곳에서 세르비아 최후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세르비아인들은 항복보단 죽기가 더 쉽다는 듯 그들이 사랑했던 수도를 더러운 군홧발로 짓밟은 연합군 병사들을 향해 처절한 항전을 이어 나갔다.

그들은 건물과 가구와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바리케이드에 몸을 숨기고 끊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탄약이 없는 이들은 마지막 기력을 짜내 몰려오는 적군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야전삽과 단검을 휘둘렀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건물 안으로 돌입해라! 안에 숨은 세르비아군을 모조리 소탕하라!”

그러나 이러한 세르비아 병사들의 저항은 너무나도 허무하고 손쉽게 막히고 말았다.

연합군은 이미 시가전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참호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기관단총은 시가전에서도 빛을 발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불가리아군, 그리스군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은 채 건물 안에 숨은 세르비아 병사들을 착실히 다진 고기로 만들어갔다.

“플레멘베르퍼(Flammenwerfer) 앞으로!”

화르르륵───!

“흐아아아악!!”

“내 몸! 내 몸!”

기관단총뿐만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얼마 전 서부전선의 참호전에서 등장한 최신 무기,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했다.

물론, 사정거리가 20m도 안 되고, 사용 시간은 2분 남짓한 시간에 무게도 끔찍하게 무거워 운용하려면 무려 세 사람이나 필요해 정작 서부전선에선 쓰기 너무 힘들다고 불만이 많았지만.

그러나 탄약이 떨어져 총검과 야전삽, 심지어 벽돌을 쥐고 달려오는 세르비아 병사들에게 뜨거운 불맛을 보여 주기엔 충분했다.

“죽어! 죽어!”

“세르비아 놈들은 보이는 족족 모조리 죽여 버려!”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전투는 곧 학살로 변했다.

연합군 병사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그동안의 전투에서 그들을 악착같이 괴롭혀 온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분노를 풀기 시작했다.

포로 따윈 필요 없다.

너희에게 줄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연합군 병사들은 그리 소리 없이 외치며 세르비아 병사들을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총칼로 가슴을 찔렀다.

“전군, 왕궁으로 후퇴하라!”

지옥으로 변해 버린 시가지에서 살아남은 세르비아 병사들이 푸트니크 원수의 명령 아래 허겁지겁 왕궁으로 후퇴했다.

그 수는 이제 천 명도 채 되지 않았다.

“포티오레크 사령관님, 남아 있는 적들이 베오그라드 왕궁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일단 왕궁을 포위하라.”

세르비아군 수뇌부와 살아남은 병사들이 왕궁으로 후퇴했다는 소식에 포티오레크는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차면서도 그런 명령을 내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305mm 곡사포로 왕궁이고 뭐고 모조리 날려 버리고 싶다.

그러나 왕궁 안에는 지난 7일 동안 전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세르비아 병사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었던 세르비아 국왕, 페타르 1세도 있을 터.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그를 죽이지 말고 웬만하면 살려서 데려오라고 포티오레크에게 당부했다.

만약 세르비아인들에게 존경받는 페타르 1세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손으로 죽이기라도 했다간 차후 세르비아 점령지를 관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포티오레크로선 검은 손을 제멋대로 설치게 놔둔 세르비아 국왕이 비참하게 죽길 바랐지만.

그래도 황제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었다.

곧 연합군 병력이 왕궁을 빈틈없이 포위했고, 포티오레크는 궁전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승기는 이미 기울었다. 이 이상 무익한 피를 흘리는 것은 우리로서도 원하지 않는바. 지금 즉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그러면 황제 폐하의 자비로운 명령에 따라 그대들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겠다!”

웅성웅성

“폐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항복하라는 포티오레크의 말에 병사들이 동요하자 페타르 1세는 어두운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비참하지만, 적 사령관의 말이 맞았다.

이미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세르비아의 국왕 되는 몸으로서 사랑해 마지않는 조국이 다시 한번 외세에 굴복하는 것을 살아서 보고 싶진 않았다.

“푸트니크, 잠시 혼자 있게 해 주겠나?”

“폐하?”

결심을 굳힌 페타르 1세는 궁전의 홀을 떠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인도 하녀들도 모두 떠난 국왕의 방은 세르비아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 어느 때보다도 초라해 보였다.

“이 방의 주인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수모를 겪어야 했건만, 결국 이렇게 끝나는가.”

어쩌면 이것 또한 업보일지도 모르겠다.

페타르 1세가 왕위에 오른 것은 알렉산다르 오브레비치를 암살한 검은 손 덕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 페타르 1세와 세르비아 왕실은 남몰래 검은 손을 후원해 왔다.

멍청한 짓이었다.

검은 손의 과격함과 위험성이 세르비아에 독이 되리란 걸 사실을 깨닫고 그들을 제거해야만 했지만, 페타르 1세는 그러질 않았다.

오히려 파시치 총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손 놓고 있다가 그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게 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결국, 검은 손에 의해 왕위에 오른 국왕은 검은 손으로 인해 몰락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선 이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늦어 버린 후회에 불과했지만.

사각사각──

페타르 1세는 종이를 꺼내 유서를 적었다.

자신이 죽으면 살아남은 병사들을 데리고 항복하라는 유서를.

“행복한 꿈을 꾸었다.”

펜을 내려놓은 페타르 1세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권총을 뽑았다.

그리고 세르비아의 마지막 국왕은 눈을 감고 천천히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었다.

“잘 있거라. 나의 사랑하는 세르비아여.”

페타르 1세가 조국에 마지막 인사를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안 됩니다. 폐하!”

불안감을 느끼고 페타르 1세를 찾아온 푸트니크 원수가 국왕의 자결을 막았다.

“비키게. 라도미르.”

“그럴 순 없습니다.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그 누가 적들의 손에 남겨진 가여운 백성들을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페타르 1세가 죽으면 세르비아인들은 무도한 협상국 병사들의 손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에게 자비를 청하고 교섭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적들에게도 그 의지는 존경할 만하다며 존중을 받는 페타르 1세뿐이었다.

“폐하의 목숨은 비단 폐하의 것만 아닙니다.”

푸트니크 원수의 열변에 페타르 1세는 권총을 잡은 팔을 힘없이 내렸다.

“참으로 비참하군. 참으로 비참한 시대야.”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한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왕궁에는 백기가 걸렸다.

7일 동안 이어진 베오그라드 공방전의 끝이오, 세르비아 전선의 종결이었다.

* * *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페타르 1세가 자결할 뻔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가 순순히 항복하지 않고 기어코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면, 국왕의 최후에 분노한 세르비아인들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최상의 대우로 페타르 국왕을 모시도록 하게. 비록 적국의 군주이지만, 그는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으니.”

“예, 폐하.”

시종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시선을 지도를 바라보았다.

세르비아 왕국이 멸망했으니, 이젠 그 뒤처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세르비아가 항복했으니, 몬테네그로도 곧 항복하겠지.”

이미 이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세르비아의 혈맹으로서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세르비아 편으로 참전한 몬테네그로지만, 세르비아가 멸망한 이상, 소국에 불과했던 몬테네그로에 싸워서 이기리란 희망은 전혀 없었으니까.

“몬테네그로는…… 굳이 멸망시키거나 합병보다는 보호국으로 삼아 우리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넣는 것이 낫겠지.”

세르비아 영토를 일부 합병한 것만 해도 잡음이 나오고 있는데, 아무리 몬테네그로가 작은 소국이라 해도 그들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은 민족 갈등이란 고질병을 앓고 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로서도 꽤 무리가 가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전쟁에서 몬테네그로가 한 일이라곤 세르비아에 5만 정도 되는 병력을 파견한 것밖에 없었다.

그 군대는 어디까지나 민병대 수준에 지나지 않아 전쟁에서 활약이고 뭐고 없었고.

그렇기에 프란츠 페르디난트로선 굳이 몬테네그로를 힘들여 멸망시킬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선 그런 작은 소국보다는 러시아와의 싸움이나 아직 삼국동맹에 머무른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이탈리아에 더 신경을 집중해야 했으니까.

그러니 몬테네그로인들이 순순히 항복한다면 가혹하게 굴 필요도 없다.

몬테네그로 왕국이 전후 믿었던 세르비아에 뒤통수를 맞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흡수합병 당해 버리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몬테네그로에 있어선 어찌 보면 원 역사보단 그나마 더 나은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밑으로 들어가긴 해야겠지만, 적어도 독립은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세르비아 전선의 병력은 독일과 미리 이야기한 대로 갈리치아로 돌리면 되겠고…….”

“폐하, 세르비아에서 급보입니다.”

“급보?”

시종의 속삭임에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필이면 세르비아에서 급보라니 이젠 불안한 느낌밖엔 들지 않는다.

“아군이 아피스, 드라구틴 디미트리예비치와 검은 손 간부들을 체포했다고 합니다.”

“오.”

다행히도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었다.

매우 좋은 소식 말이다.

“어디서 잡았나?”

“루마니아 국경 인근입니다. 보고에 따르면 피난민들 틈에 섞여서 국외로 도망치려고 한 모양입니다. 세르비아인 하나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는데, 맞아 죽기 일보 직전에 겨우 빼내 왔습니다.”

“허.”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늙은 국왕조차 책임을 지기 위해 끝까지 수도를 지켰는데, 정작 이 빌어먹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쳐?

“역겨운 작자 같으니. 거칠게 다뤄도 상관없으니, 목숨만은 붙여서 빈으로 끌고 오게. 내 기쁜 마음으로 그자와 검은 손을 직접 교수형에 처할 테니.”

그런 비겁자는 총살당해 군인답게 죽을 가치도 없었다.

도둑과 강도처럼 밧줄에 목이 매달려 죽는 것도 그 자에겐 분에 넘치는 일이었으니까.

* * *

“모두 차렷! 황제 폐하께 경례!!”

척!

한편 아피스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교수대로 끌려가고 있을 때, 베를린에선 열띤 환호 속에서 훈장 수여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스발트 뵐케 대위.”

“옛!”

“격추 수 26기, 그리고 항공대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을 높이 사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수여한다.”

“감사합니다. 폐하!”

“막스 임멜만 중위!”

“옛, 폐하!”

빌헬름 2세의 호령에 막스 임멜만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격추 수 27기, 대단한 성과로군. 벨기에인들은 자네를 브뤼셀의 독수리라 부른다지?”

“그렇습니다!”

“하하하! 좋은 목소리군.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게.”

임멜만의 목에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달아 준 빌헬름 2세는 고개를 돌려 마지막 훈장 대상자이자 오늘의 주역을 향해 시선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중위!”

“옛!”

“격추 수 30기! 세계 최고의 조종사가 나의 군인이라는 것이 영광스럽군. 자네 숙부가 매일같이 자네에 대해 자랑하고 다니는 거 아나?”

“하하, 그렇습니까?”

팔불출 삼촌의 행동에 살짝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리히트호펜.

“자, 받게. 자네야말로 프로이센에서 가장 명예로운 푸르 르 메리트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니!”

짝짝짝짝짝!

빌헬름 2세가 리히트호펜의 목에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걸어 주자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후 축하 연회에서 장성들과 관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독일 최고의 인기 스타인 에이스 파일럿들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사이 몰려드는 인파를 뚫고 나에게 다가온 리히트호펜은 자랑하듯이 푸르 르 메리트를 흔들어 보였다.

“넌 아직 못 받았지?”

“망할 놈이.”

나도 훈장 있어!

왕관장이랑 결혼할 때 받은 흑수리 훈장이랑 기타 등등!

“그래서 그중에 푸르 르 메리트보다 높은 거 있어?”

“큭!”

군바리가 아닌 관료라는 게 이렇게 후회되는 날이 올 줄이야.

괜찮다. 전쟁이 끝나면 받을 수 있을 거야. 아마도.

“농담은 이쯤하고 요즘 좀 어때?”

“예전보단 힘들어졌지. 대공포도 많아지고, 개구리 애들도 이젠 싱크로나이즈 기어를 장착한 신형기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하긴 프랑스엔 불완전하긴 해도 싱크로나이즈 기어를 포커보다 더 빨리 완성한 능력 있는 항공 기술자 레몽 솔니에가 있으니.

“그래도 적 신형기보다 우리 아들러 전투기가 여전히 더 뛰어나니까 문제는 없어. 이번에 동부전선에서 조종사들이 추가로 오기도 했고. 특히 베르너 포스랑 에른스트 우데트였나? 그 녀석들 실력 괜찮더라. 다만, 영국 왕립 항공대 애들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더라.”

“비단 항공대뿐일까.”

영국 원정군의 상황도 도저히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서부전선은 언제나 그대로란 소리지.”

서부전선 이상 없다.

그 유명한 단어는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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