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 세르비아의 최후 (1)
“명심하시오, 포티오레크 대장. 이번이 내가 대장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요.”
“예, 황제 폐하. 이번에야말로 폐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1913년 9월 3일.
아침이 밝아 옴과 동시에 오스카 포티오레크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다시 한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세르비아를 나누는 드리나강을 건너 세르비아군에 대한 3차 공세를 시작했다.
오헝군의 목표는 오스트리아-헝가리령 보이보디나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는 세르비아군을 본토로 후퇴시켜 본토를 방어하는 것.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베오그라드를 함락시키고, 세르비아를 멸망시켜 프란츠 요제프의 복수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쾅! 콰광!!
“공격! 공격! 세르비치(Serbitch) 놈들을 집으로 쫓아내라!”
“이 이상 조국과 황제 폐하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마라!”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포티오레크는 한심한 모습만을 보였던 지난 전투 때와는 달리 눈에 독기를 품은 채 공세에 나섰다.
지난 1, 2차 공세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세르비아군이 역공세를 펼치는 것을 용납해 버린 못난 과거에서 벗어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더는 추태를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령관인 포티오레크는 이번 공세마저 실패하면 그땐 해임이라는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서슬 퍼런 경고까지 받은 상황이었고, 세르비아군과 사생결단을 낼 각오로 병사들을 끊임없이 전선으로 밀어붙였다.
“푸트니크 원수님, 드리나강 방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안 가 방어선이 뚫리고 말 것입니다!”
“……내 잘못이다. 총리의 공세 요청에 끝까지 반대했어야 했어.”
드리나강 방어선에서의 다급한 지원 요청에 시르민(Syrmien, 세르비아어로 스렘)에서 공세를 지휘 중이었던 라도미르 푸트니크 원수는 낭패라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실 세르비아의 스렘 공세는 세르비아의 자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령 스렘과 세르비아 사이엔 사바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세르비아군은 공세를 펼칠 탄약이 부족한 것도 모자라 오헝군과 달리 강을 건너기 위한 교량을 건설할 역량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총리님, 러시아인들이 계속 공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젠장, 공세는 무슨 공세냐. 우린 지금 조국을 지키는 것만 해도 벅차단 말이다! 공세를 원하면 지원부터 좀 해 주고 말하든가!”
그러나 동프로이센의 전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갈리치아 전선이 정체되자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향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대한 공세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세르비아군이 오헝군의 배후를 찌를 수 있다면 갈리치아 전선의 오헝군을 흔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세르비아 총리 니콜라 파시치(Nikola Pašić)는 난색을 보이며 지원부터 먼저 해 달라고 했지만, 발등의 불이 떨어진 러시아 불곰들은 도리어 세르비아에 공세 안 하면 지원을 끊겠다며 압박을 가할 뿐이었다.
“후……. 푸트니크 원수, 공세를 개시하시오.”
“알겠습니다. 총리님.”
결국, 세르비아 정부는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하고 푸트니크에게 스렘 공세를 명령했다.
푸트니크는 망설이면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후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쫓는 게 아니었다.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했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세를 생각보다 쉽게 무찌른 탓인지 위기에 처한 조국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마음에 너무 조급하게 굴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전장에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 주었다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전력과 장비는 여전히 세르비아보다 월등하단 사실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그 모든 자만의 결과, 스렘 공세는 실패했고, 이제 포티오레크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서쪽 국경을 통해 다시 한번 세르비아를 노리고 있었다.
“스렘은 포기한다. 서둘러 군을 물리고 드리나강으로 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막아야 한다.”
“옛, 원수님!”
정신을 차린 푸트니크는 참모들에게 명령했다.
조국 세르비아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다.
지금은 후회보다는 움직여야 할 때였다.
* * *
푸트니크의 행동은 빨랐다.
그는 스렘 공세를 미련 없이 포기하고, 군을 드리나강 유역의 로즈니차(Loznica)로 이동시킨 뒤 참호전을 통해 몰려오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저지하고자 했다.
훗날 드리나강 전투라 이름 붙을 전투의 시작이었다.
타다다다다다다───!!
“으아아악!”
“포티오레크 대장님, 병력 소모가 너무 극심합니다!”
“후퇴는 없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계속, 계속, 계속 밀어붙여라!”
전투는 피비린내가 수십 킬로 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참혹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세르비아군은 여기서 물러나면 뒤가 없다는 듯 정면으로 부딪쳤고, 참호전이란 제1차 세계대전의 명물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끄읅… 끄으윽…….”
“a, anyu(엄, 엄마)…….”
오스트리아-헝가리 병사들은 세르비아군의 총탄에 쓰러져 내장을 쏟고 신음을 내뱉으며 죽어 갔다.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 크로아티아인, 체코인 할 것 없이 공평하고 평등하게 땅바닥을 구르며 죽어 갔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고질병인 민족 갈등은 적어도 시체에는 해당하지 않는 문제였다.
“물러서지 마라! 여기서도 물러나면 돌아가신 프란츠 요제프 폐하의 얼굴을 대체 어떻게 보겠는가! 계속 돌격하란 말이다!”
하지만 세르비아에 복수하겠단 열정은 넘쳐나는데, 능력은 따라 주지 않는 전형적인 무능한 장군이었던 포티오레크는 막심한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을 참호로 계속 돌격시켰다.
그리고 이는 다른 오스트리아-헝가리 장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자국 시민들에게조차 세르비아 전선과 갈리치아 전선에서 죽을 쓰며 사촌이라 할 수 있는 독일군에게 매일같이 비교당하느라 자존심이 너덜너덜하게 짓밟힌 그들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과를 거두어야 했다.
물론 그것은 높으신 분들의 논리고, 일선 병사들은 권총을 들이밀며 자신들을 사지로 계속 내모는 장교들을 향해 이를 갈며 죽자 살자 세르비아군을 향해 달려들 수밖에 없었지만.
부우우웅──!
“적 전투기!”
“엎드려!”
콰쾅! 콰과광!
그러나 세르비아군이라고 웃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독일 제국은 오스트리아의 공세를 지원하기 위해 서부전선으로 갈 물량 일부를 돌리면서까지 기관단총을 지원한 것은 물론, 타넨베르크와 미주리안 호수 전투의 승리로 여유가 생긴 동부전선의 항공 전력 일부를 세르비아로 파견했다.
덕분에 세르비아군은 기관단총을 든 채 참호로 돌격해 오는 오헝군 병사들은 물론,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총탄과 폭탄, 로켓을 흩뿌리는 적 전투기들에 계속해서 고통받았다.
부르르르릉───
독일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게 준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전방에 적 장갑차!”
투다다다다! 투다다다다다다!!
독일군의 신병기, 에르하르트 장갑차(Ehrhardt Straßenpanzerwagen)들이 세르비아 전열을 파고들며 사방으로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본래 동부전선으로 갈 것들이었지만, 재정비에 들어간 상태인 동부전선보단 걸리적거리는 세르비아 전선을 먼저 끝내는 것이 우선이란 팔켄하인의 판단하에 투입된 물건들이었다.
“푸트니크 원수님! 포탄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후……. 적어도 포탄 걱정 없던 발칸전쟁 때가 그립군.”
덕분에 장갑차를 잡을 방법이라곤 육탄공격밖에 없었던 세르비아군은 머리를 싸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계에 달한 보급 문제까지 그들의 발을 잡았다.
당장 무기와 총알, 군복과 신발까지 모든 것이 부족했고, 특히 포탄 재고가 바닥나 버린 것이 너무나도 컸다.
“포탄 생산량을 어떻게든 늘릴 순 없겠소? 지금 우리 포병대는 포탄이 없어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단 말이오!”
“미안합니다. 푸트니크 원수. 이 문제에 대해선 우리도 답이…….”
세르비아는 산업력이 열악한 나라다.
세르비아에 딱 하나 있는 포탄 공장은 하루에 포탄 100발을 생산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공장을 더 세울 자원도 여력도 세르비아에는 없었다.
이에 비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못나도 열강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세르비아군이 신고 다닐 신발도 없어 맨발로 전장을 뛰어다닐 때 전원이 방수 군화를 신고 있었을 정도로 보급만큼은 빵빵했다.
덕분에 드리나강에선 죽은 오헝 병사의 신발을 차지하기 위해 세르비아 병사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도저히 웃지 못할 일들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우리가 패배하면 세르비아는 끝이다. 우리는 끝까지 버텨야 한다!”
“옛, 원수님!”
그러나 라도미르 푸트니크란 명장과 애국심 충만한 세르비아군은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참호와 기관총과 철조망의 가호 아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공세를 기어코 버텨 냈다.
이대로라면 최악의 경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또다시 패배라는 이름의 고배를 마셔야 할지도 몰랐다.
“푸, 푸트니크 원수님! 큰일 났습니다!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본국에 선전포고하고 국경을 넘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오, 안 돼. 안 돼!”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더는 세르비아에 미소 짓지 않았다.
* * *
“불가리아의 아들들이여, 지난 발칸전쟁의 치욕을 기억하라! 세르비아 쓰레기 배신자 놈들에게 짓밟힌 조국을 기억하라! 이 원한은 오직 피로만 갚을 수 있으니. 복수의 화신이 되어 세르비아의 모든 것을 불태워라!!”
“대불가리아 만세! 발칸전쟁의 치욕을 갚자!!”
드리나강 유역에서 참호전이 한창이던 1913년 9월 8일.
공식적으로 협상국에 가입한 불가리아가 드디어 복수를 천명하며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30만에 달하는 불가리아군은 1군 사령관 클리멘트 보야지예프(Климент Бояджиев)와 2군 사령관 게오르기 토도로프(Георги Тодоров)의 지휘 아래 세르비아 국경을 넘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막는 데 정신이 팔린 세르비아군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쳤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르비아를 노리는 나라는 불가리아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그리스 왕국은 협상국의 일원으로서 협상국의 적인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하는 바이다. 나는 이번에도 그대들이 훌륭하게 의무를 다하리라 기대한다.”
“그리스 만세! 콘스탄티노스 국왕 만세!”
불가리아에 세르비아 영토를 양보한 대신,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약속받은 그리스 또한 불가리아와 동시에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한 뒤 15만의 병력을 동원해 세르비아 남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불가리아군이 아군 영토로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장 동쪽 국경에 지원을 보내야 합니다!”
“동쪽뿐만 아니라 남쪽도 위험합니다! 그리스 놈들이 우리의 아랫배를 짓밟으며 올라오고 있단 말입니다.”
“젠장, 우리는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징집한 상태고, 그 병력 대부분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막기 위해 서쪽과 북쪽에 가 있소. 우리에겐 이제 병력이고 뭐고 없단 말이오!”
그 말대로 세르비아는 이미 한계까지 병력을 끌어모은 상태였다.
사람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없는 병력을 만들어 낼 순 없는 노릇이다.
“우리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이 시급합니다! 병력 지원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루마니아를 통해 무기와 탄약만이라도 보내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파시치 총리, 죄송합니다만 우리 러시아도 여력이 없는지라…….”
“이보시오. 대사! 우리 세르비아는 러시아를 위해 무리한 공세를 펼치다 이 지경까지 왔소! 그런데 정작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오니 우리를 외면하겠다는 거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러시아 제국마저 세르비아에 대한 지원에 난감해했다.
자국 병사들도 무기가 없어 몽둥이를 드는 판국인 러시아가 세르비아에 보낼 무기와 탄약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선 세르비아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마지막 희망마저 물거품이 된 파시치 총리는 장관들과 함께 절망에 빠져 얼굴을 손으로 덮을 수밖에 없었다.
본래 세르비아 망명정부를 받아 줬던(반강제였긴 했지만) 그리스마저 세르비아에 등을 돌린 이상 원 역사처럼 후일을 기약하며 군대와 민간인들을 데리고 알바니아 산맥을 넘는 대탈출을 감행할 수도 없었다.
거기다 바다로 나가는 입구인 몬테네그로는 오헝 해군과 그리스 해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였고, 러시아와의 유일한 통로인 루마니아는 카롤 1세가 살아 있던 탓에 중립을 지키며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간을 보고 있던 상황.
“이제 항복밖에 답이 없는가…….”
누군가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때,
“적이 오고 있는데, 그리 힘없는 소리를 내뱉을 때인가!”
갑작스럽게 들려온 노인의 호통이 주저앉은 세르비아인들의 귀에 내리꽂혔다.
“폐, 폐하?”
페타르 1세(Петар I).
세르비아의 독립 영웅 카라조르제 페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의 손자이자 칠순을 눈앞에 둔 세르비아의 늙은 국왕이 희망을 잃은 채 자포자기하고 있던 신하들의 앞에 나타났다.
“언제부터 우리 세르비아인들이 외세의 침략을 앞에 두고 항복을 논했는가?”
“…….”
“무기를 들어라. 세르비아의 아들들이여. 내 왕관을 잃을 순 있어도 신념을 잃을 순 없으니. 만약 내일이 우리의 최후라면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처럼 전사로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폐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무기를 들고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하는 페타르 1세의 열변에 파시치를 비롯한 세르비아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후, 전선에 나가 있는 모든 세르비아군에게 수도 베오그라드로 집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불가리아군, 그리스군 또한 후퇴하는 세르비아군을 쫓아 베오그라드로 진격했다.
세르비아 전선의 마지막을 장식할 베오그라드 공방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