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 알바트로스 작전 (2)
“포격 개시!”
“Feuer!”
콰왕!!
1913년 8월 20일, 리가 만에서 거대한 포성과 함께 카이저마리네의 러시아 항구 습격이 시작되었다.
콰왕! 콰광! 쾅!!
“차탄 장전!”
“모조리 때려 부숴!”
과거 한자동맹의 중심지이자 러시아 제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리가(Riga)가 프리드리히급 전함들의 자비 없는 포격 속에서 무너져 갔다.
리가 항에 정박 중이던 몇 안 되는 러시아 함선들이 독일 황립 해군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였다.
“피탄! 피탄!”
“으아아악!”
그들은 얼마 안 가 전함의 공격에 갈기갈기 찢어진 자신들의 함선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하인리히 제독님, 리가만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좋아, 제군들. 다음은 핀란드만으로 간다!”
“야볼!”
리가를 비롯해 패르누, 쿠레사레 등 리가 만의 항구란 항구는 모조리 때려 부순 독일 발트함대는 배를 돌려 러시아 제국의 앞 마당인 핀란드만으로 향했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레발(Reval, 탈린의 독일어 표기)과 헬싱키였다.
“독, 독일 함대다! 독일 함대가 몰려온다!!”
“모두 항구에서 도망쳐!”
레발과 헬싱키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과 멀리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포성이 어우러져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우리 도시들이 불타오르고 있는데, 발트함대는 대체 뭘 하는 거야!”
“페트로그라드랑 라스푸틴에게 아내고, 딸들이고, 모조리 헌납한 차르만 지키면 된다는 거야 뭐야?!”
레발과 헬싱키가 독일 함대의 습격으로 불타오르자 에스토니아인들과 핀란드인들의 갈 곳 없는 분노가 무능한 러시아 제국과 차르를 향했다.
우리를 지켜 줄 생각도 없는데, 우리가 왜 러시아의 지배에 순응해야 하는가?
오래전부터 러시아의 지배에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핀란드와 발트삼국 곳곳에서 커져만 갔고, 러시아 제국 정부 또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독일 발트함대가 페트로그라드의 코앞에서 보란 듯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발트함대는 뭘 하고 있는가!”
“우리 발트함대의 전력이라면 독일 발트함대와도 한번 해볼 만하지 않소! 뭘 겁쟁이처럼 계속 숨어만 있는 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독일 발트함대의 연이은 도발에 자존심이 상한 러시아 귀족들의 인내심 또한 한계에 달했다.
그들은 해군에 러시아 제국을 우롱하고 있는 카이저마리네에 대한 반격을 끊임없이 요청했다.
러시아 발트함대 전력 대부분이 용궁에 가 버렸다면 모르겠지만, 그들이 보기에 지금의 발트함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의 말이 완전히 허황한 것만은 아닌 것이 현재 러시아 발트함대는 쓰시마로 끌려가지 않은 덕에 멀쩡했고, 뤼순의 반환으로 중요성이 줄어든 러시아 태평양 함대 전력 일부까지 발트함대에 재배치된 상황이다.
게다가 프리드리히급 열풍에 힘입어 강구트(Гангут)급 전함들의 건조와 진수도 빨라져 이미 발트함대에 배치되었으니.
러시아 발트함대의 전력은 겉으로 보기엔 러시아 최강의 함대를 자처할 수준이었고, 독일의 주력함대인 대양함대라면 몰라도 러시아 발트함대와 비슷한 전력을 지닌 독일 발트함대 정도라면 충분히 싸워 볼 만하다는 것이 발트함대의 출격을 요구하고 있는 이들의 주장이었다.
“에센 제독, 망할 내 동서가 우리 앞마당에서 저리 난리를 치는데, 발트함대를 출격시킬 순 없는가?”
“안 됩니다, 폐하! 이건 우리 함대를 크론슈타트에서 끌어내려는 독일 황립 해군의 음모입니다!”
그러나 러시아 발트함대 사령관인 니콜라이 오토비치 폰 에센(Никола́й О́ттович Э́ссен) 제독은 여전히 출격에 부정적이었다.
물론, 에센 또한 러시아 발트함대의 앞마당인 핀란드만에서 제멋대로 설치고 있는 독일 발트함대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다.
실제로 에센은 방어보다는 공세 지향적인 인물이었고, 원 역사에서 ‘제독의 연인’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훗날의 백군 지도자인 콜차크를 시켜 킬과 단치히 앞바다에 야음을 틈타 기뢰를 뿌리는 등 독일 해군 상대로 상당히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인물이니까.
‘하지만 겉으로 전력이 비슷해 보인다고 함대의 질까지 비슷한 건 아니란 말이다!’
에센은 입만 산 러시아 귀족들처럼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시아 해군 제독 중에서 가장 유능하다 평가받는 인물이었으니까.
물론, 러시아 해군 자체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적이 거의 없던 탓에 의미는 별로 없었지만.
어쨌든 에센이 생각하기에 지금 독일 발트함대의 행동은 아무리 봐도 러시아 발트함대를 크론슈타트에서 끌어내려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을 끌어낸 다음엔 뻔했다.
함대결전.
함대와 함대가 정면으로 부딪쳐 힘으로서 서로를 박살 내는 사생결단이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부딪치면 유리한 건 카이저마리네다!’
해전은 군함의 수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질도 중요했다.
러시아 발트함대는 수적으론 독일 발트함대와 비등해 보이지만, 질적으론 함선이든 승조원의 수준이든 그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장 이쪽의 프리드리히급 전함은 강구트급 4척이 전부였던데 비해, 저쪽은 카이저급 전함들로 대표되는 슈퍼 프리드리히급 전함은 물론, 발이 빠른 순양전함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에센 제독은 점점 심해지는 출격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버텼고, 니콜라이 2세 또한 제독의 강경한 태도에 또다시 결정 장애가 발동하며 출격을 보류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몰랐다.
발트함대를 끌어내기 위해 독일 해군이 준비한 수단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 * *
고도 4,000m 하늘 위는 춥고 매섭다.
그 온도는 무려 영하 10도 이하.
방한복을 입지 않으면 금방 저체온증에 걸려 발할라로 바이바이 할 수 있는 온도다.
그러나 이곳에서 난로를 피울 수는 없었다.
여기서 불 같은 걸 피웠다간 적의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잘못했다간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어 날이 밝아 오면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있는 저 하늘의 새벽 별처럼 되어 버리고 말 테니까.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하기 전까지 몇 시간 남았나?”
“앞으로 2시간 남았습니다!”
“그럼, 아침 7시쯤에 도착인가. 러시아인들의 단잠을 깨우기 딱 좋은 시간이군!”
“하하하하하!!”
그러나 난로 따윈 없더라도 하늘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들을 본 이반 녀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워. 적어도 담배라도 피울 수 있었다면 이 아쉬운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실 텐데.”
“러시아 하늘 위에서 타 죽고 싶은 거 아니면 기지로 귀항할 때까지 참으십쇼.”
“에이씨, 나도 알아 인마. 야야, 막내야. 거 노래나 한 곡 불러 봐라.”
선임의 막무가내에 막내 조종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막상 부르려고 해도 아는 노래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가 떠올랐다.
“오늘 우리는 노래 한 곡을 부르려고 하네. 차가운 포도주를 마시려고 하네(Heute wollen wir ein Liedlein singen, Trinken wollen wir den kühlen Wein).”
“오오~?”
고요한 하늘 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에 선임 병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들도 아는 노래였다.
DRR에서 동부전선으로 떠나는 병사들을 위해 만든 선전 가요로 최근 육군, 해군 가리지 않고 유행하는 노래였다.
“그리고 함께 건배할 거야. 왜냐하면 헤어져야, 헤어져야 하니까.”
병사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막내를 따라 다 함께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야말로 자신들을 위한 노래였으니까.
“그대의 손을 주오, 그대의 하얀 손을 건네 주오.”
그들은 노래 불렀다.
그리운 연인의 손길을 떠올리며.
자신들을 기다리는 가족을 그리며.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사랑. 안녕 건강히 잘 있어. 왜냐하면 우리는 떠나야, 떠나야 하기 때문이지.”
그들은 계속해서 바람과 구름을 가르고 나아갔다.
“떠나야 하기 때문이지. 러시아, 러시아로(denn wir fahren gegen Russland, Russland)!”
러시아의 심장, 페트로그라드를 향해.
* * *
쿵──
“으으음…… 여보?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글쎄, 난 못 들었는데.”
타넨베르크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13년 8월 25일.
겨울궁전의 침대에서 막 잠에서 깨어난 니콜라이 2세는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의 말에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마 잠결에 잘못 들은 것이겠지.”
최전방과 달리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니 이젠 페트로그라드란 이름으로 바뀐 자신의 수도는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까.
“젠장, 전방 생각을 하니 또 화가 나는군.”
“진정해요. 라스푸틴도 분노를 너무 몸에 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잖아요.”
“미안하오. 알릭스. 당신을 괜히 신경 쓰게 만들었군.”
니콜라이 2세는 아내에게 사과하면서도 암울한 전방의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삼소노프의 제2군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전멸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온 것이 엊그제였으니까.
20만, 자그마치 20만이다.
20만이 넘는 대군이 그야말로 하루 만에 사라졌다.
아무리 자비로운 니콜라이 2세라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패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북서전선군 사령관인 질린스키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질린스키의 말론 삼소노프가 너무 늦게 지원 요청을 해서 급히 지원군을 보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물론, 늦은 것은 삼소노프가 아니라 질린스키 쪽이었지만.
그러나 삼소노프는 죽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아직 렌넨캄프의 1군이 남아 있습니다.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를 준비 중이라니, 그를 믿고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시지요.”
“후, 알겠네.”
러시아군 총사령관이자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인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설득에 니콜라이 2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니콜라이 2세의 기대와 희망은 다들 알다시피 또다시 배신당했지만.
“갈리치아의 전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옛! 니콜라이 이바노프(Никола́й Иу́дович Ива́но) 사령관의 남서전선군은 순조롭게 갈리치아를 장악하고 있으며 회첸도르프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밀어붙인 상태입니다.”
타넨베르크에서의 패배로 인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상태였던 장성들에겐 그나마 가뭄의 단비이자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소식이었다.
물론, 여전히 불안은 남아 있었지만.
“보고론 독일 7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지원하기 위해 갈리치아에 도착했다는데, 동프로이센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물, 물론입니다. 폐하. 이바노프 장군은 폐하와 황후께서도 신뢰하는 장군이 아닙니까.”
“음, 하긴. 이바노프라면 믿을 수 있지. 그럼 일단 갈리치아 전선은 그를 믿고 맡기도록 하겠소.”
차르의 말에 장성들은 한시름 놨다는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니콜라이 2세 부부가 이바노프를 신뢰하는 것은 그가 딱히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가 차르 부부가 그 누구보다 신뢰하는 라스푸틴의 추종자였기 때문이었지만.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오, 알릭스. 이바노프 장군이 갈리치아에서 활약하고 있다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또한 지나갈 주의 시련이니, 곧 모든 게 나아질 거예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알렉산드라 황후의 위로에 회상에서 벗어난 니콜라이 2세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그리 바란다는 듯 말했다.
그때였다.
쿠웅───!
“흐앗?!”
“꺄악!”
커다란 진동과 함께 차르의 궁전이 흔들렸다.
니콜라이 2세는 넘어질 뻔한 황후를 간신히 붙잡고 당황한 얼굴로 시종을 불렀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르!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인가?!”
“폐하, 실례하겠습니다!”
“근위대장?”
그러나 예의를 따질 경황이 없다는 듯 황제 부부의 침실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차르의 시종이 아닌 근위대장이었다.
“아니, 알렉산드르는 어딜 가고 자네가 오는가?”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뭐라?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 그것이…….”
근위대장이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버벅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폭격입니다.”
“무어라? 폭, 폭격?!”
“예. 페트로그라드 상공에 독일 비행선이 나타났습니다. 수도가 독일군에게 공격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