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마주리안 호수 전투 (4)
마켄젠과 피우수트스키가 후퇴 중인 렌넨캄프의 본대를 발견한 것은 정오가 지나서였다.
“?”
두 기병대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러시아군을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들려 했지만, 이내 말고삐를 잡고 급히 멈춰 섰다.
그리고 8월이 거의 끝나감에도 아직은 물러갈 때가 아니라는 듯 마지막으로 힘을 내는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서로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봐, 젝트. 지금이 혹시 1700년대인가, 아니면 나폴레옹 시대인가? 왜 폴란드 기병대가 내 눈에 보이고 있지?”
“1913년 맞습니다. 마켄젠 장군님. 아무래도 저들은 폴란드 군단인 것 같군요.”
“아, 폴란드 의용군인가. 그러고 보니 아이히호른의 10군과 함께 메멜에 상륙했다고 했지.”
“예. 아무래도 별동대로서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들도 우리처럼 러시아군을 발견하고 섬멸하기 위해 온 듯합니다.”
“허어…….”
마켄젠은 흥미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또한 윙드 후사르로 대표되는 폴란드 기병대의 옛 전설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독일군 또한 프로이센 시절부터 폴란드 기병들의 강함을 인정하고, 폴란드인으로 구성된 울란(Uhlan) 연대를 창설하여 써먹기도 했으니까.
‘재미있게 되었군.’
그렇기에 마켄젠은 한 사람의 기병으로서 눈앞의 폴란드 기병대에게 호승심을 느꼈다.
직접 칼을 맞대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 또한 경쟁이었다.
절대 질 순 없었다.
“이대로 폴란드인들에게 다 잡은 고기를 빼앗길 수야 없지. 아니 그런가 제군들?”
“예, 장군님!”
마켄젠의 말에 독일 기병대 장병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의 두 눈동자는 폴란드 기병대에게 질 수 없다는 호승심으로 내리쬐는 햇볕보다 더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독일인들에게 공을 빼앗길 수야 없지.”
물론, 적 사령관이라는 커다란 공훈을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은 피우수트스키와 폴란드 기병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윙드 후사르의 후예, 폴란드 기병대다.
스웨덴의 하카펠리타트와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도 우리에게 무릎을 꿇었고, 백여 년 전 나폴레옹 아래서도 유럽에 그 명성을 떨쳤다.
그런데 차라리 전통적인 라이벌이었던 카자크나 헝가리 후사르라면 모를까 이름값도 떨어지는 프로이센 기병대?
이걸 지면 죽어서 조상들을 볼 면목도 없다.
“폴란드의 아들들이여, 창을 들어라! 렌넨캄프를 잡는 것은 우리다!”
“Wiwat Polska(폴란드 만세)!!”
피우수트스키를 선두로 폴란드 군단이 함성을 지르며 러시아군의 측면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전군 돌격. 위대한 조국, 도이칠란트에 영광 있으라!”
“황제 폐하 만세!!”
이에 마켄젠도 늙었어도 열정은 아직 젊은이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우렁찬 목소리로 검을 뽑아 들며 명령을 내렸고, 독일군 기병대 또한 이빨을 드러내고 가여운 사냥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두 기병대는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러시아군을 향해 쇄도했다.
“기병! 적 기병대다─!!”
그리고 이를 본 렌넨캄프와 러시아군은 핏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 * *
“폴, 폴란드 기병대다! 말 탄 폴란드 놈들이 오고 있다!”
“반대쪽에서도 독일군 기병대가 접근 중!”
“방진! 방진을 펴!”
“일단 기관총부터 장전해!”
양쪽 측면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대규모 기병대의 접근에 러시아 병사들은 혼비백산한 채 사방에서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괴성을 질러 댔다.
자동차와 비행기의 등장으로 기병의 황혼이 도래한 지 오래지만, 육중한 군마의 돌격이 가져오는 두려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바닥이던 러시아 1군이 공포에 질려 무너지는 건 그야말로 컵라면이 익는 시간보다도 더 빨랐다.
“사령관님, 명령을!”
“어……어……어어…….”
병사들에겐 불행한 소식이겠지만, 사령관인 렌넨캄프 또한 병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파도처럼 쇄도하고 있는 기병대의 돌격에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입맛 벙긋벙긋하고 있었다.
‘젠장! 폴란드가 망한 지가 언제인데, 폴란드 기병대가 튀어나와? 거기다 독일 기병대는 또 뭐고? 으아아아아!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속으론 그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 내고 있었지만.
물론, 현 상황을 타개하는 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카자크 모여!”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을 뿐이다! 움직여라! 움직여!”
그때 1군 전체로 전염된 혼란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병력 일부가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듯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드넓은 스텝에서 평생을 말들과 함께 자라온 카자크 기병대였다.
그 수는 비록 3개 기병연대 규모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1군의 연이은 패배로 절반 아래로 줄어든 상태였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을 뿐이란 것을 카자크들은 경험과 본능으로 알았다.
“돌격!”
“우라──!!”
그렇기에 그들이 내린 선택은 적 기병에 대항한 맞돌격이었다.
“으아아악!”
“죽어!!”
창과 창이 교차하고, 기수들이 가슴과 배에 날카로운 기병창이 박힌 채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카자크 기병대였다.
그들의 용감함은 독일 기병대와 폴란드 기병대에 뒤처지지 않았지만, 밀려오는 군마의 파도를 막기엔 수적으로 너무 불리했다.
이윽고 그 파도는 카자크들을 지나 러시아 보병들을 향해 내리쳤다.
“이반 새끼들은 보이는 대로 죽여! 성 가시미로(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한다!”
“바르샤바에서 너희에게 죽은 할아버지의 복수다. 타타르 개자식들아!”
“폴란드 새끼들이 우리 공을 다 뺏어 가고 있잖아! 계속 몰아붙여!”
“렌넨캄프! 렌넨캄프를 찾아! 놈을 잡으면 특진은 물론이고, 포상 휴가도 떼놓은 당상이다!”
폴란드 군단이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던 러시아 전열을 강타하고, 독일 기병대가 말발굽으로 땅을 기며 도망치는 러시아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창을 내리찍었다.
폴란드와 독일 기병대는 피에 굶주린 아귀처럼 사방으로 도망치는 러시아 병사들을 도륙하며 렌넨캄프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저기! 저기 렌넨캄프다!”
“도망치고 있잖아! 잡아!!”
그러나 누가 누가 러시아인을 많이 죽이나 경쟁하고 있던 독일인들과 폴란드인들이 렌넨캄프를 발견했을 때, 정작 렌넨캄프는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도주하고 있었다.
폴란드 기병대와 독일 기병대는 서둘러 기수를 돌려 렌넨캄프를 쫓아갔지만, 쓸데없이 수만 많은 러시아 병사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으아! 으아아아아!”
“죽, 죽고 싶지 않아!”
물론, 러시아 병사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렌넨캄프를 지키려고 그러던 것은 아니고, 그저 패닉에 빠져서 그런 것뿐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본의야 어쨌든 사방에서 날뛰는 인간의 파도에 기병대 대부분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주춤거렸다.
“이럇! 이럇!”
“어이, 폴란드 친구! 힘들어 보이는데, 렌넨캄프는 우리에게 맡기는 게 어때?”
“하! 어림도 없는 소리! 그쪽이나 빠지시지. Niemcy(독일인)!”
물론, 기병대 전부가 발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몇몇 이들은 독일, 폴란드 가리지 않고 기어코 혼잡한 전장을 빠져나와 도주하는 렌넨캄프의 뒤를 미친 듯이 쫓았다.
“헉! 헉! 이 빌어먹을 말박이 놈들! 나에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도망치는 렌넨캄프로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지만.
그렇게 마주리안 호숫가 한가운데 렌넨캄프와 독일·폴란드 기병대라는 묘한 조합의 추격전이 펼쳐졌다.
* * *
“젠장, 저놈들은 언제까지 쫓아올 셈이야?!”
기나긴 추격전 끝에 먼저 지치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쪽이었다.
아무래도 급히 후퇴하느라 말도 사람도 지친 상태였으니까.
“녀석들을 거의 따라잡았다. 조금만 힘내라!”
“에잇, 떨어져라!”
휘익──
아직 쌩쌩한 독일·폴란드 기병대가 옆에 따라붙자 이름 모를 러시아 장교 하나가 이들을 어떻게든 떨어트리려고 하며 기병도를 휘둘렀다.
“꺼져!”
탕! 탕!
“끼아악!”
그러나 독일 장교 하나가 손에 루거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용감하게 나선 것이 무색하게 높다란 비명을 지르며 말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이게…… 끄악?!”
이에 다른 러시아 장교가 독일 장교에게 나강 리볼버를 겨누었지만, 반대쪽에서 폴란드 장교가 휘두른 칼에 맞아 동료처럼 꼴사납게 말에서 떨어져 지면을 굴렀다.
“사령관님, 앞! 앞!”
“어, 어어……?!”
독일 장교가 고맙다며 폴란드 장교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렌넨캄프의 도주 또한 그 끝을 맞이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도망친 탓에 어느새 가파른 절벽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히, 히히힝!”
“으아아악!”
“사령관님?!”
러시아 장교들은 망했다는 표정으로 급히 말고삐를 잡았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도망치고 있던 렌넨캄프는 그러질 못했다.
렌넨캄프가 멈추기도 전에 관성을 이기지 못한 말이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풍덩─!
렌넨캄프가 타고 있던 말이 그대로 깊은 호숫가 속으로 떨어지면서 물보라가 일었다.
“헉……헉…… 도와줘!”
그러나 렌넨캄프는 불쌍한 그의 말과 달리 아직 살아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말에서 벗어나 간신히 절벽에 나 있던 나무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우지끈!
그러나 그의 불행은 계속되었다.
렌넨캄프의 무게를 버티기엔 절벽에 난 나무는 너무나도 연약했다.
콰직!
“안, 안 돼!”
결국, 얼마 안 가 불길한 소리와 함께 뿌리째로 뽑혀 나간 나무.
“잡았다, 이 새끼!”
그러나 렌넨캄프가 중력의 힘에 의해 자신의 말처럼 호수로 떨어지기 직전에 누군가가 렌넨캄프의 팔을 붙잡았다.
아까 서로 러시아 장교들을 떨어트리던 독일 장교와 폴란드 장교였다.
“제길, 빌어먹을 자식. 뭘 처먹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두 사람은 낑낑거리면서도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렌넨캄프의 두 팔을 붙잡고 위로 끌어 올렸다.
“쑤카…….”
졸지에 포로로 붙잡힌 렌넨캄프의 얼굴엔 낭패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삼소노프와 달리 추하게 살아남은 그가 본국에서 받을 취급을 생각하면 차라리 호수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그렇게 렌넨캄프의 도주극의 막이 내림과 동시에 마주리안 호수 전투 또한 그 끝을 맞이했다.
* * *
“기병대의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전투가 끝나고, 승전을 축하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독일과 폴란드 기병대는 기병 특유의 묘한 동질감 덕분인지 서로 경쟁하던 모습은 거짓말처럼 사라진 채 서로 어깨동무를 하곤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자, 마십시다! 아껴 둔 폴란드 보드카를 가져왔습니다.”
“하하, 그거 좋군요. 피우수트스키 장군. 어서 따라 보시지요!”
어쩌다 보니 함께 렌넨캄프를 잡으며 서로 체면치레한 마켄젠과 피우수트스키, 독일 장교들과 폴란드 군단 장교들 또한 웃음꽃을 터트리며 함께 술잔을 나눴다.
물론,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쌓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그들은 함께 전장에서 말을 달린 전우이자 맥주를 사랑하는 술꾼들이었다.
“건배, 느긋하게 건배(Ein Prosit, ein Prosit Der Gemütlichkeit)!”
1910년에 100주년을 맞이한 옥토버페스트에서 불리는 권주가가 사방에서 울려 펴졌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전쟁 때문에 열리지 못하겠지만.
“독일인과 폴란드인들이 술을 들이부으며 함께 바닥에 널브러지고 있다니. 옛날이었으면 상상하지도 못할 광경이군.”
“동감일세.”
독일인들, 폴란드인들 할 것 없이 술에 취해 꼬부랑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이, 렌넨캄프를 붙잡은 독일 장교와 폴란드 장교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적어도 이 전쟁이 가져온 몇 안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아닐 듯싶다.
아니면 독일산 맥주와 폴란드산 보드카의 효과라던가.
[치직───속보입니다.]
그렇게 모두가 술에 빠져 동프로이센에서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낸 것을 자축하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DRR의 속보가 흘러나왔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카이저마리네가 러시아 발트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독일의 승리가 육지에 이어 발트해에서도 다시 한번 이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해군 친구들도 우리가 날뛸 동안 놀고 있지만은 않았던 모양이구만.”
독일 장교는 그리 중얼거리며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폴란드 장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 난 에리히 폰 만슈타인(Fritz Erich Georg Eduard von Lewinski-Manstein) 중위라고 하네.”
“폴란드 군단 소속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Władysław Eugeniusz Sikorski) 소령.”
만슈타인과 시코르스키.
훗날 각각의 조국에서 거물로 성장해 명성을 떨치는 두 젊은 장교는 미소 지으며 서로의 술잔을 부딪쳤다.
안주는 러시아의 패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