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56화 (156/193)

156화 : 국경 전투 (6)

“와아아아~!”

“연합군 만세!”

“우리 벨기에는 친구들을 환영합니다!”

영국의 참전이 결정된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는 1913년 7월 26일.

존 프렌치 원수가 이끄는 영국 원정군이 벨기에인들의 환영 속에서 마침내 안트베르펜에 도착했다.

“엉덩이 무거운 영국인들까지 도착했으니, 이제야 드디어 앞으로의 공세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겠군요. 외무장관님.”

벨기에 침공 소식에 부랴부랴 달려온 영국군을 향해 빈정거리는 듯이 콧수염을 배배 꼬는 팔켄하인의 말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모총장인 팔켄하인은 오늘 영국군, 벨기에군과 함께 연합군 합동 작전을 논의하기 위해 영국 원정군 상륙에 맞춰 독일군 장성들과 함께 안트베르펜을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삼국 간의 외교적 조율을 위해 팔켄하인을 따라왔고.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벌써 오만한 눈동자로 영국군과 기 싸움을 벌일 기세 만만인 팔켄하인을 보니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부터 든다.

나는 융커에게 외교같이 섬세한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일반상식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사방에서 유니언 잭을 흔드는 벨기에인들에게 인사하는 존 프렌치를 바라봤다.

원 역사에선 1915년까지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인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그다지 유능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다 지금 그의 뒤를 따라 배에서 내리고 있는 제1군단장 더글러스 헤이그(Douglas Haig)에게 밀려 영국 원정군 사령관에게서 물러난 것을 알고 있다.

특히 프랑스랑 친할 것 같은 이름과 달리 프랑스군 장성들과 갈등을 일으키다 전쟁장관 키치너에게 한 소리 들은 거에 원한을 품고 포탄 위기(Shell Crisis of 1915)를 터트려 애스퀴스 내각을 박살 내버린 만만찮은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어서 오시오. 존 프렌치 원수.”

“폐하, 그간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 대영제국의 용감한 장병들이 벨기에를 도우러 왔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영국군을 맞이하러 나온 알베르 1세가 존 프렌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그것참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켄하인은 그의 말에 독일군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얼굴을 찡그렸지만.

“신경 쓰지 마시죠. 규모로 보나 활약으로 보나 어차피 전쟁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우리 독일이지 않습니까.”

“크흠, 당연한 말씀입니다.”

내 말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얼굴을 푸는 팔켄하인.

에휴, 아버지가 되려면 아직 몇 달은 남았는데, 벌써 애들을 돌보는 기분이다.

‘……역시 안트베르펜에 오길 잘한 것 같네.’

자존자만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따라오지 않았다면 연합군이 시작부터 자기들끼리 싸우며 사분오열하는 꼴을 봤을 것만 같다.

연합군의 앞날이 참으로 우려된다.

* * *

영국군이 하선하는 사이, 안트베르펜 총사령부에서 벨기에군 총사령관이기도 한 알베르 1세와 르망 중장을 비롯한 벨기에군 장성들을 중심으로 존 프렌치를 위시한 영국군 장성들과 팔켄하인을 위시한 독일군 장성들이 마주 보는 가운데 첫 번째 연합군 작전회의가 시작되었다.

“우선, 벨기에 침공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벨기에 전선의 상황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이곳에 모인 삼국 장성 중 가장 계급도 낮고(이건 벨기에군 최고 계급이 중장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나라의 급도 낮은 벨기에군의 르망 중장이었다.

“벨기에 침공과 동시에 프랑스군은 빠르게 진격하면서 왈롱 지방 대부분을 점령, 브뤼셀 방어선까지 진격해 왔습니다. 이에 우리도 둑을 터트려 그들의 진격을 조금이나마 늦춰 보려 했습니다만, 별로 소용은 없더군요.”

덕분에 애꿎은 왈롱만 물구덩이와 진흙으로 가득한 뻘밭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그 후 프랑스군은 브뤼셀 방면에 중포를 동반한 강력한 공세를 가했지만, 독일군의 빠른 지원 덕분에 현재는 공세를 일시 중지하고 연합국의 반격에 대비해 참호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 말한 르망 중장은 나와 팔켄하인을 향해 도움에 감사한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실 프랑스가 벨기에를 침공한 것은 내 지분도 어느 정도 있었기에 양심이 살짝 찔리긴 했지만.

물론 어디까지나 살짝이다.

내가 유도를 했을지 몰라도 결국, 벨기에를 침공하는 선택을 내린 것은 프랑스와 프랑스군 참모본부이니까.

그래도 이를 밝혀서 굳이 좋을 것은 없을 테니, 프랑스의 벨기에 침공을 내가 유도했다는 사실은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가져가자.

“음, 이다음은 제가 말하겠습니다. 르망 중장.”

“알겠습니다. 팔켄하인 참모총장님.”

르망 중장의 말이 끝나자 이후의 전황은 자신의 입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는지 팔켄하인이 턱을 쓰다듬으며 지휘봉으로 지도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현재 클루크의 1군과 뷜로의 2군은 벨기에군과 함께 벨기에의 프랑스군에 맞서고 있고, 하우젠의 3군은 아르덴에서 알브레히트 왕세자의 4군, 아이넴의 5군, 루프레히트 왕세자의 6군은 엔 강에서 공세를 펼치는 중입니다.”

여기서 제1차 세계대전에 빠삭한 몇몇 사람들은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5군의 사령관이 왜 원 역사와 달리 빌헬름 황태자가 아닌 전 전쟁장관이었던 아이넴인 건지.

그리고 원래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요시아스 폰 헤링겐의 독일 7군은 어디로 갔는지.

‘7군은 동부전선 갔어!’

빌헬름 황태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빌헬름 황태자 같은 경우엔 루덴도르프를 참모장 삼아 타넨베르크와 제1차 미주리안 호수 전투의 단독 주역이었던 독일 8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아이넴은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5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거고.

원 역사에서도 아이넴은 하우젠의 후임으로 3군 사령관이 되는 인물이니, 이쪽의 인선 자체는 그다지 문제없다고 할 수 있다.

‘타넨베르크 전투의 지휘관은 힌덴부르크가 그랬던 것처럼 독일의 영웅이 되어 막대한 영향을 떨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루덴도르프야 막스 호프만과 함께 타넨베르크 승리의 주역이고, 내가 목줄을 매 놓은 상태이니 괜찮지만, 힌덴부르크는 이야기가 달랐다.

힌덴부르크 이전의 원래 8군 사령관인 막시밀리안 폰 프리트비츠(Maximilian von Prittwitz)는 러시아군 못 이길 것 같다고 멘탈 붕괴를 일으킨 후 바로 교체된 인물이라 도저히 쓸 수 있는 양반이 아니었고.

그러니 우리 황태자님께서 힌덴부르크 대신 타넨베르크의 영웅이 되어 주셔야겠다.

어차피 실질적인 지휘는 루덴도르프가 할 테고, 빌헬름 황태자 자체도 나름 군재가 있는 인물이니까.

“다만, 프랑스군의 저항으로 현재는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며 아군은 참호를 파고 재정비를 하며 다음 전투를 위해 숨을 고르는 중입니다.”

“병력을 더 동원할 수는 없습니까?”

이름 모를 영국 장성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러시아군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프랑스인들이 차르를 닦달한 모양이더군요. 그 때문에 우리 독일군 또한 이제 러시아군의 공세에 대비해야 하는 만큼 이 이상의 병력 동원은 어렵습니다.”

“그럼, 우리 연합군이 서둘러 벨기에 전선에서 공세를 가하며 프랑스군을 압박할 필요가 있겠군.”

알베르 1세의 말에 이 자리에 있는 나와 팔켄하인을 비롯한 독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벨기에는 벨기에대로 빨리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한 왈롱을 탈환하고 싶을 테고, 우리 독일군 또한 프랑스군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벨기에서의 공세는 필요했으니까.

“우리 독일군 제1군은 벨기에군과 함께 브뤼셀 방면에서, 제2군은 뫼즈강을 넘어 왈롱 남부에 공세를 가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영국군은 준비가 되는 대로 헨트와 이프르(Ypres) 방면에서 공세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영국군 또한 벨기에 공세에는 동의합니다만, 팔켄하인 참모총장님의 어조는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지는군요.”

“예?”

프렌치야, 그게 무슨 개소리니?

“우리 영국 원정군이 어디서, 언제 싸울지는 우리 영국군이 결정합니다. 이참에 이를 확실히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군요.”

프렌치의 강한 어조에 팔켄하인과 독일군 장성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좋게좋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왜 굳이 싸움을 만드는 거야?’

언젠가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 생각했다.

연합군 총사령관 같은 직위는 생겨나지도 않은 시기인 만큼 지휘권으로 인한 문제는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존 프렌치 이 양반이 첫날부터 돌직구를 강하게 때려 박을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건 비단 존 프렌치 원수 개인의 의견이 아니란 말이지.’

영국 원정군 전체의 의지이자 키치너 전쟁장관으로 대표되는 영국 전시 내각의 뜻이기도 했다.

그들로서는 독일군이 영국 원정군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

“연합군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우리 독일군입니다. 당장 병력 규모와 감당하고 있는 전선만 봐도 명명백백하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자존심 하면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프로이센 융커들이 그것을 이해해 줄 리가 없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영국 원정군은 독일군과 함께 싸우러 왔지, 보조군처럼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들으러 온 것은 아니란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팔켄하인이 아까 내가 말한 말을 인용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존 프렌치도 그 성격 어디 안 간다는 듯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있던 벨기에군까지 싸움에 끌어들였다.

“물론, 우리 영국군의 병력 규모가 당장은 독일군보다 적은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벨기에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벨기에군을 우리 영국 원정군 휘하에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수!”

벨기에군의 지휘권을 영국군이 가져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존 프렌치의 말에 발끈하며 언성을 높이는 알베르 1세.

르망 중장도 이건 용납할 수 없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벨기에군은 벨기에인의 지휘 아래 싸울 것이오. 영국군의 지휘를 받을 필요는 없소.”

“제 말이 거칠게 들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폐하. 하지만 벨기에군이 독자적인 지휘권을 보장받는다면 그보다 규모가 큰 영국군 또한 지휘권과 자율성을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보시오, 원수. 지금 말 다했…….”

짝짝!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동맹끼리 이런 사소한 문제로 싸워 봤자 프랑스인들만 좋아할 일입니다.”

팔케하인이 괜히 쓸데없이 적을 만드는 성격 어디 안 간다고 발끈하며 뭐라 하려는 찰나 내가 앞으로 나서며 그를 막았다.

이대로 말싸움을 해 봤자 분위기만 더 과열될 뿐이고, 프랑스를 상대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만큼 여기선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프렌치 원수께서 말하고 싶은 바는 이해했습니다. 우리 독일 제국 또한 영국 원정군의 지휘권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바입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현재 우리 독일이 서부전선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만큼 팔켄하인 참모총장께서도 앞으로의 공세 작전을 계획할 때 독일군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크흠, 물론입니다. 저 또한 이프르 공세 자체를 거절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동맹국의 외무장관이자 카이저의 사위씩이나 되는 인물인 나에게까지 강하게 나오기는 어려운지 프렌치가 헛기침하며 일단 뒤로 물러섰다.

“게다가 본토와 식민지에서도 계속 추가로 병력이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면 전선에서 독일군의 부담도 줄겠죠.”

물론 여전히 생색을 내면서 말이다.

“자네가 고생이 많군.”

내가 존 프렌치의 웃음에 떨떠름한 눈으로 억지 미소를 짓자 알베르 1세가 측은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들겼다.

뭐, 이 정도야 예상하던 바다.

“그럼 폐하, 전 이만 베를린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음, 독일군의 감당해야 할 전선은 이곳만이 아니니.”

게다가 곧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또한 프란츠 요제프를 죽인 세르비아에 핏값을 물기 위해 본격적으로 세르비아 전선에 공세를 시작할 예정이다.

물론, 적보다 우월한 전력을 가지고도 1년 넘게 세르비아를 점령하지 못해 이 한심한 꼴을 보다 못한 독일군까지 나서야 했던 오헝의 원 역사에서의 전적을 생각하면 그리 기대는 안 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황제가 바뀌었다고 한들 오스트리아-헝가리군까지 바뀌지는 않았으니.’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또 다른 의미로 더욱 바빠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오헝아, 제발 보통만 하자. 보통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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