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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154화 (154/193)

154화 : 국경 전투 (4)

“하아암~”

프랑스군 대부분이 벨기에 침공으로 정신이 없던 사이.

로렌 지방에 위치한 프랑스-룩셈부르크 국경의 요새 도시 롱위(Longwy)는 전쟁의 불길은 다른 집 이야기라는 듯 총성 하나 없이 평화로웠다.

“지금이 전쟁 중이란 게 믿기지 않네.”

“녀석들 주력군은 죄다 벨기에로 온대잖아. 보슈 놈들이 제 버릇 못 버리고 뤽상부르를 짓밟고 이곳 로렌으로 공격해 온다고 해도 기껏해야 조공에 불과할걸?”

그리고 독일군이 정말 온다 해도 별다른 위기감은 안 들었다.

국경 지대인 이곳 로렌은 오래전부터 전쟁에 대비하여 요새화가 이루어진 지역이다.

비록 프랑스군 대다수 병력이 벨기에로 간 탓에 이곳에 주둔 중인 병력은 적었지만, 요새는 단단했고 요충지란 요충지마다 구축된 방어 거점과 참호는 기관총으로 도배가 된 상태.

“우리는 발 뻗고 독일군이 오나 안 오나 지켜보기만 하면 돼. 녀석들이 안 오면 오지 않는 대로 좋고, 와도 기관총 맛을 보여 주면 그만이니까.”

독일군이 아무리 강군으로 이름 높다 한들, 살로 이루어진 피부와 흐르는 피를 가진 인간이다.

독일군이 공세를 해 봤자 쏟아지는 총알 세례에 얻어맞고 그대로 꽁지 빠지라 도망이나 쳐야 할 것이다.

부우우웅──

“응?”

프랑스군 병사들이 멍청한 독일군이 비명을 지르며 헐레벌떡 도망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리고 있을 때.

그들의 머리 위로 새까만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프랑스군 병사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비행기다.”

누군가가 신기하단 얼굴로 헤에─ 입을 벌리며 말했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었다.

마치 철새 떼가 이동하듯 알록달록한 비행기들이 나름대로 진형을 짜고 멋들어지게 하늘을 가로지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독일군 비행기 같은데, 어디로 가는 걸까나?”

“글쎄? 지들도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우리 프랑스 땅이라도 구경하려는 거 아니야?”

적 비행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경계는커녕 흥미로운 눈으로 탄성을 지르는 프랑스군.

아직 벨 에포크의 낭만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행기란 것은 여전히 일반 병사들에게 있어 위협이라기보단 흥미로운 볼거리에 불과한 시대였으니까.

대다수 장성도 그렇게 생각해서 문제였지만.

어쨌든 프랑스 병사들은 독일군 비행기를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이 눈을 반짝거리며 그들의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했고, 그중엔 아예 비행기를 향해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자들도 있었다.

흔들흔들─

이에 몇몇 독일군 비행기들도 그런 프랑스군에게 대답하듯 기체를 좌우로 흔들며 그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와, 저 비행기가 나에게 인사하고 있어!”

“독일 녀석들 인사성 하난 좋네.”

“독일인들이 원래 그런 거엔 깐깐하게 굴잖아. 여자들도 그래서 문제지만.”

“하하하하!”

프랑스군은 너도나도 속 편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지금쯤 벨기에에서 야스타 1에게 총알과 로켓 세례를 얻어맞고 있을 그들의 전우들이 이들의 모습을 봤다면 ‘야 이, 빡대가리들아, 빨리 무기 들어!!’라고 미친 듯이 외쳤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로렌과는 머나먼 곳에 있었고, 국경의 프랑스군에겐 전쟁은 아직 먼 소식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러한 국경의 평화도 이젠 끝이었다.

쿠웅──

“응?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글쎄, 못 들었는데.”

“아니, 잘 들어봐. 분명 무언가 ‘쿵’ 하는 소리가…….”

콰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프랑스군의 머리 위로 방심의 대가가 쏟아졌다.

곧이어 국경 너머에서 대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포탄들이 궤적을 그리며 성경에 나오는 유황불처럼 프랑스 요새에 작렬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시발?!”

“포격이다!”

쾅! 콰쾅! 쾅! 쾅!

때아닌 평화에 젖어 있던 프랑스 병사들의 머리 위로 강철의 포탄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마치 자비란 것을 너희에게 주지 않겠다는 듯 무자비하게 또 냉혹하게.

“무슨 일인가!”

프랑스군 병사들이 땅을 나뒹굴고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어 가던 사이, 주둔군 지휘관이 바지의 허리띠를 급히 매며 헐레벌떡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의 뒤로 반쯤 옷을 걸친 여자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으로 봐선 아무래도 병사들이 독일군 비행기를 구경하며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는 사이 그 또한 나름대로 찐한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물론, 프랑스 병사들에겐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대령님, 포격입니다!”

“나도 보고 있네. 독일군인가? 아니, 당연히 독일군이겠지.”

자신이 생각해도 멍청한 질문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두어 번 세게 내리친 대령은 서둘러 여전히 계속되는 포격으로 혼란에 빠진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사령부에 연락해라. 독일군이 공세를 시작했으며 우리 요새를 맹렬히 포격…….”

“대, 대령님!”

1분 1초가 아까운 시간이거늘 병사 하나가 자신의 말을 끊자 대령은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손가락으로 국경 너머를 가리키는 병사의 얼굴을 본 순간, 그의 손은 쌍안경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뭐야, 저게…….”

그리고 이내 대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할 말을 잃었다.

국경 너머에서 독일군이 진격해 오고 있다.

그러나 수가, 수가 너무 많았다.

조프르 총사령관이 말하길 프랑스군은 알자스-로렌 방면에서 독일군이 공세를 가한다면 그것은 분명 벨기에 침공을 보조하기 위한 조공일 것이며 병력은 많아 봐야 수만에 불과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대령이 대충 봐도 지금 국경선을 가득 메운 독일군은 최소 수십만이었다.

“이, 이건 조공 따위가 아니야.”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이상했다.

고작 조공을 위해 독일군이 포병대를 있는 대로 다 끌고온 것처럼 국경 전체에 대규모 화력 공세를 퍼부을 리가 없다.

“속았다……!”

독일군 주력은 벨기에로 간 것이 아니었다.

벨기에는 그저 아군을 끌어들이려는 독일의 미끼에 불과했다.

진짜는 이곳, 로렌 국경 지대였다.

“통, 통신…… 통신병─!”

“예, 옛! 대령님!”

“당장 사령부, 조프르 총사령관님께 알려라. 우리가 함정에 빠졌다고! 독일 놈들의 주력군은 벨기에가 아닌 이곳 로렌 방면을 오고 있다고!”

“알겠습니다!”

“하아, 하아, 젠장……!”

거칠게 숨을 내몰아 쉰 대령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빨리 벨기에로 간 아군이 돌아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국경이, 위대한 프랑스의 국토가 다시 한번 독일군에게 짓밟힐 것이다.

* * *

“포이어! 포이어!”

펑! 퍼엉! 펑─!

“차탄 장전, 서둘러!”

“멈추지 말고 계속 퍼부어! 개구리 놈들의 방어선을 완전히 뭉개 버리는 거다!”

프랑스군이 벨기에가 아닌 국경에서 벌어진 독일군의 대규모 공세에 당황하고 있을 때, 독일군 포병대는 아군 병사들의 방어선 돌파를 돕기 위해 정신없이 대포를 쏘며 프랑스군 방어선에 곳곳 구멍을 내었다.

콰왕!

강렬한 소리와 함께 420mm 초대형 곡사포가 화염을 내뿜는다.

빅 베르타(Big Bertha).

크루프사가 오늘만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대포의 여왕께서 전장에 납시었다.

독일군은 프랑스 국경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빅 베르타를 비롯한 중포와 공성포들을 대량으로 동원했고, 원 역사에서 리에주 요새를 파괴했던 그녀들은 이번에 프랑스군 요새를 향해 굴복하라는 듯 마음껏 포탄을 토해 냈다.

특히 독일군 포병대는 이 시대엔 맵핵이나 다름없는 항공 정찰에 힘입어 프랑스군 국경 방어선의 가장 약한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노렸고,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그곳들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항공대에서 녹색 신호탄! 진격해도 좋답니다.”

“좋아! 슈트룸트루펜(Sturmtruppen)를 출격시켜라. 드디어 친애하는 한스 폰 초이 후작의 기관단총이 제 진가를 드러낼 시간이 왔다!”

이윽고 독일군 지휘관들의 명령 아래 무너진 프랑스 국경 방어선 전역에서 기관단총을 손에 든 슈트룸트루펜, 일명 돌격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티어 전술.

원 역사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불리한 전황에도 불구하고 여러 전투에서 협상국 군대를 몇 번이고 몰아붙인 독일군의 악명 높은 전술이 프랑스 국경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돌격! 위대한 조국 도이칠란트의 영광을 위하여!”

“카이저 만세──!!”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포격으로 엉망진창이 된 프랑스군 요새와 참호 안으로 향해 뛰어드는 돌격대.

포격에서 살아남은 프랑스군 병사들은 혼란한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무기를 들어 올렸지만, 돌격대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훨씬 빨랐다.

타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다다───!!

그리고 독일군의 압도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기관단총은 마치 오늘만을 위해 태어났다는 듯 무자비하게 프랑스 병사들을 향해 총알을 뿌려 대었고, 프랑스 병사들의 푸른색 군복이 그들이 입고 있는 바지처럼 붉게 물든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격대는 기관단총이 태어난 목적에 따라 참호 안을 깔끔히 ‘청소’했고, 곧 참호 안에는 널브러진 프랑스군 시체들로 가득해졌다.

“수고했다. 돌격대 제군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쉴 시간은 없다. 그러니 여기 죽은 프랑스 놈들처럼 시체 구경하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라.”

“야볼!”

돌격대 병사들은 승리와 전투의 흥분으로 들뜬 얼굴로 기운차게 대답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 * *

콰앙─!!

“그게 무슨 소리야! 벨기에로 갔다는 독일군 주력이 왜 로렌에서 뛰쳐나와!”

“하, 하지만 국경의 모든 부대에서 모두 같은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순간 기절할 것만 같은 얼굴로 휘청거렸다.

저 멀리 강 건너편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짓하는 것이 보인다.

독일군 주력이 로렌을 공격해?

그럼 벨기에에 나타난 독일군은 대체?

조프르의 머릿속이 혼돈의 카오스처럼 어지럽게 요동쳤다.

그만큼 지금 그의 귀에 들려온 보고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끔찍했다.

자신에게도, 그리고 프랑스에도.

그러나 조프르의 참모인 모리스 가믈랭(Maurice Gustave Gamelin) 소령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최소 야전군 4개 규모의 독일군이 로렌 방면에 나타난 것은 틀림없습니다. 독일군의 화력 공세에 이미 롱위와 낭시를 비롯한 국경 방어선 상당수가 돌파되었고, 스당 또한 위험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벨기에의 독일군은 우릴 끌어들이려는 미끼이자 조공에 불과했군.”

진짜는 프랑스군이 처음 독일군이 오리라 예상했던 알자스-로렌이었다.

독일군은 자신들의 계획을 역이용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가짜 슐리펜 계획을 통해서 말이다.

“애초에 이 계획 자체가 함정이었어. 일부러 가짜 계획을 유출하곤 우리가 벨기에를 침공하도록 유도했던 거야. 그리고 우리가 벨기에에 눈이 팔린 사이 자신들은 보란 듯이 우리 국경을 넘고!”

독일 군부의 머릿속에서 나올 만한 계획은 아니다.

조프르가 아는 독일군의 융커들은 상대방을 가지고 노는 듯한 고도의 정치적 계략을 짤 만한 자들이 아니었으니.

그렇기에 이런 치졸한 짓을 할 만한 자는 단 한 명.

그 빌어먹을 노란 비스마르크, 한스 폰 초이뿐이었다.

으드득─

“지금 즉시…… 뒤바이와 카스텔노에게 연락해서 일부 부대를 서둘러 스당과 아르덴 방면으로 재배치하라 전하게.”

뤽상부르가 독일군에게 길을 열어 준 이상, 독일군은 베르됭 방어선을 우회하여 그대로 아르덴을 지나 프랑스군의 후방으로 진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되면 프랑스군 전력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병력이 앞과 뒤로 포위당한다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나마 아르덴엔 아르덴 숲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군.”

아르덴 숲은 갈리아를 정복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로마군조차 무섭고 공포로 가득 찬 곳이라 평했을 정도로 공격해 오는 쪽에 있어선 죽음의 숲이나 다름없는 곳.

기세등등한 독일군이라도 쉽게 돌파하진 못할 것이다.

‘물론, 그만큼 벨기에 전선은 상황은 잠시 불리해지겠지,만 카스텔노와 뒤바이라면 버텨 낼 수 있을 것이다.’

벨기에군의 예상치 못한 저항에 발목이 잡혀 본래 계획대로 브뤼셀을 점령하지도 리에주와 나뮈르를 장악하지도 못했지만, 프랑스군은 이미 독일군의 공세에 대비해 벨기에 점령지에 참호를 파는 중이다.

그러니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때까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당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나 프랑스군이 막아야 할 곳은 한 곳 더 있었다.

“독일군이 이미 스당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당이 무너지면 파리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동원령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네. 어떻게든 병력을 끌어모아 막아 봐야지.”

숙부의 발끝에도 못 미친 어리석은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우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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