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53화 (153/193)

153화 : 국경 전투 (3)

“브뤼셀 상공에 독일 비행기 다수!”

“전장 곳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연락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사령관님 명령을!”

“모두 호들갑 떨지 마라!”

2군 사령관 카스텔노와 함께 브뤼셀 공세를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군 제1군 사령관 오귀스트 뒤바이(Augustin Yvon Edmond Dubail)의 호통에 온갖 호들갑을 다 떨던 프랑스군 참모들이 입을 다물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을 제외하고 사령부 안이 침묵에 잠기자 뒤바이는 분위기가 진정된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브뤼셀 상공에 나타난 독일군 비행기는 아군 병사들을 혼란에 빠트리려는 크라우트 놈들의 수작이다. 비행기 따위 실질적으론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아.”

뒤바이 사령관이 단언하듯 대답하자 이성이 돌아온 프랑스군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난리블루스를 출 일은 아니었다.

현재 비행기들이 지상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기껏 해 봐야 수류탄이나 손으로 던질 수 있는 소형 항공 폭탄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소형 폭탄들은 적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효과는 있어도 위력의 한계상 적에게 의미 있는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 이탈리아-튀르크 전쟁과 발칸 전쟁의 전훈으로 증명된바.

그렇기에 뒤부이는 하늘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독일 제국 항공대가 그저 시간을 끌려는 독일인들의 작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단정 지었다.

그는 항공 정찰조차 신뢰할 수 없다며 무시하는 프랑스 장성들처럼 비행기를 평가 절하하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행기의 가능성을 크게 보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눈속임에 속아 본질을 놓치지 마라. 지금 중요한 것은 독일군의 본대가 어디 있는지다. 아무래도 우리가 선수를 치니 인제야 허겁지겁 벨기에로 달려온 모양인데, 녀석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삼고 움직이도록. 알겠나?”

“Oui, Commandant(예, 사령관님)!”

적 비행기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병사들에게 소총으로 쫓아내라 하면 그만인 일이다.

지금은 정찰병을 최대한 풀어서 벨기에 국경을 넘었을 독일군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뒤부이는 판단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어디까지나 프랑스군을 기준으로 한 것.

독일 제국 항공대의 아들러 전투기들이 지금까지의 기준을 뒤바꿀 존재였다는 것을 뒤부이와 프랑스군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

[야스타 1. 치직─! 지상 공격을 개시하라. 치지직! 지금부터 사냥을 시작한다!]

[야볼!]

부우우우웅──

프랑스군이 오판의 대가를 치를 시간은 곧바로 다가왔다.

항공전에 대한 신념과 비전을 높게 산 상부에 의해 동기들보다 대위로 빠르게 진급해 야스타 1의 비행대 대장을 맡은 오스발트 뵐케의 명령과 동시에 아들러 전투기들이 일제히 기수를 아래로 내렸다.

그들의 목표는 여전히 지상에서 자신들을 멍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프랑스군.

독수리들은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날카롭게 갈아 온 발톱을 앞세우고 푸른 제복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지지직──! 제군들, 카이저 폐하의 불벼락을 바케트들에게 쏟아부을 시간이다. 치지직───치칙! 로켓 공격을 시작하라!]

[하하하하핫!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다!!]

쐐애애애애액────!!!

독일 파일럿들이 이빨을 사납게 드러내며 스위치를 꾸욱 눌렀다.

곧 아들러 전투기의 날개 지지대에 달려 있던 소형 로켓들이 순차적으로 새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던 프랑스 병사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군의 르 프리외르 로켓에 영감을 받은 한스가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이센 전쟁 기계들이 좋다꾸나 하고 만든 독일 제국의 신무기였다.

다만, 신무기라고 해 봤자 기술적으론 콩그리브 로켓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말이다.

“어, 보슈(Bosche, 돌대가리란 뜻의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독일군 비하 명칭) 녀석들이 뭘 쐈는데?”

“어……어어? 씨발, 저거 로켓이잖아!!”

“엄, 엄폐! 엄폐에에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지상을 향해 날아오는 물건들이 로켓이라는 것을 깨달은 프랑스 병사들이 그제야 사색이 된 채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을 움직이는 것보다 독수리의 발톱이 그들의 등에 내리찍히는 것이 훨씬 빨랐다.

콰앙! 쾅!!

곧 강렬한 폭발과 함께 브뤼셀 시내 한복판에서 굉음이 끝도 없이 울려 퍼졌다.

물론, 유도장치 따윈 없는 로켓 병기 특유의 ‘제발 한 발만 맞아라!’ 하고 기도해야 할 정도로 끔찍한 명중률 덕에 사람보다는 애꿎은 보도블록과 건물에 맞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흐아악! 흐아아아아악!!”

“내 몸! 내 모오옴!!”

그러나 재수 없게 로켓에 직격당한 프랑스군 병사들은 불이라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갔고, 이는 로켓 폭격이 만들어 내는 강렬한 음향과 시각 효과와 시너지를 이루며 프랑스군의 멘탈을 사정없이 박살 냈다.

타다다다다다! 타다다다다다다!!

그러나 독일 제국 항공대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로켓을 전부 발사하자 독일의 독수리들은 이제 프랑스 병사들에게 기총을 쏘고, 수류탄 다발을 던졌다.

“으아! 으아아아아!”

“저, 저건 우리가 아는 비행기 아니야! 아니라고!”

어느 것이나 프랑스군에겐 생소한 것.

그렇기에 돌아오는 충격은 배가 되었다.

“잘한다! 프랑스 개자식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끼잉?”

“미, 미안, 파트라슈. 너한테 한 말 아니니까!”

물론, 눈앞에서 때 이른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감상하게 된 넬로 다스 중위와 벨기에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독일 새끼들이 비행기에 대체 뭘 달고 나온 거야?!”

“우리도 비행기 있잖아! 가서 뭐 좀 해 보라고 해!”

한편, 독일군 비행기들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프랑스 장교들은 수화기에 소리를 지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닦달이 효과를 본 것인지, 아니면 아까 도망친 프랑스군 정찰기가 친구들을 불러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수의 프랑스 육군 항공대 비행기들이 브뤼셀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치지직──! 12시 방향에 비행기 다수! 치직! 모랑-솔니에(Morane-Saulnier)다!]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군.”

임멜만의 목소리에 리히트호펜은 씨익 웃으며 조종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적기를 격추해 큰 공훈을 세울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는 뵐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들뜬 목소리로 무전기를 향해 동료들을 외쳤다.

[치직! 임멜만! 왼쪽 놈 맡아! 치지직─!! 리히트호펜, 넌 오른쪽! 치지직, 가운데 놈은 내가 처리한다!]

“야볼!”

부우우우웅───!

기운차게 대답한 리히트호펜이 붉게 도색한 아들러 전투기를 몰고 우렁찬 프로펠러 소리를 배경으로 프랑스군 정찰기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치지직──! 리히트호펜 치직! 너 비행기에 무슨 짓 했냐? 다른 기체들보다 세 배는 빨라 보이는걸?]

[치직──치지지직! 그냥 기분 탓 아니야?]

[그런가? 치직─!]

임멜만과 여유롭게 잡담을 나눈 리히트호펜은 적기가 가까워지자 그쪽에 시선을 집중했다.

“도망가지 말고 하늘의 기사답게 정정당당하게 맞붙자!”

리히트호펜의 말이 들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보다 속도가 빠른 독일군 비행기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프랑스군의 모랑-솔니에 정찰기가 기수를 살짝 꺾어 리히트호펜을 타고 있던 비행기를 향해 돌진했다.

리히트호펜은 눈을 찡그리며 적 파일럿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름 모를 프랑스 파일럿은 비행기가 가까이 붙는 순간을 노리려는 듯 권총을 뽑아 든 상태였다.

“하! 고작 그런 걸로 이 아들러 전투기와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남작님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리히트호펜은 폭소하며 조종대에 부착된 방아쇠 버튼을 꾹 눌렀다.

타다다다다다다다───!!

그리고 아마도 세계 최초일 하늘에서의 결투는 프랑스 정찰기가 아들러 전투기의 기관총에 갈려 버리며 순식간에 끝나 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저 비행기가 많이 안 부셔졌으면 좋겠네. 나중에 내 방에 장식하게.”

[누가 치지직─! 귀족 도련님 아니랄까 봐 치직──!! 취미 한번 고약하네!]

리히트호펜이 천천히 아래로 추락하는 프랑스 비행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어느새 프랑스군 정찰기를 격추하고 편대로 돌아온 임멜만이 못 말리겠다는 듯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물론, 리히트호펜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는 땅개들에게 말해서 자신의 최초로 격추한 불쌍한 프랑스군 비행기를 반드시 전리품으로 차지하겠다 맹세했다.

이런 리히트호펜의 귀족적 취향을 이해하지 못한 임멜만과 뵐케는 헛웃음을 지었을 뿐이지만.

* * *

“이건 틀렸군.”

프랑스 2군 사령관 노엘 드 카스텔노는 쌍안경으로 브뤼셀에서 펼쳐진 난장판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독일의 항공 기술이 뛰어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적 비행기의 무장과 성능이 그의 생각보다 지나치게 뛰어났다.

‘우리 프랑스군도 항공대 강화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루페이(Pierre Xavier Emmanuel Ruffey, 프랑스 제3군 사령관)의 말을 조금 더 귀담아들을 걸 그랬군.’

물론 루페이 그놈은 항공기와 중포에 미친 프랑스군의 이단아 같은 놈이라, 과연 자신과 달리 유연하지 못한 대다수의 프랑스 장성들이 그의 말을 과연 진지하게 들을까 싶지만.

어쨌든 전쟁이란 것은 이런 일도 벌어지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반성하고 문제점을 빠르게 고쳐 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원 역사에서 동향인 포슈와 함께 세계대전 발발 때부터 종전 때까지 해임되지 않고 자리를 지킨 몇 안 되는 프랑스 장군인 노엘 드 카스텔노는 그리 속으로 중얼거리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판단을 내렸다.

“공세는 일시 중지다. 후퇴 명령을 내려라.”

“하지만 사령관님, 고작 비행기를 상대로 수만에 달하는 병력이 물러나는 것은…….”

“자네들 눈은 옹이구멍인가? 저 고작 비행기들 때문에 아군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도 않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격을 시도하려는 르망의 벨기에군이 보이질 않느냔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성모께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실 멍청한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는 부하들을 향해 노기 띤 목소리로 한바탕 쏟아부은 카스텔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대로 비행기뿐이라면 모를까 지상의 벨기에군이 다시 재정비하고 움직일 기색을 보이는 상황이다.

여기서 계속 공세를 진행하는 것은 악수였다.

“곧 독일군도 이곳에 올 것이다. 본래 목표였던 브뤼셀 점령과 나뮈르, 리에주 점령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독일군을 벨기에에서 맞이한다는 1차 목표는 완수한바. 이제 여기서 방어선을 굳히고 참호전으로 버티며 반격의 때를 엿본다면 승산은 충분히…….”

“사, 사, 사령관님!”

참모들을 향해 설명을 이어 가던 카스텔노는 갑자기 자신의 말이 끊긴 것에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헥헥거리고 있는 통신 장교가 서 있었기에 카스텔노는 고귀한 피의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며 불호령하는 것보단 먼저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인가?”

“국경……. 국경에서 급보가…….”

“국경? 어느 국경?”

“뤽……뤽상……뤽상부르 국경입니다! 로렌, 로렌 지방에 대규모 독일군이…….”

로렌이란 말에 순간 얼굴에 핏기가 확 가신 카스텔노는 숨을 돌리느라 아직 제대로 말을 못 하는 통신 장교의 손에 들려 있던 전문을 휙 가로챘다.

“이런……!!”

그리고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졌다.

* * *

“루프레히트 왕세자님. OHL(Oberste Heeresleitung, 최고총사령부)에서 진격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아, 드디어.”

독일 제국 항공대가 브뤼셀의 하늘에서 막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을 때.

독일 6군 사령관 루프레히트 바이에른 왕세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이제야 왔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의 뒤엔 수십만의 바이에른 왕국군이 그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전차를 가져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되었어.”

“아직 훈련과 편제가 완료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요.”

전쟁이 모두의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터진 탓이었다.

덕분에 1912년 말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 전차들은 당장 전선에 투입하기엔 여러 애로 사항이 있었고, 결국 독일군 총사령부는 눈물을 머금고 전차 투입을 잠시 미루기로 결정을 내렸다.

당장 전차를 투입해야 할 정도로 독일군에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젠장! 프란츠 요제프가 1년만 늦게 죽었다면!”

“하하, 그렇게 말씀하셔도 말이죠…….”

물론 오로지 전차가 활약하는 것을 보기 위해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던 슐리펜은 아쉬움에 분통을 터트렸지만.

“전차는 나중을 기약하도록 하지. 어쨌든 우리 할 일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물론입니다. 전하.”

케이크 위의 딸기는 원래 나중에 먹어야 더 맛있는 법.

그렇기에 전차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 루프레히트 왕세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자, 바이에른의 용감한 병사 제군. 드디어 전장으로 나설 시간이 되었다. 모두 준비되었나?”

“옛! 사령관님!”

“좋아, 우리는 지금부터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진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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