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 국경 전투 (2)
“이 애미 애비도 없는 개구리 새끼들! 돈 주고 시체 구경이나 하는 시체 성애자 놈들!!!”
한편, 프랑스의 벨기에 침공 다음 날.
피난길에 오른 브뤼셀 주재 영국 대사와 추방당한 파리 주재 영국 대사가 급히 전해 온 프랑스의 벨기에 침공 소식에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선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총리의 끊임없는 고성과 욕설이 울려 퍼졌다.
“총리, 진정하십시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대영제국이 보장한 벨기에의 중립이 짓밟혔고, 저지대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프랑스와의 전쟁을 외치고 있는바. 이제 우리 영국은 참전을 제외한 선택지가 없습니다.”
애스퀴스 내각의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와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가 초조한 얼굴로 연달아 말하자 프랑스를 향해 욕을 100개 넘게 퍼붓고 있던 애스퀴스는 그제야 이성이 돌아와 숨을 거칠게 내몰아 쉬었다.
“후우후우……. 그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우리는 즉시 의회를 소집하고 벨기에로 갈 원정군을 편성해야 하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랑스의 벨기에 침공이란 부정할 수 없는 명분이 생긴 이상, 이전과 달리 극성인 영국 국내의 여론에서 알 수 있듯이 참전을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란 점이다.
“폐하께는…….”
“폐하껜 내가 직접 말씀드리겠소. 그것이 총리로서 내 역할이니.”
전쟁을 원하진 않았다.
될 수 있으면 뒤에서 전쟁물자나 팔아 치우며 대륙의 전쟁에서 멀찌감치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기어코 영국을 전쟁의 불길 속으로 끌어들였고, 영국은 이제 그 불길에 맞서야 할 시간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애스퀴스 총리가 땀을 흘리며 로이드 조지와 에드워드 그레이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벽에 기댄 채 시가를 피워 대고 있던 해군장관 처칠은 자신은 이미 이렇게 되리란 걸 이미 예상했단 얼굴로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니까 내 누누이 참전을 피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프랑스의 이번 벨기에 침공은 내 말을 듣고 진즉에 행동에 나섰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사태였습니다.”
“시끄럽소. 윈스턴. 당신이 지금 누굴 탓할 처지요?”
처칠의 재수 없는 얼굴에 그레이 외무장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이 멋대로 오스만 전함에 손댄 탓에 나와 고션(William Edward Goschen, 주독일 영국 대사) 대사만 한스 폰 초이 후작에게 한 소리만 들었소. 우리 영국 해군이 그 정도로 가난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이요!”
사실 이조차도 한스가 그레이 외무장관의 얼굴을 봐서 많이 참은 것이다.
룩셈부르크로 가는 기차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한스는 그 대머리 새끼는 전함 안 뺏으면 두드러기가 나냐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을 정도니까.
덕분에 주오스만 독일 대사인 한스 폰 반게하임(Hans von Wangenheim) 남작만 지병인 신경쇠약이 재발할 정도로 뿔난 오스만 정부를 달래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윈스턴, 에드워드. 말다툼은 그쯤 하시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소.”
“죄송합니다. 총리님.”
“아, 로이드. 그대는 서둘러 키치너 백작을 불러오시오.”
“키치너 백작이라면……. 혹 그를 전쟁장관으로 임명하실 생각이십니까?”
로이드 조지의 물음에 애스퀴스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르툼의 호레이쇼 허버트 키치너(Horatio Herbert Kitchener) 경.
수단에서 목숨을 잃은 고든의 뒤를 이어 마흐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제2차 보어전쟁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그라면 전시 전쟁장관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낼 테니까.
“우리는 지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고 있소. 그러나 워털루와 트라팔가르에서 자랑스러운 대영제국의 육군과 해군이 용감하게 싸워 유럽의 질서를 지켜 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용감히 싸워 승리를 거머쥘 것이오.”
“예, 총리님.”
애스퀴스 총리의 말에 내각 장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참전을 결정했고, 영국은 벨기에 침공 이틀 후인 7월 18일에 프랑스 제3공화국과 러시아 제국에 선전포고했다.
물론, 두 국가의 반응은 오히려 왜 이렇게 늦게 했냐는 얼굴이었지만.
그리고 선전포고와 동시에 영국은 급히 병력을 긁어모아 벨기에로 보낼 영국 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 BEF)를 편성했다.
모병제 국가인 영국의 특성상 원정군의 병력은 당장으로선 2개의 보병사단으로 이루어진 군단 2개와 하나의 기병사단이 전부였지만, 이들은 무장도 좋고 식민지 전쟁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은 영국의 최정예 병력이었던 만큼 결코 무시할 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영국 원정군이 이름과 달리 프랑스인들을 싫어한 탓에 오히려 전쟁에 대한 열의로 넘치던 보어전쟁의 영웅 존 프렌치(John Denton Pinkstone French) 야전 원수의 지휘 아래 서둘러 영불해협을 건널 준비를 하던 사이, 벨기에의 전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1913년 7월 19일.
프랑스군의 무자비한 155mm 곡사포 포격에 폐허가 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선 벨기에군이 프랑스군에 대항해 처절한 항전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쾅! 콰광! 쾅! 타다다다다다!!
“빌어먹을 바게트 새끼들! 대체 대포를 얼마나 가져온 거야?!”
“다스 중위님, 탄약이 거의 바닥났습니다!”
“보급은?”
“전혀 연락이 없습니다. 오다가 당한 모양입니다!”
벨기에군 경보병대 소속 넬로 다스 중위는 부하의 보고에 분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벨기에군은 르망 중장의 지휘 아래 파도처럼 밀려오는 프랑스군의 대공세에도 불구하고,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것도 보다시피 점점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벨기에군이 아무리 용감하게 싸워도 병력도, 탄약도, 화력도 모두 저쪽이 우세하니까.
물론, 벨기에군의 항전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프랑스군은 무척이나 초조한 상태였다.
빨리 브뤼셀을 점령하고, 나뮈르와 리에주의 후방으로 우회, 벨기에의 요새지대를 장악해 독일군에 맞설 계획이었던 프랑스군이다.
그런데 정작 브뤼셀에서 진격이 막히고, 초콜릿 병사라 무시하던 벨기에군 따위에게 발목을 잡히고 있으니 프랑스군 장성들로선 답답해서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계속 포탄을 퍼부어라! 브뤼셀을 가질 수 없다면 아예 파괴해 버리면 그뿐. 엘랑 비탈의 정신으로 벨기에 놈들을 브뤼셀과 함께 파묻어 버려라!”
여기까지 와서 프랑스군에게 브뤼셀을 포기하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프랑스군은 이제 브뤼셀을 아예 초토화해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공세에 더욱더 박차를 가했고, 급조된 벨기에군 방어선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삐이이이이이───!
“전방에 프랑스군!”
“기관총 탄약 얼마나 남았어!?”
“이게 마지막입니다!”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 오는 프랑스군,
그에 비해 자신들의 기관총은 이제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스 중위와 벨기에 병사들은 도망치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총원, 착검! 백병전을 준비하라!”
여기서 자신들이 도망치면 다음은 벨기에 최후의 보루 안트베르펜이다.
그리고 그곳엔 전쟁을 피해 맨몸으로 도망친 피난민들이 있는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들을 돌아오길 바라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젠장, 어쩌면 오늘이 우리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요.”
“흥, 이딴 곳에서 죽을 생각 없다. 난 반드시 호보컨(Hoboken)으로 돌아가서 날 기다리고 있는 아로아랑 결혼할 거야!”
“그런 말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죽던데요.”
“아, 시꺼!”
병사들의 농담에 발끈한 것도 잠시, 중위는 이내 군도를 뽑아 들며 결연한 얼굴로 외쳤다.
“총원 돌격! 벨기에를 위하여!”
“국왕 폐하 만세─!!”
다스 중위와 벨기에군이 삼색기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프랑스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여! 퍼런색 옷 입은 놈들은 모조리 죽여!”
“벨기에식 환영을 맛봐라, 개구리 새끼들아!”
여기저기서 고함과 함께 핏방울이 튀었다.
벨기에 병사들은 프랑스 병사들과 뒤엉켜 총검을 내지르고, 야전삽을 휘두르고, 단검을 찔렀다.
“계속 밀어붙여!”
다스 중위 또한 연인이 기다리고 있는 안트베르펜 인근의 작은 마을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권총을 방아쇠를 당기고, 달려드는 프랑스 병사들을 군도로 베어 넘겼다.
그들에게 항복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다스 중위와 벨기에 병사들은 자신들이 여기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망할 개구리들을 하나라도 더 주님 곁에 데려가고자 각오했다.
그러나 몰려오는 프랑스군의 숫자는 줄긴커녕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타앙!
“크윽!”
“중위님!”
사망 플래그를 박은 탓인지 다스 중위가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프랑스군 병사 하나가 이를 놓치지 않고 그의 몸에 총검을 내리찍으려 했다.
“왈! 왈왈!”
“으악!”
“파트라슈!”
그때 덩치 큰 개 하나가 프랑스군 병사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다스 중위가 애지중지했던 기관총 수송용 개였다.
전투가 격렬해지니까 도망치라고 풀어 줬는데, 아무래도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제길, 내가 너에게 목숨을 빚졌구나.”
파트라슈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다스 중위가 헥헥거리는 파트라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엔 너무 일렀다.
프랑스군은 아직도 새까맣게 몰려오는 중이었으니까.
다스 중위가 달려온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방어선에 쇄도하는 프랑스 병사들의 모습에 이젠 틀렸다고 생각했을 때.
[빰! 빠바바밤! 빠바바밤! 빰빰빠밤!]
멀리서 커다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스 중위와 벨기에군 병사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갑작스러운 소리에 멈칫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적의 증원군인가?
부우우우웅──
모두가 속으로 경계심을 품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머리 위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다스 중위와 벨기에 병사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눈물을 글썽였다.
비행기.
날개와 동체에 철십자를 자랑스럽게 그린 형형색색의 비행기 수십 대가 구름 속에서 바람을 가르며 등장했다.
적이 아니었다.
아군이었다. 희망이었다.
[외침은 우레처럼, 검이 달가닥거리는 소리와 노도처럼 울려 퍼지네(Es braust ein Ruf wie Donnerhall, wie Schwertgeklirr und Wogenprall).]
벨기에군이 멍하니 비행기들을 바라보고 프랑스군이 고함을 지르며 혼란에 빠진 사이, 멀리서 들려오던 나팔 소리는 하나의 노래로 변해 브뤼셀 전역에 울려 퍼졌다.
[라인강으로, 라인강으로, 독일의 라인강으로, 누가 강의 수호자가 될 것인가?]
“카스텔노 사령관님께 보고해! 독일군이다. 훈족 놈들이 왔다!”
프랑스군에겐 더 이상 날뛰지 말라는 듯 경고를 전하듯이.
[사랑하는 조국이여, 안심하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안심하라.]
“독일군이다. 독일군이 왔다!!”
“젠장, 누가 독일인들 아니랄까 봐 시간 한번 정확하게 지키는구만!”
벨기에군에겐 이젠 안심하라며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하듯이.
[수비는 굳건히, 충실히 유지하고 있다. 라인강의 수비가!]
독수리들이 전장에 나타났다.
* * *
“휘유~! 새까맣게도 몰려왔군.”
항공대에 막 배속된 신참 소위에서 독일 제국 항공대 제1 전투비행대(Jagdstaffel 1) 파일럿이 된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중위는 도시 하나를 가득 채운 푸른색 군복을 입은 프랑스군을 내려다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조금만 늦게 왔어도 이 도시는 이미 프랑스군에 점령된 뒤였을 것이다.
[치직─리히트호펜! 임무에 치지직─집중해!]
“네네, 아빠.”
리히트호펜은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익숙한 뵐케의 잔소리에 미안하다 대꾸하면서도 라디오 잡음 때문에 이상하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라디오의 개발자 테슬라가 최근에 개발한 이 양방향 소형 무전기는 수신호 말고는 상대방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었던 하늘 위에서 보다시피 큰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아직 기술의 한계 때문에 신호 범위가 그리 넓지 않고 잡음 또한 너무 심했다.
물론, 없는 것보단 나았지만 말이다.
[치지직─여긴 임멜만! 1시 방향 치직─! 아랫쪽에 프랑스군 치지지직──! 비행기 발견!]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임멜만의 목소리에 리히트호펜은 살짝 고개를 숙여 그가 말한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엔 프랑스군 정찰기가 갑자기 등장한 독일군 비행대의 모습에 당황한 듯 방향을 바꿔 도망치려고 하는 중이었다.
[치직! 내버려 둬. 지금 중요한 건 치직─ 저놈이 아니야.]
그 말대로 지금은 무장도 없는 변변찮은 프랑스군 정찰기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야스타 1. 치직─! 지상 공격을 개시하라. 치지직! 지금부터 사냥을 시작한다!]
[야볼!]
지금은 폐허가 된 도시 사방에서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저 불쌍한 벨기에 친구들을 돕는 게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