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 사라예보
사라예보 사건으로부터 8일이 지난 7월 4일 빈.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장례식이 열렸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의 장례식치고는 너무나도 빠르고 또 간소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현 상황은 그것을 허락게 했다.
쿠웅! 쿠웅! 쿠웅!
“누가 왔는가!”
망치로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신성로마제국 시절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카푸친 교회(Kapuzinerkirche) 봉안당 안쪽에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늙은 수도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프란츠 요제프 카를 폰 외스터라이히!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시며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이시며 롬바르디아-베네치아의 왕이시며 달마티아,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갈리치아-로도메리아, 그리고 일리리아와 예루살렘의 왕이시다!”
“우린 그가 누군지 모른다!”
쿠웅! 쿠웅! 쿠웅!
“누가 왔는가!”
수도사가 다시 한번 외쳤다.
“프란츠 요제프 카를 폰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황제이시다!”
“우린 그가 누군지 모른다!”
쿵! 쿵! 쿵!
“누가 왔는가!”
“프란츠.”
문을 두들긴 프란츠 요제프의 시종이 이것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 살짝 목소리를 떨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죄 많고 가엾은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들어오라.”
끼이이익──
세 번에 걸친 문답 끝에 봉안당의 문이 열렸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들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고위 관료들와 장성들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시체가 안장된 관이 봉안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없이 배웅하는 가운데, 황실이 여인들이 끝내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여러모로 애증의 관계였던 숙부의 장례식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아니, 새로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황제 프란츠 페르디난트 1세는 그저 무거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
이 모든 것이 끔찍한 악몽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1913년 6월 28일.
관 속에 누워 있는 숙부의 시체를 마주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 * *
“대체 경호원들은 무엇을 한 것인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참담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총독 오스카르 포티오레크(Oskar Potiorek)가 죄책감 어린 얼굴로 프란츠 페르디난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다른 프란츠이긴 했지만, 이번에도 암살을 막는 것에 실패했다.
그러나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그를 굳이 탓하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럴 정신조차 없었다는 것이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오늘 사라예보에 방문하려 했던 것은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아니라 프란츠 페르디난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한스와 빅토리아 루이제의 결혼식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는지 원 역사보다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고, 특히 아내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고 애썼다.
현재 합스부르크 황실 내에서 조피 여공작의 입지는 차라리 일개 시녀들이 더 높아 보일 정도로 바닥이었다.
물론,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새롭게 제국의 황제가 된 지금은 조피 여공작에게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자신 때문에 원치 않은 수모를 겪는 조피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가슴이 찢어질 듯이 괴로웠고, 어떻게든 조피의 황실 내에서의 입지를 올려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6월 28일에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군사 훈련 참관은 마침 딱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그날은 무려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 여공작의 13번째 결혼기념일.
험난한 사랑 끝에 결혼에 성공한 두 사람에게 있어 무척이나 의미 깊은 날이었기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황위 계승자에게 점수를 따고 싶었던 포티오레크의 지지에 힘입어 아내인 조피를 대동하고 사라예보로 향하려고 했다.
“이번 군사 참관은 내가 대신 참가하겠다.”
“예? 숙부님, 하지만…….”
사라예보로 가기 하루 전날, 프란츠 요제프 1세가 갑자기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대신 자신이 사라예보에 가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어허,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냐?!”
“……아닙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노기 띤 목소리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한숨 쉬며 고개를 숙였다.
페르디난트 대공이 원 역사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자 가뜩이나 그를 마음에 안 들어 했던 프란츠 요제프가 심기가 덩달아 불편해지면서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던 숙부와 조카의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그러던 중,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그 꼴도 보기 싫은 백작가 계집이랑 함께 군사 훈련을 참관하러 사라예보에 간다는 말에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심기가 뒤틀렸는지 자신이 대신 사라예보에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으로선 어이가 없었겠지만.
그러나 사라예보란 도시는 프란츠란 이름에 원한이라도 잊는 것일까?
사라예보는 이번에도 합스부르크 황족이 도시에서 멀쩡히 살아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어라! 프란츠 페르디난트!!”
휘익─
사라예보에 도착한 프란츠 요제프가 아펠 강둑을 지나가던 중 폭탄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 단체 ‘젊은 보스니아’와 이들과 공모한 세르비아 극우 비밀결사 검은 손의 짓이었다.
이들은 유화파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그의 암살을 계획했다.
그러나 문제는 젊은 보스니아와 검은 손은 사라예보에 군사 참관을 하러 오는 인물이 페르디난트 대공에서 프란츠 요제프 황제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페르디난트 대공과 달리 프란츠 요제프가 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탄 바람에 원 역사와 달리 폭탄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콰왕!!!
프란츠 요제프가 타고 있던 마차에 강렬한 폭발이 작렬했다.
마차는 충격을 받아 그대로 말들과 함께 옆으로 넘어졌고, 프란츠 요제프는 마차 안을 엉망진창으로 굴렀다.
“크으으윽…….”
그러나 이때까지도 프란츠 요제프는 죽지 않았다.
그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힘겹게 마차 밖으로 기어 나왔다.
“저건……!”
그러나 검은 손 단원들 사이에서 한스보다도 어린 청년이 새하얀 제복을 피로 물들인 황제의 모습을 발견했다.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원 역사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암살했던 희대의 암살자는 몸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프란츠 요제프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않고 반사적으로 비틀거리는 늙은 황제를 향해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한 발의 총성과 함께 프란츠 요제프가 이마에 구멍이 뚫리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대공 살해자가 황제 살해자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병사들과 함께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있던 포티오레크가 막을 새도 없이 프란츠 요제프는 쓰러졌고,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해냈다는 흥분에 입꼬리를 기괴하게 비틀었다.
그러나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몰랐다.
그 자신이 방아쇠를 당긴 탓에 그의 조국 세르비아의 파멸이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죄 없는 수많은 생명이 세계대전이란 이름 아래 그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리란 것을.
* * *
“차라리 궁에서 편히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숙부께선 끝까지 나에게 시련을 내리시는군.”
회상을 마친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피곤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자신이 제국의 평화를 위해 해 온 모든 일이 한 발의 총알로 모조리 무산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이끌어 나가야 할 황제.
그리고 제국은 그에게 결단을 내릴 것을 종용했다.
“폐하. 결정을 내리셨나이까.”
“……베르히톨트.”
어느새 프란츠 페르디난트 뒤에 다가와 있던 외무장관 레오폴드 베르히톨트(Leopold Berchtold)의 말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갈등을 빚었던 에렌탈의 죽음으로 작년에 장군참모총장으로 복귀한 회첸도르프 또한 그 옆에 서서 말없이 압박을 가하며 새로운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녕 전쟁 말고는 답이 없는 것인가.”
“폐하, 이미 제국 전역에서 세르비아에 대한 복수를 외치는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를 거스른다면 무슨 결과로 이어질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베르히톨트의 말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눈을 감았다.
그는 결코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세르비아에 유화적으로 대하며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민족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해 온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지금까지의 행보가 증명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쟁에서 이기든, 패배하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패배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고, 승리해도 전리품으로 딸려 올 세르비아 영토와 슬라브인들로 인해 지금까지 위태롭게 유지되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정치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크나큰 악영향이 오리란 건 자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해서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대표적인 세르비아 강경파인 회첸도르프는 그 누구 보다 앞장서서 세르비아에 대한 전쟁을 부르짖었고, 황제 암살의 배후가 세르비아의 악명 높은 검은 손이란 것을 확인한 베르히톨트도 신중한 태도를 벗어던지고 회첸도르프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행동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민의 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원 역사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죽음에 분노했던 것보다 더 뜨겁게 불타오르며 제국의 온 존경을 받던 황제를 죽인 발칸의 미치광이 세르비아에 대한 복수와 초토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황태자가 아닌 어디까지나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추정 상속인이었기에 정통성이 부족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1세로선 복수심에 불타오르다 못해 재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여론을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다.
‘이미 전쟁에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헝가리인들조차 물러나기 시작했다.’
지금 제국의 그 누구도 황제의 죽음, 그리고 핏값을 요구하는 국민의 분노를 더는 감당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프란츠 페르디난트로서도 이젠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미 주사위는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던져진 지 오래였으니까.
“……베르히톨트, 세르비아 왕국에 최후통첩을 전하고 독일 제국에 지지를 요청하게.”
“예, 폐하.”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눈을 감으며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그의 답은 전쟁이었다.
* * *
“……이런 연유로 우리 오스트리아-헝가리는 혈맹 독일 제국에 지지와 지원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가 러시아와의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로선 더더욱 독일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후우……. 대사의 뜻은 잘 전해 받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독일 제국의 대답을 전해 드릴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시지요.”
“예.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초이 후작님.”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와의 접견을 마친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신궁전으로 돌아왔다.
세계대전 발발이 빨라질 가능성 있다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그게 1년이나 빨라질 줄 몰라서 그렇지.
그래도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내였지만…….
“대체 어떻게 하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아니라 프란츠 요제프가 죽는 건데!”
프란츠가 죽은 것은 맞는데, 그 프란츠가 아니네?
젠장, 이게 무슨 유치한 말장난인가.
내가 패드립을 당한 것도 있어서 프란츠 요제프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만, 사람을 놀리는 것 같은 지구작가의 장난질에 열불이 날 지경이다.
“후, 괜찮아. 일단 진정하자.”
억울하다고 외쳐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프란츠 요제프의 몸은 차갑게 식어 이미 관 속으로 들어간 상태니.
심호흡하고 찬찬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해 보자.
우선, 프란츠 요제프의 죽음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생존이란 과정은 달라졌지만, 사라예보 사건의 결말 자체는 보다시피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황위 계승자가 죽은 것 때문에 그 난리가 일어났는데, 이번엔 아예 황제가 죽었으니까.’
그것도 그냥 황제가 죽은 게 아니라 60년 넘게 황제로 군림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죽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람들의 세르비아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죽음 때보다 약해질 리가 없었다.
실제로 이를 증명하듯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전쟁 결정을 내리는 것에 한세월이었던 원 역사와 달리 벌써부터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새 황제가 된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아무리 평화를 지향하는 온건파라지만, 황제가 죽은 마당에 전쟁에 반대하긴 어려울 테니.”
무엇보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황태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추정 상속인이다.
그의 조카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처럼 정통성이 취약하단 소리다. 게다가 귀천상혼 때문에 황실 내에서의 입지도 그리 두텁지 않았고.
게다가 세르비아에 유화적이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과거 때문에 그가 여기서 전쟁에 반대했다간 황제의 권위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황제의 권위가 붕괴한다는 것은 제국의 붕괴를 의미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란 나라는 사실상 제국 황제의 권위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였으니까.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는 소리겠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와의 전쟁을 결정한 이상 유럽은 더는 대전쟁을 피하지 못한다.
세계대전은 이미 우리의 목전까지 와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 제국을 승리시킨다.”
지금까지 그것만을 위해 달려왔고, 이제는 그 끝을 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