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47화 (147/193)

147화 : 발칸전쟁 (3)

제1차 발칸전쟁이 종결된 지 정확히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불가리아,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발칸전쟁 종결 1개월 만에 발칸의 평화가 깨지다!]

그리고 동시에 불가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며 제2차 발칸전쟁이 시작되었다.

불가리아는 제1차 발칸전쟁 때 입었던 피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약 60만 대군을 동원하며 세르비아를 짓밟아 버리고 발칸의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웠다.

이에 세르비아도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전쟁 때보다 10만 명을 더 동원해 약 35만의 병력으로 불가리아에 맞섰다.

세르비아는 세르비아대로 에디르네 공성전 당시 졸렬한 행동과 혼자 마케도니아 북부를 다 집어먹으려는 불가리아의 개수작에 분노해서.

불가리아는 불가리아대로 대오스만 전쟁 때 피를 가장 많이 흘린 자신들 불가리아인데, 세르비아가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가치 있는 영토를 모조리 집어삼키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서.

그렇게 한때 동맹을 맺으며 한날한시에 오스만을 치기로 약속했던 발칸의 두 국가는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제 명에 못 산다는 원수가 되어 전장에서 격돌했다.

다만, 아무래도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병력부터가 2배 가까이 차이 나는 만큼 역시나 단순한 힘 싸움으로 보면 세르비아가 열세.

그렇기에 불가리아는 내심 낙승이라며 방심 어린 미소를 지었지만, 세르비아가 바보도 아니고 열세인 군대로 미친 발칸의 프로이센에 혼자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미 세르비아 2중대인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함께 불가리아에 맞서기로 했다.

이제 세르비아 정부의 시선은 남쪽으로 향했다.

“베니젤로스 총리, 우리 세르비아와 함께 저 양심도 없는 불가리아에 진정한 정의의 심판을 내립시다!”

“흐으으음……. 옛 동맹을 향해 총구를 향하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하는 수 없지요. 우리 그리스도 대불가리아 전쟁에 세르비아의 아군으로 참전하겠습니다.”

“오오! 그거 고맙소.”

“다만, 이는 불가리아의 영토가 탐나기 때문이 아니오. 우리 그리스 또한 발칸 동맹의 의리를 저버리고 옛 동맹을 저버린 불가리아의 도를 넘은 행동을 두고 보기 힘들었을 뿐이니.”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에 이어 그리스에도 불가리아가 점령한 영토를 미끼로 같이 불가리아와 싸우자고 꼬드겼다.

이에 베니젤로스는 우린 불가리아랑 싸우기 싫은데 세르비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불가리아에 선전포고했다.

물론, 속으론 모든 어그로는 세르비아에 떠넘기고 그리스는 유유자적 영토를 더욱 늘릴 수 있으리란 생각에 사악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불가리아에 맞서 그리스와 몬테네그로가 참전하자 발칸반도 변두리에서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루마니아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불가리아가 기어코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사고를 쳤군.”

“우리 루마니아로선 불가리아가 점유하고 있는 도부르자 남부 지역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음, 이것도 루마니아의 국익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 불가리아여, 비겁하다곤 말하진 않겠지.”

발칸전쟁 때는 아랫집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팝콘이나 씹었던 루마니아다.

그도 그럴 것이 오스만 제국과 국경을 접하지도 않았던 루마니아로선 발칸 동맹에 들어가 대오스만 전쟁에 참전해 봤자 얻을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바로 아래 불가리아는 달랐다.

불가리아엔 루마니아가 오랫동안 침을 흘렸던 남부 도부르자가 있었다.

“루마니아아아아아, 이 비겁한 새끼들아아아아아아──!!”

루마니아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불가리아에 선전포고했다.

물론, 갑자기 조용하던 루마니아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불가리아의 심정은 주관식 답안지에 전부 적어 넣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발칸전쟁의 치욕을 조금이나마 갚을 기회다. 우리도 당장 불가리아를 공격해야 해!”

“엔베르 파샤,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지 않았는데…….”

“그 정도쯤은 감수해야지. 에디르네와 동트라키아를 탈환할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놓칠 셈인가!”

불가리아의 불운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연이은 발칸 국가들의 선전포고에 전황이 불가리아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제1차 발칸전쟁의 패배로 불가리아에 에디르네를 비롯한 수많은 영토를 빼앗긴 오스만 제국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호기롭게 쿠데타를 일으키며 발칸 동맹에 대한 반격에 나섰지만, 끝내 제국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던 이스마일 엔베르는 다시 전쟁을 외치며 불가리아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물론, 러시아보다도 더 경멸스러운 세르비아나 그리스와 같은 편이 된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가끔은 해묵은 원한보다 국익을 중시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도 이번엔 제1차 발칸전쟁 때와 달리 승리의 여신은 오스만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무리 발칸 최강이라 불리는 불가리아라 한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를 상대하는 와중에 배후에서 쳐들어오는 루마니아와 오스만 제국까진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이는 제1차 발칸전쟁의 결과로 갓 독립한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발칸 국가들이 불가리아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대 1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그래도 5대 1로 상대로 열강급 국가도 아닌 불가리아가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막장 전개에 환장하는 지구작가라도 그 정도로 개연성을 무시하진 않는다.

거기다 한때 든든한 후원자였던 러시아 제국 또한 불가리아를 외면하는 상황이다.

솔직히 그 이상 나가면 선전포고하겠단 협박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콘스탄티니예를 집어삼키려고 했던 것도 모자라 발칸 동맹을 분열시키며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인 대계를 박살 낸 불가리아를 러시아가 용서하면 그건 이미 러시아가 아닌 무언가다.

그렇게 불가리아는 이중전선도 아니고 오중전선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제1차 발칸전쟁에서의 활약이 무색하게 계속해서 패배, 패배, 또 패배만을 겪었다.

세르비아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 그리스에는 역습을 당해 역으로 영토를 빼앗기질 않나 루마니아는 도브루자를 넘어 수도 소피아를 위협했고, 오스만 제국 또한 에디르네를 탈환하고 불가리아 남부로 진격했다.

이 모든 것이 제2차 발칸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도 안 되어서 벌어진 일.

이제 불가리아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강화……하겠소.”

불가리아는 결국, 세르비아를 비롯한 반(反)불가리아 연합에 머리를 숙였다.

피가 역류해 올 것만 같은 심정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오 등분의 불가리아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

와신상담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1913년 2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부쿠레슈티 조약이 체결되며 발칸을 다시 한번 떠들썩하게 했던 제2차 발칸전쟁이 끝났다.

그리고 조약의 결과, 불가리아는 제1차 발칸전쟁 때 얻었던 영토를 전부 잃은 것은 물론, 루마니아에 남부 도브루자까지 할양해야만 했다.

“그리스는 어떻게 하겠소?”

“우린 서부 트라키아의 해안가 지역 정도만 가져가겠습니다. 너무 많은 영토를 빼앗는 것은 불가리아에 너무 가혹한 것 같으니까요.”

한편, 독일과 영국의 충실한 하수인이 된 지 오래인 그리스는 불가리아를 너무 크게 자극하지 말라는 한스의 명령에 따라 마케도니아를 일단은 포기하면서 끝까지 선의의 피해자 행세를 했다.

“적어도 그리스는 세르비아 놈들보다 낫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중해로의 진출이 또다시 무산된 것은 아쉽지만, 나머지 영토는 보존할 수 있을지도…….”

이런 그리스의 행동은 불가리아가 조금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깐이었다.

“그래요? 그럼 마케도니아는 우리 세르비아가 전부 가져가겠소.”

왜냐하면 눈치 없는 세르비아가 원래 그리스의 몫으로 주려고 했던 영토까지 모조리 챙겨가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르비아에 대한 불가리아의 분노는 더욱 깊어졌고, 그리스는 세르비아가 알아서 악역이 되어 준 것에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발칸에서의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것으로 발칸반도가 평화를 되찾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두 차례에 걸친 발칸전쟁은 발칸의 평화를 가져오긴커녕 발칸 국가 간의 불화와 긴장도만 잔뜩 올리고 말았으니까.

물론, 여기서 가장 울고 싶은 것은 러시아 제국이었다.

발칸 동맹을 이용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견제하며 발칸반도를 온전히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에 넣는다는 계획이 개박살 난 것은 물론,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국가가 사실상 세르비아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한때 독립을 도와주었던 불가리아는 대사고를 친 끝에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세르비아만은 반드시 죽이겠단 일념 아래 독영협상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 2중대였으며, 그리스는 처음부터 독일과 영국의 스파이였다.

물론, 루마니아 또한 친러파 국가였지만, 루마니아는 아무래도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발칸반도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러시아의 계획엔 부적절했다.

그런 연유로 러시아 제국은 오로지 세르비아 코인만을 풀매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이것은 러시아 제국을 파멸로 이끄는 원인이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러시아는 이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

“이제 남은 것은 사라예보 사건뿐인가.”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서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린 나는 눈을 감고 지금까지의 행적을 뒤돌아보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독일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말고도 영국과 그리스, 불가리아를 끌어들여 러불동맹에 맞선 동맹관계를 구축했다.

일단 이해하기 쉽게 이제부터 우리 진영을 협상국, 그리고 러불동맹을 동맹국이라 하자.

음, 벌써부터 세계대전에 이길 것 같은 이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이탈리아의 삼국동맹 이탈은 막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는 예상 범위 내다.

어차피 이탈리아가 프랑스 편에 붙어 봤자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손초에서 자강두천 할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미국은 웬만하면 원 역사처럼 유럽의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 하겠지,”

우드로 윌슨이 갑자기 시어도어 루스벨트마냥 패권주의자로 정치 성향이 180도 반전하지 않는 이상 확실했다.

게다가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은 어디까지나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나 치머만 전보 같은 독일의 멍청한 도발 때문이었으니까.

그리고 미국의 중립은 중립이라도 어디까지나 우리 협상국에 기운 중립일 확률이 높다.

한때 엇나가며 집 나간 아들이 그래도 효심은 조금 남아 있어서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영국이 우리 편인 이상 WSAP(White Anglo-Saxon Protestants)가 주류인 미국 정치계로선 협상국에 호의적일 확률이 높으니까.

‘게다가 독일계 미국인들도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영국계 다음으로 높은 편이지.’

물론, 독일계 미국인들은 같은 게르만 계열이라 그런지 네덜란드계처럼 영국계에 빠르게 동화되어서 혈통적으로 구분하는 의미가 거의 없긴 하지만.

“어쨌든 외교 상황은 순조롭고, 전차도 생산을 작년 말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며 항공대도 계속 발전 중. 참모총장도 팔켄하인으로 교체했고, 프랑스에 대한 기만작전도 잘 진행되고 있음.”

설마하니 내가 멱살 잡고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이걸 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도 세계대전에서 지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인간 이하지.’

나는 우리 프로이센 군인 아저씨들이 히틀러보다도 못한 전략안을 가지고 있긴 해도 아직까진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나를 실망시켰다간 그땐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외무장관님! 큰, 큰일 났습니다아─!”

여유롭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음미하던 도중, 창백한 얼굴의 비서가 노크도 없이 내 집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소란스럽게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가 죽기라도 했어요?”

“예! 사라예보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주르륵─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아아를 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흐리멍덩한 눈으로 비서를 바라봤다.

“설마 암살입니까?”

“후우, 맞습니다. 세르비아 극단주의자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비서가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벽에 걸린 달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달력엔 똑똑히 1913년 6월 23일이라 적혀 있었다.

빠르다.

물론 발칸전쟁도 빨라진 마당에 사라예보라고 빨라지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나도 빨랐다.

‘후우, 괜찮아. 진정하자 한스야. 할 건 다 한 상황이잖아. 바뀌는 것은 없어.’

“지금 당장 폐하를 뵈러 가야겠습니다. 세계가 흔들릴 겁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죽음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니.”

“예?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살아 있는데요?”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방금 프란츠가 죽었다고…….”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것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아닙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입니다!”

“?????”

아니, 그 프란츠가 그 프란츠가 아닌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