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전쟁으로 가는 길 (5)
“꺄아아아악──!”
1911년 9월 14일.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표트르 스톨리핀은 힘겹게 눈을 떴다.
“쿨럭……쿨럭……결국 이리 끝나는가.”
스톨리핀은 끝내 자신의 목숨을 이런 식으로 거둬 가는 신을 원망하는 동시에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더는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휩싸였다.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솔직히 자신의 마지막이 편안하지 않을 것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알렉산드르 2세가 그랬던 것처럼 내 죽음으로 총리 자리까지 포기하면서 밀어붙인 러시아 제국의 개혁이 또다시 물거품이 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구나.’
스톨리핀은 그리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마등처럼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1911년 3월 4일, 러시아의 의회인 두마는 혼란에 빠졌다.
스톨리핀이 총리가 된 이래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왔던 토지 개혁 법안이 스톨리핀의 정적이었던 보수파 귀족 의원들에 의해 끝내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정 법안을 막고 싶으면 연단에 서서 정정당당하게 반대 연설이라도 할 것이지, 뒤에서 이딴 협잡질을 부려?!”
폭발한 스톨리핀은 이젠 못 참겠다는 듯 분노가 담긴 육두문자를 쏟아 냈다.
이번 법안 부결은 사실상 자신에게 반대하는 보수파 귀족의 거두였던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두르노보(Пётр Никола́евич Дурновó)가 차르의 묵인 아래 벌인 정치적 음모였기 때문이다.
“아니다. 아니야.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그러나 스톨리핀은 눈앞에서 토지 개혁 법안이 물거품이 된 것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법안 제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토지 개혁 법안에 기대를 품고 있던 개혁파 의원들과 기고만장해진 보수파 의원들이 서로에게 비난을 쏟아붓고 주먹을 날려 대며 두마가 난장판이 되어 가는 동안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스톨리핀은 예카테리나 궁전에 찾아가 니콜라이 2세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사임할 테니 두마를 3일간 해산하고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말이다.
이는 러시아 제국법 제87조를 이용한 것으로 이 조항에 따르면 차르는 두마가 문을 닫는 기간 동안 특정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선거나 공휴일 동안 긴급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법 조항이었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법이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지금 스톨리핀의 행동은 편법이자 두마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동이었고 차르 또한 설마하니 스톨리핀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라서 무척이나 난감했다.
“아들아, 스톨리핀의 말을 들어주거라. 지금까지 그에 헌신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법안을 통과시키고 말겠다는 스톨리핀의 의지는 강경했고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태후 또한 스톨리핀의 결정을 지지하자 니콜라이 2세는 결국 스톨리핀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스톨리핀은 이건 말도 안 된다는 보수파 귀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지키는 대신 총리 자리를 잃게 되었다.
다만 시간이 흘러 9월이 돼서도 그는 총리 명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니콜라이 2세가 우유부단한 성격이 어디 안 간다고 반년이 지나도록 그의 후임자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곧이다.
‘후임이 결정되고 공식적으로 사임하면 가족들과 함께 한동안 다차에서 휴식해야겠군.’
다만 자신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대로 러시아 제국의 개혁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서 오세요, 스톨리핀 총리님.”
“올가 전하, 타티아나 전하.”
스톨리핀이 그리 개혁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태우는 사이, 차르의 장녀와 차녀인 올가 여대공과 타티아나 여대공이 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늘 스톨리핀은 훗날 우크라이나 국립 오페라 극장이 되는 키예프 오페라 극장에서 니콜라이 2세와 차르의 딸인 올가 여대공, 타티아나 여대공과 함께 푸시킨 원작의 ‘차르 살탄 이야기’(The Tale of Tsar Saltan)를 관람하기로 했다.
사직서를 내긴 했어도 아직은 그가 총리였으니 말이다.
다만 오흐라나에선 암살 음모가 계획 중이라며 스톨리핀의 오페라 관람을 만류했다.
그러나 스톨리핀은 오흐라나의 경고를 무시했다.
인제 와서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암살범 따위를 걱정하기엔 그가 겪은 암살 시도의 수가 수였다.
“죽어라! 스톨리핀!!”
탕! 탕!
“커헉?!”
“꺄아아아악!!!”
그리고 안전에 대한 스톨리핀의 무심한 태도는 결국 그를 노린 두 발의 총알로 다가왔다.
스톨리핀 암살을 시도한 무정부주의자 드미트리 그리고리예비치 보그로프(Дмитрий Григорьевич Богров)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경호원들에 의해 제압되는 가운데 스톨리핀은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고 바로 옆에 있던 차르의 딸들 또한 덩달아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허억……허억…….”
“스톨리핀!”
스톨리핀은 숨을 헐떡거리며 창백한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니콜라이 2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아, 자신이 불에 다가가는 나방인 것조차 모르는 불쌍한 차르여.
그대가 나를 믿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안쓰러운 눈으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니콜라이 2세를 바라본 스톨리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차르를 위해 죽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 최후의 명재상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 * *
스톨리핀이 죽었다.
원 역사대로의 죽음이었다.
‘그가 죽을 거라고 단언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좀 쫄리긴 했어.’
만약 역사가 또다시 뒤틀려 그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면 내 계획을 처음부터 재검토해야 했을 테니까.
그만큼 스톨리핀이 있는 러시아 제국과 스톨리핀이 없는 러시아 제국은 달랐다.
물론 이것도 가정일 뿐이고 게다가 이번 암살 시도로 볼 수 있듯이 스톨리핀이 쌓은 원한이 워낙 많아서 이번에 살았어도 또다시 암살 위협을 당했을 확률이 높았겠지만.
게다가 스톨리핀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기 직전이었다는 것과 그를 잔소리꾼으로밖에 여기지 않던 니콜라이 2세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살았어도 총리로 복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 사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지.’
무엇보다 지금은 스톨리핀의 죽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스톨리핀이 죽고 며칠 후인 9월 29일.
이탈리아 왕국이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하고 기어코 오스만령 리비아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1911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독일 제국은 이탈리아 왕국의 돌발 행동에 목덜미를 잡았다.
이 망할 파스타 놈들이 아직은 동맹국인 우리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일언반구도 없이 멋대로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탈리아가 생각이 있으면 우리에게 알릴 리가 없지.”
오스만 제국은 다들 알다시피 독일 제국의 우호국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탈리아는 동맹국의 우호국을 침공한 것이다.
리비아에 대한 이탈리아의 욕심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만큼 그냥 원 역사대로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이탈리아가 더는 독일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결국, 이탈리아의 마음은 삼국동맹을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인가.”
“장관님, 오스만 제국에서 이탈리아를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겠습니까?”
“후우, 일단은 로마와 콘스탄티니예를 중재하려고 노력은 해 봐야죠. 저 개인적으론 그다지 소용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우리 독일이 어느 한쪽 편을 들면 또 모르겠지만 이탈리아가 아직 삼국동맹의 일원인 이상, 우리로선 오스만 제국의 편을 들기도 그랬고 그렇다고 이탈리아의 편을 들기도 그런 애매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리비아에 눈 돌아간 이탈리아가 과연 오스만과 싸우지 말라는 우리 말을 들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 역사에서도 제발 우리 평화롭게 끝내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말을 씹었던 이탈리아다.
게네가 우리 말을 듣고 ‘아, 그래? 그럼 전쟁 멈출게!’라고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고 만다.
무엇보다 난 리비아를 두고 벌어지는 이탈리아와 오스만의 각축전보다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으로 인해 일어날 또 다른 전쟁이 더 걱정이었다.
‘이미 그리스 왕국의 베니젤로스로부터 소식이 도착했지.’
이탈리아의 리비아 침공으로 인한 오스만 제국의 위기.
그리고 이때다 싶어 오스만을 물어뜯기 위해 움직이는 승냥이들.
발칸이 요동치고 있다.
* * *
1912년 1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어서 오시오, 베니젤로스 총리.”
세르비아 총리, 밀로반 밀로바노비치(Milovan Đ. Milovanović)의 환대에 베니젤로스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몬테네그로 왕국 총리 라자르 토마노비치(Lazar Tomanović)와 불가리아 총리 이반 에브스트라티예프 게쇼프(Иван Евстратиев Гешов)가 도착해 있었다.
“자, 주역도 다 모였으니 슬슬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베니젤로스가 자리에 앉자 밀로바노비치 총리가 손뼉 치며 화두를 떼었다.
“모두 지금 오스만 제국이 이탈리아와의 전쟁으로 한창 정신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다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한스만 빼고) 이탈리아 왕국은 에티오피아 때처럼 유럽의 환자인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왕국군은 지난해 10월 리비아에 상륙해 해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트리폴리를 비롯한 리비아의 해안가 도시들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내륙의 오스만군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에티오피아 따위에게 진 이탈리아가 암만 유럽의 환자 소리를 들어도 에티오피아보단 강한 오스만 제국을 쉽게 이기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게다가 아랍 기병들의 돌격에 이탈리아 상륙군이 전멸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베니젤로스로선 그저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4명의 총리에게 이탈리아가 몰아붙이진 못할망정 오스만 제국에게 밀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쉽긴 해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스만 제국이 예상 못 한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드디어 기회가 왔소. 과거 우리 선조들의 피로 이 땅을 적시고 우리의 믿음과 민족을 짓밟은 오스만 제국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줄 때가 왔다 이 말이오.”
“몬테네그로는 언제나 그랬듯 형제 세르비아와 함께할 것이오.”
“불가리아도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소. 때가 되면 불가리아의 60만 대군이 오스만 제국을 향해 진군을 시작할 것이오.”
마치 밀로바노비치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토마노비치와 게쇼프가 당장이라도 오스만을 향해 침공을 개시할 것처럼 흉흉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선언했다.
물론 베니젤로스도 입꼬리를 올리며 발칸 국가들의 오스만 부수기에 동의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이날만을 기다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 당연히 함께할 것이오.”
“하하, 역시 베니젤로스 총리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소. 특히 그리스는 우리 4국 중에 가장 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는 만큼 거는 기대가 크오.”
밀로바노비치와 토마노비치, 게쇼프, 베니젤로스는 서로 손을 맞잡으며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들은 겉으론 웃음꽃을 피우면서도 속으론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냉소를 지었다.
‘이 새끼들을 믿느니 차라리 오스트리아-헝가리에 고개 숙이고 말지. 너흰 우리 세르비아가 승승장구할 동안 오스만의 시선을 끄는 고기 방패 역할이나 하면 충분해.’
‘이참에 에디르네와 콘스탄티니예까지 점령해 버리고 대불가리아의 영광을 재건한다! 물론 러시아가 지랄하겠지만 우리 알빠는 아니지.’
‘벌써부터 딴생각들을 하는 것이 보이는군. 친애하는 한스 폰 초이의 말대로 오스만에게 승리하고 나면 분열은 시간 문제겠어. 그리고 우리 그리스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야겠지.’
회담장에 감도는 극도의 이기심과 야욕.
만약 뒤에서 발칸 동맹을 주도한 러시아가 이를 알았더라면 목덜미를 잡았겠지만, 이 이 자리에 누구도 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여전히 밝은 얼굴로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
“자, 발칸 동맹의 영광을 위하여.”
“건배!”
그렇게 조금 빨라진 발칸 동맹이 탄생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동맹이 영원하리라 생각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