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전쟁으로 가는 길 (3)
“푸하하하하하하─!!”
독일의 손을 잡으며 폴란드를 독립시켜 준다는 한스의 말에 피우수트스키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기쁨의 웃음이 아닌 너무나도 황당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내 살다 살다 독일이 우리 폴란드를 독립시켜 준다는 말을 다 듣는군. 그것도 카이저의 사위에게 말이야!”
폴란드 독립.
그 단어만큼 피우수트스키를 비롯한 폴란드인들이 수백 년 동안이나 염원해 왔던 것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독일 제국이, 그것도 카이저의 사위가 감히 입에 담을 말은 아니었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이것은 덴노의 사위가 조선을 독립시켜 준다는 개소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피우수트스키가 어떻게 생각하든 한스는 진심이었다.
“죄송하지만 이것은 질 나쁜 농담 같은 것이 아닙니다. 독일 제국은 정말 폴란드 독립을 용인할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조건은 있지만요.”
“그야 그렇겠지. 오히려 같잖은 선의나 양심 따위를 이유로 덧붙였으면 장관이 카이저의 사위든 말든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을게요.”
물론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피우수트스키가 다른 곳도 아니고 베를린 한복판에서 그런 짓을 벌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으니까.
한스도 그것을 알았기에 피우수트스키의 발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폴란드 독립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피우수트스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 장군이 생각하는 것처럼 머지않아 유럽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필연적으로 독일과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불동맹 간의 전쟁이 되겠죠.”
피우수트스키는 반박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 유럽의 세력 구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장관께서는 우리 폴란드를 독립시켜 대러시아전의 첨병으로 만들겠다, 이 소리군.”
하지만 그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피우수트스키와 폴란드 독립군에게 바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피우수트스키는 비스마르크의 후계자라 불리는 눈앞의 젊은 청년이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문 자자하신 한스 폰 초이가 그런 뻔한 소리를 하려고 자신을 굳이 베를린까지 부르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피우수트스키의 예상대로 한스의 계획은 그보다 훨씬 커다랬다.
“폴란드는 시작일 뿐입니다.”
“음?”
“핀란드.”
“!”
“발트삼국, 우크라이나, 가능하면 캅카스 삼국에 중앙아시아까지.”
러시아에서 독립시킬 수 있는 지역들을 모조리 독립시킨다.
그것이 한스의 계획이었다.
* * *
오래전 나는 슐리펜과 슐리펜 계획에 대해 논의하면서 러시아 제국을 어떻게 무너트릴지 심도 있는 고민을 했다.
러시아란 나라는 특유의 거대한 영토와 라스푸티차와 동장군으로 대표되는 지랄맞은 자연환경 때문에 공격 측으로선 참으로 답이 안 나오는 나라다.
그렇기에 한때 유럽 대륙을 정복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끝내 러시아를 넘지 못하고 자신들의 운명까지 말아먹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실패한 것을 나폴레옹 수준의 괴물 같은 명장도 없고 히틀러랑 달리 프랑스도 6주 못 시킨 상태에서 러시아와 싸워야 하는 독일 제국군이 성공할 리가 없다.
물론 기존의 슐리펜 계획이 상정하고 있는 대러시아전의 최종 목표는 모스크바가 아닌 제정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점령이었지만.
‘하지만 결국엔 그게 그거지.’
애초에 머나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하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독일군이 진격해 온다면 니콜라이 2세와 러시아 정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길 게 뻔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슐리펜에게 정석적인 방법으론 러시아 제국을 무너트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럼 자네는 어떤 식으로 동토의 저 거대한 불곰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간단합니다. 폴란드를 비롯한 러시아 제국의 압제 아래 있는 지역들을 독립시켜 아군을 늘리고 동시에 러시아 제국 내부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자네 미쳤나?”
물론 슐리펜의 반응은 심히 좋지 않았다.
나를 아낀다지만 슐리펜도 그 본질은 프로이센 융커였고 융커들에게 있어 폴란드는 지배해야 할 땅이지 어설픈 자비를 베풀어 독립시켜 줄 만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독일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초기 ‘폴란드 국경지대’란 이름 아래 폴란드 영토 상당수를 합병하는 것도 모자라 그 지역에서 살고 있던 폴란드인과 유대인을 추방하는 인종 청소를 계획했다.
물론 폴란드 국경지대 계획은 전쟁의 흐름이 점점 동맹국에 불리해지는 바람에 얼마 안 가 폐기되었지만.
그리고 그 대신 독일 제국이 폴란드 점령지에 설립한 것이 괴뢰국인 폴란드 섭정 왕국이었다.
물론 사실상 폴란드 입헌왕국 시즌 2를 찍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독일의 행동을 폴란드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차피 프랑스 전선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야 해서 동부 전선엔 그만큼 병력을 많이 배치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사악한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대중매체 대부분에서 자신들만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그렇지 프랑스야말로 서부 전선의 진정한 주인공이요 연합군의 주력이었다.
그리고 우리 독일군은 그런 프랑스와 혼자서 일대일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물론 영국군이 있긴 한데 나중이면 모를까 제1차 세계대전 초창기에 대륙에 온 영국 원정군은 소규모라 전쟁 초반엔 우리 독일이 홀로 프랑스를 감당할 수밖에 없어.’
지금 정보부와 진행 중인 일이 잘 풀리면 벨기에 또한 카이저맛 연합군에 합류할 테지만 이쪽도 병력이 적어 당장 전력은 안 될 게 뻔했다.
“하지만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을 해방해 우리 편으로 만들면 우린 그만큼 동부 전선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지원할 여력도 생기고요.”
“그건 우리가 폴란드를 점령해도…….”
“폴란드인들이 침략자의 말을 따르겠습니까? 오히려 봉기를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총독이었던 한스 폰 베셀러(Hans Hartwig von Beseler)는 이런저런 당근을 내밀며 폴란드인들을 징집하려고 했지만, 폴란드인들의 대답은 ‘독일군은 꺼져라!’였다.
그들이 보기에 독일군이나 러시아군이나 다를 게 하등 없었으니까.
게다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폴란드인들의 저항을 생각하면 합병하거나 속국으로 삼는 것보단 그냥 독립시키고 우리 처남들이나 적당한 독일 왕족을 군주로 삼아서 독일 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위성국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
이는 폴란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서부 전선에서 영국군과 함께 프랑스군을 압박하며 견제하는 사이, 러시아군을 타넨베르크 전투해 버리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을 독립시킨다!’
원 역사에서도 동프로이센에서 고작 1개 군으로 두 배에 달했던 러시아군을 갈아 버렸던 독일군이다.
여기에 군을 1~2개 더 배치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갈리치아에서 무너지지 않게만 도와도 승산은 차고 넘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닌을 투하하고 러시아 혁명을 터트려 러시아 제국을 전쟁에서 최대한 빨리 이탈시키는 거야.’
그리고 남아 있는 프랑스와 러불동맹 편으로 참전할 가능성이 큰 이탈리아에 전력을 집중해 끝장낸다.
이것이 새로운 슐리펜 계획의 요지였다.
물론 소련을 생각하면 우려도 들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국가와 민족들을 독립시켜 우리 영향권 아래로 넣어야 한다 생각한다.
‘소련의 탄생을 막을 수 없어? 그러면 소련을 최대한 약화시킨다!’
당장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만 잃어도 소련은 원 역사의 힘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바쿠 유전이 있는 아제르바이잔 등도 독립시키고 싶긴 한데 이쪽은 우리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워서 일단 나중에 상황을 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하고.
‘게다가 소련이란 사악한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는 동유럽 위성국들에 대한 우리 독일의 영향력을 더욱 굳건하게 해 줄 테지.’
이른바 적대적 공존이다.
또한 나폴레옹의 전례를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대신해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만 하니 결국 소련의 탄생은 필수 불가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까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밀이지만.
* * *
“……왜 당신을 비스마르크의 후계자라 부르는지 알겠군.”
한스의 계획을 들은 피우수트스키는 질린 눈으로 한스를 바라봤다.
러시아 제국을 직접적으로 무너트리는 것이 어려우니까 독립시킬 수 있는 지역을 모조리 독립시켜서 사방에서 혼란을 부추겨 러시아를 안에서부터 무너트린다니.
이게 과연 정상인이 할 수 있는 생각일까?
피우수트스키는 아마 아닐 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제안 자체는 우리 폴란드에 있어서도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독일의 제안엔 대가가 있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폴란드는 독일 제국 치하에 있는 폴란드 영토에 대한 권리를 영구히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향후 카이저의 아들 중 하나나 독일 왕족 중 누군가를 폴란드의 왕으로 삼아야 하니 독립 이후 폴란드는 괴뢰국까진 아니더라도 독일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조국 폴란드의 독립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게다가 이미 자신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원을 받을 때부터 최악의 경우 폴란드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속국이 되는 것까지 각오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폴란드의 완전 독립보단 보헤미아나 헝가리처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가 통치하는 폴란드 왕국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피우수트스키의 각오가 틀렸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에 비하면 한스 폰 초이 후작의 조건은 적어도 완전한 독립은 보장하니 이보단 나았고 그것을 아는 피우수트스키는 도저히 한스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러나 독일의 황제 폐하나 융커들의 생각이 과연 그대와 같다고 할 수 있겠소?”
다만 여전히 우려도 여전히 존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빌헬름 2세나 융커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외무장관의 계획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일단 카이저께선 동의하셨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피우스트키의 눈동자가 동그래지자 한스는 마치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처럼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빌헬름 2세를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향후 전쟁이 일어날 시 폴란드를 독립시키겠다고?”
가뜩이나 한스가 외무장관이 되자마자 터트린 보고서에 기가 질려 있던 빌헬름 2세는 이어진 한스의 말에 이건 또 뭔 소리냐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역으로 제안을 했다.
“나도 러시아령 폴란드를 독립시켜 완충지대로 삼는 것까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독립시키지 말고 차라리 폴란드에 자치 왕국을 세우는 건 어떻겠느냐? 그리고 경제권과 군대, 철도망을 비롯한 교통을 모조리 우리 독일 제국에 종속시키고 황태자 녀석이 통치하게 하는 거야.”
“……폐하, 그게 대체 식민지랑 다른 게 무엇입니까?”
괴뢰국도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한스는 언제나 그랬듯 시간과 공을 들여 카이저를 설득했다.
“아빠, 우리 남편이 틀린 말 한 적은 없잖아요? 그냥 믿고 들어주면 안 돼요?”
“크, 크흠…….”
그리고 여기엔 아버지를 향한 루이제 빅토리아의 애교 공세도 크게 작용했다.
부부는 한마음, 한 몸이라고 사랑하는 막내딸이 남편을 위해 직접 나서니 딸바보 카이저로선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풀리며 한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융커들은 장군께서 신경 쓰실 문제는 아닙니다. 그건 제가 신경 쓸 문제지요.”
어차피 세계대전의 승리를 위해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밀어붙이면 융커들로서도 크게 반발하진 못할 것이다.
물론 종전이 다가오면 다시 고개를 들고 시끄럽게 투덜거리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한스는 세계대전이 끝나면 융커를 치워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고 융커들의 반발은 그들을 치울 또 하나의 명분이 되어 줄 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권력을 뺏고 영향력을 줄인다는 것이 맞겠지만.’
어쨌든 한스의 장담을 들은 피우수트스키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이번 베를린행이 시간을 버리는 꼴이 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군.”
“그 말은 장군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봐도 괜찮겠습니까?”
“러시아를 엿 먹이는 일 아닌가. 우리 폴란드인들보다 그것을 잘하는 자들은 없지.”
물론 피우수트스키는 독립 약속 정도로 만족하진 않았다.
“다만 독일 제국의 폴란드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그만큼 러시아 제국 영토를 분배해 주고 리투아니아 또한 우리 폴란드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군.”
“리투아니아 말씀입니까…….”
한스는 피우수트스키의 말에 고민에 빠졌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역사적 관계를 생각해 보면 피우수트스키가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장 피우수트스키부터 리투아니아 출신 폴란드 귀족이었으니.
“전자는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만 리투아니아의 경우엔 리투아니아 주민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아, 그것도 그렇군.”
“그러니 이 문제는 나중에 주민 투표로 결정하든지 하죠.”
피우수트스키는 당연히 리투아니아가 폴란드와 다시 합쳐지는 것을 원하리라 생각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민족주의에 눈을 뜬 리투아니아인들은 철 지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보다는 그냥 독립을 원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럼 이걸로 거래 타결이로군요.”
“좋은 거래였네.”
피우수트스키와 한스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씨익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이것으로 피우수트스키와 폴란드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독일 제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러시아에 대항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스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아직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