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계속되는 위기 (4)
대인,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역도의 무리와 협상을 하신다니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위안스카이가 순친왕으로부터 반란 진압을 명령받고 출정에 나섰을 때.
작전 회의 도중 그가 갑자기 혁명군과 타협 이야기를 꺼내자 위안스카이가 가장 총애하는 심복이자 북양삼걸 중 북양의 호랑이, 돤치루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돤치루이는 혁명군에 대해 나름 온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고 이번 일이 최대한 평화롭게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돤치루이의 이야기였지 위안스카이가 굳이 남부의 반란을 평화롭게 끝낼 이유는 없었다.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고 말이다.
애초에 그는 황제의 장인 자리를 약속받았을뿐더러 총리대신 자리까지 거머쥐며 청의 제일가는 권력자로 떠올랐다.
그렇기에 돤치루이가 생각하기에 위안스카이가 혁명군을 봐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군대의 질이나 전력 또한 이쪽이 훨씬 강했으니까.
그런데 아직 전투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베이징을 떠나자마자 혁명군과 협상이라니.
인제 와서 위안스카이란 인간이 혁명의 이상에 공감할 리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기에 돤치루이로서는 대체 주군이 무슨 뜻으로 이리 말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난 저 중화민국을 차지할 것이다.”
“예?”
그러나 위안스카이가 숨겨 왔던 야심을 드러내자 돤치루이의 혼란은 곧 충격으로 바뀌었다.
“혁명군 따위는 우리 북양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 그리고 저들도 그 사실을 알 터. 그러니 나는 그들에게 가 총통 자리를 요구할 것이다.”
“대인, 그것은……!”
그것은 대청과 황제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그것이 무슨 상관이라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사내라면 응당 큰 꿈을 꿔야 하는 법. 천명이 스스로 나에게 왔는데 어찌 이를 외면하겠는가.”
“하지만 그건 반역입니다!”
“흥, 실패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성공할 것이다.”
어차피 원래부터 때가 되면 순친왕을 치워 버리고 청의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던 위안스카이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더 빠르고 쉬운 길이 생겼기에 굳이 오래 걸리는 길을 갈 필요가 없어졌을 뿐.
“내가 하늘에 서겠다.”
황제의 신하로 사느니 죽더라도 나 스스로가 정점이 되겠다.
그것이 위안스카이의 야심이었고 그가 배신을 거듭해 온 행동 원리였다.
“하하! 역시 대인이십니다. 사실 저도 무너질 대로 무너진 청나라보다는 혁명군의 대의를 따르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속으로만 생각할 뿐 입 밖으로 내지 못했는데 대인께서 이리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시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 풍모, 목숨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주군을 따르겠습니다!”
돤치루이가 위안스카이의 선을 넘은 권력욕에 아연실색하는 사이, 돤치루이와 그의 옆에서 그다지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북양의 용 왕스전(王士珍, 왕사진)과 더불어 북양삼걸 중 하나인 펑궈장(馮國璋, 풍국장)이 가슴을 호쾌하게 두드리며 외쳤다.
물론 이를 본 돤치루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펑궈장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혁명군을 모조리 쳐 죽여야 한다고 외치던 작자다.
그런데 위안스카이가 청을 버리고 혁명군에 붙으려 하니까 바로 말을 바꾸다니.
역시나 탐욕스럽고 부패한 북양의 개 다운 행동이라고 돤치루이는 혀를 찼다.
그러나 돤치루이의 생각이 어떻든 위안스카이는 기어코 쑨원에게서 대총통 자리를 얻어 냈고 곧바로 돤치루이 자신에게 베이징과 황제를 장악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돤치루이는 처음으로 위안스카이의 명령을 거부했다.
지금 위안스카이의 행동은 아무리 인내심을 발휘하더라도 돤치루이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돤치루이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위안스카이의 심복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직한 사람이었고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굉장히 비타협적인 인물이었으니까.
실제로 돤치루이는 신해혁명 당시엔 위안스카이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지만, 위안스카이가 쑨원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기어코 황제가 되려고 하자 이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극렬히 반대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돤치루이에게 있어서 그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사과는 하지 않겠습니다. 대인. 아무래도 전 당신과 더는 같은 길을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돤치루이는 그리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주군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올리고 위안스카이에 대한 충성을 땅에 묻었다.
그리고 그는 휘하의 북양군 병사들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기 위하여.
* * *
쨍그랑!
“위안스카이 그자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대의를 위해 과거의 원한을 뒤로하고 그를 중용한 것도 모자라 외척의 자리까지 내주었거늘!!”
베이징에 도착한 돤치루이는 곧바로 순친왕에게 가 위안스카이의 배신을 알렸다.
그리고 돤치루이로부터 위안스카이가 이복형 광서제를 배신했던 것처럼 이젠 아예 나라까지 배신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순친왕은 아끼던 도자기를 집어 던질 정도로 폭발했다.
순친왕은 그의 딸을 대청의 황후로 삼는다고 약속까지 했고 다른 황족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를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중에 군대를 장악하면 치워 버릴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순친왕 자신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주었는데 위안스카이 이 개만도 못한 놈은 그걸 또 배신으로 갚았다.
순친왕의 분노는 합당했고 청 조정은 청의 주력군이나 마찬가지인 북양군을 이끄는 위안스카이가 혁명군에 합류한 암울한 상황에 이등병의 남은 전역일처럼 눈앞이 매우 깜깜해졌다.
이제 그들의 희망은 반역자 위안스카이에게 등을 돌리고 청에 대한 의리를 지킨 돤치루이뿐이었다.
“이제 내가 믿을 것은 장군뿐이오! 부디 청을, 황제를 저 역적의 무리로부터 지켜 주시오!”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삼궤구고두례 사건 이후 다시 한번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입은 순친왕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돤치루이의 손을 붙잡자 돤치루이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순친왕에게 있어 다행인 점은 돤치루이가 독일 유학파 출신 엘리트로서 청에서 제일가는 군사학의 대가였다는 점과 돤치루이 휘하의 있는 북양군은 그가 주인이 위안스카이에 반기를 들었음에도 계속해서 돤치루이를 따랐다는 점이다.
이는 돤치루이가 소탈하고 의를 중시해 북양군 병사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던 데다가 북양군 장교 대부분을 가르친 스승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일단 이대로 적과 전면전을 벌이면 불리해지는 것은 저희 쪽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군의 세력을 늘려야 합니다.”
“세력을 늘리다니 현 시국에서 청을 도울 자들이 과연 남아 있겠소?”
“임시 양강총독 장쉰(張勳, 장훈)은 충신이니 명령만 내리시면 청을 돕기 위해 달려올 것입니다. 또한 캉유웨이(康有爲, 강유위)를 비롯한 입헌파들도 건재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조정과 함께한다고 해도 전황을 역전 시킬 수는 없을 것 같소만…….”
“예. 그렇기에 우리는 서양 열강들을 이 문제에 개입시켜야 합니다.”
“열강들을 말이오? 하지만 그건…….”
열강들을 개입시키잔 말에 순친왕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지만, 만약 열강들을 개입시켰을 시 치러야 할 대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돤치루이는 단호한 목소리로 망설이는 순친왕을 설득했다.
“전하, 어차피 청은 이제 뒤가 없습니다. 일단 살아남아야 그다음 또한 생각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 말대로 청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게다가 저 역도들의 공화주의 혁명이 성공한다면 과거 불란서인들이 그들의 왕과 왕비의 목을 잘랐던 것처럼 아들 푸이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
자신은 어찌 돼도 상관없지만, 아들 푸이만큼은 지켜야 했다.
결국, 순친왕은 무거운 한숨과 함께 돤치루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얘들은 그냥 깔끔하게 망하면 안 되나…….”
위안스카이가 순친왕과 청을 배신하는 거야 그저 배신의 짐승인 위안스카이가 위안스카이 했을 뿐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겠는데 돤치루이는 왜 또 위안스카이를 배신하고 순친왕에게 붙은 건지 모르겠다.
아직 중국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설마하니 순친왕에게 삼궤구고두례를 시킨 것 하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젠장, 나비효과도 정도껏 해야지!’
게다가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졸지에 청의 마지막 희망이 된 돤치루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을 살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열강들을 중국 문제에 개입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와 독일에 있어 골치 아픈 방법으로 말이다.
지금 그는 우리 안 도와주면 독일과 영국에게 청 이권 다 러시아와 프랑스에 넘긴다고 공갈 아닌 공갈을 하고 있었고 프랑스와 러시아에겐 정확히 그 반대로 말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러일전쟁에서 피로스식 무승부를 거둔 일본과 중국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태평양 건너편의 미국까지 유혹하는 중이었고 돤치루이의 행동에 당황한 중화민국도 덩달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돤치루이라는 작자는 지금 제정신인 건가? 싸우려면 자기들끼리 싸울 것이지 왜 애꿎은 우리까지 끌어들이려 한단 말인가!”
“진정하세요. 쇤 장관님. 저도 중국에 개입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애초에 그럴 여력도 없었다.
발칸에 페르시아에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곳은 이미 중국 말고도 넘쳐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젠 5년도 남지 않았다.
덕분에 전쟁 준비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원 역사로 미루어 봤을 때 청과 중화민국 누가 이기든 대혼돈의 멀티군벌 시대가 펼쳐질 게 뻔한 중국까지 신경 썼다간 그땐 내 머리가 터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돤치루이가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다가 저 자식들이 중국 이권 다 처먹으면 어떡하지?’란 딜레마를 만들어 버린 이상 안 나설 수도 없는 노릇.
이러다가 최악의 경우 중국에서 팔자에도 없는 열강 정모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쇤 장관의 질문에 나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돤치루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청의 생존일 것이다.
그가 위안스카이를 저버리고 청에 붙었다 한들 위안스카이가 더해진 중화민국을 무너트리는 것은 중화민국에서 내분이 터지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고 중화민국 또한 제1 목표는 청을 무너트리는 것이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혁명정부의 생존일 것이다.
여기서 중화민국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혁명의 실패를 의미했고 그것은 쑨원 같은 혁명가들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두려운 일일 테니.
‘그러면 결국 그 수밖에 없나.’
쯧, 벌써 이걸 꺼내 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쇤 장관님. 영국 대사를 불러 주세요. 러시아랑 프랑스, 미국 대사도요.”
“무언가 해결책이 떠올랐나 보군.”
반색하는 쇤 장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면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골치 아픈 중국 문제를 당분간 봉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도록 하자.
“중국을 분할시킵시다.”
그것이 당장으로선 최선이었다.
“좋은 생각 같군요. 영국은 독일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미 발칸이랑 페르시아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중국 문제 때문에 피를 흘리고 싶진 않소. 우리 러시아는 중국 분할에 동의하겠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군. 우리 프랑스도 찬성하겠소.”
그렇게 뜬금없이 중국 혁명이란 골치가 아픈 문제에 직면한 열강들은 나와 쇤 장관의 주도 아래 베이비 슬레이어 솔로몬의 판결처럼 청과 중화민국을 아예 갈라 놓기로 합의를 보았다.
설득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열강이란 게 원래 서로 멱살 잡고 싸우다가도 이런 문제에선 언제 우리가 싸웠냐는 듯 손을 잡는 족속들이니까.
게다가 어차피 어느 한쪽을 도와 열강들끼리 중국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싸우느니 차라리 둘 모두를 살려 놓고 이를 빌미로 이전처럼 중국을 두고두고 뜯어먹는 것이 가성비 측면에서 더 낫다는 생각도 있었을 테고.
어쨌든 독일 제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5개국은 서로에 대한 악감정은 잠시 접어 두고 중국이란 살이 좀 빠졌지만, 여전히 탐스러운 돼지 저금통의 평화를 위해 잠시 협력하기로 했다.
다만 위 5개국과 마찬가지로 돤치루이와 중화민국 양쪽에게 도와달라고 러브콜을 받은 일본은 이 자리에 끼지 못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열강들에게 나름 인정받은 원 역사의 일본이면 모를까 전쟁에서 죽을 쑨 일본을 열강들이 끼워 줄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또다시 서양 코쟁이들에게 따돌림당한 일본은 오랜만에 탈아입구가 마려워지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든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기 위해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나 열강들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1909년 말.
주청 독일 공사 아르투어 폰 렉스(Arthur Alexander Kaspar von Rex)의 중재 아래 키아우초우에서 청과 중화민국의 평화회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