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계속되는 위기 (3)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순친왕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절규했다.
지방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난 것도 모자라 공화 혁명이라니!
분명 잘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왜 1년 만에 상황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악화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개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믿었다.
그러나 순친왕의 생각과 달리 지난 1년간 펼쳤던 개혁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왜 그가 실패를 넘어 이러한 참극을 일으킨 것인지 누구나가 알 수 있었다.
우선 순친왕은 국내의 불안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입헌 정치를 선포하고 청나라 백성들에게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개혁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순친왕은 독일에서 당한 수모와 그 수모를 당한 원인이 청의 약해 빠진 군사력 때문이라 생각했고 그 때문인지 외세와 내부의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순친왕의 개혁은 사실상 군대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프로이센식 군국주의 개혁이 되어 버렸고 딸이 선통제 푸이와 약혼을 맺음에 따라 원 역사보다 일찍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된 위안스카이도 이를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군대가 강해지면 그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위안스카이 자신의 권력도 덩달아 늘 테니까.
그러나 발칸에서 프로이센 놀이를 하던 불가리아처럼 극동의 독일 제국을 꿈꾸던 순친왕의 개혁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지만 불안정한 청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군대는 다들 알다시피 돈 먹는 하마였고 군대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군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이는 원조인 독일 제국조차 곤란에 빠트렸던 문제였는데 망국의 기로 앞에 놓인 청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순친왕은 군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다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청나라 백성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아이고, 대인! 이것까지 가져가시면 저와 제 가족은 대체 뭘 먹고 살라는 것입니까!”
“다 나라를 위한 일이다. 참고 버티면 언젠가 다 보답이 있을 것이야.”
순친왕의 명에 따라 추가 세금을 걷으러 온 관리들은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그리 대답했지만 이를 믿는 중국인들은 그 말을 한 관리들을 포함해서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심정이 어떻든 순친왕은 더 큰 대의를 위하여 당장의 고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돈이 생기자 순친왕은 다시 군사력 확충에 열을 올렸고 이때 원 역사에 신해혁명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우전부시랑 성시안화이(盛宣懷, 성선회)가 장작에 불을 붙였다.
“전하, 이참에 철도를 국유화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철도를 국유화해?”
“예. 지금 청의 철도 부설권과 경영권은 민간 자본 손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철도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또한, 철도는 곧 국력인 만큼 천한 상인들의 손이 아닌 조정의 손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 확실히 저 덕국도 불란서와의 전쟁 때 철도 덕을 톡톡히 봤다고 했지. 좋은 생각 같군.”
순친왕은 성시안화이의 제안에 흡족해하며 그를 청의 우편과 통신을 총괄하는 우전부대신에 임명하고 오래전부터 철도 국유화에 목말라 있던 속으로 환호를 지르며 성시안화이는 바로 천한선(쓰촨-한커우 철도)과 월한선(광저우-한커우 철도)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그러나 성시안화이의 철도 국유화는 실리적으론 합당하긴 했지만, 작금 청의 사정과 전혀 맞지 않았고 백성들에게도 거부감이 너무 심했다.
우선 그동안 청에서 철도를 부설하는데 들어간 민간 자본은 말이 민간 자본이지 유지나 상인들은 물론 길거리 거지와 배우들의 돈까지 한푼 두푼 모아 만든 민족 자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성시안화이는 나중에 철도 부설이 완료되면 갚아 준다고 신용이 전혀 없는 국가 보증 하나 덜렁 던져 준 채 철도 부설권을 강제로 회수했다.
그것도 모자라 국유화를 위한 자본을 구하기 위해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에 600만 파운드를 빌리고 청나라 국내의 탄광과 소금세, 물품 통과세까지 담보로 걸어 버렸다.
그러나 세금 인상에 이어 철도 국유화로 재산이 휴짓조각이 되어 버린 것도 모자라 이를 위해 외세 자본까지 끌어들이며 사실상 자신들이 없는 사정에 돈을 조금씩 모아 만든 철도를 서구열강에 팔아먹는 모양새가 되자 중국인들은 끝내 폭발했다.
“우리 돈으로 만든 철도를 양이들에게 팔아먹다니, 이게 나라냐!”
“더는 못 참는다! 조정은 당장 철도 국유화를 중지하라!”
결국, 원 역사보다 더 거대한 규모로 중국 전역에서 철도 국유화 반대 시위가 발생했다.
이에 당황한 순친왕은 무력으로라도 시위대를 해산할 것을 명령했지만, 이는 원 역사처럼 오히려 역효과로 돌아왔다.
“전하! 쓰촨에서 반, 반란이 일어났사옵니다!”
“우창에서도 대규모 무장봉기가…….”
“뭐, 뭐라?!”
관군의 무력 진압 시도에 백성들의 분노에 더욱 불이 붙었다.
시위는 이제 대규모 무장 봉기로 진화해 버렸고 중국 각지에서 암약하며 청의 멸망과 공화국 건설을 꿈꾸었던 혁명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청이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쓰촨과 우창, 난징을 장악한 혁명파들은 기어코 중화민국을 선포했다.
망할 오랑캐 조정의 무능함에 지칠 대로 지친 중국인들은 새로운 한족 정부에 열광했고 1911년에야 발생한 신해혁명이 2년 빨라져 기유혁명이 되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나 버렸다.
하지만 순친왕은 세상이 제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음에 절망할지언정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남부의 혁명은 우발적으로 일어났을뿐더러 이제야 막 시작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빠르게 행동에 나선다면 청을 무너트리려는 중화민국인지 뭔지를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각총리대신! 당장 북양군을 이끌고 저 반란군들을 진압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순친왕은 위안스카이를 불러 북양군벌을 이끌고 혁명군을 진압할 것을 명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어쩔 수 없이 내쳤던 위안스카이를 불러들였던 원 역사와 달리 순친왕과 위안스카이는 서로 동맹 관계였기에 순친왕을 그를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아무리 그가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 한들 황제의 장인까지 된 마당에 청이 무너지면 그의 권력 또한 끝이니까.
순친왕은 위안스카이는 못 믿어도 그의 권력욕은 믿을 수 있었다.
또한, 북양군벌은 순친왕의 군사력 강화 덕분에 원 역사보다 훨씬 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오합지졸에 불과한 혁명군 따윈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리라.
‘근데 내가 꼭 반란군을 진압해야 할까?’
그러나 순친왕은 몰랐다.
위안스카이의 권력욕과 야심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거대했고 그는 황제의 장인이란 자리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 * *
“지금 뭐라고 말했습니까?”
외국에 있다가 갑자기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났단 소식에 급히 중국으로 달려와 얼굴마담이긴 하지만 중화민국 초대 임시 총통으로 선출된 쑨원은 반대편에 마주 앉은 위안스카이의 말에 당황한 채 되물었다.
처음 그가 북양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에 중화민국 지도부는 싸움을 망설였다.
기유혁명은 신해혁명이 그렇듯 갑자기 일어난 것이었고 그렇기에 청나라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군대라 할 수 있는 북양군벌과 전면전을 벌였다간 높은 확률로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명군과 싸우러 온 위안스카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혁명군과 대치만 할 뿐 더 이상의 진격을 하지 않고 중화민국 정부에 은밀히 협상하자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위안스카이가 순친왕에게 밉보인 상태라면 모를까 황제의 장인이자 순친왕에 이은 청의 이인자까지 된 그가 무엇이 아쉬워서 협상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쑨원, 쑹자오런(宋教仁, 송교인), 혁명이 이른 시간에 터진 탓에 순친왕 암살을 시도도 못 한 왕징웨이(汪精衛) 등 중화민국 지도부는 위안스카이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감쌌지만, 소득은 그다지 없었다.
결국, 쑨원은 일단 위안스카이를 만나 보기로 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이번 혁명을 실패로 끝나게 둘 순 없었으니까.
“중화민국에 협력하겠다 말했소.”
그러나 협상장에서 나온 위안스카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위안스카이의 말은 청나라를 무너트리겠다는 열망에 불타는 쑨원조차 기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청조를 등지겠다는 소리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소.”
“황제도요?”
위안스카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눈은 쑨원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야심과 권력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대신께선 황제의 장인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데도 정녕 황제를 버리겠다는 건가?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아직 약혼만 맺었을 뿐, 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장인은 무슨 장인이오. 아, 물론 조건이 있소.”
그리곤 씨익 웃으며 본심을 꺼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총통 자리를 나에게 넘기시오.”
“!!!”
총통 자리를 넘기라는 말에 쑨원은 그제야 위안스카이가 왜 청나라와 황제를 버리려는 이해 했다.
이 자는 지금 청나라의 이인자로 사느니 중화민국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위안스카이의 야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그는 더 위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쑨원에겐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이미 황제를 한 번 배신한 것도 모자라 이젠 나라까지 배신하다니! 이게 정녕 사람인가?!’
위안스카이가 권력에서 밀려났으면 이해라도 하겠다.
하지만 순친왕은 그의 딸을 황제의 황후로 삼겠다고 약속까지 한 것도 모자라 청의 권력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지금까지 섬겨 온 청나라와 황제를 배신하겠다는 것도 모자라 동맹을 맺은 순친왕까지 배신하겠다는 것이다.
한간도 이런 한간이 없다.
아직 순수한 마음을 지닌 쑨원은 구역질이 치밀어올라서 도저히 위안스카이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의 운명이 이자에게 달린 이상, 위안스카이를 내칠 수도 없는 노릇.
“저 혼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동지들과 논의를 할 시간을 주십시오.”
“물론이오. 다만 난 인내심이 적은 터라 그리 오래 기다리진 못하오.”
“……명심하겠습니다.”
쑨원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중화민국 지도부에게 위안스카이의 제안을 전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쑨원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혐오감에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허, 권력욕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불쾌해도 우리로선 쉽게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요. 위안스카이와 북양군벌이 청을 배신한다면 청의 멸망 또한 확정이니.”
쑹자오런의 말에 쑨원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주변에 있는 동지들이라면 모를까 솔직히 위안스카이 같은 인간에게 다른 무엇도 아니고 중화민국의 지도자 자리를 넘겨주긴 싫었다.
그러나 그의 도움 없이는 그토록 바라던 청의 멸망은 물론 중화민국의 생존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지금, 그들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드디어 돌아오셨군. 그래, 답은 정했소?”
“대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쑨원의 말에 위안스카이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단!”
그러나 쑨원의 말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정부는 반드시 공화국이어야 할 것. 또한, 수도를 난징으로 옮길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그럼 협상 타결이군.”
물론 위안스카이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위는 없었기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아직은 본심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위안스카이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떨떠름한 표정의 쑨원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바로 말머리를 돌리고 행동에 나섰다.
위안스카이는 자신의 심복인 돤치루이(段祺瑞, 단기서)에게 베이징으로 가 자금성을 점령하고 순친왕과 선통제를 확보할 것을 명령했다.
“위완 대인! 위안 대인! 돤치루이가 대인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뭐라……?”
“그뿐만이 아니라 더는 대인을 따르지 않겠다며 대인을 배신하고 순친왕에게 붙었습니다!”
“????”
그리고 중국의 역사는 다시 한번 뒤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