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계속되는 위기 (2)
1909년 3월, 타브리즈는 결국 러시아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다.
원 역사에서 이보다 긴 11개월을 버틴 타브리즈 반란군이었지만, 러시아의 개입이 빨라지자 이미 기아에 시달리고 있던 그들로서도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타브리즈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사이 입헌 정부는 남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수도인 테헤란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모하메드 알리 샤가 반란군이 세를 불리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진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서 직접 군을 이끌고 호기롭게 이스파한으로 진격했다.
펑! 퍼펑!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왜 일개 반란군 따위의 무기가 저렇게 좋아?!”
“샤이시여, 반란군의 화력이 생각보다 너무 강합니다. 여기선 물러나야 합니다!”
“으으……!”
그리고 모하메드 알리 샤는 거짓말처럼 입헌 정부군에게 패배했다.
영국의 돈과 독일의 무기로 무장한 입헌 정부군은 샤의 군대보다 장비도 좋았고 또 폭군인 모하메드 알리 샤에 대한 분노로 인해 사기도 드높았다.
게다가 모하메드 알리 샤는 원 역사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지원을 동시에 받고도 혁명군에게 패배해 수도와 왕관을 버리고 러시아로 도망쳤을 정도로 군재가 형편없는 인물.
이 상황에서 승리를 바란다는 것은 사실 알라의 기적을 바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하메드 알리 샤는 군을 물리고 테헤란으로 돌아갔고 이스파한을 지켜 낸 입헌 정부군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과 승리를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모하메드 알리 샤를 한 번 이겼다 한들 입헌 정부가 내전에서 완전히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샤의 군대는 건재했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영국의 방해에 짜증을 느끼며 군사고문단을 대거 파견하는 동시에 모하메드 알리 샤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여기에 프랑스도 검은 황금의 땅인 페르시아가 온전히 영국 손에 넘어가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는지 우리를 따라 자국 무기를 샤의 군대에 퍼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페르시아는 북부의 모하메드 알리 샤와 러불동맹, 남부의 입헌 정부와 독영협상이 대치 구도가 굳어져 버렸다.
모하메드 알리 샤는 남부를 불법 점거한 반란군을 무너트리기 위해, 입헌 정부는 폭군을 쓰러트리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페르시아 곳곳에서 충돌했다.
그러나 양쪽 모두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란 것을 알기에 상대방을 완전히 무너트리기 전까지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었고 열강의 개입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불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페르시아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그레이트 게임이 한창 벌어지는 사이 나는 황실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어울리지도 않은 신앙 고백을 하고 있었다.
* * *
“이제 주님과 교회 앞에서 그대 한스 폰 초이가 하나님께 드렸던 서약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1909년 5월.
빅토리아 황태후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포츠담 평화교회에서 주교의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그의 앞에 서서 경건한 태도로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대는 창조주 하느님을 믿습니까?”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그대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느님의 외아들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폰티우스 필라투스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그렇게 한동안 주교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문답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금 나는 황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견진성사(堅振聖事)를 치르는 중이었다.
내년 1월 18일에 나는 만 18세가 되어 법적으로 성인이 될 예정이었지만 그럭저럭 신앙심 깊은 빌헬름 2세와 아우구스트 황후는 그 전에 내가 종교적 성인식이라 할 수 있는 견진성사를 받길 원했기 때문이다.
견진성사는 내가 알기론 가톨릭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독일 루터교회에서도 하는 모양이더라.
아무래도 루터교회는 지역별로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프로테스탄트라 해도 성공회처럼 가톨릭과 전례, 교리 등이 비슷한 편이니까.
당장 내 앞에 있는 사제도 ‘목사’가 아니라 ‘주교’였다는 점이 루터교회와 가톨릭과의 공통점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언제 끝나려나?’
신앙심 따윈 전생 시절부터 쥐뿔도 없는 몸인 지라 지루하게 느껴질 뿐인 과정에 하품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다만 시대가 시대이고 반드시 받아야 한다니 그냥 지루해도 그냥 참고 받을 뿐.
요아힘을 비롯한 왕자들도 견진을 받을 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인지 당장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은 내 얼굴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안수식을 해야 하니 무릎을 꿇으십시오.”
마침내 신앙을 확인하는 기나긴 문답의 시간이 끝나고 견진성사의 마지막 차례가 다가왔다.
“주여, 당신의 종인 한스 폰 초이에게 성령을 내리소서. 그의 믿음을 강건케 하시고 일생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시키는 대로 주교 앞에 무릎을 꿇자 주교가 기도문을 외우며 손가락으로 내 이마에 성유를 발랐다.
불경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까 주교가 몰래 엉덩이를 긁던데 부디 손은 닦고 바르는 것이길 빈다.
“자, 기도합시다.”
안수식이 끝나자 주교와 나, 그리고 황실 가족들이 손을 모았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의 크신 은총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내려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
“겸손히 비 오니 사랑의 손길로 이 사람들을 보호하시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뜻과 행실로 교회를 섬기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그렇게 내 견진성사가 끝났다.
나는 이제 영적으로는 성인이 되었다.
물론 법적으로도 성인이 되려면 아직 7, 8개월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수고했다. 한스. 이제 루이제만 견진을 받으면 되겠구나.”
빌헬름 2세의 말에 루이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동년배인 루이제는 올해 10월에 견진성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물론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본인은 지루할 게 뻔하다며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생각은 내가 졸린 얼굴로 견진성사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더 강해진 모양이다.
“한스, 얼른 와. 케이크 먹으러 가야지!”
“네, 네. 왕자님.”
평화교회를 나서 신궁전으로 돌아가던 중 요아힘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알고 보니 서양에서는 견진성사가 끝나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먹는 참 좋은 풍습이 있다고 한다.
어째 오늘의 주인공인 나보다 더 떠들썩한 요아힘 왕자의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곧 요아힘, 루이제와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나는 달콤한 케이크를 입에 머물며 지난 일들과 앞으로 있을 일들을 떠올렸다.
우선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드디어 질소 공중 고정법의 상용화에 성공하여 바스프사에서 본격적으로 질소 비료를 대량으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독일 제국의 농업 생산량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릴 예정이었고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유럽의 긴장도에 피곤한 얼굴이었던 뷜로 총리는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한편 작년 북극점을 정복한 아문센은 평생의 꿈을 이루고도 아직 탐험가의 마음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모양인지 북극점에 이어 남극점에 도전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과연 여기서도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할지, 아니면 역사가 바뀌어 영국의 스콧이 남극점에 유니언 잭을 꼽게 될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전멸 엔딩으로 끝나긴 했어도 스콧도 일단은 남극점에 도착은 했으니까.
한편 며칠 전인 4월 27일에 보수파에게 콘스탄티니예를 빼앗겼던 청년 튀르크당이 다시 수도를 탈환하고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압뒬하미트 2세를 퇴위시키면서 길었던 오스만 제국의 혼란도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보수파들이 압뒬하미트 2세에게 반기를 들고 혁명을 지지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또 한 번의 피바다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오스만 제국의 고난이 끝났다고 말하기엔 아직 일렀다.
운명의 여신이 변덕을 부려 오스만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 내후년엔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이 그리고 그다음 해엔 발칸 전쟁이 일어날 예정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슬슬 포커도 기술자로서 한 꺼풀 성장했으니 싱크로나이즈 기어를 개발해 보라고 해야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비행기엔 무장이랄 것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가장 효율적인 무기는 역시나 기관총인데 후방 사수에게 사격을 맡기자니 빠른 속도로 공중에서 곡예비행을 펼치는 비행기의 특성상 명중률이 떨어졌고, 전면에 기관총을 달면 당연히 프로펠러가 박살 날 게 뻔했으니까.
그렇다고 날개에 기관총을 달자니 이 시대 비행기의 날개는 캔버스로 만들어져 기관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
덕분에 세계대전 초기 파일럿들은 하늘에서 때아닌 권총 결투를 벌여야만 했고 영국은 이 와중에 어떻게든 기관총을 쏘겠다고 ‘기관총을 짧게 끊어 쏘면 프로펠러에 맞을 확률도 낮아지겠지?’라며 또다시 기행을 벌였다.
그리고 앤서니 포커가 1915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흔히 싱크로나이즈 기어라고 부르는 프로펠러 동조 장치였다.
다만 이에 대해선 포커가 갑자기 신이라도 내려왔는지 48시간 만에 싱크로나이즈 기어를 개발했다는 등, 아니면 프랑스 파일럿 롤랑 가로스의 기체에 장착되어있던 레몽 솔니에의 불완전한 싱크로나이즈 기어 장치를 입수하고 이를 분석했다는 등 여러 설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학계 정설은 어디까지나 독일군이 가로스의 장치를 입수하기 최소 몇 개월 전부터 이미 포커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싱크로나이즈 기어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것인 만큼 시간과 예산을 충분히 들이면 전쟁 전엔 동조 장치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년인 1910년에 독일의 아우구스트 오일러가 세계 최초로 싱크로나이즈 기술에 대한 특허를 내기도 하니 도움을 받아도 괜찮고.’
어쨌든 우리보단 늦긴 했어도 프랑스를 시작으로 다른 국가들도 군에 비행기를 도입하고 항공대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인 만큼 우리도 머지않아 찾아올 항공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점점 피부로도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네.’
정작 세상은 여전히 벨 에포크란 이름의 평화에 젖어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지금은 얼마 안 남은 이 평화를 즐기자.
지금 즐기지 않으면 당분간은 기회가 없을 테니까.
나는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 * *
“장관님! 쇤 장관님!”
“오, 안돼……!”
그러나 내 자그마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견진성사를 받은 바로 다음 날, 쇤 장관과 점심을 먹던 중 외무청 직원이 또 사색이 된 채 달려왔기 때문이다.
이젠 익숙해진 일이다.
“후우, 또 어디서 뭐가 터졌습니까? 발칸? 페르시아?”
쇤 장관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머리를 부여잡고 절망하고 있었기에 내가 대신 아직 한 입도 못 댄 슈바인스학세 조각을 접시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 먹기는 틀린 모양이다.
“헉……헉……! 둘 다 아닙니다. 극동, 극동에서 방금 급보가 전해졌습니다!”
“극동이요?”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우리의 점심 식사를 방해할 정도로 큰일이 일어났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것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솔직히 이렇게 난리를 칠 정도로 그다지 큰 사건도 아니었다.
혹시라도 내가 놓친 것이 없나 기억을 더듬는 사이, 숨을 고른 직원이 말했다.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예? 어디요?”
호프만 씨의 보고를 들은 나는 직원과 식당 벽면에 붙어 있던 달력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천천히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 중국에서 뭐가 일어났다고요?”
“혁명입니다! 중국 지방 곳곳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난 것도 모자라 혁명파들이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돌겠네, 진짜.”
내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진심을 내뱉고 말았다.
왜 그게 벌써 터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