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 계속되는 위기 (1)
“보스니아 다음엔 페르시아냐…….”
보스니아 위기가 끝나고 중국에서 선통제가 왕위에 오르며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1908년도 며칠 안 남았을 때, 페르시아에서 들려온 소식에 한숨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뒤에서 쇤 장관의 울화 섞인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은 기분은 내 착각일까?
“으아아아아!”
음, 아니구나.
어쨌든 페르시아 문제는 여러모로 꽤 골치 아픈 문제였다.
일단 현재 카자르 왕조의 통치 아래 있는 페르시아는 1905년에 시작된 페르시아 입헌 혁명(Persian Constitutional Revolution)으로 1906년에 현 페르시아는 의회 정치가 도입된 상태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입헌 정치가 시작되었음에도 카자르조 페르시아는 페르시아 역사상 최악의 왕조라는 이름값을 하려는 듯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는 왕족과 귀족들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서 작년인 1907년에 왕위에 오른 현 카자르조 페르시아의 군주, 모하마드 알리 샤가 대사고를 쳤다.
아랫것들이 설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모하마드 알리 샤는 페르시아를 혁명 이전, 다시 말해 전제정 시절로 되돌리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샤는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의회를 부숴 버리면 아랫것들도 조용해지지 않을까?’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모하메드 알리 샤는 이를 진짜로 저질렀다.
올해 6월 23일에 페르시아 의회인 마줄레스로 대포를 끌고 와 포탄을 퍼부은 뒤, 러시아가 자신을 돕기 위해 파견한 페르시아 카자크 여단을 동원하여 샤의 미친 짓에 당황한 입헌파 지도자들을 모조리 체포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마줄레스는 태어난 지 2년 만에 엉망진창으로 파괴된 것도 모자라 카자크들에게 약탈까지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고 의회에 모여 있던 입헌파 지도자들은 다수가 포격으로 사망하거나 샤에게 처형당했다.
모하메드 알리 샤는 아마도 자신의 궁전에서 이를 지켜보며 폭소를 터트렸겠지만, 세상사가 늘 그렇듯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페르시아인들이여, 일어나라! 폭군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자!”
의회를 대포로 박살 낸다는 무식한 짓에 이어 외국군대로 의회를 짓밟은 샤의 만행에 분노한 입헌파가 타브리즈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물론 이를 예측할 지능이 부족했던 모하메드 알리 샤는 당황했고 급히 타브리즈로 군대를 보내 반란군을 공격했지만, 샤의 군대는 무려 지금까지도 타브리즈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타브리즈 반란군이 진정한 근성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듯, 포위로 발생한 기근 속에서도 나뭇잎 이파리를 뜯어먹으면서까지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한다.
모하마드 알리 샤가 기어코 타브리즈를 함락시키겠다고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은 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오래전부터 페르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러시아 제국에게 있어 이번 기회는 페르시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늘릴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러나 이 시대에 페르시아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은 비단 러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이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꼭 끼어 있는 영국 또한 페르시아에 이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 역사에서야 영국은 영러협상으로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기에 러시아와 함께 모하마드 알리 샤를 지지하며 입헌파를 짓밟는 것을 응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세상에서 영러협상은 탄생하지도 않았고 영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대립 중이었단 점이다.
특히 페르시아는 오랫동안 두 제국의 그레이트 게임이 펼쳐졌던 지역.
그렇기에 러시아가 군대를 파견하여 페르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늘리는 것은 영국이 보기에 심히 좋지 않은 일이었다.
천하의 대영제국이 이걸 개입 안 하면 그건 대영제국이 아닌 무언가다.
덕분에 나는 보스니아 위기에 이어 유럽의 긴장도를 한층 더 높일 그레이트 게임 리턴즈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새해가 되자마자 베를린을 국빈 방문한 에드워드 7세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찾아오자 내 한숨은 더욱 무거워졌다.
* * *
“……그러니까 우리 독일 제국이 영국과 함께 페르시아 문제에 개입하길 원하신다고요?”
“그렇네.”
앞서 말했듯이 페르시아 입헌 혁명을 빌미로 러시아가 페르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늘리는 것을 영국이 결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오래전 독영협상 체결 때도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영국은 이미 페르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당장 세 차례에 걸친 아프가니스탄-영국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면 뻔할 뻔 자였다.
물론 에드워드 7세가 나한테 대놓고 영국과 독일이 손잡고 페르시아에 찝쩍거리려는 러시아를 같이 막자고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왜 우리 동맹국들은 가만히 있는 우리 독일을 전쟁의 수렁에 빠트리지 못해 안달일까?
이쯤 되면 독일 제국의 친구 운을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영협상의 조항에 따르면 독일 제국은 영국이 유사시 페르시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지, 동참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만.”
“아, 크림전쟁 때처럼 독일과 영국이 페르시아에서 러시아와 직접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닐세. 저쪽도 우리 영국과 직접적인 군사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건 원치 않을 테고.”
하긴 러시아는 아마 망명 중인 모하메드 알리 샤를 지원하여 페르시아 입헌정부를 무너트리려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되찾은 모하메드 알리 샤를 꼭두각시가 만든 페르시아를 러시아의 괴뢰국으로 만들거나 카자흐 칸국이나 부하라 칸국 같은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로 흡수하려 들 게 뻔했다.
‘영국이 장님이 아닌 이상 그걸 지켜볼 리가 없지.’
페르시아에는 영국에 있어서 높은 가치를 지닌 중요한 국가다.
그렇기에 영국은 언제나 그랬든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이 경우 영국이 쓸 수는 뻔했다.
“영국은 현 페르시아 입헌 정부를 지원해서 대리전을 할 생각이군요. 우리 독일의 도움을 바란다는 것은 우리 독일이 입헌 정부에 무기를 지원해 주는 것을 바라는 것일 테고요.”
“역시 자넨 이해가 빨라서 좋아.”
사실 내가 빨리 이해했다기보다는 우리 혐길리 친구들이 할 만한 짓이 그것 말고 더 있을까에 가까웠지만.
“저 또한 러시아가 이 이상 페르시아에 영향력을 퍼트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굳이 이해관계도 없는 페르시아 문제에 개입해서 얻을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클 것이란 것도 부정할 수 없군요.”
“무얼 원하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에드워드 7세가 얼른 조건을 말해 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시다시피 페르시아엔 석유가 있지요.”
그것도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탐사와 개발이 시작된 중동 석유와 달리 이미 1908년에 영국인 사업가 윌리엄 녹스 다시(William Knox D'Arcy)에 의해 유전이 발견된 상태였다.
그리고 영국은 올해 영국 최대의 정유기업인 BP의 전신인 앵글로 페르시안 정유회사(Anglo-Persian Oil Company)를 세워 페르시아 석유를 돈도 안 내고 쪽쪽 빨아먹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요긴하게 써먹는다.
“남작, 설마 고작 무기 지원의 대가로 페르시아 석유를 독일에게 달라는 것은 아닐 거라 믿네.”
“당연히 아니죠.”
내가 무슨 날강도도 아니고.
“그냥 저희도 한자리 끼워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어차피 페르시아 석유 채취를 위해 정유회사를 설립할 생각 아니십니까? 저희가 투자할 테니 지분을 조금만 떼 주시죠.”
“흐음……. 그 정도면 괜찮겠지. 우리에게도 나쁘진 않은 이야기고.”
원래 좋은 건 친구끼리 나눠 먹는 것이 오랜 전통 아니겠나?
마침 중동 석유도 탐사와 개발이 한창 중인데 이참에 페르시아 석유에도 빨대나 한번 꽂아 보자.
‘다만 이러면 페르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장 중 한 곳이 될 수도 있겠네.’
사실 원 역사에서도 페르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내에서 오스만 제국군과 영국&러시아군이 맞붙은 적이 있었던 만큼 가능성은 상당히 컸다.
여기선 오스만 제국이 빠진 채 러시아+모하메드 알리 샤 VS 페르시아 입헌 정부+영국의 구도가 되겠지만.
“그럼 그렇게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지……윽?!”
“폐하?!”
에드워드 7세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크게 휘청였다.
만약 내가 급히 몸을 잡아 주지 않았다면 넘어져서 크게 다쳤을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잠시 현기증이 온 것뿐이야.”
“나이도 많으신데 조심하셔야죠.”
“괜찮네. 괜찮아.”
에드워드 7세가 그리 말했지만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내년 봄에 사망하니까.
“그래도 몸 관리에 신경 써 주세요. 일도 좀 쉬엄쉬엄하시고요.”
“하하, 조지와 똑같은 말을 하는군. 내 몸은 내가 어련히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게.”
에드워드 7세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유쾌한 얼굴로 대답했지만, 그다지 귀담아듣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의 얼굴이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 * *
영국의 행동은 빨랐다.
영국은 이스파한의 영국 영사관을 통해 페르시아 입헌파 지도자들에게 그들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고 열강의 지원이 너무나도 고팠던 입헌파는 환호했다.
곧 1909년 2월, 이스파한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입헌파의 지도자이자 원 역사에서 모하메드 알리 샤을 내쫓고 페르시아 총리가 되는 장본인인 나자프 콜리 칸 바크티아리(Najaf-Qoli Khan Bakhtiari)가 이스파한을 성공적으로 장악했다.
그리고 입헌파는 이스파한을 거점으로 영국의 지원 물자와 독일제 무기에 힘입어 남부를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페르시아 남부는 영국의 영향력이 짙은 지역이었고 또 페르시아만과 인접해 있어 해운을 통한 영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입헌파로서는 반드시 남부를 차지해야만 했다.
물론 그들로서도 타브리즈에 갇혀 있는 동지들을 구하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타브리즈는 이스파한에서 멀었고 또한 러시아와 너무 가까웠다.
무엇보다 영국이 개입한 지금, 모하메드 알리 샤와 러시아는 하루라도 빨리 타브리즈를 함락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에 입헌파 군대가 타브리즈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든 일이 끝나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결국 입헌파는 씁쓸한 얼굴로 타브리즈를 포기했고 상황은 그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영국이 페르시아에 개입하자 모하메드 알리 샤는 얼굴을 사색이 되어 러시아에 빨리 와 달라고 다급하게 요청했다.
더 많은 지원을 달라고 애걸한 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 제국의 총리 스톨리핀은 이 이상 페르시아에 깊숙이 관여하길 원치 않았다.
이미 보스니아 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 페르시아에서의 그레이트 게임은 여기에 기름을 부으면 부었지 결코 러시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유럽에 점점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커다란 전쟁이 말이다.
그리고 스톨리핀은 그 전쟁이 러시아 제국에 치명상을 입히리라 생각했기에 최대한 전쟁이 일어날 일들을 피하고자 했다.
“폐하, 이 문제는 신중히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난 보스니아 위기로 발칸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니 여기선 영국과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
러시아 제국의 총리인 스톨리핀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정작 니콜라이 2세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때 알렉산드라 황후가 보낸 라스푸틴이 차르의 귀에 속삭였다.
“이대로 페르시아에 혁명을 외치는 폭도들이 날뛰도록 놔둔다면 러시아 제국과 황제 폐하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페르시아를 본보기로 삼으시어 국내의 불순분자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니콜라이 2세는 그제야 흡족하게 웃으며 가엾은 이교도 군주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결정을 내렸다.
스톨리핀은 두통이 치밀어 오르는 듯 맨들거리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니콜라이 2세 옆에 서 있는 저 망할 변태 괴승을 무슨 수를 써서든지 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쫓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