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 오월동주
둥! 둥! 둥! 둥!
1908년 12월 2일, 자금성 태화전에서 왠지 모르게 처량하게 들려오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순친왕은 도열해 있는 문무백관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청의 새로운 황제가 황위에 오르는 날.
그리고 그 새로운 황제는 다름 아닌 순친왕 품에 안겨 있는 순친왕의 아들이자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아이신기오로 푸이(愛新覺羅溥儀)였다.
“으아앙~”
“이런, 울지 말아라. 울지 말아. 곧 끝난다. 곧 끝나.”
커다란 북소리와 낯선 사람들의 시선에 겁을 먹었는지 어린 푸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순친왕이 그리 말하며 자신의 품에 안긴 어린 아들을 황급히 어르고 달랬다.
그러나 곧 끝난다는 말이 마치 청이 곧 끝난다는 말처럼 들렸기에 청의 대소신료들은 불안한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그만큼 새 황제가 즉위했음에도 청 내부는 무언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커녕 저 하늘에 낀 먹구름처럼 뒤숭숭했다.
지난달 11월 14일에 이복형 광서제가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도 모자라 그다음 날에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청을 지탱하던 마지막 기둥이었던 서태후마저 사망했다.
이런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3살짜리 어린아이가 황위에 올랐으니 생각이 있는 자라면 청의 운명은 사실상 기로 앞에 놓인 것이라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황제의 즉위식인지 장례식인지 모를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순친왕은 침음성을 흘리지 않았다.
이미 몇 년 전, 수라의 길을 걷기로 한 순친왕이다.
고작 이 정도 일로 절망하기엔 그가 겪은 일이 일이었고 치욕이 치욕이었다.
물론 형님의 죽음은 안타깝고 소중한 아들이 망해 가는 왕조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지만 덕분에 자신은 어린 푸이를 대신하며 청을 다스릴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혹여라도 권력욕 강한 서태후의 눈 밖에 날까, 권력에 관심이 없는 듯 숨죽이며 지내 왔던 나날들이 드디어 결실을 본 것이다.
‘드디어 청이 달라질 날이 왔다!’
그렇기에 오히려 순친왕은 결의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젊은이의 치기라고 해도 좋았다.
자신은 반드시 청을 부흥시킬 것이다.
위대한 선조들이 일궈 온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독일을 비롯한 열강들에 그동안의 수모를 갚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품속에 안겨 있는 푸이를 위해서.
‘물론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순친왕이 섭정으로 권력을 잡았다 한들 당장 개혁을 진행하기엔 현재 청의 상황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부정부패는 이미 일상이고 백성들의 마음은 청 조정을 떠난 지 오래였으며 지방 각지에서는 새 시대의 주인을 꿈꾸는 군벌들의 군웅할거가 일어났고 서구 열강들은 상전 노릇을 하는 것도 모자라 청을 지갑 취급하며 삥 뜯기에 바빴다.
옛날이라면 몰라도 황제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인 지금 순친왕에겐 그 모든 것을 물리치고 개혁을 진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실질적인 힘이란 무력, 즉 군대였다.
자고로 강력한 군대는 곧 강력한 권력으로 이어지는 법.
이미 오랜 중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했고 자신에게 수모를 안겨 준 저 독일 제국 또한 철과 피로서 오지리와 불란서를 꺾고 일개 왕국에서 구주의 패자로 우뚝 섰다.
부국강병 중 부국은 당장 힘들더라도 강병은 이루어야 아편전쟁이나 의화단의 난 같은 치욕을 다시는 겪지 않을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청은 예전에 변법자강운동을 통해 개혁을 한번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서태후와 보수파의 반발로 인해 개혁을 주도하던 이복형 광서제가 자금성에 유폐되면서 100일 천하로 끝나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때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청이 바뀔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렸던 서태후는 며칠 전 무덤으로 들어간 상태.
덕분에 적어도 지금 황실 내에서 섭정인 순친왕을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실 내에선 말이다.
‘결국, 위안스카이 그자가 문제로군.’
현재 청의 군대는 사실상 북양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그 북양군의 주인은 현 총리교섭통상대신인 위안스카이(袁世凱)였다.
하지만 순친왕은 위안스카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이려고 했을 정도로 싫어했다.
그자는 권력만을 탐하는 간신배이자 변법자강운동 당시 이복형 광서제를 배신하고 서태후 편에 붙은 전적이 있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작자였다.
오죽하면 청 황실 내에서도 위안스카이를 망탁조의에 비교하며 경계하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다.
그렇기에 위안스카이를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는 이상, 순친왕은 군대를 장악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위안스카이에게 압력을 가해 낙향을 시킨 뒤 북양군을 장악해 볼까도 싶었지만, 위안스카이의 부하들이 과연 자신을 따를까?
순친왕은 고개를 저었다.
위안스카이를 내쫓더라도 북양군벌은 여전히 자신의 말이 아닌 제 주인의 말만 들을 것이다.
그렇다고 위안스카이를 죽이거나 북양군을 해체하려고 하면 그들이 이 자금성에 무기를 들고 들이닥칠 것은 뻔하디뻔한 일.
“치우지 못한다면 손을 잡을 수밖에.”
“아빠빠?”
푸이가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순친왕의 눈이 차갑게 불타올랐다.
옛사람들이 말하길 오월동주(吳越同舟)라.
순친왕은 더 큰 대의를 위해 사적인 원한은 잠시 접어 두기로 마음먹었다.
* * *
“전하, 그동안 강령하셨나이까?”
“그렇소. 그대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오.”
위안스카이는 웃는 얼굴로 그리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면서도 순친왕이 갑자기 기별도 없이 찾아오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순친왕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은 이미 저잣거리의 코흘리개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처음엔 아들이 황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을 내치려고 이러나 싶었지만, 순친왕은 어째서인지 자신을 살가운 태도로 대했다.
남이 보면 순친왕의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순친왕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지극히 정상이었기에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을 참아 가며 위안스카이와 마주 보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군.’
물론 이러한 순친왕의 속내를 눈치채질 못할 위안스카이가 아니었지만.
“통상대신, 그대는 청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새로운 황제께서 황위에 오르셨으니 혼란이 가라앉고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순친왕의 뜬금없는 질문에 위안스카이는 나중에 트집이라도 잡힐까 봐 그리 판에 박힌 대답을 내놨다.
“흠, 의외로군. 다른 이들은 갓난아기가 황제가 되었다며 청이 드디어 망할 때가 되었다고 떠들고 다니던데 말이오.”
그러나 다음에 나온 순친왕의 말에 위안스카이는 순간 마시던 차를 코로 내뿜을 뻔했다.
“푸흙! 전, 전하, 그 무슨……!”
“아아, 괜찮소. 이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순친왕은 자신이 만난 가장 뻔뻔한 사람이었던 한스를 떠올리며 그리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뻔뻔하게 구는 것도 어디까지나 상황과 사람을 보고해야 하는 법이다.
오히려 이러한 순친왕의 태도는 오히려 위안스카이의 경계심만 높였다.
‘설마 날 역적으로 몰 생각인가?’
자신과 순친왕의 지난 관계를 생각해 보면 도저히 아닐 거라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지금처럼 호의적으로 나올 이유가 없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위안스카이가 순친왕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쓰려는 사이, 순친왕의 차를 마시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청의 신하 된 몸으로서, 사사로이는 황제의 아비 되는 몸으로서 이를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소?”
“크흠, 흠.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청을 크게 바꿀 생각이오. 그리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통상대신의 도움을 받고 싶소.”
“제 도움을 말입니까?”
순친왕의 말에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은 위안스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내심 코웃음을 쳤다.
갑자기 왜 이렇게 친한 척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꿍꿍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순친왕은 자신의 힘을, 정확히 말하면 북양군벌의 무력을 원하고 있다.
그 ‘개혁’이라는 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인제 와서 변법자강이라도 다시 할 생각인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물론 그 변법자강을 배신으로 끝장낸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위안스카이로선 굳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기에 위안스카이는 죽은 이복형을 따라 하려는 순친왕을 비웃으며 그 어떤 이득도 없는 순친왕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죄송하지만 신의 힘이 미력하여 전하께 과연 도움이 될지…….”
“대신 나를 도와준다면 그대의 딸 중 하나를 내 며느리, 그러니까 황후로 삼겠소.”
그러나 그의 입은 이어진 순친왕의 말에 멈췄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 순친왕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제 딸을 황후로 삼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순친왕의 대답에 위안스카이는 고민에 빠졌다.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영웅호색이라고 위안스카이 또한 수많은 처첩을 거느렸고 낳은 자식만 32명에 달했으니까.
물론 위안스카이 자체는 영웅보다는 아무리 좋게 쳐줘도 간웅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위안스카이에겐 15명의 딸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을 며느리이자 황제의 황후로 삼겠다는 순친왕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이건 자신을 새 황제의 외척으로 삼는 동시에 사실상 자신을 청의 이인자로 인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황제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실제 혼인을 올리려면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한단 말이지.’
그 사이 순친왕이 꿀만 빨고 자신을 내칠지 누가 아는가?
위안스카이의 의심은 합당했고 순친왕 또한 이를 알았기에 바로 말을 덧붙였다.
“원한다면 그대의 딸을 황후로 삼겠다고 공표하겠소. 아예 이참에 약혼하는 것도 괜찮겠지.”
“허허, 전하께서 소신과 소신의 딸을 이리 좋게 평가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순친왕의 약속에 위안스카이는 가식을 벗어던진 채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무려 황제의 장인이다.
아무리 황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들 아직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자리였고 권력을 탐하는 승냥이 같은 인물이었던 위안스카이는 군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당분간은 순친왕에게 어울려 줘야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딸이 황제와 식만 올리면 그것도 끝이다.
위안스카이는 아직 식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순친왕을 치울 생각부터 했다.
‘지금 실컷 웃어 둬라.’
그리고 순친왕은 순친왕대로 위안스카이를 향해 조소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순친왕 또한 처음부터 위안스카이를 믿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시간을 들여 북양군을 회유, 장악한 뒤 위안스카이를 치워 버리고 푸이와 결혼 할 위안스카이의 딸 또한 죽이든 유폐하든지 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혈통에 저 한간 놈의 피를 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잘 부탁하오. 사돈.”
“하하하하, 물론입니다. 사돈!”
순친왕과 위안스카이는 각자의 꿍꿍이를 숨긴 채 손을 맞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맹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그야말로 하늘에 달린 일이었다.
* * *
“순친왕이 위안스카이의 딸을 황후로 삼았다고?”
1908년 말, 봉기의 실패로 잠시 싱가포르에 몸을 피하고 있던 중국의 혁명가이자 훗날 중화민국의 국부가 되는 쑨원(孫文)은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물론 새 황제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직 약혼 발표만 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그것이었다.
“결국, 그도 권력을 탐하는가.”
독일에서 순친왕이 당한 굴욕에 한때 그에게 동정심을 품었던 쑨원이다.
물론 그렇다고 청과 무능한 만주족 황실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순친왕이 카이저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 이미 부청멸양이란 헛소리는 열강들의 총칼에 짓밟힌 지 오래였고 대다수 중국인은 쑨원처럼 순친왕에 개인에게 동정심을 품었을망정 딱히 그 일로 청나라 조정에 호의가 생기거나 하진 않았다.
청은 여전히 한족들에게 있어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나라였고 그동안 청이 당한 굴욕이 굴욕이었으니까.
순친왕이 삼궤구고두례를 한 것은 그저 그 많고 많은 굴욕 중에 한 줄 추가된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쑨원은 청나라 황족 중에선 그나마 괜찮게 생각했던 순친왕에 대한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역시 청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는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에 입각한 민주 정부가 세워져야 한다.
그것이 쑨원의 오랜 꿈이었고 유일한 야망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레닌이 훗날 평한 것처럼 너무나도 순진한 혁명가였던 쑨원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현재 쑨원 청을 무너트리기 위해 광둥성 일대에서 끊임없이 봉기를 일으키는 중이었지만 언제나 실패만을 거듭했다.
게다가 작년 9월에 중국동맹회 내부의 반발을 각오하고 청의 압력으로 일본에서 추방당할 때 받은 활동금 대부분을 쏟아부으며 일으킨 광둥성 봉기도 17일 만에 탄약 부족으로 인해 어이없이 실패한 바람에 쑨원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노력해 봐야지.”
설사 모든 동지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다 한들 자신은 계속해서 싸워 나갈 것이다.
좌절은 사나이를 강하게 만든다고 다시금 그리 다짐한 쑨원은 손에 든 신문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샤의 폭거에 맞서 봉기를 일으킨 페르시아 입헌파. 모하마드 알리 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에 지원을 요청하다!]
그리고 바람에 흩날려 드러난 신문 기사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또 다른 열강 간의 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