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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127화 (127/193)

127화 : 보스니아 위기 (3)

그로부터 며칠 후.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이탈리아에 양보하는 것을 거부했다.

심지어 그를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땐 짜증 나게 구는 것은 비스마르크와 다를 바가 없다며 알현을 거부하기까지 하더라.

덕분에 중간에 끼인 불쌍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만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그다지 기대하지도 않긴 했지만, 그래도 짜증 나네.’

나한테 부모님 안부를 물은 것도 것이지만 솔직히 내가 보헤미아 헤르체고비나를 합병을 막은 것도 아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딱히 가혹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보헤미아 위기를 무난하고 조속하게 해결하려는 것은 물론 삼국동맹의 리더로서 동맹의 분열을 막기 위해 다른 동맹국에 약간 양보할 것을 요구한 것뿐이다.

물론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끝끝내 들어주지 않았지만.

“정말이지 할 말이 없군. 숙부님은 왜 저리 고집만 피우시는지.”

“대공님 탓이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빈말이라도 고맙네. 나로선 남작 자네에게 합스부르크의 추태를 보인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야.”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나를 배웅 나온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프란츠 요제프 대신 다시 한번 사과했다.

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사람이다.

사촌 형이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외아들이었던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한 것 때문에 원치도 않은 황위 계승자가 돼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으니.

‘차라리 프란츠 요제프가 일찍 죽고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황제에 빨리 올랐으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운명도 다르게 흘러갔을 텐데.’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숙부와 달리 오스트리아의 기득권까지 양보하면서 제국의 갈등을 평화롭게 매듭지으려 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피투성이가 된 채 짓밟혔다.

게다가 그의 자식들은 부모의 귀천상혼 때문에 합스부르크 황실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은 것을 넘어 생활비조차 없어서 대공의 계모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인 중 가장 높았던 마리아 테레사 여대공이 나서고 나서야 연금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대공과 대공의 가족들에게 닥친 지나친 운명의 장난이 너무나도 잔혹하게 느껴진다.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 * *

베를린으로 돌아온 후.

나는 왜 자신이 외무장관이 되니까 사고가 끊이질 않냐고 한탄하는 쇤 장관에게 베를린 조약을 수정하기 위한 외교 회담을 소집해 달라 부탁했다.

목적을 이루지 못했지만, 어쨌든 유럽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보스니아 위기를 빨리 처리하긴 해야 하니까.

“일단 불가리아 공국의 독립 건은 인정합시다. 다들 이의 없으시죠?”

내 말에 영국 외무장관이자 얼 그레이로 유명한 찰스 그레이와 같은 가문 출신인 에드워드 그레이(Edward Grey)를 필두로 이 자리에 모인 외교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에 비하면 불가리아 독립 따위는 솔직히 열강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다만 지키지도 못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보다 불가리아 공국의 독립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오스만 외교관들은 열강들의 결정에 불만으로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물론 불가리아는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의 패배로 명목상으로만 오스만의 속국이었지 실질적으론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래도 우리 오스만 친구들은 아직도 불가리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이 때문에 현재 오스만 제국 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상품과 상점에 대한 보이콧이 일어나는 중이라던가.’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불매 운동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는 1억 크로넨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보아야만 했다.

내가 괜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이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있어 장점보다 단점이 컸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대신 오스만 제국에겐 차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보상금을 지급할 것입니다.”

돈을 준다는 말에 내내 먹구름이었던 오스만 외교관들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보스니아 합병의 대가란 명분으로 220만 리라를 지불하기로 이미 나와 사전에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이는 이탈리아 건과 달리 순조롭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오-헝 정부도 오스만의 불매운동을 하루라도 빨리 잠재우지 않으면 무척이나 곤란했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리아의 독립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오스만으로서도 이 이상 강하게 나오진 못할 것이다.

오스만 제국은 청년 튀르크당 혁명과 이에 맞선 보수파의 반혁명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내부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니까.

불만스러워도 지금으로선 보상금 받고 물러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최선이었다.

“그러면 본래 1878년 베를린 회의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오스만 제국의 명목상 영토로 남는 대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관리하도록 하는 조항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쇤 장관의 말에 각국의 대표들이 웅성거리며 자신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영국의 에드워드 그레이 외무장관이었다.

“영국은 베를린 조약을 수정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합병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미 합병에 찬성하기로 사전에 나와 말을 맞춘 그는 바로 보스니아 합병에 동의했다.

영국으로선 직접적인 동맹은 아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알아서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깎아 준다는데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우리 이탈리아 왕국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이탈리아 대표단이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분명 보스니아 합병을 찬성하는 대신 오스트리아로부터 미수복영토를 받아 낼 생각에 싱글벙글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근데 미안하다. 얘들아.

나도 노력해 봤는데 프란츠 요제프가 너희들에게 양보하기 싫대.

물론 너희는 내 고생도 모른 채 화만 내겠지만!

‘에휴, 결국 이번 일로 이탈리아는 삼국동맹에 정나미가 떨어지겠지.’

우리가 다른 영토를 약속한다고 해도 미수복영토에 대한 이탈리아의 집착과 미련은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결국엔 높은 확률로 이미 비밀 조약을 맺은바 있는 프랑스 쪽으로 마음이 기울 게 뻔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이탈리아의 주적이라면 프랑스는 사보이를 뜯어 가긴 했어도 이러나저러나 리소르지멘토를 도와준 이탈리아의 은인이었으니까.

물론 이탈리아의 삼국동맹 이탈은 예상 범위 내였긴 했지만 처음 겪어 본 실패가 그저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잠깐, 잠깐만요.”

영국과 이탈리아가 보스니아 합병에 찬성하자 프랑스 대표단이 수군대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이, 러시아 외무장관인 알렉산드르 이즈볼스키가 무언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듯 손을 들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우리 러시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을 인정하는 대신 베를린 조약의 해협 조항을 수정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건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뭐라고요?”

이즈볼스키 외무장관의 말에 여유로운 얼굴로 서 있던 에드워드 그레이 외무장관의 얼굴을 와락 구겨졌다.

이즈볼스키에게 해협 통행을 약속하며 사기를 친 에렌탈이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린 것은 덤이었다.

에드워드 그레이가 말했다.

“절대 불가합니다. 당장 모로코 위기가 끝난 지 5년도 안 지났는데 보스포루스 해협은 무슨 놈의 보스포루스 해협입니까?”

“우리 이탈리아도 영국에 동의합니다.”

영국은 물론 지중해에 러시아란 경쟁자가 느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탈리아가 강한 어조로 반대를 표명하자 이즈볼스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그러고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져 묻는듯한 눈초리로 보스니아 합병을 인정하는 대신 해협 통행권 주겠다고 약속한 장본인인 에렌탈에게 시선을 향했다.

“……크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군요. 이즈볼스키 장관에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뭐, 뭐요?!”

에렌탈은 이즈볼스키의 말에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하게 입을 벌렸다.

“날 속였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에렌탈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흉신 악귀처럼 일그러트리며 에렌탈의 멱살을 잡았다.

“이 더러운 유대인 놈이 감히 날 속였어!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이즈볼스키 외무장관, 진정하세요!”

폭발한 이즈볼스키를 에렌탈에게서 떼어 놓기 위해 나를 포함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달려들었지만 이즈볼스키는 제대로 분노했는지 에렌탈을 죽여 버리겠다며 한동안 계속 날뛰었다.

사실 이즈볼스키의 분노는 합당하다.

에렌탈이 사기를 친 것은 맞았으니까.

그러나 그에겐 애석하게도 이 바닥에선 원래 속은 놈이 잘못인 법이다.

“이 회의는 무효요! 우리 러시아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추잡한 협잡질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오!!”

콰앙!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이즈볼스키는 핏발 선 눈으로 에렌탈을 노려보며 그리 소리를 지르곤 곧장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모두가 폭풍 같은 전개에 당황하고 있을 때 에드워드 그레이 외무장관이 나에게 다가왔다.

“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군요.”

“죄송합니다. 그레이 경. 우리 못난 동맹국 때문에 몹쓸 꼴을 보여드렸군요.”

“괜찮습니다. 그럭저럭 재밌는 구경이었거든요. 그나저나 러시아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대로 놔두었다간 시끄러워질 텐데요.”

“그 부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알아서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죠.”

그리고 내 말대로 회담이 파투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한 문서가 유출되었다.

그 문서의 내용이란 다름 아닌 지난 십수 년간 러시아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예니파자르 산자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자유로운 재량권을 인정했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자료.

“이즈볼스키 장관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러시아 제국은 그동안 우리 세르비아를 기만해 왔던 것입니까?!”

“그, 그게…….”

덕분에 사기를 당했다며 방방 날뛰던 러시아 제국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유출된 문서 건으로 러시아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 큰 형님만 믿고 있던 세르비아와의 관계에 크나큰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러시아 제국은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지금이야말로 기회요! 우리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당장 세르비아로 진격해야 하오!”

그리고 이 와중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장군참모총장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는 예방전쟁 논리를 펼치며 이참에 세르비아까지 합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첸도르프 장군. 지금 그 말 제정신으로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는 희대의 사기를 치긴 했어도 외무장관으로선 유능했던 에렌탈 외무장관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첸도르프의 주장은 전략적으론 옳을 순 있어도 정치적으론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합병으로 인해 오-헝 내부의 민족주의 운동이 더욱 거세진 것도 모자라 엄청난 정치적 불화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무슨 놈의 전쟁은 전쟁이란 말인가?

제1차 세계대전을 6년 빨리 일으킬 생각이 없던 우리 독일로서 반대할 수밖에 없는 안건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반응과 달리 러시아 제국은 자칫 잘못하면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를 공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믿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대로 전쟁이 벌어지면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들이란 생각에 두려움에 빠졌다.

결국, 이즈볼스키 외무장관은 축 처진 모습으로 다시 회담장으로 돌아왔고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 채 세르비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을 인정했다.

프랑스 또한 발칸반도 문제로 일을 키우고 싶진 않은 건지 러시아가 동의하자 따라서 합병에 찬성했고.

그렇게 1098년 후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보스니아 위기가 얼추 마무리되었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녹초가 되어 방안에 널브러졌다.

“한스, 많이 피곤해 보이네. 괜찮아?”

“이번 일은 머리 아픈 일이 많았거든.”

“그래도 잘 끝났으니 다행이네.”

루이제가 수고했다는 듯 무릎베개를 해 주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프란츠 요제프와 뜬금없이 튀어나온 히틀러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이래서 다들 연애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한스,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중국 황제가 죽었대. 그리고 새롭게 황제가 된 사람이 예전에 아빠한테 절했던 칭 황족의 아들인가 봐.”

“순친왕 말이구나.”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나는 추억에 잠기며 그때 일을 떠올렸다.

그때 이후로 순친왕의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그는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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