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쇼 미 더 판처
“미치겠네.”
그것이 내가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프로토타입이라고 가져온 ‘전차’들을 마주한 첫 감상이었다.
슐리펜과 루덴도르프도 설마하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줄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지 쓴웃음을 감추지 못하더라.
그 정도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전차들은 모습도, 성능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아……. 난 분명 전차를 만들어 오라고 한 것뿐인데 왜 다들 동심으로 돌아가 제멋대로 상상력과 창의력의 나래를 펼친 것일까?
내가 설명회에서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던 것들은 대체 뭐로 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경합에서 이기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것까지는 내가 넒은 아량으로 이해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과욕을 부려도 너무 부렸지 않은가.
“다음은 오펠사의 차례군요.”
루덴도르프가 말하기 무섭게 오펠 직원들이 긴장된 얼굴로 평가 시험을 위해 준비한 평가장으로 향했다.
프로토타입 전차들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평가 항목은 총 4가지.
전차의 주행 능력, 사격 능력, 장갑, 그리고 험지 돌파 능력이었다.
모두 전차가 갖춰야 할 중요한 능력이었던 만큼 이 네 가지 기준을 가장 만족스럽게 충족시킨 전차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합격 목걸이를 그 손에 쥘 수 있으리라.
아, 물론 전차에 손은 없지만.
쿠르르르릉─
곧 지축이 울리는 전차 특유의 소리와 함께 차고에서 오펠사의 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없다는 명언을 곱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들은 백화점 만들지 말라니까 다주포 전차를 만들어 왔네.’
그 유연한 발상력에 절로 욕이 나올 것만 같다.
내가 M3 Lee나 B1 bis 같은 거였다면 말을 안 한다.
하지만 오펠은 독일 제국 버전 P.1000 라테를 만들고 싶었던지 무려 쌍주포 전차를 가져왔다.
그것만 해도 절로 두통이 일 지경인데 2배로 늘어난 주포 때문에 차체가 뭔가 불안해 보이는 것이 과연 저게 잘 굴러가기나 할지 의문이다.
“어? 어어어?”
“아이고야…….”
쿠르르릉──덜컹!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오펠 전차는 주행 평가 도중 달팽이가 땅을 기어가는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가다 엔진에 이상이라도 났는지 중간에 퍼져 버렸다.
“쯧, 또 퍼졌군.”
“아무래도 오펠은 우리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나를 비롯한 심사위원 아니, 프로젝트 책임자들의 박한 평가에 로망을 쫓았던 오펠 경영진들과 기술자들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고개를 떨구었다.
에휴, 너흰 가서 그냥 트럭이나 만들어라.
“점점 이 프로젝트에 의심이 가기 시작하는군.”
연이은 실패작들의 등장에 크게 실망한 탓일까?
아이넴 장관이 투덜거리며 나를 째려보았다.
나로선 억울했지만 말이다.
‘내가 설마 이 정도 일줄 알았냐고!’
어떤 전차는 주행은 그럭저럭 잘했는데 무언가 설계가 잘못되었는지 사격하다가 그대로 전차가 퍼져 버렸고 또 어떤 전차는 미리 준비해 둔 참호를 제대로 넘지 못하고 그대로 참호 안에 고꾸라져 버리더라.
그나마 다들 장갑만큼은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기관총 사격에도 끄떡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다른 것들이 너무 엉망진창이라 실망감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음은 벤츠의 차례입니다.”
어두워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루덴도르프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 벤츠라면 뭐가 다르긴 하겠지.
나는 벤츠가 제발 제대로 된 전차를 만들어 주길 바라며 평가장으로 향하는 벤츠사 기술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중엔 전 다임러 기술이사 빌헬름 마이바흐도 있었다.
* * *
“생각보다 타사 전차들이 엉망진창이군요.”
“다들 경합에서 이기겠단 생각에 욕심을 부린 거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잘되었습니다. 그들의 실패 덕에 우리 전차가 더욱 돋보일 테니까요.”
빌헬름 마이바흐는 자신감에 가득 찬 눈으로 벤츠사의 전차를 바라보았다.
다임러를 나오기 전 마이바흐는 본래 벤츠와 협력해 전차를 만들고자 했다.
독일 제국 내에서, 아니 세계를 기준으로 해도 벤츠의 기술력은 이미 그 명성이 드높았고 여기에 엔진 기술만큼은 벤츠를 앞서는 다임러가 벤츠와 협력해서 전차를 개발한다면 경합 우승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임러 경연진은 마이바흐의 제안을 뭉개 버린 것도 모자라 논의 없이 멋대로 경쟁사인 벤츠와 협력하려 했다며 트집을 잡아 그에게 제 발로 다임러를 떠나라며 압박을 가했다.
15살의 고아였던 마이바흐를 거둬 준 은인이자 독일 내연기관의 선구자, 오토바이의 아버지, 그리고 다임러의 설립자였던 고틀리프 다임러 사후 다임러 경영진과 마이바흐의 관계는 끊임없이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이바흐가 라이벌 회사인 벤츠와 협력하려고 했던 건은 다임러 경영진에게 있어 눈엣가시였던 마이바흐를 회사에서 내칠 좋은 기회였고 결국 마이바흐는 일평생 헌신해 왔던 다임러를 떠나야 했다.
그 후 마이바흐는 원 역사처럼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자 했지만, 그 전에 다임러 경영진에게 복수하지 않고서는 열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마이바흐는 다임러 경영진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고틀리프 다임러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카를 벤츠에게 접촉하여 벤츠사의 전차 개발에 참여했다.
벤츠사로선 두 팔 벌리고 환영할 일이었다.
마이바흐는 메르세데스 시리즈를 탄생시킨 독일에서 가장 뛰어난 자동차 기술자 중 한 명이자 그 자존심 높은 프랑스인들에게 ‘설계의 왕’이라 찬사를 받은 자동차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
그런 그가 돕고 싶다며 제 발로 찾아왔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마이바흐가 벤츠사에 붙었단 이야기를 들은 다임러 경영진 또한 절대 질 수 없다며 전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결과를 낳았지만.
하지만 마이바흐는 다임러 뿐만 아니라 누가 상대든 자신이 있었다.
마이바흐는 설명회 당시 한스의 이야기를 가장 열심히 들었던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프로젝트 책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괜한 욕심은 필요 없다.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안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완성되면 성능은 저절로 따라오는 법이다.
쿠르르르릉──!
“어, 어어?”
“저 전차 왜 이리 빨라?!”
평가가 시작되고 벤츠 전차의 엔진이 달아오르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한스를 비롯한 프로젝트 책임자들이 당황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벤츠 전차는 사람이 걷는 것보다 느린 것이 태반이었던 타사 전차들보다 월등히 빨랐다.
그 속도는 대충 어림잡아도 10km.
이는 최고 속력이 시속 7km였던 르노 FT-17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마이바흐가 직접 설계한 엔진이었다.
설계의 왕이란 별명답게 자동차 설계에 일가견이 있는 마이바흐지만 사실 그의 진정한 전문 분야는 내연기관, 즉 자동차 엔진이었다.
그는 고틀리프 다임러와 함께 최초의 가솔린 엔진을 개발한 당대 최고의 엔진 기술자였고 전차라는 육중한 강철의 괴물이 날뛰기 위해선 기존의 자동차 엔진보다 더 강력한 엔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심혈을 기울여 전차만을 위한 새로운 엔진을 개발했고 강력한 심장을 얻은 벤츠 전차는 빠른 속도로(어디까지나 이 시대 기준으로) 평가장을 질주했다.
심지어 한스조차 이게 말이 되냐고 말하는 것만 같은 멍청한 얼굴로 벤츠 전차의 질주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고 아이넴과 루덴도르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드디어 제대로 된 물건이 나왔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물론 벤츠 전차가 날뛰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임러 직원들은 당황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말이다.
“다임러 이사님, 벤츠사 전차의 성능이 우리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이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우리가 우리 전차를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마이바흐가 다임러를 떠나고 새롭게 다임러의 기술이사가 된 고틀리프 다임러의 아들, 파울 다임러(Paul Daimler)는 불안에 떠는 직원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역시 마이바흐다.
그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아버지의 파트너는 아직도 그 재능과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경영진에 의해 본의 아니게 그의 자리를 빼앗게 된 파울 다임러는 그가 벤츠의 전차 개발에 참여했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면서도 자동차 기술자로서 그와 맞붙을 수 있다는 호승심에 불타올랐다.
물론 파울이 가진 재능과 경험은 업계의 전설인 마이바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부족한 재능을 메꾸기 위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또 젊었던 만큼 머리 또한 유연했다.
그는 마이바흐의 벤츠 합류에 당황한 다임러 경영진에게 이리 단언했다.
“정석으론 절대로 마이바흐와 벤츠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기기 위해선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놀랄 만한 것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파울 다임러가 구상한 모두가 놀랄 만한 전차는 거대한 크기의 전차, 즉 육상전함형 전차였다.
물론 이는 한스 폰 초이 남작이 요구하던 것과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지만, 이대로 정면으로 붙는다면 마이바흐와 벤츠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물론 이는 지금까지 프로젝트 책임자들의 얼굴을 일그러트리게 만든 다른 자동차 회사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파울은 다른 회사들처럼 한스의 요구 사항을 의식하며 어설프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처음부터 아예 제대로 된 육상전함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다임러엔 파울의 구상을 실현할 기술력이 충분히 있었다.
* * *
벤츠와 마이바흐가 해냈다.
벤츠 전차는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전차를 그대로 구현해 놓은 전차였다.
특히 벤츠 전차가 스팀팩이라도 맞은 것처럼 빠른 속도로 평가장을 질주할 땐 이 한스 폰 초이 남작조차 놀람을 금치 못했을 정도였다.
대체 엔진에 무슨 짓을 하면 전차가 저리 날아다닐 수 있을까?
아, 물론 이 시대 기준으로 말이다.
듣자 하니 엔진을 만든 장본인이 다름 아닌 빌헬름 마이바흐라 들었는데 이참에 비행기 엔진에 대해서도 그에게 기술 협력을 구해 보면 어떨까 싶다.
엔진 출력은 비행기 성능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게다가 마이바흐가 내년에 설립하는 마이바흐 사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체펠린 비행선용 엔진을 제작하는 회사였다.
비행선 엔진도 만드는데 비행기 엔진이라고 못 만들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라이트 형제와도 이야기를 나눠 봐야지.’
내가 마이바흐와의 협업을 생각하는 사이, 마지막으로 다임러사가 만든 전차 평가가 시작되었다.
이미 승부는 난 것 같지만 말이다.
쿠구구구궁──
“오오?!”
그러나 다임러가 만들어 낸 전차가 평가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Mk 시리즈?”
그랬다.
내 말을 안 듣고 기어이 육상전함을 만들어 온 다임러의 전차는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영국의 Mk 시리즈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이었다.
차체 위에 선회식 포탑이 달려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나 저거 워X머에서 봤…… 읍읍!’
내가 말할 수 없는 단어에 몸부림치는 사이, 다임러 전차는 느려터진 속도만큼이나 느긋하게 평가를 진행했다.
그러나 겉모습이 어떻든 다임러 전차는 벤츠 전차에 비하면 아무래도 육상전함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기에 나 또한 냉정함을 되찾고 다임러 전차를 불합격시키려고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크고 아름다워…….”
다임러가 만들어 낸 강철의 괴물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우리 프로이센 군인 아저씨들이 홀딱 빠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멋진 장난감 로봇을 발견한 남자아이와도 같았다.
차라리 벤츠를 제외한 다른 회사의 전차들처럼 성능 면에서 실망스러웠더라면 또 모를까 다임러 전차는 벤츠 전차보단 훨씬 느리긴 했어도 꽤 잘 굴러가긴 했다.
“둘 다 만드세.”
“예?!”
그리고 결국 모든 평가가 끝나고 나온 소리가 다름 아닌 벤츠 전차와 다임러 전차를 둘 다 채용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나로선 기겁할 소리였다.
“그 무슨 비효율적인 말씀입니까? 애초에 예산 없다면서요!”
“남작, 이 독일 제국이 세워진 이래 육군 예산이 부족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네.”
뷜로 총리가 들었으면 당장이라도 욕을 쏟아 냈을 말을 태연하게 내뱉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아이넴.
그러나 그가 이리 나오면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전차의 구상자로서 프로젝트 책임자 자리에 있을 뿐, 전차를 채용하는 권한은 어디까지나 프로이센 전쟁장관인 아이넴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몰트케야……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고.
‘젠장, 이게 맞나?’
그냥 벤츠 전차를 만들기 시작해서 많이 만들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슐리펜과 루덴도르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괜찮을 것 같군.”
“동감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두 사람마저 다임러 전차에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였다.
슐리펜이 말했다.
“생각해 보게, 한스 군. 다임러 전차가 앞장서고 그 뒤를 벤츠 전차들이 따르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나?”
젠장, 존나게 간지날 것 같긴 하네.
“자, 그럼 벤츠사의 전차와 다임러 사의 전차를 둘 다 채용하는 것으로 결정하지.”
내가 할 말을 잃은 사이, 아이넴이 선수 치며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독일 제국의 차세대 전차가 결정되었다.
설마하니 1+1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