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공황 (2)
“하버 씨, 해내셨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남작님! 제가 해냈습니다.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했어요! 하하하하!”
프리츠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한달음에 카를스루에 공과 대학으로 달려온 나는 기쁨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하버의 손을 잡고 연구실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에 키스를 퍼부어 주었을 것이다.
그만큼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법을 완성 시킨 것은 나와 독일 제국에 있어 그야말로 대박이라 할 만한 위업이었다.
“오스뮴! 오스뮴이 정답이었습니다.”
하버 또한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입을 쉴 새 없이 놀렸다.
“아, 대기 중의 질소와 수소를 암모니아로 합치기 위한 촉매제를 찾느라 대체 몇 번의 실험이 있었고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이게 다 남작님의 지원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하버는 그리 과장되게 말했지만, 원래라면 그가 암모니아 합성에 적합한 촉매를 발견하기 위해 2만 번 넘게 실험을 진행한 것을 생각하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물론 이번엔 돈이라는 알기 쉬운 힘으로 그 기간을 몇 년이나 단축했지만 말이다.
물론 하버의 말대로 나 또한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 실험을 위해 꽤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했지만, 하버는 참 다행히도 내 지갑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
아마 사라진 마르크들도 만족하며 눈을 감을 것이다.
“이제 인간은 인류가 태어난 이래 가장 큰 적이었던 기근의 흑기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토머스 맬서스(Thomas R. Malthus)가 주장했던 맬서스 트랩 또한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질 테고요!”
“네, 네. 정말이지 위대한 위업이죠. 그래서 상용화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내 질문에 프리츠 하버가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바스프(BASF, 독일의 화학 회사)의 카를 보슈와 상용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특히 암모니아 합성법을 대량 생산에 적합한 수준으로 수율을 끌어 올리는 것에 대해서요.”
카를 보슈(Carl Bosch).
바스프사에 소속된 독일의 화학자로 ‘하버-보슈법’에서 보슈를 담당하는 장본인 되시겠다.
실제로 보슈는 하버와 협력해 암모니아 합성법을 상용화시킨 장본인으로 학계에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하버에 이어 1931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내 기억으론 하버와 보슈가 ‘하버-보슈법’을 상용화하기까지 약 4년 정도가 걸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4년이면 당장 눈앞에 닥친 경제 악화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불쌍한 슈텐겔 재무 장관은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2년, 웬만하면 1년 안에 결과물이 나와야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또다시 돈이었다.
“하버 씨, 혹시 암모니아 합성법을 상용화하는 것을 제국 정부가 지원한다면 그 기간을 최소 2년에서 1년으로 줄일 수 있겠습니까?”
“그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하버 씨도 알다시피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공황의 여파로 우리 독일 제국도 경제 상황이 어렵지 않습니까?”
나는 하버에게 현 제국 정부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대로라면 세금을 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만약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이 최대한 빨리 상용화에 성공해 질소 비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면 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오오! 제 합성법이 독일 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데 이 프리츠 하버가 무엇을 망설이겠습니다. 당연히 협력하겠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은 하버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기세로 내 손을 붙잡았다.
오히려 말을 꺼낸 내가 당황했을 정도로.
하긴 프리츠 하버가 거절할 리가 없지.
독일 제국을 위해 과학자의 양심과 인류애를 뒤로 한 채 독가스까지 만든 사람 아닌가.
독일 제국을 위해서라면 아마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 바스프 사와 카를 보슈 씨께 이야기를 전해 주시죠. 전 총리님과 재무 장관님께 한시라도 빨리 이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하니까요.”
“맡겨 주시죠. 만약 바스프사가 망설인다면 제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설득하겠습니다.”
“이야기면 충분합니다. 이야기면. 그들로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 거절하진 않을 테니까요.”
나는 바스프사가 말을 안 들으면 회사에 독가스라도 풀 기세인 하버를 진정시키며 베를린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뷜로가 과연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 *
“지금 질소 비료라고 그랬나?”
“그렇습니다. 총리님.”
정답은 당장이라도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치 내가 늦은 밤 갑자기 접견을 요청하자 얼굴을 찌푸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였다.
“식량 생산이 증가하면 식량 수입의 비중도 줄일 수 있을 테고 덩달아 빵값도 떨어질 테니 여론도 좋아할 것이 분명해. 거기다 농업 생산량 증가가 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보면 이거 완전 대박……!”
뷜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불러 나온 슈텐겔 재무 장관도 잠이 완전히 깬 듯 질소 비료가 가져올 이득을 계산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상황.
그만큼 하버-보슈법의 탄생과 그로 인해 얻어질 결과물은 1907년 공황이란 경제 위기로 어두컴컴했던 분위기를 뒤집기 충분했다.
“그 프리츠 하버라는 카를스루에 공과 대학의 교수가 암모니아 합성법인지 공중 질소 고정법인지 뭔지를 완성한 것은 확실하고?”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상용화인데 정부의 지원이 있다면 그 기간을 많이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당연히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지. 필요하다면 우리 집 금고라도 열겠네.”
하버-보슈법의 상용화만 해결되면 질소 비료로 독일의 식량 생산량은 극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도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독일 제국은 인광석, 즉 구아노 산지로 유명한 나우루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상황.
질소 비료+구아노?
내가 농부였다면 이거 절대 못 참는다.
게다가 독일은 소싯적 농사꾼으로도 활약했던 비스마르크 덕분에 유럽에서도 효율적이기로 손꼽히는 농업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농업 기술 도입에도 굉장히 적극적인 편이고.
여기에 질소 비료의 도입은 독일의 유명한 에너지 음료수 광고처럼 독일 농부들의 등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다.
“게다가 공중 질소 고정법의 가치는 비단 비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화약, 화약 또한 값싸고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더는 화약 생산을 위해 칠레의 초석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확실히 초석 수입에 많은 돈을 쏟는 상황이니. 게다가 화약값이 싸지면 군비도 조금이나마 줄긴 하겠지.”
실제로 독일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통상파괴전으로 인해 초석 수입이 끊겼음에도 하버-보슈법의 힘으로 탄약 고갈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시대 가장 큰 초석 생산지이자 수출국이었던 칠레는 하버-보슈법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 하하하하!”
내가 칠레의 바뀌지 않은 운명에 애도를 표하는 사이, 뷜로 총리가 이젠 못 참겠다는 듯 큰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이 늦은 밤이라는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폐하께 말씀드려서 프리츠 하버에게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고 말해야겠군. 인류를 구원한 것뿐만 아니라 이 빌어먹을 공황에서 나도 독일 제국도 구원했으니!”
물론 하버-보슈법 상용화에 걸리는 시간이 시간인 만큼 당장 독일의 경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세금 인상 말고는 답이 없던 상황에 하버와 공중 질소 고정법의 등장은 뷜로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 옆에서 뷜로를 따라 해맑게 웃고 있는 슈텐겔 재무 장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재무 장관,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바스프 사와 협력해 암모니아 합성법 상용화에 대한 제국 정부의 지원 계획을 이번 주까지 내 책상 위에 올려놓도록 하시오.”
“물론입니다. 총리님.”
“내 이번에 자네에게 빚을 지게 되었군.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내 기억에 따르면 뷜로가 나에게 진 빚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그가 나를 계속 지지해 준 덕에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니 그를 도와준 보람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 세계에선 뷜로가 총리 자리에 오래오래 있을 것 같으니 더더욱.
* * *
[맬서스 트랩의 붕괴! 독일의 자랑스러운 과학자, 프리츠 하버 박사가 인류를 기아로부터 구원하다! 뷜로 총리, 정부는 공중 질소 고정법 상용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뷜로 총리의 행동은 빨랐다.
뷜로는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곧바로 하버-보슈법의 빠른 상용화를 위해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를 지원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바스프사는 내 예상대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환영했다.
어차피 하버-보슈법이 빨리 상용화가 되면 그들에게도 이득이었으니까.
다만 재정이 악화한 상태에서 그만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문제였는데 그 부분은 황실과 독일 상류층의 ‘기부’로 해결하기로 했다.
빌헬름 2세는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이 독일 제국과 황실의 위신을 끌어올릴 것이라 내가 열심히 설득한 덕분에 기꺼이 황실 금고를 열었고 카이저가 지갑을 여니 귀족들도 자의로든 아니면 타의로든 눈물을 흘리며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그 뿌리 자체가 지주이자 토지 귀족이었던 융커였다.
하긴 독일의 산업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점점 쇠락해 가는 와중에도 권력의 힘으로 수입 농산물에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면서까지 농업에 집착하는 융커들에게 있어 질소 비료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일 테니까.
‘쯧, 평소에도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면 좋으련만.’
뭐,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 둬라.
제1차 세계대전만 끝나고 나면 더는 웃을 수 없을 테니까.
하여튼 독일 제국이 1907년 공황으로 인한 경제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사이 1908년의 새해가 밝았다.
내 후원에 힘입어 아문센이 기어코 북극점 정복에 성공하고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가 나에게 직접 감사 편지를 보내는 등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문제는 정작 내가 즐겁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슐리펜에게 붙잡혀 남은 휴가 대부분을 슐리펜과 함께 슐리펜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는데 쏟아붓고 있거든.
본래라면 루이제와 함께 새해를 보낼 예정이었는데…… 에휴.
“그러니까 자네 주장은 아예 생각을 반대로 하자는 거지?”
“그렇습니다. 물론 제 구상을 구체화하려면 계획안이 지금보다 더 진전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요.”
“거참 재촉하지 말게나. 전차도 모자라 비행기까지 고려해야 해서 나도 머리가 복잡하단 말일세.”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투덜거리며 입을 비죽이는 슐리펜.
여담으로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 군 도입에 발맞추어 본격적으로 라이트 사를 설립하고 기술자를 대규모로 영입해 비행기 개발과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트 사의 새로운 기술자 중엔 라이트 형제의 에어쇼를 보고 반해 네덜란드에서 맨몸으로 찾아온 18살의 앤서니 포커(Anthony Fokker)도 있었다.
‘포커 아인데커와 포커 삼엽기를 비롯한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 제국 항공기 다수를 개발한 네임드지.’
이뿐만 아니라 앤서니 포커는 본격적인 항공전 시대를 연 싱크로나이즈 기어의 개발자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이제야 막 라이트 형제 밑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열의만 넘치는 청년이었기에 진가가 드러나려면 시간이 더 많이 지나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비행기의 발전은 순조로웠고 이에 영향이라도 받은 건지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Ferdinand Adolf Heinrich August von Zeppelin) 백작 또한 비행선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 또한 내 귀에 들려왔다.
아마 올여름에 비행선 실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원 역사처럼 폭풍을 피하려고 착륙을 시도하다 불타 버릴지 아니면 역사가 바뀌어 성공할지 참 궁금하다.
물론 실패해도 비행선의 크고 웅장한 모습에 매료된 독일인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 비행선 개발은 계속되겠지만 말이다.
원 역사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이라고 다를까.
“백작님, 루덴도르프 중령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하게.”
나와 슐리펜이 머리를 싸매고 슐리펜 계획에 집중하고 있을 때, 루덴도르프가 찾아왔다.
루덴도르프는 참모 본부에서 퇴근하고 바로 왔는지 여전히 군복 차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각하. 그리고 남작님, 두 분 다 마침 여기 계시니 따로 찾아갈 수고가 덜했군요.”
“나와 한스 군을 동시에 찾다니. 혹시 트랙터 프로젝트 때문인가?”
슐리펜의 물음에 루덴도르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차 프로토타입 공개 일정이 결정되었습니다.”
루덴도르프의 말에 나와 슐리펜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손에 깍지를 끼웠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차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날이 도래했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