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21화 (121/193)

121화 : 공황 (1)

1907년 공황(Panic of 1907).

다른 이름으론 1907년 은행 패닉, 니커보커 위기(Knickerbocker Crisis)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1929년 대공황 이전 가장 규모가 컸던 세계적인 경제 위기다.

내가 경제 쪽엔 그렇게 밝진 않아서 1907년 공황에 대해서 상세한 것까지는 잘 모르지만, 1907년 공황으로 미국 금융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할 뻔했다니 그 무게를 잘 알 수 있다.

일단 신문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구리 회사인 유나이티드 구리 회사(United Copper Company)가 주가에 장난질을 쳐서 이득을 보려 했던 것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공황이 시작된 모양이다.

몬태나의 구리왕이자 유나이티드 구리 회사의 소유주였던 F. 오거스터스 하인츠(Fritz Augustus Heinz)는 악명높은 은행가였던 찰스 모스(Charles Wyman Morse)와 공모해 자사 주식을 사재기해 큰돈을 벌 계획을 세웠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이들의 야심 찬 계획은 10월 16일에 뉴욕증권거래소가 열리고 얼마 되지 않아 30달러 선에서 시작되었던 유나이티드 구리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긴커녕 10달러까지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주가 조작을 시도한 오거스터스 하인츠와 찰스 모스는 당연히 업계에서 매장당했지만, 문제는 이들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 뉴욕에서 세 번째로 커다란 신탁회사였던 니커보커 신탁회사(Knickerbocker Trust)의 사장이었던 찰스 T. 바니(Charles Tracy Barney)가 하인츠&모스와 오랫동안 교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국평화회의가 끝난 10월 18일에 이미 뱅크런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었던 니커보커 신탁회사 이사회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찰스 바니의 사임을 요구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결국 22일에 대규모 뱅크런이 터지며 무너지고 말았다.

니커보커가 무너지자 그 여파는 미국의 양대 신탁회사였던 미국 신탁회사(Trust Company of America)와 링컨 신탁회사(Lincoln Trust Company)로 번졌고 24일엔 뉴욕의 은행이란 은행과 신탁회사들이 모조리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미국 전역에 최초의 대공황이란 전례 없는 폭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 그랬듯 1907년 공황도 미국을 벗어나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쾅!

“함부르크에서 뱅크런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공황이라니!”

뷜로 총리가 미국 기업의 주가 조작으로 시작된 공황에 어이가 없는지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내리쳤다.

물론, 여기서 제일 어이없던 사람은 치르슈키 외무장관이 룰루랄라하고 빈으로 탈주해 버린 바람에 졸지에 외무장관이 되자마자 공황을 맞이한 빌헬름 폰 쇤(Wilhelm Eduard Freiherr von Schoen)이겠지만.

덕분에 쇤 장관을 따라 내각회의에 온 나는 창백한 얼굴로 진땀을 흘리며 연신 물을 마시고 있는 그의 불쌍한 모습을 뒤에서 쭉 지켜봐야만 했다.

어쨌든 뷜로의 말대로 올해는 봄부터 독일, 아니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이었다.

당장 4월엔 이집트에서 뱅크런이 일어났고, 5월엔 일본에서 뱅크런이 일어났으며 뉴욕이 무너지기 며칠 전에는 독일 함부르크와 칠레에서 뱅크런이 일어났다.

그리고 뉴욕에서 일어난 공황은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아슬아슬한 상황에 자비 없이 폭탄을 떨어트렸다.

“슈텐겔 재무장관, 미국에서 일어난 공황이 제국 경제에 미친 여파가 얼마나 크오?”

“당장은 라이히스방크가 어떻게든 대규모 뱅크런을 막고는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석유 건도 꽤 도움이 되었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현재 제국 정부의 지출이 너무 많아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이라 이대로라면 경제 악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무장관 헤르만 폰 슈텐겔(Hermann Guido Leopold Freiherr von Stengel)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의 말대로 독일 제국은 쓰는 돈이 너무 많았다.

그 원인은 모두가 예상했다시피 군비였다.

‘당장 독일 재정의 60%를 군비가 차지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천조국이 증명했듯이 강력한 군대는 무릇 돈에서 나오는 것이고 어딜 가도 군국주의자로 넘쳐나는 독일 제국이란 이름의 군사 대국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지나칠 정도로 아끼지 않았다.

나라가 군대를 위해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 주는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럼, 결국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소리군.”

뷜로 총리가 한숨을 쉬며 전쟁장관 아이넴과 해군장관 티르피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지출을 줄인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군비가 될 테고.”

“육군은 예산에 여유가 없습니다.”

티르피츠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아이넴 전쟁장관이 먼저 선수를 치며 대답했다.

뷜로 총리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한 푼도 줄일 수 없소?”

“독영협상에 자극받은 프랑스가 군사력을 대거 확장하고 있기에 우리 또한 이에 대비하기 위해 군 혁신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번에 비행기를 군에 도입하면서 항공대를 새로 신설하지 않았습니까?”

아이넴의 말대로 내가 헤이그에 가 있던 사이, 나와 라이트 형제의 노력이 빛을 발해 독일 제국군은 드디어 비행기를 정식적으로 도입해 독일 제국 항공대(Fliegertruppen des deutschen Kaiserreiches)가 탄생했다.

물론, 항공대라 해 봤자 아직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고, 또 비행기도 몇 대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항공대 또한 점차 규모를 늘려 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육군에서 현재 진행 중인 중요한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육군의 사정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아, 그 프로젝트 말이군. 왜 하필 지금 그걸 진행해서…….”

아이넴 전쟁장관이 트랙터 프로젝트를 언급하자 뷜로 총리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애꿎은 나를 한번 쳐다봤다.

물론,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나빴을 뿐이기에 뷜로가 이걸로 나를 타박하진 않았지만.

그때 아이넴이 말했다.

“그러니 전 차라리 군비를 줄일 거면 해군 쪽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아이넴이 자신에게 폭탄을 던지자 티르피츠가 당황한 얼굴로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티르피츠가 어디 가서 당하고만 있을 사람인가?

그것도 배박이에게 배를 뺏겠다는데?

그는 곧 전투태세를 갖추고 아이넴 장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해군도 여유가 없소. 우리도 기존의 프리드리히급을 뛰어넘을 신형 전함을 건조하느라 예산을 이미 한계까지 쥐어짠 상황이란 말이오!”

“그럼, 구식 함선 몇 척을 스크랩해 유지비를 줄이시지요. 어차피 영국이 우리 동맹인데, 해군 전력을 지금처럼 과도할 정도로 유지할 이유가 있습니까?”

“오.”

부족한 재정으로 고통받고 있던 슈텐겔 재무장관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얼굴이 악마처럼 붉게 달아오른 티르피츠의 분노 앞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순식간에 꺼지고 말았다.

“아이넴,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건가?!”

티르피츠는 팔을 걷어붙이고 당장이라도 아이넴 전쟁장관에게 결투를 신청할 기세로 그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아이넴 전쟁장관도 잔뼈 굵은 프로이센 군인답게 만만치 않았다.

“제가 어디 틀린 말 했습니까? 솔직히 배 몇 척 줄인다고 해군이 망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 어디 전함 한 척이 말 한 필, 대포 한 문이랑 같나? 이래서 땅개는…….”

“뭐요?!”

“자자, 싸우지 말고 모두 진정하세요. 우리끼리 싸워 봤자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넴과 티르피츠의 언쟁이 격렬해지자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Theobald Theodor Friedrich Alfred von Bethmann Hollweg) 부총리가 진땀을 흘리며 둘을 말렸다.

내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헤이그에 출장 나가 있던 사이, 포사도프스키-베너 부총리가 사임하고 그 후임으로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된 인물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원 역사에서 뷜로 다음으로 독일 제국의 총리가 되는 인물이다.

‘제1차 세계대전도 그가 총리였던 시절에 일어났지.’

베트만홀베크는 전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었던 포사도프스키-베너만큼 좌파 친화적이진 않았지만, 군주제를 지지하면서도 노동조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상당히 중도적인 인물이었다.

포사도프스키베너 부총리도 그렇고, 왜 독일 제국 내무장관들은 이미지와 다르게 좌파에 온건한 사람들이 많을까?

정작 옆 동네 스톨리핀은 내무장관 시절에 혁명가들의 피를 손에 잔뜩 묻히고 다녔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포사도프스키베너 부총리가 내각을 떠나서 안타깝네.’

베트만홀베크도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없을 때 떠나서 그런지 안타깝고 아쉬운 기분이 든다.

나중에 다시 같이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을 텐데, 정작 그 기회가 올지 안 올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육군 해군 양쪽 다 못줄이겠다 이거군.”

“그렇습니다.”

“그렇소.”

“X같은 새끼들…….”

싸울 땐 언제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아이넴과 티르피츠의 모습에 뷜로 총리가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며 바닥까지 닿을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세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겠군.”

“이미 작년에 소득세와 상속세를 한 차례 인상했습니다만…….”

“나도 알지만, 당장은 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지. 필요하다면 재산세 도입도 고려해야 해.”

뷜로의 말에 베트만홀베크 부총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론이 크게 악화할 것은 분명합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볼 융커들도 화를 낼 테고요. 라이히스탁도 난리를 칠 테죠. 그리고 음…… 일단 재무장관이 사임해야 할 것은 확정일 것 같군요.”

베트만홀베크 부총리의 비관적인 말에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슈텐겔 재무장관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어쩔 수 없었다.

세금을 올려서 좋아할 사람은 정부 말고 아무도 없었으니까.

당장 원 역사에서 뷜로도 이 세금 문제가 발목을 잡아서 2년 후에 총리직에서 쫓겨났다.

다만 뷜로가 총리에서 해임된 것은 데일리 텔레그래프 인터뷰 사건으로 인해 빌헬름 2세와 뷜로의 관계가 악화한 것이 더 컸지만.

“일단,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마시고, 더 논의를 거친 뒤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시죠.”

베트만홀베크의 말에 뷜로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나도 깜깜했다.

우선, 1907년 공황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허술한 금융 시스템 때문이다.

유럽엔 독일의 라이히스방크를 비롯해 중앙은행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국은 도금시대 아니랄까 봐 돈에 미친 은행들의 방해로 중앙은행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정부가 금융을 통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 소위 연준이 탄생한 계기가 바로 1907년 공황이었지.’

그렇기에 이번 공황 자체는 한 달 정도면 진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JP모건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미국을 금융 위기의 수렁에서 구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JP모건 한 사람에게 미국 경제가 의존하는 상황으로 비쳤기에 미국 정부는 금융 통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며 중앙은행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된 것은 우드로 윌슨의 재임 시기였던 1913년이었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국의 이야기였고, 우리 독일의 경제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과도한 군비 지출로 인한 재정 악화였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 왔지만, 이번 공황으로 인해 그것이 수면 위로 드러났던 것일 뿐.

‘그래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외무청의 업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생각하면 군비를 줄이기도 그랬고, 이번 일로 카이저와 더불어 내 가장 중요한 지지자였던 뷜로 총리가 총리 자리에서 쫓겨나진 않더라도 타격을 받는 것도 원치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난 신궁전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경제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여전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럴 때 상황을 뒤바꿀 만한 사건이 '펑' 하고 터져 주면 좋을 텐데.”

“남작님, 남작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요?”

“네, 너무 횡설수설해서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 하버라는 사람이 무슨 합성에 성공했다고…….”

“뭐라고요?!”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터졌다. 그것도 매우 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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