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 만국평화회의 (1)
“오랜만이군, 남작. 어린아이들은 성장이 빠르다더니 이젠 사내 티가 나는구만. 조금만 더 지나면 내 키를 넘겠어.”
“하하, 저도 대통령님을 만나서 기쁩니다.”
1907년 6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Hague)에 도착한 나는 베네수엘라 위기 이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힘차게 손을 맞잡았다.
“그나저나 내가 자네와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장소가 이곳 헤이그가 될 줄은 몰랐군. 오는 길이 불편하지 않았나?”
“네덜란드는 독일 바로 옆인걸요. 저보단 대통령님이 더 고생하셨죠.”
루스벨트 대통령은 말이라도 고맙다는 듯 미소 지으며 아름다운 헤이그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못 보던 사이에 유명인사가 다 되었더군. 요즘 외교가에선 자네를 비스마르크의 후계자라 부른다지?”
“그랬습니까?”
“하하, 몰랐나?”
오히려 지금 처음 들었다.
내 행보를 생각해 보면 그런 별명이 붙는 것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노란 비스마르크라 비꼬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우와 그건 좀 너무하네요.”
비스마르크란 이름이 프랑스에 있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노란 비스마르크는 내가 생각해도 심한 별명이었다.
차라리 머리카락이랑 눈 색을 따서 검은 비스마르크라 해 주던가.
“어쨌든 이번 회의는 여러모로 거칠 것 같아. 당장 러시아 제국에선 총리가 직접 온다는군.”
“스톨리핀이 말입니까?”
“그래, 그 친구도 자네 못지않게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한 친구지. 특히 빨갱이들은 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라는 모양이라니까.”
비단 공산주의자들뿐일까, 귀족들도 스톨리핀을 못 잡아먹어서 난리였다.
위로는 광범위한 개혁으로 차르와 귀족들의 심기를 건들고 아래로는 혁명을 외치는 자들을 모조리 스톨리핀의 넥타이에 목매달았으니까.
남편의 죽음 이후 러시아 제국의 개혁에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인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태후가 스톨리핀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비테처럼 진작에 내쳐졌을 것이다.
‘그나저나 스톨리핀이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던 것 같은데…….’
이것도 나로 인해 바뀐 역사 중 하나일까?
그가 과연 무슨 생각을 가지고 헤이그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람인 만큼 주의해야겠다.
“게다가 영국은 이번 만국평화회의에서 군비 제한을 주장할 생각인가 보군. 보나 마나 프랑스를 견제할 생각이겠지. 독영협상 이후 프랑스는 내가 봐도 놀라운 속도로 군비를 늘려 가는 중이니까.”
“네.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잘 될 것 같진 않지만요.”
어디 프랑스가 영국의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 나라던가?
분명 귓등으로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중지를 치켜올릴 게 분명하다.
“하여튼 명색이 만국‘평화’회의인데 다들 싸울 생각밖에 안 하니.”
“그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죠.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지당한 말씀일세.”
정작 그리 말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미서전쟁 때 러프 라이더를 결성하여 참전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주장하는 등 평화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지만 말이다.
게다가 만국평화회의 때 체결된 국제 조약 중 상당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휴지 조각처럼 무시당했다.
선전 포고에 대한 협약?
독일은 이를 무시하고 벨기에를 침공했다.
화학 무기 사용 금지?
독일을 시작으로 모든 나라가 신나게 독가스를 뿌려 댔다.
‘젠장, 죄다 독일이 먼저 어겼네.’
괜히 전범국이 전범국이 아니다.
독가스 건이야 협상국도 사용했으니 흐지부지 넘어갔지만(프리츠 하버가 전범이 되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나머지 조항은 아무리 이기면 장땡이긴 해도 우리가 먼저 어기는 것은 평판 상 곤란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국제법을 최대한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긴 해야지.’
그래야 상대방을 나쁜 놈이라 비방하고 우리가 정당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 줄 수 있으니까.
나로 인한 나비효과 때문인지 원 역사보다 더 격렬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레오폴드 2세를 내가 헤레로 전쟁 때 자주 들먹였던 것처럼 도덕만큼 알기 쉽고 강력한 무기는 없는 법이다.
“어쨌든 한동안 시끄럽겠네요.”
“회의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그렇죠. 원래 법이란 게 소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별다른 바가 없어서 보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요.”
“소시지라 재미있는 비유군.”
루스벨트 대통령이 피식 웃으며 그리 중얼거렸다.
본래 이는 비스마르크의 어록 중 하나로 알려진 말이지만 실제로는 오래전 미국 변호사가 한 비슷한 말이 1930년대에 비스마르크가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와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여기선 내가 한 말로 기록되려나?’
“그나저나 헤이그엔 얼마나 있으실 생각이십니까?”
“아쉽지만 회의가 개최되는 것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네. 요즘 경제 상황이 영 안 좋아서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을 까먹을 뻔했군. 얼마 전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에서 석유 탐사에 성공했다네.”
“그렇습니까?”
석유란 말에 나는 베네수엘라 위기 당시 루스벨트와 맺은 약속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때 나는 미국과 독일이 베네수엘라 석유 이권을 나눠 가지자고 미국을 꼬드겼고 루스벨트는 이를 받아들였다.
“비록 텍사스 유전에 비해 질은 그리 좋지 않지만 그래도 석유는 석유지. 석유의 가치는 해가 갈수록 점점 높아져 가고만 있으니까. 19세기가 석탄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석유의 시대가 될 것이야.”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예언 아닌 예언에 나는 그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머지않아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가 각축을 벌일 것이다.
우리 독일 또한 본격적으로 자동차 붐이 불기 시작한 것과 더불어 세계대전에서도 비행기, 전차, 트럭 등 석유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예정인 만큼 경쟁이 심해지기 전에 충분한 석유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회담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총리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아니, 이참에 우리 독일도 국영 석유 회사를 만들자고 해야겠습니다.”
미국엔 석유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스탠더드 오일이 있고 영국도 이에 맞서기 위해 네덜란드와 합작으로 올해 4월에 로열 더치 셸(Royal Dutch Shell)을 설립했지만, 석유와 그다지 연이 없던 독일 제국엔 석유 회사라고 할 만하게 없었다.
어차피 독영협상으로 중동 이권 또한 어느 정도 양보받았으니 이 기회에 국영 석유 회사를 하나 세워 베네수엘라 유전뿐만 아니라 중동 유전을 미리미리 확보해 놔야겠다.
루스벨트가 말했듯이 20세기는 석유의 시대고 석유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 * *
며칠 후, 1907년 6월 15일.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시작됨과 동시에 헤이그에 있는 네덜란드 왕실의 관저 중 한 곳인 하우스텐보스 궁전(Paleis Huis ten Bosch)에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온 44개국의 외교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래서 우리 영국은 유럽의 평화를 위해 군비 제한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하! 영국이 평화를 논하다니 이보다 지독한 농담이 없군요. 애당초 영국이 군비 제안을 제안한 것은 우리 프랑스를 대놓고 견제하려는 속셈인 것을 누가 모를 것 같습니까?!”
그러나 만국평화회의는 분위기는 회의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의 각축전이 이어지자 전혀 평화롭지 않게 변해 버렸다.
“평화를 이야기하러 와 놓곤 정작 하는 일은 싸움밖에 없군.”
영국 대표단과 프랑스 대표단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강 건너 불구경을 러시아 제국의 총리, 스톨리핀은 조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옮겨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을 권태롭게 지켜보고 있던 소년에게 다가갔다.
“독일 제국은 저 다툼에 끼지 않는 건가?”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은 독일 제국과 무관하진 않지만, 솔직히 의미 없는 말싸움에 불과하니까요.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괜히 저 싸움에 껴서 쓸데없이 힘 낭비를 하고 싶진 않다는 마음이 더 크지만요.”
“영국과 프랑스 대표들이 들으면 표정이 참 볼 만하겠군. 자네야말로 저 싸움을 일으킨 장본인 아닌가? 한스 폰 초이 남작.”
“그렇게 따지면 러시아 제국도 할 말은 없지요. 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 총리님.”
한스의 말에 스톨리핀이 입꼬리를 올린 채 흥미로운 얼굴로 한스를 지긋이 응시했다.
“내가 누군지 금방 알아본 모양이군.”
“모를 수가 없지요.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 아니십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스톨리핀의 머리가 너무 밝게 빛나서 못 알아보려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름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한스가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자네만큼 유명할까. 카이저를 구한 소년, 아니 요즘엔 비스마르크의 후계자라던가? 하여튼 비테 각하께서 안부 전해 달라더군.”
“비테 전 총리님께선 잘 지내고 계십니까?”
“그래. 여전히 국무의원으로 활동 중이시지. 오히려 총리 시절 때보다 더 잘 지내고 계시네.”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고생이 많으셨던 모양이군요.”
“러시아 제국의 총리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스톨리핀이 그리 말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차르는 니콜라이 2세고 귀족들은 양판소에서 나올 법한 무능한 귀족들의 전형에 아래론 혁명가들이 날뛰고 있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 제국이다.
게다가 요즘엔 니콜라이 2세가 라스푸틴이라는 웬 사이비 신부를 중용하면서 스톨리핀의 두통과 피로는 실시간으로 더 심해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비테처럼 물러나고 싶은 심정.
그러나 러시아 제국을 위해선 버텨야만 했다.
“그나저나 저에게 하소연하러 헤이그에 오신 것 같진 않고 무슨 목적이십니까?”
“자네는 꼭 목적이 있어야 사람을 만나나? 이것 참 삭막한 친구로군.”
“…….”
스톨리핀의 농담 아닌 농담에 한스가 썩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독일인들은 유머 감각이 부족하다더니 이 소년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하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말게. 나는 칼이 아니라 빵과 소금을 들고 자네를 만나라 온 것이니.”
“맨손이시지 않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비록 현재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가 그리 좋진 않다지만 자네와 비테 각하가 협력했듯이 양국의 평화를 위해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한스는 그리 말을 흐리며 회의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애초에 스톨리핀도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딱히 마음 상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당장 대답을 강요하진 않겠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시게나.”
스톨리핀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스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동정심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한스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많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왜냐하면 스톨리핀은 4년 후인 1911년에 암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톨리핀이 오래오래 살았다면 한스 자신도 이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겠지만, 그가 죽으면 이 은밀한 논의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뻔히 보여서 차마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살리는 것은 위험성이 너무 컸고.
“어쩌면 스톨리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
한스는 그리 중얼거리며 이제는 서로 주먹다짐을 벌일 기세였던 영국과 프랑스의 대표단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미래를 아는 자와 미래를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자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 * *
“최한수 남작님!”
별 소득 없이 흘러갔던 오늘의 회의가 끝나고 하우스텐보스 궁전을 떠나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왔을 때, 익숙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상설 씨?”
그 사람은 몇 년 전 대한제국에서 만났던 이상설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곧바로 내려갔다.
‘왜 이상설이 헤이그에 있는 거지?’
마지막으로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땐 분명 미국에 있다고 들었다.
근데 왜 이상설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원 역사가 원 역사인지라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남작님. 보좌관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예전에 봤을 때보다 몰라볼 정도로 많이 자라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저 또한 이상설 씨를 이곳 헤이그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 만국평화회의 때문에 네덜란드까지 오신 겁니까?”
“하하,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겠다고 온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죠.”
휴, 다행히 헤이그 특사 같은 일을 벌일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만약 그런 거였다면 내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지니까.
“오늘은 헤이그에 온 김에 오랜만에 남작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겸, 남작님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저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이요?”
“예. 남작님께서도 만나 보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흠, 어쩐지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시간은 많으니 좋습니다. 만국평화회의가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가시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상설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호텔에 도착하자 이상설은 나에게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뒤, 사람들을 데리러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아메리카노요? 아, 카페 초이 말씀이군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기다리는 사이 커피를 주문하자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스에서 아메리카노를 카페 초이라고 부른다더니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인 걸 보니 아무래도 유럽에선 이미 아메리카노가 카페 초이란 이름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꽤 쑥스러운 기분이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아메리카노면 어떻고 카페 초이면 어떻겠는가.
맛은 결국 물 탄 에스프레소인 것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남작님.”
“아닙니다. 뒤에 계신 분들이 저를 만나고 싶다는 분들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이상설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이상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례대로 그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쪽은 미국 유학생인 안창호(安昌浩) 군입니다.”
“도산 안창호라고 합니다. 남작님의 명성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었습니다.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안창호!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거물 독립운동가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고 보니 안창호는 1902년부터 1907년까지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역사가 틀어져 미국에 간 이상설과 친해진 모양이다.
어쨌든 내 예상보다 거물의 등장에 나는 기대를 품으며 안창호 뒤에 서 있는 젊은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쪽은…….”
이상설이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머뭇거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어째선지 남자를 대하기 어려워하는 느낌이다.
“허, 상설이. 이러다 날 새겠군.”
“죄, 죄송합니다.”
이상설의 말이 길어지자 성격이 상당히 급한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나 이강이라 하네.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도 좋네. 하하하하!”
“이강……?”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내 그가 누군지 깨닫고 입을 떡 벌렸다.
“……혹시 의친왕(義親王) 전하이십니까?”
“아, 그렇게도 부르지.”
의친왕은 능청스럽게 대답했지만 나는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형은 또 여기서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