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14화 (114/193)

114화 : 보좌관 (3)

“이 또한 마하트마의 가호, 자네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군.”

“아, 예…….”

나는 몰트케의 말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슐리펜에게 이 사람 머리 괜찮은 거냐고 눈빛을 가득 담아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슐리펜은 몰트케의 이런 언행에 이미 익숙한지 그저 짧게 한숨 쉴 뿐이었다.

“크게 신경 쓰지 말게나. 헬무트 저 친구는 신지학인지 뭔지에 푹 빠졌거든.”

“신지학이라면 오컬트 말입니까?”

“그래. 강령이나 그런 거 말일세. 그래도 저 정도면 양반이야. 난 예전에 저 친구 집에 갔다가 알몸으로 명상하고 있는 것도 봤어.”

떠올리기 싫다는 듯 혀를 차며 슐리펜이 중얼거리자 나는 그만 알몸이 된 몰트케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버렸다.

아, 젠장. 당장이라도 두 귀와 뇌를 씻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나체주의(Freikörperkultur)인지 뭔지 요즘 유행하는 거라던데, 요즘 젊은것들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독일은 19세기 말부터 권위주의와 도시화에 대한 반발로 자연주의에 영향을 받은 나체주의가 크게 유행했다고 들었다.

‘물론, 독일에서 나체주의가 유행하게 된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지.’

원래 독일은 영국처럼 일조량이 부족한 나라였고, 맑은 날이 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광욕을 즐기는 나라였는데, 어느 날 일광욕을 즐기던 독일인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옷을 죄다 벗어 버리면 햇볕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사람들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다.

그 이후 나체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실제로 이는 독일에 나체주의가 유행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인지 독일은 현대에도 나체주의자, 그러니까 나체족들이 가장 많은 나라며 독일의 유명한 혼탕도 이런 나체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나야 그런 쪽엔 관심 없지만.’

문화상대주의를 떠나 아직 유교적 마인드에서 벗어나진 못한 내게 나체주의는…… 뭐랄까 아직은 부담스러웠다.

“자, 남작. 이리 오시게나. 아니면 보좌관으로 부르는 편이 더 좋은가?”

“남작으로 괜찮습니다. 몰트케 중장님. 아, 이건 참모총장 취임을 축하드리는 소소한 선물입니다.”

나는 몰트케에게 곱게 포장된 도자기를 건넸다.

예전에 대한제국에 방문했을 때 선물 받았던 것 중 하나인데, 비싸 보이기만 하지 딱히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이진 않아서 이참에 몰트케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아, 인류의 우애는 피부 색깔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할지니. 오늘 신지학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군.”

“아, 아하하하…….”

몰트케가 내 얄팍한 지성으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몰트케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결과적으로 잘된 것일까?

그 이유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우주의 기운이 날 환영한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데?’

내 앞에 있는 게 몰트케가 아니라 무슨 힘러인 줄 알았다.

나는 몰트케는 슐리펜 백작에게 맡기고 어지러워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구석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오, 남작님, 여기서 뵙는군요.”

“루덴도르프 중령님.”

“보좌관이 되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보는 루덴도르프가 나를 향해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남서아프리카에 놔두고 갔을 땐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지만, 내가 헤레로 전쟁 때 그의 활약이 컸다며 보고서에 적어 주자마자 바로 꼬리를 흔들더라.

참 이해하기 쉬운 인간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루덴도르프는 원 역사보다 7년 빠르게 중령으로 진급했을 뿐만 아니라 참모본부에도 빠르게 부임할 수 있었다.

어차피 슐리펜도 루덴도르프를 눈여겨보고 있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예의 전차 건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루덴도르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침 참모본부 기동과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내 수하라는 이유도 있어서 슐리펜이 은퇴하기 전에 그를 전차 개발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임명했다.

“아직은 논의 단계지만, 다행히 아이넴 전쟁장관께서도 전차에 대해 흥미로워하시더군요. 덕분에 예산 확보는 순조로울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네. 그나저나 신임 참모총장을 만나러 오셨습니까?”

“예. 그런데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더군요.”

내 말에 이미 몰트케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루덴도르프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몰트케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짧게 찼다.

“몰트케 말고 다른 사람이 참모총장이 돼야 했었습니다. 솔직히 폐하의 총애가 아니었다면, 그가 과연 참모총장 자리에 올랐겠습니까?”

“저도 황제 폐하의 총애로 이 자리까지 올랐는데요?”

“남작님은 그 걸맞은 능력을 지니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몰트케는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제 삼촌의 반도 못 따라가는 자란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몰트케는 기존의 슐리펜 계획이 마음에 안 든다고 제멋대로 수정을 가해 가뜩이나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했던 슐리펜 계획을 더욱 혼파망으로 만들었던 죄가 있었으니까.

‘몰트케를 원 역사처럼 제1차 세계대전까지 참모총장으로 놔두긴 좀 그래.’

그가 나에게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호감을 느낀 것과는 별개로 몰트케는 참모총장으로서 능력도 부족했고 멘탈도 약했다.

그는 아무리 높게 쳐줘도 범장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란 전쟁을 범장에게 맡기기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내가 알기론 몰트케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뇌졸중을 일으켰을 정도로 건강이 상당히 안 좋았다고 하니, 이를 이용해 봐야지.’

실제로도 몰트케는 참모총장 자리에서 해임된 후 병세가 악화해 해임된 지 2년 만인 1916년에 사망한다.

몰트케의 안 좋은 건강 상태가 그의 심약한 정신 상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있던 만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참모총장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

가령 내가 목줄을 잡은 루덴도르프라든가.

‘그런데 루덴도르프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도 참모총장이 되기엔 짬이 부족하단 말이지.’

앞서 말했다시피 루덴도르프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부의 실권을 잡게 된 것은 타넨베르크 전투의 승리로 전쟁영웅이 된 덕분이었다.

게다가 카이저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빌헬름 2세는 루덴도르프를 싫어했기에 내가 루덴도르프를 참모총장으로 추천한다고 해도 과연 이를 들어줄지 의문이다.

“루덴도르프 중령님, 혹시 이 자리에 에리히 폰 팔켄하인 중령도 와 있습니까?”

“팔켄하인이요?”

목이 말랐는지 샴페인을 마시던 루덴도르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주변을 쭉 둘러봤다.

루덴도르프와 팔켄하인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의 병력 보강 문제로 사이가 나빴다고 들었는데, 아직은 데면데면한 사이인 모양이다.

“아, 저기 있네요. 그런데 팔켄하인 그자는 왜 찾으시는 겁니까?”

“예전에 황태자님께 이름을 들어서요. 이 기회에 한번 만나 보고 싶네요.”

나는 루덴도르프에게 그리 둘러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두툼한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Erich von Falkenhayn).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에 프로이센 전쟁장관으로 임명되는 인물이자 전쟁 초기 독일군의 작전을 말아먹어 카이저의 총애고 뭐고 다 잃고 내쫓긴 몰트케의 뒤를 이어 독일 제국 육군참모총장이 되는 인물이다.

팔켄하인은 윈스턴 처칠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독일군 장성 중 가장 유능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꽤 능력 있는 인물.

물론, 베르됭과 팔레스타인에선 죽을 쒔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루덴도르프는 군부 독재를 저지르며 나라를 말아먹었기에 루덴도르프도 써먹으려는 내가 이를 가지고 뭐라 하긴 좀 그랬다.

게다가 팔켄하인은 루덴도르프가 타넨베르크에서 승리를 거뒀던 것처럼 루마니아 전선에선 대활약했다는 확실한 전공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빌헬름 2세도 팔켄하인을 좋아하지.’

정작 루덴도르프를 포함해 힌덴부르크,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등 군부의 상당수는 팔켄하인을 싫어했다.

얼마나 적이 많았으면 베르됭 전투의 패배에도 군부 내의 비호감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나중 얘기고 지금 팔켄하인은 카이저의 총애를 받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빌헬름 황태자의 군사 교육을 담당하며 점점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황태자가 나에게 따로 그에 대해 말한 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역사를 따져 봤을 때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몰트케를 대체할 만한 사람으론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당장은 팔켄하인만 한 인물은 없었기에 나는 이참에 친분도 쌓을 겸 그에게 한번 접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 중령님?”

“음? 당신은…….”

“반갑습니다.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고 합니다. 황태자님께 중령님의 이름은 많이 들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팔켄하인은 갑자기 내가 말을 걸어올 것을 예상하진 못했는지 잠시 얼어붙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초이 남작. 남작의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유능하신 분이라고 황태자님의 칭찬이 자자하시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내 입에 발린 말이 싫지는 않은지 팔켄하인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팔켄하인은 전형적인 프로이센 군인이지만, 자고로 칭찬은 무뚝뚝한 프로이센 군인조차 춤추게 할 수 있는 법이다.

그 이후 나는 팔켄하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와 친분을 쌓았다.

인맥이란 것은 단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쌓아 올리는 것인 만큼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나는 그 밖에도 만프레트 리히트호펜의 당숙인 리히트호펜 대령, 뷜로의 형인 카를 폰 뷜로 등 군부의 유력자들과 안면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물론, 장성 상당수는 여전히 내가 고깝게 보였는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러한 노력이 언젠가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만약 맺지 못한다면 강제로라도 맺도록 만들어야겠지만.

* * *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드디어 독일 외무청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왜 외무부가 아니라 외무청이라면 나로선 독일 제국의 외교부서 이름이 원래 그렇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나중엔 이것이 일종의 전통 같은 것으로 변해서 현대 독일 또한 외교부서 이름이 여전히 외무청이다.

어쨌든 이곳엔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을 만나러 자주 왔었는데.

이젠 공식적으로 외무청의 일원이 돼서 이리 발걸음을 옮기게 되니 나름 감회가 새롭다.

“그래, 자네가 한스 폰 초이 남작이군.”

직원의 안내를 받아 외무장관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콧수염이 인상적인 신임 외무장관, 하인리히 폰 치르슈키 장관이 나를 맞이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치르슈키 장관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굳이 격식 차릴 것 없네. 어차피 난 1년만 이 자리에 있을 생각이니까.”

“예?”

출근하자마자 상사가 1년 뒤에 그만둔단다.

대체 여기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내가 외무장관을 맡은 건 어디까지나 오스발트 폰 리히트호펜 장관의 빈자리를 당장 메꿀 사람이 나 말고 없었기 때문이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난 외무장관 자리보다 대사직이 더 좋아.”

“아, 네…….”

“뷜로 총리가 내게 약속하길 임기를 마치면 빈으로 보내준다더군. 빈은 아름답고 좋은 곳이야.”

그러고 보니 치르슈키는 사라예보 사건 때도 주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대사로 있던가?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 인물이라 기억이 살짝 가물가물하다.

“하여튼 그때까진 잘 부탁하네. 그저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을 도와준 것처럼 날 도와주면 돼.”

“알겠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빈에 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치르슈키 장관에게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전임 보좌관이 인수인계한 서류를 차근차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때 직원 하나가 내게 무언가를 건네줬다.

“보좌관님, 보좌관님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요?”

편지가 왔다는 말에 서류를 내려놓고 내 앞으로 왔다는 편지를 건네받았다.

그러나 편지지에 쓰여 있는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눈을 찡그렸다.

“왜 그러는가?”

“이렇게 예상 못 한 편지를 받을 때마다 항상 머리 아픈 일이 일어나서요. 이번에도 다를 건 없어 보이네요.”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복잡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편지를 보낸 사람들의 이름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과 카를 요한 카우츠키(Karl Johann Kautsky).

독일 사민당(SPD)의 지도자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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