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슐리펜 계획 (2)
“전차(Panzer)?”
“장갑전투차량(Panzerkampfwagen)이란 단어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우시겠네요.”
“장갑차량이라니 지금 자동차에 옛날 기사들처럼 갑옷이라도 달잔 말인가?”
따지고 보면 비슷했다.
나는 수첩을 펼쳐 간단한 전차의 형태를 그려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슐리펜 참모총장에게 보여 줬다.
“이게 제가 생각하고 있는 전차의 모습입니다.”
물론 최초의 전차인 영국의 Mk 시리즈 같은 육상전함 같은 모습은 당연히 아니고 현대 전차의 아버지인 프랑스의 르노 FT-17을 참고했다.
개인적으론 Mk 시리즈나 프랑스의 생샤몽 전차 같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초창기 전차들로 좋아하긴 하지만, 이미 전차가 어떤 형태로 발전하는지 알고 있는 이상 굳이 먼 길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육상전함형 전차들은 느리고 험지 주파력도 떨어진 것도 모자라 가격도 비싸서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다.
실제로 Mk시리즈 중 가장 많이 생산된 Mk.Ⅳ가 약 1,200대가 생산된 것에 비해 르노 FT-17는 1917년부터 1918년에 종전될 때까지 단 1년 동안 약 3,400대가 생산되었으니까.
“무언가 내가 알고 있는 자동차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구만. 아니면 자네의 파멸적인 그림 실력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던가.”
“크흠. 중요한 것은 겉모습보단 어디까지나 성능 아니겠습니까?”
슐리펜의 농담 아닌 농담에 헛기침한 나는 슐리펜에게 최대한 간단하게 전차의 특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째, 기관총의 총탄을 방어하고, 포격에도 어느 정도 생존율을 보장하기 위해 차체 전체를 두꺼운 장갑으로 두릅니다.”
“흐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영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차량을 만들었던 적이 있지.”
아마 심즈 동력 전투차(Simms Motor War Car)를 말하는 모양이다.
1902년에 영국의 프레드릭 심즈(Frederick Richard Simm)란 사람이 개발한 물건으로 세계 최초의 장갑차 되시겠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의 만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전차 비슷한 병기를 구상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은 우리가 아는 전차와는 확연하게 달랐지만.
어쨌든 난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둘째, 대포와 기관총을 부착하여 화력을 확보합니다. 여기다 포탑을 전함의 주포 탑처럼 선회식으로 만들어 전 방향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듭니다.”
“셋째는?”
“철조망과 같은 방어물을 돌파하고, 험지 주행력을 확보하기 위해 바퀴 대신 무한궤도를 장착하는 겁니다.”
“무한궤도?”
슐리펜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훗날 Mk 시리즈에도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의 홀트 트랙터가 개발되기 이전이기에 이를 사례로 들 순 없었지만, 그래도 무한궤도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계속 발전 중이었다.
특히, 1901년에 등장한 롬바드 증기 통나무 운반차(Lombard Steam Log Hauler)는 무한궤도 차량 중 세계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둬 우리가 알고 있는 무한궤도의 형태가 정립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재미있군. 확실히 재미있는 생각이야! 이 전차라는 것을 앞세워 기관총과 철조망을 무력화시키고, 기관단총을 든 보병을 뒤따라 돌격시킨다면 일본군처럼 시체의 산을 쌓아 올릴 필요도 없겠어.”
독일군 최고의 두뇌답게 금방 전차의 가치를 알아본 슐리펜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전차의 탄생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서부전선 최후의 공세였던 백일전투 당시 떼거지로 몰려오는 협상국 기갑부대에 독일군 병사들은 6·25 때 북한군 전차를 맞닥뜨린 국군 병사들처럼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훗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전차로 유명해진 것은 이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어쨌든 여기에 비행기로 제공권을 확보해 하늘에서의 공격은 물론, 항공 정찰로 포병에게 적의 위치를 제공한다면 참호전은 더는 무적의 방패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걸리는 것이 하나 있군.”
“그게 무엇입니까?”
“지금 기술로 과연 이 전차라는 것을 만드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네. 내가 자동차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역시나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슐리펜의 말은 타당했다.
전차는 자동차공학의 결정체 같은 존재였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기술력으론 개발이 쉽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가 아직 상류층의 장난감이란 인식이 강한 시절이기에 더더욱.
어디까지나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커지는 것은 포드사가 포드 모델 T를 개발하고 자동차가 일반 대중에게 공급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대량생산과 차체 규격화는 말할 것도 없지.’
그래도 그 부분은 내 라디오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짧은 시간에 라디오를 전 세계로 대량으로 팔아치운 실적이 있으니, 어느 정도 설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만약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장인의 손길 운운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땐 나도 과격하게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 부분은 우선 독일 내 자동차 기업들의 말도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물론 그들이 전차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만족할 수준의 전차가 만들어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결국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든 기술자들을 걸레처럼 쥐어짤 수밖에 없겠죠.”
“자네 가끔 보면 무서운 소리가 아무렇지도 하는구만.”
슐리펜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차를 위해 갈려 나갈 공돌이들에게 동정심이 들긴 하지만, 갈려 나가는 것은 원래 공돌이들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아무튼, 전차에 대해선 내 참모총장 자리에서 은퇴하기 전에 일을 한번 진행 시켜 보도록 하지.”
슐리펜은 목이 탔는지 물을 마신 뒤,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나저나 자동차라. 난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여겼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보다 군사적으로도 꽤 가치가 있어 보이는군. 마켄젠에겐 미안하지만, 어쩌면 먼 미래엔 전차와 자동차가 기병을 대체할지도 모르겠어.”
“자동차는 장갑을 달아 총알을 막을 수 있지만, 말은 총알을 막지 못하니까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십 년 후면 전장에서 완전히 설 자리를 잃고 말겠죠.”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기병 자체는 여전히 쓰였다.
서부전선이야 참호전 때문에 기병의 활약이 많이 없었지만, 전선이 넓은 동부전선이나 중동전선 같은 경우엔 여전히 기병의 기동력과 충격력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전차와 장갑차, 오토바이, 비행기 등의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역할이 많이 제한되긴 했지만, 폴란드 기병대나 카자크 등 기병은 여전히 전장에서 활약했다.
‘독일군도 기병대를 동부전선에서 파르티잔 토벌 등에 활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기병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한국전쟁을 마지막으로 사막이나 초원 같은 특수한 환경을 가진 국가들을 제외하곤 전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하~자넨 역시 사관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슐리펜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내가 사관학교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군사학 강의는 들어 보게. 꼭 군인의 길을 걷지 않아도 나중에 꽤 도움이 될 테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하여튼 이 계획은 계속 다듬어야겠어. 군에서 은퇴하면 시간도 많아질 테니, 이곳에 쓸 시간도 많겠지. 한스, 자네도 종종 와서 의견을 들려주게나.”
나야 환영이다.
슐리펜 계획은 어찌 되었든 제1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작전 계획으로 활용될 여지가 크니까.
다만, 참호전에 대한 고민 때문인지 아직 자세한 계획이 짜인 것은 아니었지만, 지도를 얼핏 보니 슐리펜은 여전히 벨기에를 지나 프랑스를 공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벨기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영국이 독립보장을 한 국가라 아무리 우리가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고 한들 영국이 우리가 프랑스를 친다고 벨기에를 침공하는 것을 납득할 리가 없었다.
위신도 위신이거니와 영국은 저지대의 독립을 자국 안보의 핵심으로 여겼으니까.
게다가 우리가 벨기에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해도 벨기에 밑에 떡하니 프랑스가 버티고 있는 이상, 벨기에는 중립을 유지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벨기에에 정명가도 마냥 길을 열어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꼭 우리가 벨기에를 침공할 필요가 있나?”
나는 문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의문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물론, 원 역사의 슐리펜처럼 막연히 ‘전쟁이 벌어지면 프랑스는 독일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악수로 생각할 테니, 분명 벨기에를 공격해 우리 방어선을 우회하려 들 것이다. 우리는 벨기에를 우방국 삼아 벨기에를 통과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고, 이러한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정말 프랑스가 독일 대신 벨기에를 침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비스마르크가 엠스 전보 사건으로 프랑스를 낚아 먼저 독일에 선전포고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한번 계획을 세워 봐야겠어.’
내 계획은 어디까지나 슐리펜 계획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한 지금 시점에선 아직 구상 정도에 불과했다.
또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니, 플랜 B도 생각해 놔야 했다.
그러나 한번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 * *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전반기와 달리 1905년 후반기는 바쁘긴 했지만 나름 평온했다.
내가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슐리펜과 함께 집에서 슐리펜 계획에 대한 의견을 계속 주고받는 사이, 브라도프 씨가 지휘하는 DRR은 나와 에드워드 7세와의 약속에 따라 영국에 라디오를 보급하고, 방송국을 설립하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라이트 형제는 하인리히 왕자의 비행 장면을 찍은 영화가 큰 인기를 끌며 비행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자 흐름을 놓치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비행기를 홍보하러 돌아다녔다.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체펠린 백작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비행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렇게 세상이 여러모로 시끄럽게 돌아가는 와중, 빌헬름 황태자는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체칠리에 황태자비가 벌써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러모로 뜨거운 신혼생활을 보내신 모양이군요. 황태자님.”
“크흠, 동생들에 이어 한스 너까지 날 놀리는 거냐?”
나와 같이 황태자궁(Kronprinzenpalais)을 방문한 루이제가 자신의 첫 조카가 들어 있는 체칠리에 황태자비의 배를 신기하단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빌헬름 황태자가 민망해하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자신이 곧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쁜 모양이다.
‘그나저나 빌헬름 황태자의 첫 자식이면 아마 빌헬름 왕자던가?’
빌어먹을 유럽 왕실 작명법 같으니.
황제도 빌헬름에 황태자도 빌헬름이고, 황태손까지 빌헬름이라 헷갈려 죽겠다.
어쨌든 빌헬름 왕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달리 그리 유명한 인물은 아니기에 나도 그에 대해선 잘 몰랐다.
내가 빌헬름 왕자에 대해 아는 사실이라곤 나중에 빌헬름 2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천상혼을 해서 왕위계승권이 박탈되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단 것뿐이다.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왕자의 여러모로 참 기구한 인생에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이 든다.
이 세계에선 그의 인생이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그나저나 루이제하곤 잘되고 있냐?”
“얼마 전엔 드레스덴에 같이 다녀왔어요. 슈트라우스 씨의 오페라 초연에 초대받았거든요.”
“엥? 그거 살로메 아니야? 그걸 데이트로 보고 왔다고?”
“……제가 보러 가자고 한 거 아닙니다.”
빌헬름 황태자의 어이없다는 목소리에 나는 민망한 목소리로 변명하듯 대답했다.
나는 망설였지만, 루이제가 꼭 같이 보러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어쩐지 덥네.”
“……그러게.”
그 결과는 굳이 말로 안 해도 알 것이다.
살로메는 아직 우리에게 이르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1905년이 지나고 1906년이 찾아왔다.
새해가 되자마자 알프레트 폰 슐리펜은 육군 참모총장직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슐리펜 백작. 오십 년 넘게 이어져 온 자네의 헌신을 독일 제국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네.”
“감사합니다. 폐하. 저 또한 폐하를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슐리펜 참모총장 아니, 슐리펜 백작이 빌헬름 2세에게 마지막으로 경례를 올렸다.
이내 그가 뒤로 돌며 궁을 나서자 뷜로 총리를 비롯한 그의 은퇴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슐리펜에게 경례를 올리며 슐리펜의 군인 인생 마지막 순간을 장식했다.
“좋아. 이제 귀찮은 일에서도 해방되었으니 계획에만 집중할 수 있겠군. 한스 군, 자네도 더 자주 우리 집에 찾아오게나.”
정작 슐리펜은 자신의 은퇴를 안타까워하긴커녕 어서 슐리펜 계획을 완성하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말이다.
어째 참모총장 시절보다 더 활기차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일까?
그러나 슐리펜의 은퇴식이 끝나고 불과 며칠 후.
내게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한스,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사망했다는구나.”
“예?”
빌헬름 2세가 어두운 얼굴로 말하자 나는 손에 있던 들고 있던 펜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1906년 1월 17일.
내 든든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던 오스발트 폰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