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 RED
러시아 제국은 낡은 국가다.
정치도, 사회도, 심지어 사람들조차 낡아 빠진 국가였다.
서방의 시민들이 제 권리를 찾고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을 때 러시아의 농노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 채 여전히 그들의 주인에게 순종했다.
저 서방의 군주들과 귀족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씩 자신들의 권력을 국민에게 양보하기 시작했을 때도 차르와 귀족들은 여전히 전 러시아 인민들의 절대자로 군림하고자 했다.
그러나 혁명의 도시 파리에서 대혁명이 일어나 시민들이 무능한 국왕의 목을 자른 이후 러시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독재자 나폴레옹은 전 유럽에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를 퍼트렸고 나폴레옹의 대육군과 싸우면서 프랑스식 자유주의를 맛본 러시아의 젊은 장교들은 데카브리스트 난을 일으키며 러시아를 바꾸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데카브리스트의 장교들은 실패했고, 대다수가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돼 시베리아의 교역 도시인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며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부흥하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데카브리스트의 난은 러시아를 낡은 채로 유지하려는 차르와 러시아를 혁신하고자 하는 혁명가들의 기나긴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 이후에도 혁명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차르와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혁명가들을 목매거나 차디찬 시베리아로 쫓아냈고, 혁명가들은 혁명가대로 폭탄과 권총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 제국의 혁명은 멀어도 너무 먼 꿈이었다.
혁명가들은 러시아 제국의 탄압과 오흐라나의 추적 속에서 은행강도 짓이나 하며 여전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1904년 12월 13일.
아직도 낡아 빠진 율리우스력을 고수하는 러시아 정교회 달력으론 11월 30일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성 안드레이 축일의 학살.
혹은 피의 화요일이라 불러도 좋았다.
이름이 어떻든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광장 앞에서 빵과 평화를 외치던 순박한 노동자들이 차르에게 떼죽음을 당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피가 어머니 러시아의 대지를 적시니 온 러시아가 들고 일어났다.
꿈에도 그리던 혁명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러시아 제국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도망쳤던 혁명가들은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들은 총파업을 주도하고, 귀족들을 암살하며 러시아 제국의 혼란을 부추겼다.
이번에야말로 낡은 제국과 차르를 무너트리기 위해.
그러나 세르게이 비테와 혁명가들의 주적으로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내무장관 스톨리핀이 모든 일을 망쳤다.
그자들은 개혁을 약속하며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동시에 혁명가들을 각지에서 가차 없이 때려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톨리핀이 오흐라나를 총동원해 본격적으로 혁명가들을 체포하기 시작하면서 훗날 제1차 러시아 혁명이라 이름 붙을 혁명가들의 꿈은 또다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 * *
1905년 8월, 러시아 어딘가의 폐건물.
“레닌 동지! 무사하셨군요!”
“동무들도 용케 오흐라나에게 잡히지 않았군.”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훗날 러시아 제국을 무너트리고 소비에트 연방을 건국하며 전 세계를 적색 공포로 떨게 했던 붉은 천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어두운 얼굴로 씁쓸하게 웃음 짓는 혁명 동지들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1900년에 러시아 제국을 떠나 서유럽 여기저기를 떠돌던 레닌은 성 안드레이 축일의 학살을 보자마자 러시아로 돌아와 총파업을 주도하는 동시에 이번에야말로 러시아 제국을 무력으로 전복하고 즉각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 특유의 파벌 다툼이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당 기관지인 이스크라의 편집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을 시작으로 레닌과 갈라선 율리 마트로프가 이끄는 멘셰비키가 레닌과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의 방식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한데 뭉쳐서 싸워도 부족할 상황에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는 격렬한 갈등을 일으켰다.
레닌은 여전히 평화로운 혁명이란 헛된 이상에 사로잡힌 채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마트로프와 멘셰비키에게 진저리를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는 니콜라이 2세의 7월 선언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며 발을 떼는 태도를 보였다.
레닌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시대의 흐름을 전혀 보지 못하는 무능한 차르가 제대로 약속을 지킬 것 같은가?
그가 보기엔 절대 아니었다.
차르와 귀족들은 러시아 전역을 뒤엎은 혁명의 불길이 가라앉으면 분명 얼마 안 가 러시아 인민과의 약속을 뒤집고 옛날로 되돌아가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들은 차르가 제 손으로 제 목을 조르는 것에 환호했으면 환호했지 이를 막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자고로 정부가 계속 멍청하게 굴어야 혁명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인기스타인 스톨리핀을 경계했다.
이 자는 수완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게다가 개혁파인 비테와 행보를 같이하고 있으니, 레닌과 혁명가들에겐 니콜라이 2세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였다.
모순적인 일이지만 혁명가들에게 있어 잔인하고 무능한 인물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만, 유능하고 개혁적인 인물은 혁명을 방해하는 장애물 그 자체다.
러시아 제국이 개혁을 통해 정상적인 국가로 변한다면 더는 그 어떤 인민들도 혁명을 지지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레닌은 혁명의 성공을 위해선 반드시 스톨리핀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다른 이들의 소식은 뭐 들은 것 없나?”
“율리 마트로프는 오흐라나에 체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트로츠키 동지도요.”
“트로츠키 동지가?”
“네.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레닌과 멘셰비키의 지도자 마르토프에 이은 거물 혁명가였던 트로츠키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레닌은 침음성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교수형이 아닌 시베리아 유배로 끝났다 하니, 곧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비롯한 혁명가들에게 있어 시베리아 탈출은 일상적인 일인 일이었으니까.
러시아 제국 시절, 시베리아 유형지는 스탈린 시대와 달리 경비가 상당히 느슨한 편이었고, 혁명가들은 밥 먹듯이 시베리아를 탈출했다.
그렇기에 레닌은 트로츠키가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는 소식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스톨리핀의 딸이 공산주의자에게 폭탄 테러를 당하기 이전이라 스톨리핀의 넥타이의 악명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덕이었다.
“나도 서둘러 외국으로 떠나야겠군. 스톨리핀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이번엔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우선, 스위스로 몸을 피할 생각이네.”
그리 말한 레닌의 얼굴은 안타까움과 미련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망명은 이미 익숙한 일이지만, 이번에 러시아를 떠나면 그가 조국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
실제로 원 역사에서 1905년 혁명의 실패로 오흐라나의 추적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레닌이 다시 러시아 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1917년이 돼서였다.
이때 레닌은 자신을 이용해 러시아 제국을 전쟁에서 이탈시키려는 독일 제국에 의해 봉인 열차에 실려 러시아로 보내졌고, 독일의 기대대로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며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더 지나야 일어나는 일이었고, 이 사실을 모르는 레닌은 착잡함을 숨기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혁명은 실패했군요.”
“동지…….”
“노동자들이 차르의 궁전 앞에서 학살당했음에도 러시아 제국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레닌 동지, 과연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차르와 귀족들이 몰락하고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요?”
혁명가 하나가 답을 구하는 절박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레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강철의 정신을 가진 혁명가인 그조차도 수없이 해 왔던 질문이었고, 쉽사리 답하지 못했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혁명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던 1905년 혁명이 결국 혁명가들의 패배로 끝난 직후이다.
강철 같은 레닌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은 정말로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까?
러시아 제국과 차르를 몰아내고 꿈에도 그리던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
레닌을 비롯한 모두가 그리 자신에게 되물으며 침묵했다.
그때였다.
“일어나라, 저주받을 낙인이 찍힌, 전 세계의 굶주린 이들과 노예들이여(Вставай, проклятьем заклеймённый, Весь мир голодных и рабов).”
레닌의 옆에 서 있던 이름 없는 노동자가 갑자기 입을 열고 노래를 부르며 무거운 침묵을 깨트렸다.
인터내셔널가(Интернационал).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의 선배들이 영광스러운 최초의 공산 국가, 파리 코뮌에서 부른 붉은 혁명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레닌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격분한 우리의 정신이 끓어올라 생사를 건 투쟁으로 인도할 각오가 되었노라.”
그것을 시작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이 하날 둘씩 인터내셔널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듀엣은 트리오로, 트리오는 콰르텟으로, 콰르텟은 퀸텟으로, 그리고 퀸텟은 어느새 뜨거운 합창이 되어 어두운 폐건물 안을 가득 메웠다.
“전 세계의 강압을, 우리는 뿌리째 뽑으리라. 그 후에 우리는,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리라.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가 세상 전부가 되리라!”
레닌과 혁명가들은 눈물을 흘리고, 울분을 토해 내며 목놓아 인터내셔널가를 부르짖었다.
아, 기립하시오. 기립하시오. 이것이 바로 인터내셔널일지니 죽어서도 살아서도 혁명만을 꿈꾸는 이들의 노래로다.
“이는 우리 최후의 그리고 결정적인 쟁투이니, 인터내셔널과 함께 인류는 되살아나리라!”
이윽고 혁명가들의 합창이 끝나자 레닌은 동지들을 향해 말했다.
흔들렸던 자신을 향해 다짐하듯이 소리쳤다.
“오늘 이 노래를 잊지 마시오. 동무들. 오늘 흘린 눈물과 이 뜨거운 감정을 절대 잊지 마시오.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는 반드시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올 것이오!”
우리가 다시 돌아오는 날.
낡아빠진 제국은 무너지고, 그 잔해 위에 혁명의 나라가 새롭게 세워지리라.
* * *
레닌이 러시아를 떠나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에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눈앞에서 기적을 목도하고 있었다.
“오오, 알렉세이가 이토록 평안한 모습으로 잠들다니!”
“기적입니다. 폐하, 기적이에요!”
“고맙네. 정말 고마워!”
“허허허, 제가 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다. 모두 주께서 도우신 덕분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알렉세이가 고통에 울부짖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모습이 되자 니콜라이 2세는 눈물을 흘리며 눈앞의 커다란 신부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나 신부는 여전히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오로지 전능하신 주를 찬양했다.
차르 부부는 그러한 신부의 겸허하고 신앙심 깊은 모습에 오히려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사람은 자신들과 알렉세이를 가엽게 여기신 주께서 보내신 귀인이다.
처음엔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가 귀족들 사이에 떠도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신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황궁으로 초청한 것에 불과했지만, 소문은 정말이었다.
보라. 그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했던 알렉세이가 차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주의 기적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겐 자네 같은 인물이 내게 필요하네. 라스푸틴. 앞으로도 내 옆에서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러시아 제국을 도와주시게나.”
짜증 나는 비테가 알면 또 잔소리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의 친척인 빌헬름 2세도 귀족들의 반발을 감수하고 그의 목숨을 구한 한스 폰 초이라는 소년을 옆에 두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니콜라이 2세 자신이라고 빌리처럼 못할 것은 없었다.
눈앞의 신부는 자신의, 러시아의 한스 폰 초이가 될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이 미력한 몸이 폐하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그저 기쁘기 그지없을 따름입니다.”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에 일조한 요승,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Григо́рий Ефи́мович Распу́тин)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