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사이언스 & 어드벤처 (2)
하인리히 왕자가 비행기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비행기?”
[그래. 나는 잘은 모르겠는데, 하늘을 나는 기계라나 봐.]
“호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그런 게 나왔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
여동생인 마르가레테 공주와의 전화 통화 중 비행기와 비행기를 만든 미국인 형제가 독일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하인리히 왕자.
처음엔 그저 가족 일로 잠깐 물을 게 있어서 여동생에게 전화했을 뿐인 하인리히 왕자의 얼굴이 흥미와 호기심으로 물들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하인리히 왕자는 요트 같은 스릴 있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스릴광이었고, 형인 빌헬름 2세와 달리 자동차 같은 새로운 발명품에도 환장했다.
그런 하인리히 왕자가 스릴과 지금까지 보지 못한 탈것이란 조건을 모두 갖춘 비행기에 관심을 안 보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실제로 하인리히 왕자가 원 역사에서 독일 제국 최초로 비행기 조종 면허를 획득한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걸 안 볼 수야 없지.”
하인리히 왕자는 곧장 휴가를 내고 비행기라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곧바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그리고 한스가 비행기 공장을 세웠다는 곳에 거의 도착했을 때 왕자는 보았다.
부우우웅~
“!!!”
마침 한스와 테슬라에게 비행을 보여 주기 위해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는 플라이어 3호의 모습을.
“뭐, 뭐야? 저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어!”
교외에서 산책과 소풍을 즐기다 하늘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위로 향한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처음 보는 비행기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하인리히 왕자는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끝내준다!’
하인리히 왕자는 자신이 저 비행기에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기분은 분명 지금까지 왕자가 겪었던 그 어떤 경험보다 최고이리라.
스릴광의 피가 오랜만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하인리히 왕자는 도저히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왕자는 서둘러 비행기 공장으로 향했다.
“절대 안 됩니다!”
물론,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는 하인리히 왕자를 마주한 한스는 마치 눈앞에서 폭탄이 터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말이다.
* * *
“한스, 어째서 안 된다는 거냐!”
절대로 비행기에 못 태운다는 내 말에 하인리히 왕자가 적반하장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냐며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지만, 하인리히 왕자는 여전히 고집불통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 쉬며 그 이유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그거야 위험하니까 그렇죠. 만약 사고라도 일어나면 제가 왕자비님 얼굴을 대체 어떻게 보라고요?”
하인리히 왕자가 비행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까지는 좋다. 오히려 환영한다.
그러나 하인리히 왕자가 비행기를 직접 타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21세기에도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 비행이다.
그런데 그것을 안전장치 하나 없는 플라이어3호로 한다?
그것도 비행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적 없는 초보자가?
‘사고가 터질 게 분명하잖아!’
게다가 하인리히 왕자쯤 되는 인물이 비행기 사고를 당하면 아직 제대로 삽도 떠 보지 못한 비행기의 평판이 어찌 될 것인지 뻔했다.
잘못하면 독일 제국 내에서 비행기의 ‘비’자도 꺼내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전하? 왕자님? 제가 보기에도 생각을 바꾸시는 편이 좋을 듯싶습니다. 기체의 안정성도 안정성이지만 하늘이란 게 워낙 변덕스러워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옆에 서 있던 오빌 라이트도 이를 알기에 창백한 얼굴로 하인리히 왕자를 급구 만류했다.
하지만 하인리히 왕자는 어떻게든 비행기를 타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닌가!”
“?!”
“그리고 지금 비행기를 타고 있는 친구는 멀쩡히 날아다니고 있잖나!”
“그거야 저기 타 있는 사람은 비행기를 만든 장본이니까요.”
라이트 형제는 어디까지나 연구를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뿐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말이다.
게다가 만든 사람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그 누가 비행기를 타겠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스, 어떻게든 안 되겠냐?”
“그렇게 보셔도 안 됩니다. 정 비행기에 타고 싶으시면 왕자비님과 카이저 폐하께 먼저 허락을 맡고 오세요.”
내가 허락을 받지 않고는 절대 비행기를 못 태워 준다고 단언하자 하인리히 왕자가 침음성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물론 허락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하는 소리다.
‘설마하니 내가 갈리폴리 그 양반의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이야.’
전생에 봤던 엘리자베스 2세를 다룬 드라마가 떠오른다.
거기서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 마운트배튼이 비행 연습에 푹 빠지니 처칠이 위험하니까 당장 그만두게 하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는 처칠이 참 꼰대 같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비슷한 상황을 직접 겪어 보니, 조금은 처칠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조금이지만.
“쯧, 하는 수 없지. 네 말대로 하마.”
결국, 하인리히 왕자가 혀를 차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물론 어떻게든 허락을 받고 말겠다는 저 결연한 표정을 보아 하인리히 왕자는 아직 비행기를 타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괜히 신경 쓰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오빌 씨.”
“아닙니다. 왕족분들이 비행기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죠. 미국 정치인들은 관심은커녕 저흴 무시했거든요.”
“그 기분 나도 잘 알지.”
오빌 라이트가 ‘그땐 그랬지’ 하는 아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테슬라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어쩐지 피곤하네요.”
“하하……. 윌버 형에게 착륙하라고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하인리히 왕자로 흥분한 머리를 좀 식힐 겸 프리츠 하버나 만나러 가야겠다.
마침 후원을 하고 싶다는 내 제안에 하버가 날 만나고 싶다고 요청한 상태다.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해 기아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동시에 독가스로 제1차 세계대전을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두 얼굴을 가진 과학자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 *
“남작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운전 기사에게 감사의 뜻으로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동차에서 내렸다.
카를스루에 공과 대학교(Karlsruher Institut für Technologie).
프리츠 하버는 현재 이곳에서 부교수로 일하며 후에 하버-보슈법이라 불릴 암모니아 합성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아직 성과는 별로 없었지만.
“저기 프리츠 하버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네? 어, 혹시 한스 폰 초이 남작님이신가요?”
지나가던 대학 직원에게 하버가 있는 곳을 물었더니 대학 직원이 날 알아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덕분에 근처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집중되었다.
조용히 하버나 만나고 가려 했던 나는 원치 않은 관심에 떨떠름함을 느끼며 어째선지 눈을 반짝이고 있는 직원에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오, 불멸의 리 제독은 잘 읽었습니다!”
아, 그쪽인가.
그나저나 참 오랜만에 보는 반응이다.
“혹시 신작은 쓰실 생각 없나요?”
“하하, 제가 요즘 바빠서요.”
라디오라든가, 후원 문제라든가.
그게 아니더라도 이 이상 소설을 쓸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원래부터 용돈 벌이로 시작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난 아직 아달베르트 왕자로 인해 겪은 정신적 고통을 잊지 않았다.
아마 내가 다시 펜을 잡게 된다면, 적어도 내가 은퇴하고 나서일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불멸의 리 제독이 라디오 드라마로 나올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와, 정말이요?”
“네네. 그것보다 하버 씨는….”
“아, 하버 부교수님은 저 건물에 계세요. 3층에 있는 화학 연구실로 가시면 됩니다,”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채 그가 가리킨 건물로 향했다.
“프리츠 하버 씨?”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직원이 말한 대로 불 켜진 연구실에서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콧수염의 중년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은……. 아! 한스 폰 초이 남작님이시군요. 카를스루에까지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나를 금방 알아본 하버는 연구 중이었는지 손에 스포이트와 시험관을 집은 상태로 나를 향해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러곤 이내 자신의 모습이 손님을 맞이하기엔 부적절한 모습이란 것을 깨달았는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것들만 치우고 바로 제 사무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내 말에 하버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조교와 노예, 아니 대학원생들과 함께 서둘러 책상 위에서 실험 도구를 치웠다.
“자, 이리 오시죠.”
백의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건 하버가 나를 근처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단정하게 정리된 하버의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방을 엉망으로 해 놓는 테슬라와 달리 하버는 깔끔한 성격인 듯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 하버가 커피를 타 오는 것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온 것은 오랜만이라 저도 모르게 행동이 굼떠지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오히려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던데요. 뭘.”
내 칭찬에 하버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에게 긁적일 머리는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나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기에 진실을 입에 담는 무례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제 연구를 후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하버 씨께서 연구 중이신 암모니아 합성법만 완성되면 맬서스 트랩을 깨부수고 인류의 굶주림을 끝낼 수 있을 테니까요.”
다들 알다시피 21세기가 되어서도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기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모니아 합성법과 이로 인한 질소 비료의 대량생산이 가져온 결과가 작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1913년에 약 17억에서 18억에 불과했던 세계 인구가 100년 뒤인 2013년엔 약 70억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 것은 하버-보슈법이 가져온 식량 생산량의 극적인 증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테니까.
‘괜히 하버가 인류의 구원자로 불리는 것이 아니지.’
“제 생각도 남작님과 같습니다. 물론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도전해 왔지만, 실패했을 정도로 힘든 연구입니다. 아직 그리 많은 성과도 없고요. 위대한 조국 도이칠란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 힘들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하! 남작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하버는 귀인을 이제야 만났다는 듯 내 손을 잡고 싱글벙글 웃었지만, 나는 하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론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아니까.’
프리츠 하버는 유대인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독일 제국에 충성했다.
과학자인 동시에 독일 제국의 애국자이자 대부분의 독일인처럼 군국주의자였다.
그리고 하버의 애국심은 참호전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독가스의 개발로 이어졌다.
하버는 그 누구보다 독가스 사용에 앞장섰고, 독일의 화학전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인류의 구원자인 동시에 학살자라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나로선 독가스 건으로 하버를 무작정 비판하기도 그랬다.
테슬라도 그렇고, 라이트 형제도 그렇고, 과학자들의 발명품을 전쟁에 써먹으려고 하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과학자는 평시에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시에는 국가에 속한다인가.’
실제로 나중에 하버가 직접 한 말이었다.
세계대전 당시 과학자들은 애국심과 인류애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고, 하버는 전자를 따랐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세계대전이 만든 수많은 비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독가스 건은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빠른 하버-보슈법의 완성이 우선이었다.
머지않아 독일엔 빵뿐만 아니라 총알도 아주 많이 필요할 테니까.
“하버 씨의 연구가 꼭 성공하길 기대합니다.”
“네. 반드시 암모니아 합성법을 완성해서 독일 제국에 큰 보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하버는 손을 마주 잡은 채 하하 호호 웃으며 헤어졌다.
그러나 포츠담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하인리히 왕자님? 지금 뭐라고 하셨죠?”
“이레네와 형님이 비행해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말했단다. 한스! 이제 비행기에 타도 되지?”
오, 하느님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