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100화 (100/193)

100화 : 독영협상 (2)

[밸푸어 내각, 영독협상 공식 발표! 대영제국과 독일 제국이 손을 잡다!]

[힘을 합친 빅토리아의 아이들. 울상 짓는 프랑스와 러시아!]

[외교적 판도를 뒤흔든 영독협상. 충격에 휩싸인 전 세계!]

“다행히 국민의 반응은 나쁘지 않군.”

아마 모로코 위기 때문에 영국 내에서 프랑스와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고, 독일에 대한 호감이 오른 덕분일 것이다.

중얼거리던 에드워드 7세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쓰고 있던 안경을 신문 위에 내려놓았다.

설마 자신의 치세에 독일과 동맹을 맺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대영제국에 있어서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영국은 독일과의 동맹을 통해 영광스러운 고립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프랑스와 러시아를 견제해 줄 친구를 맞이했다.

게다가 독일과의 동맹은 공식적으론 군사동맹이 아니었던 만큼, 설령 삼국동맹과 러불동맹 간의 전쟁이 벌어져도 영국은 뒤로 빠져 독일을 지원해 주기만 그만이다.

옛 7년 전쟁 때처럼 말이다.

물론, 7년 전쟁 때 영국이 어떻게 프로이센의 뒤통수를 쳤는지 알고 있는 한스는 물귀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영국을 독일과 같이 세계대전이란 수렁으로 빠트릴 작정이었지만.

에드워드 7세가 지금으로선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걸로 해군도 한숨 돌릴 수 있겠어. 피셔 제독이 좋아할 테지.”

본래 피셔는 독일의 해군 증강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독일과의 동맹에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어차피 전 세계가 건함경쟁으로 미쳐 돌아가고 있는 이상,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과 손을 잡으면 영국 해군력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전력에 구멍이 생긴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반대했던 구식 함선들을 처분하고, 그 돈으로 신형 함선들을 건조하자는 자신의 계획을 이번에야말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피셔 제독에겐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그나저나 문제는 역시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인가.”

러시아야 원래 영국과는 대치 관계였고, 자국의 혼란 때문에 외부 정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나마 조용했지만, 프랑스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독일 제국을 파트너로 선택한 이상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에드워드 7세의 생각대로 프랑스 정계는 드레퓌스 사건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활화산처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건 야합이요! 야합! 우리 위대한 프랑스는 절대 영국과 독일의 더러운 야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옳소! 옳소!”

프랑스 신임 총리 모리스 루비에(Maurice Pierre Rouvier)가 얼굴을 붉히며 의회 연단에서 그리 부르짖자 프랑스 정치인들이 한 몸이 되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지금 이곳엔 우익도, 좌익도 없었다.

영국 해적들과 프로이센 돼지들이 손을 잡은 것에 분노하는 프랑스인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영국인들은 독일과의 동맹이 군사적 의미를 띄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영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오래된 진리. 우리는 위협으로부터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동맹인 러시아 제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야 하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정계는 좌익진영을 중심으로 피의 화요일을 일으킨 니콜라이 2세와 러시아 정부를 연일 비판했지만, 지금은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정의로부터 눈을 돌려야 할 때였다.

그리고 그 대의란 토미와 프리츠의 사악한 동맹으로부터 유럽을, 그리고 프랑스를 지키는 일이었다.

프랑스인들은 그를 위해서라면 러시아 제국뿐만 아니라 그 어떤 개자식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는 프랑스가 독영협상의 등장에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미 독영협상은 해군력으론 러불동맹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었고, 삼국동맹의 일원이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몰래 프랑스와 비밀 조약을 맺고 있던 이탈리아까지 요동치고 있었다.

프랑스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독기를 품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로코 위기를 일으키며 얘네가 정말 자신들의 동맹인지 의심이 가는 러시아 제국을 어떻게든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인제 와서 독일과 영국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프랑스의 선택지에 없었으니까.

정작 프랑스의 동맹인 러시아 제국은 독영협상이고 뭐고 농민과 노동자들의 소요를 진정시키고 러시아 전역에서 날뛰는 혁명 세력을 때려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 * *

“결국, 그렇게 되었군.”

독영협상이 성사되었단 소식에 세르게이 비테가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로코 위기 때부터 조짐은 있었다지만, 결국 독일이 영국과 손을 잡았다.

러시아와 두 나라 간의 관계가 관계였던 만큼 러시아 제국에 있어선 골치 아픈 일이었다.

물론 독일과는 러일전쟁 건으로 협력했다지만, 결국엔 임시적인 협력관계에 불과했을 뿐인지라 더 이상의 관계 진전은 어려웠을 터였다.

한스 폰 초이, 그 소년은 여기까지 예상한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비테는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보고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때려잡고 때려잡아도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동과 소요는 아직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농민들과 노동자들도 문제이지만, 이들을 부추기는 선동가들과 독립을 외치는 폴란드인과 핀란드인들을 비롯한 피지배 민족들도 비테의 속을 썩이고 있었다.

“역시 러시아 제국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줘서 국민의 분노를 달래는 수밖에 없어.”

즉, 개혁이었다.

오로지 전제군주제만이 옳은 길이라 믿고 있는 니콜라이 2세와 러시아 귀족들은 반기지 않겠지만, 비테가 보기엔 이것 말곤 답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러시아 제국으론 더는 이 험난한 시대의 폭풍을 헤쳐 나가지 못할 테니까.

적어도 의회를 설치하고, 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해 인민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며 헌법 질서를 구축해 입헌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민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자들 같은 온건파들을 다시 이쪽으로 끌어들여 혁명을 주장하는 극좌세력을 고립시킬 수 있었다.

“응?”

비테가 그렇게 러시아 제국의 새로운 미래에 대해 구상하는 사이, 한 장의 보고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호오.”

찬찬히 보고서를 살펴보던 비테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 보고서는 사라토프에서 보내 온 것으로 분노한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진정시킨 것도 모자라 성공적으로 소요사태를 진압했다는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라토프는 혼란에서 벗어나긴커녕 이를 감당하지 못한 채 비명만 질러 대고 있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벌써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단 모양이다.

그 과정과 결말이 너무나도 깔끔하고 완벽했던지라 비테는 대체 누가 일을 이렇게 마음에 쏙 들도록 처리했는지 호기심이 들었다.

“어디 보자. 사라토프 주지사, 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Пётр Арка́дьевич Столы́пин)이라.”

비테는 그 스톨리핀이란 자의 경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허, 이거 자세히 보니 그냥 대단한 친구가 아니었구만?”

비테가 살펴본 바로는 스톨리핀은 농업을 비롯한 경제에도 일가견이 있었을뿐더러 뛰어난 행정가였다.

게다가 혁명가들을 때려잡고, 자신이 맡은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건 그저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런 인재를 놓치고 있었을 줄이야. 천상에 계신 주께서 우리 러시아 제국을 아직 버리지 않으신 모양이군.”

표트르 스톨리핀.

정말이지 탐나는 인재인 동시에 지금의 러시아 제국에 꼭 필요한 인재다.

“비서, 사람 하나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데려와야겠네.”

이런 인재를 일개 주지사로 두는 것은 러시아 제국의 손해였다.

그렇게 세르게이 비테의 뒤를 잇는 러시아 제국 최후의 명재상 표트르 스톨리핀이 원 역사보다 빨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발을 딛게 되었다.

이 또한 바뀐 역사로 인한 소소한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 * *

1905년 1월.

세계의 외교 판도를 뒤집은 독영협상은 독일 내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독일인들은 1907년에 빌헬름 2세가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나 사실 영국 좋아한다는 등 온갖 망언을 내뱉었을 때 얼굴을 찌푸렸던 것처럼 영국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정말로 영국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오만한 라이벌 의식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정말 독일과 영국이 동맹을 맺자 불만스러운 반응도 있었지만, 모로코 위기 때 함께 행동했던 것도 있어서 그런지 다행히도 대부분 영국과의 동맹을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꿩 대신 닭이라고, 적어도 프랑스와 러시아보단 영국이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내 관심은 독영협상과는 다른 의미로 세상을 흔들어 놓을 세기의 실험에 집중되어 있었다.

“테슬라 씨. 이거 그냥 이대로 말하면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남작님.”

나는 테슬라의 말에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잠긴 목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앞의 카본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아~아~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치직~아~아~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를 통해 방 안에 가득히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

그와 동시에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커다란 상자 모양의 기계에서도 내 목소리가 잡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바로, 테슬라에 의해 드디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세계 최초의 라디오였다.

나는 잘 작동되는 라디오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들뜬 얼굴로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조선 수병들을 리 제독은 묵묵히 바라봤다. 일본 해군의 압도적인 전력, 그에 비해 13척의 함선만이 남은 조선 해군의 암울한 상황. 리 제독조차 이번만큼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러나 리 제독은 언제나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병법에 이르기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싸우고자 하면 살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들은 함장들이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불멸의 리 제독을 낭독해 보기도 하고,

“오, 전나무여~오, 전나무여~너의 잎은 정말 신실하구나~너는 여름에도 푸른가~? 아니, 너는 눈 내리는 겨울에도 푸르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치직─! 오, 전나무여~오, 전나무여~너의 잎은 정말…… 치직─치지직──! 신실하구나~너는 여름에도 푸른가~? 치지직─! 아니, 너는 눈 내리는 겨울에도 푸르지~♪]

눈앞에 있는 라디오는 잡음이 좀 있긴 해도 듣는 것엔 커다란 불편이 없을 정도로 나름 만족스러운 음질을 뽑아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 있는 라디오가 아니었다.

바로, 독일 전국에 배치해 둔 라디오들이었다.

베를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라디오들이, 내 눈앞의 라디오와 비슷한 성능을 내야지만 비로소 라디오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때르르릉~!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가 내 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전화벨 소리였다.

나는 긴장된 얼굴로 테슬라를 한 번 바라보곤 심호흡을 하며 수화기를 잡았다.

어째 독영협상을 체결할 때보다 더 심장이 떨리는 느낌이다.

“여보세요?”

[아, 한스.]

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것은 포츠담 신궁전에 라디오를 듣고 있던 빅토리아 루이제였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루이제에게 라디오는 어땠는지 물었다.

[잘 들렸어! 근데 한스 너 노래는 꽤 부르는구나? 네 그림 실력처럼 최악이었다면 정말이지 귀가 괴로웠을 거야.]

“……그건 다른 의미로 다행이네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공주님.”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도시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는 목록 중 포츠담 옆에 체크 표시를 했다.

때르르르릉─!

[한스! 여기서도 잘 들렸단다! 성공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그럼 인제 그만 테슬라 씨가 프리드리히쇼프에서 떠나도 되지 않을…….]

다음 전화는 프리드리히쇼프에서 마르가레테 공주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프리드리히쇼프는 프랑크프루트 근처이니 프랑크푸르트라 치고 여기도 체크.

[여기는 함부르크. 문제없이 들렸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입니다. 탄넨바움이 베를린에서 여기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라디오 전혀 문제없습니다!]

[아아, 뮌헨에서도 남작님의 목소리가 똑똑히 전해졌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뒤셀도르프에서도 잘 들립니다!]

뒤이어 다른 도시들에 파견 나가 있던 사람들에게도 속속 보고가 들어왔다.

목록엔 점점 체크 표시가 늘어갔고, 마침내 뒤셀도르프를 마지막으로 모든 도시 이름 옆에 V자가 빼곡히 채워졌다.

“테슬라 씨.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성공입니다!”

“하하하……! 그것참 기쁜 일이네요. 오늘만큼은 축배를 들어야겠어요!”

오랜만에 거둔 성공이라서 그런 것일까.

테슬라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면서도 계속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라디오 시대 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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