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 헤레로 전쟁 (2)
“반갑습니다, 마하레로 추장.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고 합니다.”
“……자무엘 마하레로입니다.”
자무엘 마하레로는 평화협상을 위해 찾아온 한스와 악수하면서도 눈앞의 소년을 향해 신기하단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그가 바터베르크로 온다는 말에 마하레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로이트바인의 경고대로 독일 제국은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의 땅에서 군대를 보내왔다.
그 수만 자그마치 1만 명.
여기 모인 헤레로족은 물론, 자무엘 마하레로 조차 당황하게 만든 어마어마한 규모의 군대였다.
‘그들은 우리 헤레로를 모조리 죽이려고 하겠지.’
독일인 정착민들이 헤레로에 대한 피의 복수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쯤은 이미 마하레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유럽에 있는 독일인들 또한 마찬가지일 게 뻔했다.
그들이 입으로 떠드는 것처럼 평화를 바랐으면 군대를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자무엘 마하레로는 자신의 내린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일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무엘 마하레로와 헤레로족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는 노예처럼 사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죽는 것을 택했다.
만약 이곳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후회는 없다.
그저 끝까지 발버둥 칠 뿐이다.
그리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 마하레로였지만, 참으로 무색해지게도 독일군은 그의 예상과 달리 대화를 원했다.
마하레로는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독일 황제로부터 반란 진압 책임자로 임명받았다는 인물이 직접 바터베르크로 온다는 말에 독일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자무엘 마하레로는 자신을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 소개한 귀족과 대면했다.
이미 남서아프리카 식민지 전역에 소문이 자자한 남작은 놀랍게도 아직 전사가 되려면 2, 3년은 더 나이를 먹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게다가 그의 피부색은 같이 온 로이트바인 총독이나 독일군 장교와 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흑인도 아니었지만.
‘그러고 보니 머나먼 동쪽에는 피부가 노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던가.’
자신도 실제로 황인종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때문인지 남작은 다른 백인들과 달리 자신과의 악수를 꺼리지도 않았다.
자무엘 마하레로는 눈앞의 소년에 흥미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것입니까?”
“반란 진압을 맡은 자가 적을 찾아올 이유는 하나뿐이지요.”
“우리가 항복하길 원하는군요.”
자무엘 마하레로의 말에 헤레로족들이 웅성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작은 얼음이 들어 있는 갈색 물을 마시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무기를 내려놓기엔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만.”
“헤레로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처우를 개선해준다는 약속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차별 금지라. 그게 무리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물론 법으로 막을 수 있지만,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인식을 바꾼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당장 저만해도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뒤에선 노란 원숭이 소리를 듣는 판국인데요.”
남작이 쓰게 웃으며 말하자 자무엘 마하레로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피부색이 노란 사람들도 흑인들처럼 백인들에게 차별받는 모양이다.
하긴 자무엘 마하레로가 그동안 겪어 온 경험에 따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처우 문제는 내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고 약속하겠네. 이는 식민지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니.”
“흐음…….”
로이트바인 총독이 남작의 말을 거들자 자무엘 마하레로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독일군과 싸우면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이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이대로 무기를 내려놔 봤자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마하레로에겐 마음에 걸리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피할 순 없겠죠. 이미 독일인들의 피가 흘렀으니까요. 다만 여성과 아이들을 비롯한 민간인들을 보호했다는 점을 참작해 헤레로족에게 최대한 자비를 베풀 것을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적어도 그 누구도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하레로. 이는 무척이나 관대한 제안이네.”
알고 있다.
보통이라면 주모자들은 전원 교수대에 목이 내걸릴 것이고 반란에 가담한 부족원들은 광산이나 농장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형에 처할 테니까.
하지만 마하레로는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이는 부족원들과도 상의해 봐야 하는 문제였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 * *
“자무엘 마하레로가 과연 항복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글쎄요. 그거야 두고 봐야 알겠죠. 솔직히 저도 장담은 못 하겠네요.”
말을 타고 빈트후크로 돌아가는 중, 옆에서 들려온 레토포어베크 대위의 질문에 나는 그리 대답했다.
개인적으론 이대로 헤레로족의 반란이 종식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모르는 법이라 했다.
게다가 설령 자무엘 마하레로가 항복하려 한다 해도 헤레로족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다.
‘반란 지도자들이 자주 겪는 딜레마 중 하나지.’
마하레로 입장에선 부족원들이 계속해서 독일과 싸우자고 외치면 이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일으킨 그 스파르타쿠스 또한 후퇴를 고려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로마와 싸우자는 부하들을 말리지 못해 사지를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나.
당장 헤레로 반란이 이렇게 커진 것도 슈츠트루페를 몇 번 이겼다고 헤레로족이 기고만장해진 것 때문이었던 만큼 가능성은 있었다.
“결국,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진 못하겠군요.”
“말씀해 보세요. 만약 대위님이 지휘관이라면 어떻게 헤레로족을 공격할 것입니까?”
궁금했다.
과연 미래의 명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내 말에 레토포어베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살펴본 바로는 바터베르크는 뒤론 산맥이, 앞으론 강이 있더군요.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니 헤레로족을 바터베르크에 가두고 보급을 끊어 그들을 말라 죽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죠. 바터베르크엔 전사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이 많으니 효과도 좋을 테고요. 시간은 오래 걸릴 테지만요.”
“본국에선 별로 좋아하지 않겠네요.”
“하하, 아무래도 그렇겠죠. 카이저께선 반란을 빨리 진압하기를 원하실 테니.”
레토포어베크는 그리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만약 공세를 가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단 한 번의 전투로 헤레로족을 섬멸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바터베르크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여러 방향에서 몰아쳐야겠죠. 만약 헤레로족이 바터베르크에서 탈출한다면 헤레로족의 게릴라전으로 인해 반란이 길어질뿐더러 진압에도 애를 먹을 게 분명하니까요. 그렇기에 개인적으론 필요하다면 초토화 작전도 고려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레토포어베크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다.
내가 초토화 작전을 벌일 시 필연적으로 딸려 오는 헤레로족에 대한 학살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눈치챈 모양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말했죠. 전쟁은 결국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독일 제국의 장교 중에서 전쟁론을 단 한 번이라도 읽지 않은 자는 없으니까요.”
“전 그 말을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 자체가 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헤레로족을 학살해서 과연 독일 제국이 정치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식민지 정착민들의 만족?”
“그건…….”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떠나서 학살은 결국 정치적으론 최악의 선택입니다. 독일 제국의 외교적 평판이 악화할뿐더러 물론, 식민지의 안정과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테니까요.”
괜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대부분을 독립시켜 준 게 아니다.
식민지는 가성비가 지나치게 떨어졌다.
식민지를 수탈해서 얻을 비용보다 식민지를 유지하고 헤레로 전쟁처럼 현지인들의 저항을 진압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었으니까.
‘노예제가 사라진 이유도 이 때문이지.’
물론 노예제가 폐지된 데는 분명히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도덕적인 이유도 분명히 한몫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노예제의 경제적 가성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노예는 유지비가 많이 든다.
그들도 사람인 만큼 일을 시키려면 먹여 주고 재워 줘야 하니까.
게다가 비효율적이다.
노예들은 멍청이가 아니기에 열심히 일해 봤자 주인만 이득이란 것 정도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을 열심히 안 한다고 노예를 가혹하게 대했다가 노예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주인의 손해로 돌아왔다.
그러니 산업혁명 이후에는 노예를 쓰느니 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더 이득이 되었고, 결국 노예제의 폐지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다만, 미국 남부 같은 경우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목화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는 바람에 노예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노예가 아닌 노동자들이 필요했던 산업 중심의 북부는 노예제를 폐지하길 원했고, 이에 반발한 남부가 반란을 일으키며 남북전쟁으로 이어진다.
어쨌든 식민지 또한 이와 별다를 게 없었다.
실제로 식민지를 수탈하는 것보단 그냥 무역해서 돈을 버는 게 경제적으론 훨씬 이득이니까.
그렇기에 제국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19세기에 활발하게 벌어진 식민지 확장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애국심 고취 및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눈을 돌리기 위한 목적이 더 강했다.
‘심지어 그 영국마저 인도 정도를 제외한 다른 식민지에선 적자만 봤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물론, 민족주의의 발흥과 시대가 바뀌며 식민지를 독립시켜 주자는 인도적 목소리가 점점 커진 탓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식민지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놔준 거다.
엘랑하고 우는 옆집 프랑스처럼 끝까지 추하게 식민지를 붙들고 있으려는 시도도 있긴 있었지만.
다만, 그러한 시도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말 안 해도 다들 잘 알 것이다.
‘솔직히 식민지보다는 경제적으로 예속시킨 뒤 두고두고 뜯어먹는 편이 더 나아.’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식민지는 군사적으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본토 말고도 지켜야 할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당장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 제국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것도 영프의 전력이 식민지 때문에 전 세계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식민지가 적었던 독일은 그만큼 본국에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었고.
물론 당장 식민지를 독립시키자고 해 봤자 나만 미친놈처럼 보일 뿐인지라 이러한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19세기가 지나고 20세기가 찾아왔음에도 제국주의의 광풍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헤레로족에 대한 학살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다른 부족들의 반감을 사서 그들마저 적으로 돌릴 수도 있어요.”
“허.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예. 헤레로족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저렇게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실제로 트로타가 헤레로족을 보이는 족족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서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헤레로족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자 독일군을 돕고 있던 헨드릭 위트부이와 나마족이 무자비한 독일군의 모습에 학을 떼며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마족은 헤레로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도 말이지.’
21세기에도 부족 간의 갈등으로 내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아프리카다.
20세기 초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실제로 불과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엔 헨드릭 위트부이가 이끄는 나마족은 독일에 반기를 듦과 동시에 굴러들어 온 돌, 아니 굴러들어 온 유목민이었던 헤레로족을 공격했었다.
그리고 남서아프리카 슈츠트루페를 이끄는 로이트바인 총독과 자무엘 마하레로는 함께 손을 잡고 나마족에게 맞서 싸웠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말이다.
독일에 반란을 일으켰던 헨드릭 위트부이와 나마족은 독일의 우군이었고, 정작 그 당시 독일과 함께 싸웠던 자무엘 마하레로와 헤레로족은 독일의 적이 되었으니.
“어쨌든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는 이상 초토화 전술은 안 됩니다. 독일 제국과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이득 될 것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럼, 어디까지나 헤레로족의 전의를 파괴하고 협상을 유도하는 게 최선이겠군요.”
“네. 물론 싸우지 않고 반란을 끝내는 것이 최상입니다만.”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 후, 자무엘 마하레로와 헤레로족에게서 도착한 답변은 ‘Nien’.
항복 거절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