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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77화 (77/193)

77화 : 압록강 전투 (2)

타다다! 탕! 탕! 타다다다다다───!!

“저 미친 새끼들은 포기란 것도 모르나!”

러시아군의 참호 속에서 일본군의 총알과 포격을 피하고자 머리를 붙잡고 움츠려 있던 러시아 병사 유리는 시체로 산을 쌓으면서도 꾸역꾸역 자신들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일본군을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유리는 본래 여타 러시아인들처럼 모피로 한몫 벌어 보려는 목적으로 극동에 왔을 뿐이지만, 운이 나쁘게도 일본과의 마찰을 대비하기 위해서 극동군 전력을 보충하기로 한 러시아 당국에 붙들려 강제로 징집되고 말았다.

게다가 생각에도 없던 군인이 된 것도 모자라 졸지에 기어코 전쟁까지 터져서 전장에 끌려왔으니, 이쯤 되면 하늘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주께서 자신을 미워하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그나마 쿠로파트킨이란 이름의 높으신 장군 나리께선 러시아를 공격한 일본군을 격퇴하러 가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땅을 파고 일본 놈들을 맞이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유리는 적어도 빗발치는 포탄과 총알 속에서 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보단, 그저 참호라는 이름의 구덩이 속에서 버티는 것이 살 확률이 더 높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적이 오는 족족 총으로 쏘기만 하면 우리가 이긴다니,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자신이라도 그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본군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유리는 자신의 얕은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쑤까블럇! 죽어! 죽어어어!!’

타다다다다다다────!

사방에서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욕설, 그리고 일본인들의 비명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전장에 울려 퍼졌다.

독일인들이 만들었다는 기관총은 묵시록의 종말이 도래한 것만 같은 참혹하고도 잔혹한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타다다다다다───!

“으아아악!”

“흐억!”

“오……오카상……!!”

기관총들이 불꽃과 탄피를 내뿜을수록 일본군의 시체가 쌓이고 또 쌓여갔다.

하지만 일본군을 죽이고 있는 것은 기관총뿐만이 아니었다.

러시아군의 포격은 일본군을 향해 계속해서 포탄을 쏟아 내며 그들의 몸을 산산 조각냈고, 몇 달 내내 여기저기에 파묻느라 고생한 지뢰는 섣불리 밟는 순간 피할 새도 없이 불행한 일본 병사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유리는 차라리 이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절명한 자들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상당수의 일본군 병사들은 즉사를 피했지만, 그마저도 독일인들이 가져온 또 하나의 물건인 윤형 철조망에 걸려 사지가 잘리고 내장을 흩뿌리며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 갔기 때문이다.

“우욱…우웨웩!”

유리는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지옥과도 같은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을 했다.

다른 러시아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적을 죽이면서도 창백한 안색이었다.

유리가 생각한 전쟁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전쟁은 옛날 할아버지가 들려준 나폴레옹 전쟁 때처럼 영웅적인 전투 같은 거였다.

지금 자신들의 모습을 보라. 마치 기계처럼 일본인들을 도살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적이고, 섬나라 원숭이들이라지만 이건…… 이건 뭔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엔 영웅적인 전투도, 그리고 낭만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죽음과 전쟁의 참혹함만이 존재했다.

“놈들이 철조망을 넘어온다!!”

일본군이 기어코 철조망을 넘어 참호로 오고 있다는 말에 유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적인 일본군의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죽음에 자신도 모르게 들었던 동정심은 이미 사라졌다.

지금 일본군을 자신과 동료들을 죽이러 달려오고 있었다.

유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일본군에 대한 살의를 불태우며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고개를 참호 밖으로 내밀었다.

방금 누군가의 외침처럼 일본군은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정말 철조망을 돌파하고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곧 유리는 저들이 어떻게 철조망을 넘어왔는지 알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죽어 간 동료들의 시체를 쌓고는 그 시체를 밟고 철조망을 뛰어넘고 있었다!

“지독한 마귀 새끼들……!”

선량한 기독교인이었던 유리는 독기 어린 일본군의 행태에 학을 뗐다.

러시아군의 기관총이 계속해서 불을 뿜으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일본군은 철조망 때와 마찬가지로 전우의 시체를 방패 삼아 계속해서 전진했다.

이대로라면 일본군이 자신이 있는 참호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젠장, 무기라도 좀 제대로 된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유리는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에 들린 파이프 비스름하게 생긴 총을 바라봤다.

기관총, 윤형 철조망에 이어 독일인들이 준 또 하나의 무기였다.

기관권총? 기관단총? 어쨌든 그런 이름의 총이었다.

한 번도 쏴 본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장교들 말로는 가뜩이나 총알 잡아먹는 무기라서 실탄으로 사격 훈련을 하기엔 총알값이 너무 아깝다고 하던가?

하여튼 장교란 것들은 다 개자식들이다.

이유야 어쨌든 유리는 이 총이 과연 제대로 나가기나 할지 불안했다.

재수가 없었다.

독일인들은 이제 막 개발된 프로토 뭐시기라면서 기관단총을 그렇게 많이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관단총은 제비뽑기 때 꽝을 뽑은 자신처럼 운 나쁜 일부 병사들에게만 주어졌다.

운이 좋은 자들은 사냥할 때나 쓰는 산탄총을 받았고, 정말 운이 좋은 자들은 미국제 M1866 레버액션 소총을 받아 갔다.

유리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의 총은 그래도 총처럼은 생겼으니까.

‘내 총은 총이 아니라 무슨 파이프처럼 생겨 먹었는데!’

유리는 그리 속으로 불만을 내뱉으며 전에 독일인들이 말한 이 무기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든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기관단총을 어떻게 사용하냐고요? 적이 가까이 오면 방아쇠를 당기면 됩니다. 그럼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빌어먹을 프로이센 돼지 새끼들.”

기껏 기억해 낸 설명은 쓸모가 전혀 없었다.

유리는 독일인들을 욕하며 달려오는 전방의 일본군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

“시네에에에에!!”

기어코 기관총 포화를 돌파한 일본군 하나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자신을 향해 번쩍이는 총검을 내질렀다.

‘에잇, 이판사판이다!’

유리는 제발 이 총이 겉모습이랑 다르게 잘 나가길 바라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타다다다다──!!

“끄아아악!!”

연달아 난 총성과 함께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쓰러지는 일본군.

기관단총의 반동에 몸을 휘청인 유리가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뭐, 뭐야. 이 총은?!’

연발로 나가는 총이라니. 들어 본 적도 없다.

이건 그냥 들고 다니는 기관총이 아닌가.

물론 기관총보단 훨씬 약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총이 유리의 생각보다 훨씬 끝내줬다는 것이다.

“하, 하핫! 뒈져라. 쪽바리 새끼들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그런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신이 난 유리가 일본군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러시아군 참호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타다다다!

타다다다다다!!

“저건 또 뭐야?!”

“배관이다! 러시아 놈들 하수구 배관으로 총을 쏘고 있어!”

“로스케 새끼들, 전쟁 한번 X같이 하네!”

기관총에 지뢰, 윤형 철조망도 모자라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 모를 신무기에 일본군은 경악하며 세상을 원망했다.

게다가 러시아군은 기관단총만을 가진 게 아니었다.

러시아군은 일본군이 참호에 도달하는 족족, 훌륭한 대화 수단인 산탄총을 일본군의 배때기에 먹여 줬다.

듣자 하니 장교 나리들은 이런 짐승에게나 쓰는 무기를 어떻게 쓰냐며 독일인들이 건네준 산탄총을 거부했다던가?

물론 산탄총의 화끈한 한 방에 흠뻑 빠진 러시아 병사들에겐 그저 곱게 자란 도련님들의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빰빰빰~빰밤~!

그렇게 일본군이 총탄을 어떻게든 뚫고 참호에 도달하는 족족, 러시아 병사들이 기관단총과 산탄총으로 일본군을 참 구현하는 사이 저 멀리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마도 퇴각 신호인 모양이다.

일본군이 드디어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으니까.

“일본군이 물러난다! 우리가 이겼다!”

“우라! 우라! 우라!”

유리를 비롯한 러시아군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환성을 지르며 첫 전투에서 일본군에 거둔 대승을 자축했다.

“야, 유리 몰래 꿍쳐 둔 보드카 줄 테니까 그거 내 총이랑 바꾸지 않을래?”

“닥쳐! 보드카 100병을 준다고 해도 어림없어!”

뭔 총이 그렇게 생겼냐며 자신을 비웃던 녀석이 기관단총에 욕심을 느꼈는지 아까와는 다른 태도로 실실 웃으며 말하자 유리는 X 까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만큼 유리는 기관단총에 흠뻑 빠졌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이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총사령관 쿠로파트킨과 러시아 장교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지옥으로 변한 전장을 바라봤다.

설마 했지만, 이 정도로 쉽게 일본군을 막을 수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투가 이 정도로 참혹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유리와 마찬가지로 쿠로파트킨과 러시아 장교들이 가진 전쟁의 모습은 낭만이 흘러넘치는 나폴레옹 시대의 전투였다.

하지만 그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전쟁엔 낭만이 있다는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을까?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니까.”

쿠로파트킨은 전장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며 일본에 승리했단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은 이겼다는 게 더 중요했다.

독일군 관전 무관들은 서둘러 본국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참호, 기관총, 철조망이 조합된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방식, 기관단총의 활약 등 슐리펜 참모총장을 비롯한 참모본부의 참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머릿속 한구석에 떠오르는 불안감을 도저히 떨쳐 낼 수 없었다.

참혹한 전장도 전장이었지만, 과연 자신들이라고 철조망과 참호, 기관총으로 이루어진 저 방어선을 뚫을 수 있을까?

독일 관전 무관들은 부디 참모본부에서 그 답을 알고 있기를 바랬다.

* * *

러시아군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초전부터 대패를 겪은 일본군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서로의 눈치만 보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1군 사령관, 구로키 다메모토 중장이었다.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구로키 사령관이 침울한 얼굴로 묻자 선봉을 맡았던 12사단 사단장, 이노우에 히카루 중장이 도저히 다른 장군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1……12사단에서만 약 5,000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이노우에 중장에 입에서 나온 엄청난 숫자에 구로키 사령관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선봉을 맡았던 12사단에서만 약 5천 명.

전투에 참여한 다른 사단들의 사상자까지 포함하면 이번 공격에서만 약 1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다.

전투 이전 제1군의 병력이 약 4만 3천 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병력의 4분의 1이 전투 한 번으로 소모된 것이다.

현대전에서 보통 전투 병력 중 30%가 손실되면 전멸로 판단하는 걸 생각했을 때 그야말로 대패 중의 대패였다.

‘오야마 총사령관과 고다마 총참모장에게 대체 이 참사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일본군 총사령관 오야마 이와오(大山巌) 대장과 총참모장 고다마 겐타로(児玉源太郎)는 1군의 승리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구로다 사령관은 도저히 그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에게 쏟아질 질책과 분노만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했으니까.

하지만 구로다 사령관은 선봉을 맡은 이노우에 중장은 부하 장성들을 도저히 탓할 수 없었다.

일본군이 못 싸웠다기보단 러시아군의 방어선이 저것을 과연 뚫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단단했기 때문이다.

참호는 물론이고, 대량의 기관총에 지뢰, 태어나서 처음 보는 둥그런 철조망, 심지어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무기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듣기론 하수도 배관을 닮았다고 하던가?

“어찌 되었든 이대로 물러날 수 없네.”

조국의 운명을 건 전쟁이다.

퇴각과 포기는 선택지에 없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자신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쿠로파트킨이 만들어 낸 지옥의 관문을 돌파해야만 했다.

“사령부에 병력 증원을 요청하게. 대포도 있는 대로 다 끌어모으고. 우리는 반드시 안둥을 돌파해야 해!”

“핫!”

구로다 중장의 말에 일본군 장성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제1군은 러시아군을 향한 공세를 다시 이어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기어코 와 버렸네. 아프리카.”

그사이, 우리의 주인공 한스 폰 초이 남작은 1만 명의 독일군과 함께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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