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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73화 (73/193)

73화 : 반란 (3)

“쿨럭! 쿨럭쿨럭! 폐하를 뵙습니다.”

갑작스럽게 포츠담 신궁전에 찾아온 불청객, 발더제 원수가 부들부들 위태롭게 떨리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빌헬름 2세를 향해 가까스로 인사를 올렸다.

발더제는 지난번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을 때보다 살이 쏙 빠지고 얼굴도 매우 삭은 것이 굉장히 아파 보였다.

솔직히 지금 당장 이 자리에 쓰러져서 이승과 작별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발더제는 올해인 1904년 초에 죽었지?’

딱 보기에도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보인다.

아마 두세 달 뒤면 관으로 들어가 장례식을 치르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발더제는 대체 여긴 뭐하러 나타난 것일까?

어차피 오늘내일하는 몸, 그냥 세상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조용히 이 세상과 작별하는 편이 모두에게 이로울 텐데 말이다.

‘아까 시종의 말론 남서아프리카에서의 일 때문에 빌헬름 2세를 만나러 왔다고 했던가.’

지금 시기에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방금까지 우리가 논의하던 헤레로족의 반란밖에 없다.

설마 슐리펜 참모총장처럼 빌헬름 2세에게 헤레로족을 박멸시켜야 한다고 주장이라도 할 생각일까?

굳이 그걸 말하려 아픈 몸을 이끌고 하노버에서 이곳 포츠담까지 온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발더제라면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무섭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원래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이니까.

‘이미 한발 늦었지만.’

빌헬름 2세는 콩고의 악마, 레오폴드 2세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내 말에 분노를 내려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지금 빌헬름 2세에게 발더제가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헤레로족을 보이는 족족 죽이자고 말해 봤자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긴장을 내려놓고 다 죽어 가는 발더제 원수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 원수. 오늘은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이오?”

먼저 입을 연 것은 빌헬름 2세였다.

빌헬름 2세는 대놓고 귀찮다는 얼굴로 발더제를 향해 말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원수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껄끄러운 건 빌헬름 2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지만 발더제는 이런 빌헬름 2세의 태도에 평소와 달리 어떤 반응도 내보이지 않은 채, 천천히 빌헬름 2세의 물음에 답했다.

“쿨럭……!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큰일이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깜둥이들…… 그러니까 헤레로족이 반란을 일으켰다죠?”

“맞소. 하지만 이미 군에서 은퇴한 몸인 원수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소만.”

“쿨럭쿨럭! 나라를 위한 일에 직책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오랫동안 제국을 위해 일해 온 늙은이의 마지막 충언이라 생각하여 주십시오. 쿨럭쿨럭!”

발더제는 숨쉬기가 힘든지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빌헬름 2세는 그런 발더제의 모습에 한숨 쉬면서도 그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래도 마지막 충언이라니까 이번만큼은 속이 좁은 카이저도 인내심을 발휘한 모양이다.

“쿨럭! 쿨럭쿨럭! 폐하께선 당연히 반란을 진압하실 생각이시겠지요……?”

“물론이오.”

이윽고 다시 숨을 고른 발더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크흠……! 그럼 진압 책임자로 누구를 임명할 생각이십니까?”

“음. 본래는 슐리펜 참모총장의 의견에 따라 로타르 폰 트로타 중장을 임명할 생각이었소. 하지만 총리의 반대도 있고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더 심사숙고해야 할 것 같아 보류한 상태요.”

“그렇습니까……?”

발더제는 그리 말하며 나를 살짝 흘겨봤다.

아무래도 내가 또다시 빌헬름 2세를 설득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설득한 게 맞지만 말이다.

“쿨럭쿨럭! 그럼 소신이 폐하께 헤레로족을 진압할 적임자를 한 명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원수가? 원수라면 트로타를 그대로 임명해야 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뷜로 총리와 슐리펜 참모총장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미심쩍은 눈으로 발더제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트로타는 당장 의화단 사건 때도 동방 원정군 소속으로 발더제 휘하에서 복무했다.

발더제와 트로타, 두 사람이 원 역사에서 보여 준 행보로 미루어봤을 때 둘의 성격이나 성향도 잘 맞았을 테고.

그렇기에 트로타를 반드시 책임자로 삼아야 한다며 주장할 줄 알았던 나 또한 발더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상하지 못한 말로 인해 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인간은 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러는 걸까?

나는 그것을 알기 위해 계속해서 빌헬름 2세와 발더제의 대화에 집중했다.

발더제는 어울리지 않게 사람 좋은 노인처럼 웃으며 빌헬름 2세를 향해 말했다.

“허허, 폐하께서 트로타를 임명하는 것을 망설이셨다면 다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쿨럭쿨럭! 그러나 제가 추천하려는 자는 다른 자입니다.”

“크흠. 대체 누구인데 그러는 것이오?”

“쿨럭, 쿨러쿨럭! 크흠……. 바로 폐하의 옆에 있는 한스 폰 초이 남작입니다.”

“?”

‘지금 이 영감탱이가 뭐라고 말한 거지?’

발더제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나는 순간 내 귀가 잘못된 건 아닌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것은 빌헬름 2세도 마찬가지였는지, 카이저는 못 믿겠단 표정으로 발더제를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흠. 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은 모양인데 다시 말해 보시오. 원수. 지금 누구를 반란 진압의 총책임자로 삼자고?”

“쿨럭쿨럭! 여기 있는 한스 폰 초이 남작입니다. 전 초이 남작을 반란 진압 책임자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폐하.”

“…….”

발더제가 다시 한번 내 이름을 입에 담자 방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동공을 격렬하게 떨며 속으로 외쳤다.

‘이 양반이 죽을 때가 되니까 노망이 들었나!’

나를 헤레로족이 일으킨 반란의 진압 책임자로 추천한단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발더제가 말이다.

내가 올해 들어 본 소리 중 개소리였다.

물론 1904년은 새해가 밝았을 때로부터 아직 한 달도 안 지났지만, 어쨌든 발더제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음은 틀림이 없었다.

“발더제 원수님. 몸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이군요.”

“제가 미쳐 신경 써야 했는데 불찰입니다.”

“나중에 황실의 주치의를 보내 주겠네. 돌아가서 몸을 먼저 돌보게. 원수.”

뷜로 총리와 슐리펜 참모총장, 빌헬름 2세가 하나같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차례대로 발더제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다들 나처럼 발더제가 죽을 때가 되니까 노망이 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만큼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폐하. 전 진심입니다.”

“진짜로 한스를 추천한다고?”

이에 살짝 욱했는지 발더제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빌헬름 2세는 그제야 이것이 질 나쁜 농담이 아니라 발더제가 정말 진짜로 나를 추천했다는 것을 깨닫곤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엔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발더제 원수다.

나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는데 카이저라고 다를 리가 없다.

빌헬름 2세가 말했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긴 그렇지만 원수는 분명 한스를 싫어했던 것으로 아는데?”

“……사람은 갈 때가 되면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가 보이는 법이지요. 쿨럭쿨럭!”

발더제가 현자 타임이라도 왔는지 아련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이 노친네가 죽을 때가 되니까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아니면 날 노린 또 다른 음모일까?

‘역시 후자겠지.’

발더제가 그의 말처럼 죽을 때가 되니 사람이 바뀌어서 나에게 선의를 베풀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는 생물이 아니니까.

분명 발더제는 나를 또다시 함정에 빠트리려는 게 분명했다.

내가 그리 확신하는 사이, 슐리펜이 또한 나에게 반란 진압을 맡기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발더제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하지만 원수님. 제대로 된 군사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한스 군, 아니 남작에게 일군을 이끌게 할 순 없습니다!”

“쿨럭! 물론 남작에게 군대의 지휘까지 맡기자는 것은 아니라네. 슐리펜. 그저 책임자로서 아프리카에 파견하자는 소리지.”

그러니까 나보고 가서 정치장교 짓이나 하라는 소리다.

그러나 나는 아프리카로 갈 생각 따윈 없었다.

당장 다음 달이면 러일전쟁이다.

하지만 내가 진압군이 편성되는 대로 남서아프리카 식민지로 가서 헤레로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 여름까지는 그곳에 있어야 한다.

러일전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속 주시해도 모자랄 상황에 나미비아로 가서 헤레로족이랑 드잡이질이나 할 시간은 없단 말이다.

“……나름 괜찮은 생각일지도.”

그때, 뷜로 총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총리님! 미치셨습니까? 절 발더제의 말대로 정말 아프리카에 보내겠다고요?!”

“아니, 자네가 반란 진압을 맡는다면 적어도 우리가 우려한 것처럼 학살이 일어나는 것은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안 됩니다. 절대로 못 가요. 딱 봐도 함정일 게 분명한데 제가 왜 거기에 제 발로 들어가는 멍청한 짓을 합니까?”

“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이네.”

슐리펜 참모총장이 다가와 나에게 속삭였다.

아까 편 안 들어줬다고 삐졌던 것은 이미 잊은 모양인지, 슐리펜의 얼굴은 전례 없이 심각했다.

“발더제 원수가 정말 선의로 자네를 아프리카로 보내자는 건 절대 아닐 거야. 그곳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전장이라면 더더욱.”

“네. 분명 무슨 음모가 도사리고 있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더제를 바라봤다.

이런 얕은수에 빠질 내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곧바로 반란 진압의 총책임자 자리를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빌헬름 2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흠. 한스는 지금까지 날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지.”

“???”

귀가 얇은 우리 빌리가 그새 발더제에게 넘어가 버린 것이다!

카이저는 당황한 내 마음도 모른 채 내 어깨를 잡으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 원수의 말대로 반란 진압을 맡겨도 충분히 잘 해낼 거야.”

“아니, 폐하…….”

“하하, 걱정하지 말아라. 한스. 네가 직접 군을 지휘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냥 일이 잘 흘러가는지 감독만 제대로 하면 된다.”

나는 나에 대한 신뢰로 가득한 빌헬름 2세의 눈빛에 그만 정신이 아찔해졌다.

전생 시절,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께선 언제나 나보고 딱 중간만 하라고 하셨다.

너무 못해도 문제지만 너무 잘해도 인생이 피곤해진다고 말이다.

지금이 딱 그짝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행보가 내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빌헬름 2세가 이리 나오면 거절할 수도 없는데. 미치겠네.’

거절했다간 우리 쫌생이 카이저는 나에게 크게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있어 매우 큰 타격이었다.

내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독일의 외교 정책에 관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능력과 더불어 빌헬름 2세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카이저의 호감도와 신뢰도를 깎아 먹는다면, 당장 러일전쟁에 개입해 독일의 외교적 고립을 막는다는 내 계획에 적색 불이 들어온다.

그것만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한스. 너를 믿어도 되겠느냐?”

“……물론입니다. 폐하.”

나는 빌헬름 2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상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말했다.

뷜로와 슐리펜이 정말 괜찮겠냐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망할 노친네. 끝까지 이런다 이거지?’

발더제가 유명한 만화의 한 명장면처럼 계획대로라고 중얼거리며 비열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빨을 꽉 깨물었다.

‘어디 마음대로 하시지. 이쪽은 당신 뜻대로 놀아 줄 생각 같은 건 없으니까.’

발더제의 음모가 뭐든 박살을 내버리고 살아서 독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발더제가 살아 있다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죽었다면 묘비 앞에서 보란 듯이 꼴 좋다고 비웃어 줄 거다.

그렇게 난 곧바로 아프리카를 향해 떠나……지는 않았다.

헤레로족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독일 제국은 1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남서아프리카로 파견할 계획이었고, 그만한 수의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하고 아프리카로 수송할 준비를 마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진압군과 함께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발을 딛게 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4월 말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서아프리카 출정을 기다리는 사이, 동아시아에서 먼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쟁의 포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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