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반란 (2)
“감히 미개한 토인 따위가 나와 독일 제국에 반기를 들어!?”
빌헬름 2세가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긴급 전보를 읽으며 노호성을 터트렸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 그러니까 오늘날의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족이 독일 제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솔직히 겉으로만 보면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원래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란 같은 건 국제 정세에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는다.
지금은 제국주의의 시대였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차별과 착취로 인해 식민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 반란만큼은 달랐다.
지금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란은 다름 아닌 헤레로 전쟁(Herero War).
훗날 20세기 최초로 벌어진 제노사이드이자 독일 제국이 저지른 최악의 과오 중 하나였던 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Herero and Namaqua genocide)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유태인 학살과 나치의 전쟁 범죄 달리 헤레로·나마 집단 학살에 대해선 나미비아와 피해 부족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과는커녕 배상도 제대로 하질 않았지.’
물론 제국주의 시절에 일어난 식민지 학살과 착취에 대해 어물쩍거리며 그냥 넘어가려는 건 영국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긴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옳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말이다.
잘못된 것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것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을 절대 가만히 둘 수 없지. 슐리펜. 당장 남서아프리카로 보낼 진압군을 편성하게!”
“물론입니다, 폐하. 황제 폐하와 제국에게 반기를 든 헤레로족에게 제국에 대한 반역의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려 주겠습니다!”
그러나 내 예상처럼 빌헬름 2세는 헤레로족의 반란에 분노하며 슐리펜 참모총장에게 진압을 명령했고, 항상 든든하게 날 지지해 주었던 슐리펜 참모총장 또한 이번엔 카이저의 분노에 동조하며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나로서는 절로 머리를 부여잡을 상황이었다.
물론 내가 현대인 감성에 휩싸여 ‘학살은 나빠요. 그만두세요!’라고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이러는 건 아니다.
헤레로족이 반란을 일으킨 이상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어떤 식으로든 처리하긴 해야 했으니까.
그저 그 방식이 원 역사처럼 꼭 대학살일 필요는 없을 뿐이다.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
그때, 뷜로 총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헤레로족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과격하고 잔혹하다면 오히려 독일 제국에 해가 될 것입니다.”
“뷜로 총리. 그 무슨 나약한 소리입니까? 헤레로족은 명실상부한 반란군. 그리고 반란군은 그 뿌리부터 뽑아야 하는 법입니다!”
슐리펜 참모총장이 그리 단호하게 외쳤다.
과격한 발언이었지만 독일인 대다수가 가진 생각이기도 했다.
지금 독일 제국엔 슐리펜처럼 반란을 일으킨 헤레로족에게 독일 제국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려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당장 제국의회 라이히스탁에서도 헤레로족의 반란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당장 헤레로족 자체를 박멸시켜 지구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려야 한다는 융커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아프리카에서 독일인들의 피가 흘렀다.
저열한 흑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자국민을 살해한 것은 독일인들에게 있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작 헤레로족은 싸울 수 있는 남자들만 죽였을 뿐, 여자와 어린이들에겐 손도 대지 않는 나름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말이다.
이쯤 되면 대체 누가 야만인이고 누가 문명인인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피비린내 나는 분위기 속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수의 지식인과 사민당 출신 의원들은 헤레로족 또한 우리처럼 피가 흐르고 불멸의 영혼을 가진 인간이란 도덕론을 내세우며, 헤레로족에 대한 학살만큼은 안 된다고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자는 거의 없었다.
과거 의화단 전쟁으로 케텔러 공사를 포함한 독일인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중국인들의 피를 요구했던 것처럼 독일인들은 헤레로족에 대한 피의 보복을 원했다.
슐리펜이 말했다.
“폐하. 로타르 폰 트로타 중장을 반란 진압 책임자로 식민지에 파견하겠습니다. 부디 허가해 주십시오.”
“트로타? 아, 중국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던 자지. 참모총장의 뜻대로…….”
“트로타라니, 절대 안 됩니다!”
뷜로 총리가 트로타라는 이름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릴 정도로 기겁했다.
트로타가 어떤 인물인지 아는 뷜로 총리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로타르 폰 트로타(Adrian Dietrich Lothar von Trotha).
헤레로 전쟁 당시 독일에서 아프리카로 파견된 진압 사령관으로 헤레로족과 나마족 집단 학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트로타는 헤레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독일에서 거칠고 과격하기로 악명높은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그가 사령관으로 온다는 말에 남서아프리카 총독이었던 로이트바인은 물론 현지 슈츠트루페 장교들이 제발 트로타만은 안 된다며 빌헬름 2세에게 청원서를 보낼 정도였을까.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지. 로타르 폰 트로타가 남서아프리카에 온다면 반란 진압은 순식간에 대학살로 변질될 것이란 걸.’
그렇기에 식민지 관료들처럼 과격한 반란 진압에 반대하고 있던 뷜로 총리 또한 어떻게든 트로타가 남서아프리카로 파견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폐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트로타만은 안 됩니다. 보어전쟁으로 인해 영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당한 일을 잊으셨습니까?”
“그건…….”
“트로타를 남서아프리카로 보내면 헤레로란 헤레로는 모조리 죽이려 들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이 겪었던 일을 이번엔 우리 독일 제국이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결정을 재고해 주십시오.”
보어전쟁 당시 영국은 보어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초토화 전술을 펼치며 보어 게릴라들의 씨를 말리려고 하는 등 전쟁 범죄를 저질렀기에 외교적으로 고립당하는 상황에 빠졌었다.
그리고 이번에 독일이 헤레로족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벌인다면 뷜로 총리의 말대로 가뜩이나 안 좋은 독일의 외교적인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질 게 분명했고, 이로 인해 독일의 외교적 고립이 더 심해질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대상이라도 학살은 학살이었고, 이 세상엔 그래도 도덕과 양심이란 것이 존재는 했으니까.
‘내가 헤레로족 학살에 반대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지.’
물론 내가 몸담은 나라가 전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긴 있었다.
이 학살이 독일 제국에 꼭 필요하다거나, 아니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는가.
원 역사처럼 대학살이 일어나 봤자 솔직히 독일 제국에 이득이 되는 것도 없고 내 기분만 더러워질 뿐이다.
그렇기에 난 헤레로족의 반란을 웬만하면 최대한 온건한 방향으로 끝내고 싶었다.
“한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마침 나에게 의견을 묻는 빌헬름 2세.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께선 벨기에의 국왕인 레오폴드 2세를 알고 계십니까?”
“응? 당연히 알다마다.”
“그러면 그 레오폴드 2세가 왕실 소유의 식민지인 콩고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콩고?”
빌헬름 2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건 뷜로와 슐리펜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이제 막 벨기에에 의해 지배당한 콩고에 대한 진실이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던 때다.
따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 아직 모를 만도 하다.
“아시다시피 콩고의 주력 생산품은 고무입니다. 그런데 열대우림 속에서 고무를 채취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닌지라 흑인 원주민들조차 고무 채취를 꺼렸습니다. 그러자 레오폴드 2세가 고무를 확보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나는 잠깐 운을 띄운 뒤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병사들을 동원해서 여자들을 인질로 잡은 뒤, 원주민들에게 고무를 채취해 오라고 강요했습니다. 만약 거절하면 여자들을 강간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살해했고요.”
“뭐, 뭐라?”
“이뿐만이 아닙니다. 벨기에인들은 원주민들이 고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들의 손목을 자릅니다.”
“세상에, 그게 무슨 끔찍한 이야기인가!!”
손목을 자른다는 말에 빌헬름 2세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며 외쳤다.
뷜로와 슐리펜조차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통치는 가혹했지만, 벨기에는 가혹함을 넘어 차원이 달랐다.
오죽하면 제국주의의 끝판왕인 그 영국조차 벨기에가 콩고에서 저지른 짓을 보고 자신들도 저 정도는 아니라며 기겁했을 정도였으니까.
“이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계속해서 레오폴드 2세와 벨기에가 콩고에서 벌이고 있는 온갖 범죄에 대해 늘어놓았다.
연좌제, 감금, 채찍질, 고문, 강간……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끔찍한 일들이 계속 내 입에서 흘러나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빌헬름 2세와 슐리펜, 뷜로는 레오폴드 2세의 만행에 대해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치를 떨기 시작했다.
물론 빌헬름 2세도 헤레로족의 사례처럼 딱히 식민지인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레오폴드 2세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콩고에서 벌인 짓은 그 빌헬름 2세의 입에서 ‘그게 정녕 사람 새끼냐?’라는 말이 나오게 하기 충분했다.
“이건 소문입니다만, 벨기에군이 아예 콩고에서 식인 행위까지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뭐라고?! 더럽다. 레오폴드!”
“참된 10새끼……!”
사실 식인 얘기는 벨기에군이 아니라 벨기에군이 고용한 흑인 용병들이 저질렀다는 루머가 와전된 것에 가까웠지만.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레오폴드 2세의 만행에 분노하게 만들긴 충분했다.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카이저도, 뷜로도, 슐리펜도 하나같이 레오폴드 2세를 비난하는 분위기.
그러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지요. 영국이 이미 작년부터 조사단을 콩고로 파견하여 콩고의 진실에 대한 증거를 대량으로 수집했습니다. 곧 레오폴드의 2세의 추악한 비밀이 전 유럽에 알려지겠죠.”
“당연히 그래야지. 뷜로 총리. 내 이름으로 벨기에 정부에 항의를 보내도록 하시오. 나 또한 유럽의 문명인으로서 레오폴드 그자를 가만히 둘 수 없소.”
“하지만 걱정입니다. 이 시기에 헤레로족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면, 혹여 무지한 자들이 폐하를 레오폴드 2세 그자와 같은 취급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어, 어엉?”
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자 빌헬름 2세가 당황하며 말을 버벅거렸다.
나는 곧바로 살짝 뒤에서 옷을 당기며 뷜로 총리에게 얼른 맞장구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아, 아아~! 그렇지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요!”
멍하게 서 있던 뷜로 총리가 그제야 어색한 목소리로 내 말에 맞장구쳤다.
딱 보기에도 연기인 것이 티가 났지만, 그래도 빌헬름 2세를 더욱 동요시키기엔 충분했다.
“그, 그런가?”
“폐하! 그렇다고 반란군에 대한 징벌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빌헬름 2세가 망설이기 시작하자 슐리펜 참모총장이 정신을 차리고 그리 외쳤다.
그러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죄송합니다만 이번만큼은 참모총장님 편을 들 수 없네요.’
나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슐리펜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슐리펜은 상당히 심하게 삐졌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저러니 보기 좀 그렇지만, 그래도 슐리펜도 나중에 가면 이해할 거야.’
어차피 원 역사에서도 슐리펜은 뷜로 총리의 거듭된 요청과 트로타가 정말로 헤레로족의 씨를 말리려고 하자 트로타에게 학살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린다.
물론 트로타가 슐리펜의 명령을 전달받았을 때는 이미 무수한 헤레로족의 시체가 쌓인 후였지만 말이다.
거기다 그 이후에도 독일 제국은 살아남은 헤레로족을 광산에서 노예처럼 굴리거나 오이겐 피셔(Eugne Fischer)라는 요제프 멩겔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우생학자가 헤레로족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자행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레오폴드 2세 그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을 순 없지. 슐리펜 참모총장. 반란은 신속히 진압해야 하지만 그 과정과 방식에 대해선 조금 더 심사숙고를…….”
똑똑─
[폐하.]
망설이던 빌헬름 2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밖에 있던 빌헬름 2세의 시종이 집무실의 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리고 이어진 시종의 다음 말은 여기 있는 모두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발더제 원수께서 남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란 문제로 폐하를 뵙고자 하십니다.]
나는 그말에 본능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발더제 또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