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반란 (1)
“반, 반란이다! 헤레로 놈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비상! 비상!”
1904년 1월 12일.
새해가 밝은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건만,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의 중요 거점 중 하나인 오카한자(Okahandja)는 맹렬한 반란의 불길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탕! 타탕!
“더는 짐승처럼 취급받으며 살지 않겠다!”
“형제들이여. 함께 싸우다 죽자!”
“와아아아아───!”
독일인들에게 갖은 모멸과 착취를 당해 온 헤레로의 원한이 담긴 함성이 총성과 함께 아프리카 초원에 울려 퍼졌다.
흑인들이 습격해 왔다는 소식에 총을 들고 집을 뛰쳐나왔던 독일 정착민들은 분노한 헤레로족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것을 보자마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가족을 데리고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헤레로족이 방어선을 넘게 둬선 안 돼!”
독일 제국의 아프리카 식민지군인 식민지 보호 부대, 슈츠트루페(Schutztruppe)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몰려오는 헤레로족으로부터 정착촌을 지키려고 애를 썼지만 무리였다.
오카한자에 주둔한 슈츠트루페는 헤레로족에 비해 수적으로도, 그리고 사기로도 열세였다.
우지끈!
“방어선이 뚫렸다!”
“젠장, 퇴각! 퇴각!”
결국 슈츠트루페까지 무너지자 헤레로 반란군은 정착촌 내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헤레로족은 백인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독일인 정착민들은 그저 죄 없는 민간인들 따위가 아니었다.
이들은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정착한 지주와 목장주, 그리고 광산업자들.
헤레로족을 비롯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짓밟은 장본인들이었다.
철컥!
“여기 백인이 더 있다!”
“아, 안 돼. 제발 자비를!”
“엄마!”
한 헤레로 전사가 집 안에 숨어있는 독일인 모녀를 발견하고 곧바로 총을 겨눴다.
독일인 모녀는 제발 살려 달라 애원했지만 헤레로 전사는 오히려 그 모습이 역겨웠는지, 차갑게 식은 얼굴로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덥석!
“그만둬라.”
“마하레로 추장!”
전사가 모녀를 쏘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팔을 세게 붙잡으며 총을 쏘는 것을 막아섰다.
헤레로 전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자신을 막은 것이 누구인지 보자마자 전사는 당황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무엘 마하레로(Samuel Maharero).
오카한자 지역의 헤레로족 추장이자 헤레로족의 봉기를 주도한 반란 지도자.
훗날 독립한 나미비아에서 독일 제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한 투사이자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여인과 아이들의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
“추장!”
마하레로는 그리 말하며 독일인 모녀를 죽이려는 전사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헤레로 전사는 마하레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인들이 우릴 어떻게 대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 악마들은 모조리 죽어야 합니다!”
근처에서 마하레로와 젊은 전사를 지켜보던 몇몇 헤레로족이 전사의 분노에 동감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정착한 독일 정착민들은 헤레로족을 비롯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말 그대로 인간처럼 취급하지 않았다.
독일 정착민들은 자신들을 사람이 아닌 ‘개코원숭이’라 경멸하며 흑인 원주민들은 오로지 백인들에게 쓸모가 있을 때만 존재가치가 있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독일인들은 헤레로족을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독일 정착민들은 목장과 농경지를 짓기 위해 자신들의 토지와 가축을 빼앗았다.
그렇게 가축을 빼앗긴 헤레로족은 독일인들 밑에서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또한 독일인들은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퍼진 우역으로 인해 부족의 생명줄인 가축들을 잃어 생계가 막막해진 헤레로족을 속여 고금리의 빚을 강제로 떠안겼다.
심지어 백인들은 자신들의 아내와 딸을 자신들의 집으로 끌고 가서 범하고 강제로 첩으로 취했다.
그나마 총독은 식민지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헤레로족의 빚을 탕감해 주는 등 온건책을 펼쳤지만, 대부분의 독일인 관리들과 정착민들의 여전히 헤레로족을 짐승처럼 취급하며 착취와 압제를 이어 나갔다.
“너의 마음은 잘 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너와 같은 아픔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마하레로는 여전히 굳건했다.
“그러나 네가 저 백인 여인들을 죽인다면 너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어지는 거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짐승이 될 뿐이다.”
“…….”
“형제여. 그대는 짐승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마하레로의 말에 헤레로 전사는 긴 시간을 망설이다 이내 총을 내려놨다.
그는 사람으로 남길 택했다.
마하레로는 헤레로 전사의 결정에 흡족해하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고 다른 전사들을 향해 선언했다.
“모두 마찬가지다. 여자와 아이, 독일인이 아닌 자, 그리고 선교사들을 절대로 해치지 마라. 우리가 총을 쏘는 것은 약자들이 아닌 우리를 향해 무기를 겨누는 착취자들뿐이다!”
“와아아아! 마하레로! 마하레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헤레로족이 무기를 들고 함성을 외치자 자무엘 마하레로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마하레로의 행동은 전략적으로도 옳은 판단이었다.
백인들은 여자와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것에 그 어떤 자들보다도 민감했으니까.
또한 마하레로는 증명하고 싶었다.
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헤레로족이 야만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하레로 추장! 저쪽에서 일련의 무리가 오고 있습니다!”
자무엘 마하레로와 헤레로족이 백인들에게서 거둔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 근처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정찰병이 외쳤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기병이었다.
“모두 전투 태세를 갖춰라.”
“예! 추장!”
마하레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헤레로족들은 무기를 들고 전열을 갖췄다.
이윽고 먼지구름과 함께 소수의 기병대가 헤레로족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는 마하레로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로이트바인이군.”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총독 겸 슈츠트루페 사령관 테오도어 로이트바인(Theodor Gotthilf Leutwein).
다른 독일인들과 달리 그나마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처우를 신경 쓰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마하레로의 시선은 곧 로이트바인 총독을 지나 그의 옆에 있던 남자에게 향했다.
그는 백인이 아니었다.
남자는 마하레로, 그리고 여기 모인 헤레로족들처럼 흑인이었다.
히힝~!
남자가 말을 몰아 마하레로와 헤레로족들의 앞으로 나섰다.
마하레로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남자에게 인사했다.
“헨드릭 위트부이. 이곳에서 자네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네. 자무엘.”
헨드릭 위트부이(Hendrik Witbooi).
나마족의 지도자로서 자무엘 마하레로처럼 독일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인물로, 오늘날 나미비아의 지폐에도 그 얼굴이 새겨져 있는 나미비아의 또 다른 영웅.
하지만 지금 위트부이는 헤레로족을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내 제안을 거절했군.”
“나는 독일과 한 협정을 지키는 것뿐이네. 자무엘. 자네가 자네 사람들을 위해 일어선 것처럼 내 사람들을 위해서 말일세.”
“이해하네.”
마하레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씁쓸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사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헨드릭 위트부이와 나마족은 함께 독일에 맞서 싸우자는 자무엘 마하레로의 편지에도 불구하고 헤레로족의 반란에 동참하지 않았다.
헨드릭 위트부이 또한 몇 년 전엔 독일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로이트바인 총독과 맺은 협정에 따라 독일군에 협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원 역사에서 트로타가 독일군을 이끌고 바터베르크(Waterberg)에서 헤레로족과 전투를 벌일 때도 헨드릭 위트부이와 나마족은 독일군을 도와 헤레로족과 싸웠다.
그러나 헨드릭 위트부이는 바터베르크 전투 이후, 나마족을 이끌고 독일 제국에 반기를 들었다.
이유는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독일군의 잔혹한 학살 때문이었다.
로타르 폰 트로타는 바터베르크 전투에서 헤레로족에게 승리하긴 했지만, 누가 전술적 승리만 잘하는 독일군 아니랄까 봐 정작 헤레로족을 섬멸해서 반란을 진압한다는 전략적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트로타는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그들이 총을 들었든 안 들었든, 살아 있는 모든 헤레로족을 쏴 죽이라는 절멸 명령을 내렸고 곧이어 독일군에 의한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자무엘 마하레로는 트로타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들을 이끌고 가까스로 오늘날의 보츠와나인 영국령 베추아날란드(Bechuanaland)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수는 고작 천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독일 제국의 무자비한 학살에 헨드릭 위트부이와 나마족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헨드릭 위트부이는 악랄한 독일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해 학살자 트로타와 독일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고, 헤레로 전쟁은 나마족과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나마족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헨드릭 위트부이와 나마족 역시 헤레로족과 같은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헨드릭 위트부이는 전투 중 전사했고 나마족 또한 헤레로족이 인구의 80%가 학살당한 것처럼 부족의 절반이 독일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훗날 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Herero and Namaqua genocide)이라 불리는 대학살의 전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머지않은 훗날의 일.
지금 자무엘 마하레로와 헨드릭 위트부이는 서로 적에 불과했다.
“자무엘!”
마하레로와 위트부이가 눈빛만으로 많은 감정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로이트바인 총독이 마하레로 앞에 도착했다.
자무엘 마하레로가 알기론 로이트바인은 분명 식민지 남부에 있었을터.
아무래도 반란 소식을 듣자마자 말을 타고 북부까지 미친 듯이 달려온 모양이다.
로이트바인 총독은 마하레로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자네가, 헤레로족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그저 당신들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사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오. 총독.”
“젠장!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당장 무기를 내려놓게. 본국이 나서기 전에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게 말일세!”
로이트바인 총독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마하레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는 헤레로족도 마찬가지였다.
마하레로가 말했다.
“여성과 아이, 그 밖에 무기를 잡지 못하는 자는 죽이지 않았소. 온 김에 그들을 데려가시오.”
“자네가 신사적으로 군다고 독일 제국이 헤레로족에게 자비를 베풀 것 같나?!”
로이트바인 총독이 마하레로의 멱살을 붙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몇몇 헤레로족 전사들이 발끈해서 로이트바인 총독에게 총을 겨누려 했지만 마하레로는 이를 제지했다.
“제발 어리석은 선택하지 말게. 독일 제국과 카이저 폐하께서는 결코 반란을 용납하지 않아. 본국에서 오늘 일을 알게 되면 분명 군대를 파견할 것이고, 자네들뿐만 아니라 식민지에 있는 모든 헤레로족을 죽여서라도 반란을 진압하려 할 게 분명해!”
마하레로와 나름 친분이 있던 로이트바인 총독이 애원하듯이 외쳤다.
로이트바인은 식민지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분노한 독일 제국에 의해 대규모로 학살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이저 폐하와 본국의 융커들은 자신과 달랐다.
그들은 이번 일을 모욕으로 여기고 헤레로족을 지도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에 전례 없는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했다.
몇 년 전 의화단 전쟁 당시 독일 제국이 중국에서 벌였던 학살처럼 말이다.
“마하레로. 정말 이대로 부족원들을 전부 죽일 생각인가!”
“듣지 마세요. 마하레로 추장. 백인들이 얼마나 몰려오든 무섭지 않으니까요!”
“그래! 우린 네놈들이 두렵지 않아!”
마하레로가 총독의 호소로 인해 망설이고 있을 때, 헤레로족 전사들이 그리 외쳤다.
이들은 백인들에게서 거둔 승리로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나머지 독일 제국의 분노를 가볍게 여겼다.
자만이었다.
헤레로족은 백인들에게 거둔 승리에 취해 있었다.
마하레로 또한 그 사실을 알았지만, 수많은 반란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부족원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했다.
“……돌아가시오. 과거 인연을 생각해서 여기서 당신과 당신 부하들을 공격하진 않겠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오.”
결국 마하레로는 로이트바인의 제안을 거절했다.
헤레로족은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신이시여.”
결국 로이트바인은 눈을 감고 신의 자비를 구했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를린과 포츠담에 헤레로족의 반란에 대한 소식과 로이트바인 총독의 지원 요청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