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하늘을 나는 꿈 (2)
짧았던 가을이 지나고 또 한 번의 겨울이 찾아왔다.
영국의 샌드링엄 하우스에서 보낸 작년 겨울과 달리, 나는 올해 겨울은 재작년처럼 평범하게 포츠담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내 소유의 저택인데 아무리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들러야 하지 않겠냐는 마르가레테 공주의 말에 나는 올겨울을 프리드리히쇼프 성에서 보내게 되었다.
“테슬라 씨, 라디오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그 디포리스트라는 친구와 협업하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작님은 대체 어디서 그런 친구를 발견한 것입니까?”
“하하, 미국에 갔을 때 알게 된 겁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테슬라가 그리 질문하자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리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미래에서 알게 되었다곤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나저나 다시 JP모건과 엮이게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테슬라 씨는 정말 괜찮습니까?”
“그자가 예전처럼 내 연구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
테슬라는 정말 신경 안 쓴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하긴 테슬라는 연구와 관련이 없다면 JP모건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와도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나저나 이번에 비행기를 만드는 젊은 친구들에게 투자하셨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트 형제는 자신들을 믿어줘서 정말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플라이어 1호를 더 개량할 수 있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런 큰돈이 손에 들어왔을 때 눈이 돌아가 딴생각을 하겠지만 라이트 형제는 달랐다.
그들이 얼마나 비행기에 진심인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편지에 따르면 12월에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키티호크 해안가에서 비행 실험을 한다더군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탈 것이라……. 멋지네요. 물론 전기 공학보단 매력이 떨어지지만요.”
테슬라는 평생 전기를 만졌던 사람답게 그리 부심을 부리며 말했다.
“그런데 남작님은 그 비행 실험에 가 보시진 않는 겁니까?”
“라이트 형제에게 참관해 달라는 부탁은 받았는데 아쉽게도 바빠서요.”
배를 타고 또다시 대서양을 건너는 긴 항해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러일전쟁이 머지않았다.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일본은 한반도만 넘겨준다면 귀찮게 안 하겠다며 러시아 제국에게 최후의 제안을 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곤 오히려 한반도 이남을 일본이 가져가는 대신 39도 이북을 중립지대로 해 한반도를 갈라 먹자며 일본에 역제안했다.
물론 조선을 단 한 조각이라도 남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던 일본 또한 이를 단칼에 거절했지만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전쟁뿐이었다.
‘비테도 이젠 뒤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꼭 약속 지키라며 전언을 보냈지.’
그리고 그것은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양쪽에 말만 조금 바꿔서 똑같은 제안을 했다는 걸 그들은 알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러다 나쁜 버릇이라도 드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 * *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 1903년 12월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의 해변에서 라이트 형제는 플라이어 1호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비행을 할 준비를 했다.
“윌버. 어때. 이번엔 날 수 있겠어?”
“바람은 딱 좋게 불고 있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고용한 안전요원 4명과 함께 실험에 참관한 라이트 형제의 친구이자 프랑스의 비행기 연구가, 옥타브 샤뉘느의 말에 윌버 라이트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오토 릴리엔탈이 그랬듯이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윌버는 두렵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하늘을 날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야지.”
“그래. 너희는 반드시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라이트 형제는 샤뉘느의 응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훗날 샤뉘느의 배신에 치를 떨며 그의 장례식장에도 찾아가지 않았던 라이트 형제였지만, 지금의 샤뉘느는 라이트 형제에게 있어 든든한 벗이자 지지자였다.
“우리를 믿고 큰돈을 투자해 준 그 남작님도 이번 실험에 참관했다면 좋았을 텐데.”
“오빌. 독일은 먼 곳이잖아. 어쩔 수 없지.”
거리 문제로 편지로만 이야기를 나눴기에 아직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는 한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형제의 경쟁자였던 랭글리가 자신의 비행기에 5만 달러 넘게 돈을 들인 것에 비해 고작 1,000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플라이어 1호를 만들어야 했던 라이트 형제는 한스에게 받은 돈으로 더 좋은 부품을 구할 수 있었다.
‘모두의 믿음에 보답해야지.’
한스 폰 초이 남작을 위해서, 샤뉘느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꿈을 계속 응원해 준 가족을 위해서라도 윌버 라이트는 오늘 반드시 하늘을 날겠다고 맹세했다.
“잘해. 윌버 형.”
“응. 우리가 무얼 위해 이 깡촌에서 3년 동안 고생했는데. 당연히 성공해야지.”
바람은 딱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불어오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 수많은 조사 끝에 이 키티호크에 자리를 잡은 것이지만.
“자, 가 보자.”
윌버 라이트는 혹여 사고가 날까 봐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동생 오빌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각오를 마치고 플라이어 1호에 올라탔다.
부르릉~
엔진에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 플라이어 1호.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윌버 라이트는 맞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레버를 당겼다.
부웅~
그리고 그 순간.
플라이어 1호의 바퀴가 땅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윌버는 직감했다.
이건 날았다고.
“와우~!”
“성공이야. 윌버 형! 성공했다고!”
24초.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한스 덕에 기존보다 동력 엔진이 더욱 개량된 플라이어 1호는 12초 동안 하늘을 날았던 원 역사보다 2배 더 많은 시간을 날았다.
무사히 지면에 착륙한 윌버는 곧바로 플라이어 1호에서 내려 오빌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두 형제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1903년 12월 14일.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았다.
* * *
“쿨럭! 쿨럭쿨럭!”
한편 플라이어 1호가 비행에 성공했을 때, 노환과 화병으로 인해 3군 총감에서 물러난 뒤 하노버에서 감찰관으로 지내고 있던 발더제는 별장의 침대에 누워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쿨럭! 젠장, 이 망할 몸뚱이 같으니!”
발더제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원망하며 그리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발더제도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삶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최대한 버틴다고 해도 아마 1년을 넘긴 힘들 것이다.
‘안 돼. 아직 이대로 갈 순 없어!’
한스 폰 초이.
자신에게 온갖 수치와 모욕을 안겨 준 그 망할 칭키 꼬맹이가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난 듯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던가.
자신은 그놈 생각만 하면 열불이 나서 툭하면 발작이 올 지경이었는데 말이다.
자신이 이리 일찍 죽는 것도 다 그놈 때문에 화병이 나서 그런 게 분명했다.
“끄으으윽……!”
발더제는 한스에 대한 원한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죽을 수 없다.
한스 폰 초이라는, 독일 제국에 심어진 독니를 뽑아내고 두 발로 짓밟기 전엔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아니, 죽을 땐 죽더라도 그 녀석을 반드시 저승 길동무로 끌고 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신의 축복 아래 땅에 묻혀서도 마음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한스 폰 초이, 그놈 때문에!
“쿨럭! 쿨럭쿨럭! 녀석을 죽여야 해. 어떻게든 죽여 버려야 해!”
분노와 노망으로 인해 이성과 합리의 끈이 끊어진 발더제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은 이제 오로지 한스를 죽이겠단 망집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녀석을 죽이지?”
발더제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 녀석을 죽일 수 있을까?
“일단 황궁에서 일을 벌일 순 없다.”
발더제에겐 참 불행히도 한스 그 녀석은 기생충처럼 황궁에 딱 달라붙어서 지내고 있었다.
만약 황궁 밖으로 나갈 일이 있더라도 옆에 항상 프로이센 비밀경찰 같은 경호원들을 대동했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성공할 확률도 희박하고 또 만에 하나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꼬리를 밟힐 위험이 너무나도 컸다.
발더제는 한스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것을 들켜서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업적과 명예를 잃고 싶진 않았다.
한스를 죽이는 것은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일단 독일 안에서 그 녀석을 죽이기는 매우 어려워.”
발더제 안에 남아 있던 최후의 지성은 그리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발더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을 죽일 방법 말이다.
그때, 발더제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아침에 하인이 두고 간 조간신문이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쿨럭……. 어쩌면 여기에 그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지.”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 발더제는 앙상하고 주름진 손가락으로 천천히 신문을 집었다.
씨익─
그리고 잠시 후,
신문을 샅샅이 뒤지던 발더제 원수는 이내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발견하곤 삼류 악당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면, 이거면 가능하다.”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한스 폰 초이를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발더제 혼자의 힘으론 불가능했다.
이것을 이용해서 한스를 죽이려면 공모자가 필요했다.
발더제는 처음엔 슐리펜을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슐리펜 그 배신자는 한스 녀석에게 홀린 지 오래다.
중국에서 독일로 돌아왔을 때부터 묘하게 그 녀석을 감싼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한스를 죽이려고 하면 분명 슐리펜은 자신을 막고 그 녀석을 지키려 할 게 뻔했다.
그러면 융커들을 이용할까?
아니, 그 머저리들도 믿을 수 없었다.
시연회에서 자신이 망신을 당한 이후, 그 꼬마애가 두려워 아직도 숨을 죽이고 있는 겁쟁이들이다.
그자들에게 일을 맡기면 성공하긴커녕 오히려 일을 더 망칠 확률이 있었다.
‘아예 암살자를 고용해?’
하지만 외부인을 쓰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자신이 떠올린 계획대로 일을 진행한다면 한스를 죽이기 위해선 군 내부의 인물이 필요했다.
그때, 발더제의 머릿속으로 한 인물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루덴도르프. 에리히 루덴도르프. 그 빌어먹을 녀석이 있었지.”
괜히 기관단총 이야기를 꺼내 자신이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하게 만든 망할 녀석.
슐리펜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발더제는 진즉에 루덴도르프를 죽이거나 다신 군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능한 참모를 그런 이유로 버릴 순 없다는 슐리펜의 설득에 발더제는 에리히 루덴도르프의 목숨을 살려 줬다.
그리고 그것은 루덴도르프가 자신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소리와 같았다.
물론 발더제와 엮였다가 험한 꼴을 보았던 루덴도르프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발더제에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루덴도르프의 생각이 어떻든 발더제는 그를 이용해서 한스를 죽일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협박을 해서라도 말이다.
이것이, 이것만이 생명의 불꽃이 얼마 남지 않은 그가 한스를 죽일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독일 안에서 못 죽이면 밖에서 죽이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것도 운 나쁘게 죽을 확률이 가장 많은 전장에서 말이다.
적의 총탄을 가장하여 뒤에서 녀석을 쏴도 되고, 실종됐다며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어도 좋다.
전장이란 곳은 그런 허무한 죽음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발더제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곳이라면 한스가 죽더라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발더제 자신이 그 배후에 있었단 사실도 모를 것이다.
“한스, 한스 폰 초이. 내가 널 위해 직접 성대한 무대를 준비해 주마.”
발더제가 미친 사람처럼 킥킥킥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접힌 신문의 기사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헤레로족의 소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지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반란에 직면하다!]
헤레로 전쟁.
훗날 헤레로·나마 집단 학살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
발더제의 역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