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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를 구했다-69화 (69/193)

69화 : 하늘을 나는 꿈 (1)

오래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만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신이 그린 비행기 설계도에 이런 주석을 남겼다.

[단 한 번이라도 하늘을 날아 보았다면 대지를 거니는 눈은 창공을 향할 것이다.

그곳에 머무른 적 있기에, 그곳에 돌아가길 염원하기에.]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류의 꿈을 잘 표현한 명언.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이야기처럼 그만큼 하늘에 대한 인간의 동경은 매우 오래되고 또 강렬한 것이었다

인류는 육지, 그리고 바다를 정복했지만, 새들이 날아다니는 푸른 하늘만큼은 정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는 포기를 모르는 종족.

인류의 손이 유일하게 닿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던 모험가들은 끊임없이 하늘에 도전했고 또 실패했다.

그러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발명함으로써 인류는 처음으로 하늘에 그 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문명이 눈부신 발전을 이룬 19세기가 찾아오자 인류는 이제 열기구를 타고 그냥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넘어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길 원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비행기였다.

수많은 발명가가 비행이란 인류의 꿈을 가장 먼저 이루고자 비행기를 발명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때론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20세기가 시작된 지금까지도 하늘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에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현대 항공학의 개척자였던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Karl Wilhelm Otto Lilienthal)은 세계 최초로 글라이더를 만들어 비행에 성공했단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릴리엔탈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1896년에 비행 실험을 하던 도중 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사망했다.

그러나 하늘을 날고자 했던 오토 릴리엔탈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한 미국인 형제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키티호크란 작은 촌락에서 꾸준하게 비행기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은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흔히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라 알려진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 ‘플라이어 1호’의 발명가이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비행에 성공한 위대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라이트 형제가 만든 플라이어 1호가 처음으로 비행에 성공한 것이 바로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1903년 12월 17일이었다.

이제 내가 왜 갑자기 난데없이 비행기 이야기를 꺼냈는지 짐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짐작대로, 나는 라이트 형제를 내 사람으로 영입함과 동시에 다른 누구보다 먼저 비행기를 선점할 생각이었다.

이는 예전부터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이젠 때가 되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 발명 이후에 처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라이트 형제를 영입하는 건 돈만 충분하다면 꽤 간단한 일이지.’

어렸을 때 내가 읽었던 라이트 형제의 위인전은 항상 라이트 형제가 플라이어 1호의 실험이 성공했단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는 제대로 쓰여 있질 않았다.

그냥 라이트 형제가 계속 비행기 연구에 힘쓰다 형 월버 라이트가 먼저 사망하고 그보다 나중에 동생 오빌 라이트가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진 이후에야 나는 왜 위인전이 플라이어 1호의 비행 실험 성공 이후의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질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라이트 형제의 삶은 웹소설이었으면 분노의 5,700자가 날라와도 이상하질 않을 고구마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라이트 형제는 세계를 뒤흔들 위대한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고향인 미국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한때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 연구를 위해 가르침을 청하기도 했던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와 랭글리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스미소니언 협회를 비롯한 미국 과학계는 라이트 형제를 질시하며 사사건건 형제를 방해했다.

그들은 라이트 형제가 랭글리의 연구 성과를 훔치고 베꼈다며 그들을 고소한 것도 모자라, 학연 등 인맥까지 총동원해서 라이트 형제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비방했다.

거기다 미국 육군도 비행기를 그저 재밌는 장난감으로 여겼을 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미국에서 전혀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형제의 고향인 미국보다 세계 최초로 공군을 창설했던 오스만 제국이나 일본 같은 다른 나라들이 라이트 형제의 조국보다 비행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을 지경이었다.

결국 라이트 형제는 미국을 떠나 친구이자 라이트 형제의 큰 지지자였던 프랑스의 비행기 연구가 옥타브 샤뉘느(Octave Chanute)의 도움으로 프랑스에 처음으로 비행기 생산 공장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는 여기서 또 한 번 배신을 당했다.

옥타브 샤뉘느가 라이트 형제의 기술을 프랑스에 유출하는 바람에 프랑스가 라이트 형제와의 관계를 끊고 독자적으로 비행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트 형제와 샤뉘느의 관계는 파탄 났고, 라이트 형제는 프랑스를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온 라이트 형제를 기다리는 것은 라이트 형제가 자신의 기술을 도용했다며 주장한 글렌 커티스(Glenn Curtiss)와의 기나긴 소송전이었다.

물론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도용한 것은 오히려 커티스 쪽이었지만, 커티스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미국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라이트 형제는 미국인들의 질타 속에서 가까스로 커티스와의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라이트 형제가 이로 인해 얻은 것은 없었다.

미국인들은 라이트 형제가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커티스의 편을 들었고, 라이트 형제 중 형 윌버 라이트는 소송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마니까.

‘훗날 오빌 라이트가 커티스의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복수에 성공하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한동안 전혀 인정받지 못했단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있어 기회가 될 것이다.

비록 1908년의 일이지만 본래라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럽에서 가장 먼저 비행기 기술을 손에 넣는 것은 프랑스였고 비행기를 가장 처음으로 전투용으로 사용한 것도 프랑스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비행기 기술을 선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와 독일 제국이 될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존재감도 없던 제2차 세계대전 때와 달리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항공대는 독일 제국 항공대(Luftstreitkräfte)의 맞수로서 르네 퐁크를 비롯한 수많은 엘리트 파일럿을 배출한 프랑스 하늘의 수호자였다.

특히 르네 퐁크와 더불어 프랑스의 전설적인 파일럿인 조르주 기느메르가 소속되어 있던 황새 비행대(Escadrille 3 Les Cigognes)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유명했던 부대 중 하나이자 독일 제국의 야스타 2(Jasta 2)에 비견되는 협상국의 최정예 항공대였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 최강의 파일럿을 뽑으라면 무조건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이겠지만.’

그러고 보니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은 1892년생으로 나와 동년배였던가.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뷜케의 금언으로 유명한 야스타 2의 지휘관 오스발트 뷜케(Oswald Boelcke)나 베르너 포스(Werner Voß) 같은 독일의 전설적인 파일럿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어쨌든 반드시 라이트 형제의 신뢰를 얻어야 해. 비행기를 프랑스가 먼저 선점하게 둘 순 없으니까.”

그리고 비행기 개발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가장 먼저 여객기부터 만들 거다.

뱃멀미로 고생하는 삶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물론 정숙성은 비행기보다 비행선이 더 뛰어나긴 한데…….’

체펠린 비행선은 비행기보다 늦게 발명될뿐더러 자꾸 머릿속에 힌덴부르크 참사가 떠올라서 좀 그랬다.

게다가 비행선은 내가 투자를 하지 않아도 비행선을 너무 사랑한 독일인들이 알아서 돈을 바치기에 굳이 내 돈을 쓸 이유를 못 느끼겠다.

“한스. 독일로 돌아오자마자 뭘 그리 바쁘게 적는 거야?”

“하늘을 날려는 사람들에게 보낼 편지요.”

해가 바뀔수록 점점 앳된 소녀의 모습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빅토리아 루이제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봤자 내 눈엔 아직 애였지만 말이다.

“하늘을 날아?”

“예. 모든 인류의 꿈이죠.”

나는 그리 말하며 라이트 형제에게 보낼 편지에 부지런하게 만년필을 놀렸다.

두둑한 투자금은 덤이었다.

* * *

“월버 형. 여기 편지가 왔는데?”

1903년 가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Kitty hawk).

겨울에 있을 비행 실험을 위해 플라이어 1호를 개량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던 윌버 라이트는 동생인 오빌 라이트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편지?”

“무려 독일에서 온 편지야.”

“뭐? 독일에서 온 편지라고?”

독일에서 온 편지라는 동생의 말에 윌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아는 한 독일에서 자신들에게 편지를 보낼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트 형제가 아는 독일인이라곤 그들이 본격적인 비행기 연구가의 길을 걷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오토 릴리엔탈이었다.

그리고 그는 불행한 사고로 인해 이미 몇 년 전에 사망했다.

그렇기에 윌버 라이트는 대체 독일의 어떤 사람이 자신들에게 편지를 보냈는지 궁금해졌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비행기에 빠진 괴짜일까?

“누가 보냈는지 쓰여 있어?”

윌버 라이트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비행기 개발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리 물었다.

그러나 동생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윌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는데?”

“한스 폰 초이?”

그게 대체 누구야?

윌버 라이트의 목구멍까지 그 말이 차올랐다 사라졌다.

1900년부터 지금까지 동생 오빌의 말마따나 ‘아름답긴 해도 사람이 살 곳은 못 되는 곳’인 키티호크에 머무르며 글라이더와 비행기 실험에 매진했던 라이트 형제다.

당연히 형제가 한스에 대한 이야기를 알 리가 없었다.

“오빌 넌 알아?”

“아니. 그래도 귀족인데 돈은 많지 않을까? 어쩌면 후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물론 형제의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남동생들과 여동생이 일하며 버는 돈을 연구 자금으로 보태는 상황이었던 만큼 비행기 연구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윌버는 기대에 부푼 오빌과 달리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후원을 받을 정도로 성과를 낸 적도 없는데 후원은 무슨 후원이야. 그냥 비행기에 관심 많은 귀족이 어쩌다 우리 이름을 듣고 그냥 흥미로 한번 보내 본 편지겠지.”

“에이, 그래도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그리 말한 오빌은 망설임 없이 편지를 뜯었다.

윌버도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고개를 쭉 내밀었다.

“어디 보자. 윌버 라이트 씨와 오빌 라이트 씨에게. 전 한스 폰 초이 남작이라고 합니다. 평소에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두 분의 소식을 듣고 이리 편지를 보냅니다.”

“거봐. 그냥 흥미 있어서 보낸 거라니까?”

“조용히 해. 아직 남아 있어.”

오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는 형을 타박하며 계속 편지를 읽어 나갔다.

“저는 비행기 연구가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여러분만큼 비행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전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류의 꿈은 당신들의 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헤헤, 이거 꽤 낯 간지러운 말이네. 우리가 의외로 유명한가?”

“됐고 끝까지 읽어 봐. 아직 더 있잖아.”

오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읽지 않은 문장들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을 읽을수록 오빌의 눈동자는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

“오빌?”

“형. 우리에게 투자하겠다는데? 그리고 우리가 비행에 성공하면 자신과 협력해서 독일에서 비행기를 만들어 달래.”

“뭐? 지금 뭐라고 했어? 투자? 정말로?!”

윌버 라이트는 못 믿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러나 오빌이 편지 속에서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한 고액의 수표를 꺼내 들자 이내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수표를 바라봤다.

“와우.”

잠시 후 윌버 라이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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