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이저를 구했다-65화 (65/193)

65화 : 고종 (3)

아달베르트 왕자에게 잠시 볼일이 있다며 잘데른 공사의 저택을 나선 나는 날 찾아온 밀사와 함께 고종이 날 보자고 한 곳으로 향했다.

처음엔 경운궁이나 대한제국 황실이 소유한 은거지 중 하나로 갈 줄 알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밀사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나도 전생에 이름을 들어 본 손탁호텔(Sontag Hotel)이었다.

손탁호텔은 본래 마리 앙투아네트 존타크(Marie Antoinette Sontag)라는 어쩐지 단두대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서양인 여성이 고종에게 하사받은 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곳으로, ‘정동구락부’라 불리며 개화파 관료나 외교관들의 회합 장소로도 쓰이던 곳이었다.

‘한국 최초로 카페를 운영했던 곳이기도 하고.’

참고로 손탁호텔의 사장인 마리 앙투아네트 존타크는 이름만 들으면 프랑스인인 것 같지만 독일인이다.

알자스로렌 출신이라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에서 독일로 국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종과 친분이 있던 전 주한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형이기도 하지.’

그런 연유로 존타크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청나라와 일본을 견제하려는 고종 부부를 도와 조선 궁내부와 러시아 공사관의 접선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을미사변 이후 아관파천 계획 또한 이 손탁호텔에서 은밀히 추진되었다.

고종의 신뢰를 받는 동시에 러시아와도 관계가 있는 독일인 여성이 운영하는 호텔이라.

어쩌면 고종이 이곳을 밀담을 나누는 장소로 선택한 게 단순히 커피 맛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들어가시죠. 남작님.”

나는 밀사의 안내에 따라 손탁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1층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환하게 불이 켜진 채, 커피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잠시 이쪽에 눈을 흘겼을 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내 얼굴은 이미 한성에 팔릴 대로 팔렸기에, 밀사의 말에 따라 모자를 푹 눌러쓴 부잣집 도련님의 모습으로 변장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남들이 보기에 한스 폰 초이 남작이 아닌 하인을 데리고 밤놀이를 하러 나온 조선인 양반 도련님으로 보일 것이다.

“김철수란 이름으로 예약했습니다만.”

“2층 203호실로 가시면 됩니다.”

밀사의 은밀한 목소리에 카운터를 보고 있던 호텔 직원이 어떤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 행동이 참 자연스러운 것이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익문사 요원이라도 되는 모양이네.’

익문사.

공식 명칭은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로 겉으로 보기엔 사보를 발행하거나 서적을 인쇄하는 통신사에 불과했지만, 사실 이는 위장으로 그 진짜 정체는 고종 직속 대한제국의 첩보기관이었다.

익문사의 설립은 작년인 1902년이었으니, 내 눈앞에 있는 남자가 익문사 요원일 확률은 매우 높았다.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남자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보다 더 깔끔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VIP들을 위한 장소인 모양이었다.

똑똑 똑 똑똑.

이윽고 203이란 숫자가 적혀 있는 방 앞에서 멈춰선 남자가 문을 리듬 있게 두들겼다.

아마 이것도 암호인 모양이다.

찰칵!

“들어가시면 됩니다.”

몇 초 뒤, 안에서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남작.”

그리고 방 안에는 고종이 아까 경회루에서 본 민영환을 곁에 둔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의 손에는 따끈따끈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 * *

“낮에 뵙고 또 뵙는군요, 폐하.”

나는 고종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잠행을 나온 모양인지 서양식으로 양장을 입고 있던 고종은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커피를 음미했다.

“가배(咖啡)는 좋아하는가?”

그러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작부터 말을 돌리는 것이, 아무래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진 않을 모양이다.

“좋아합니다. 물과 얼음을 잔뜩 넣으면 더더욱 좋고요.”

“호오. 요즘 구라파에서는 가배를 그런 식으로 마시는 모양이지?”

“굳이 말하자면 미리견 식입니다. 그들 나라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노라고 하지요.”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아메리카노에 푹 빠진 모양이던데 딱히 거짓말은 아니지 않을까?

어쨌든 고종은 아메리카노에 관심이 생겼는지 나중에 한번 마셔 봐야겠다며 중얼거리곤 그제야 나에게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나저나 이리 어두운 밤에 저를 은밀하게 부르시다니. 남들이 알게 되면 무어라 할지 두렵습니다.”

“아무래도 낮에는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불필요하게 많으니 말일세. 내 쪽에도, 그리고 남작 그대의 쪽에도.”

고종은 아무래도 러시아 또는 일본과 연이 닿아 있는 자신의 신하들, 그리고 아달베르트 왕자를 비롯한 독일 제국 측에 우리의 대화를 알리고 싶지 않나 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벌써 두려워진다.

“남작. 그대는 2년 전 덕국 황제의 앞에 순친왕을 무릎 꿇린 것도 모자라 삼궤구고두례를 하게 만들었다지.”

“폐하. 그것은…….”

“짐 또한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통쾌했는지. 삼전도의 굴욕을 갚는 것은 왕실의 숙원이자 만백성의 숙원이었으니 말이야.”

“저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 그리된 것뿐이지요.”

“겸손은 군자의 미덕이지. 하지만 옳은 일을 행한 것을 떳떳이 밝히는 것 또한 중요하다네. 남작.”

나에 대해 착각을 한 모양인지 날 칭찬하는 고종.

물론 나에게 있어선 전혀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아무래도 고종은 재작년 순친왕이 굴욕을 당한 일에 내 생각보다 매우 큰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설마 이 양반…… 그건 아니겠지?’

왠지 고종이 야심한 시각에 나를 불러내서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부디 이번만큼은 내 예상이 틀렸기만을 바란다.

“내 생각엔 청은 이제 끝났네. 오랑캐라 여기는 자들 앞에 삼궤구고두례까지 했으니 만주족들이 중화를 자칭할 자격이 있겠나?”

“…….”

“결국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이야. 대원과 대명이 무너졌듯이, 이번엔 청의 차례가 온 것뿐이지.”

“폐하. 송구하지만 그래서 결국 저에게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것입니까?”

“이 기회에 청을 치고 싶네.”

“……예?”

“그리고 그 대업을 이루는 데 남작 그대를 통해 덕국의 도움을 받고 싶다네.”

나는 순간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착각했다.

그러나 야심과 쓸데없는 열의로 가득 찬 고종의 얼굴을 직시했을 때, 이것이 질 나쁜 악몽이 아니라 참혹한 현실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군밤아아아아아아아───!!!’

지금 독일 제국의 힘을 빌려서 뭘 한다고?

청나라를 쳐?

내심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고종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줄은 몰랐다.

이 인간은 지금 자신의 나라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이해는 하고 있는 걸까?

‘당장 내년이면 러일전쟁이야. 이 한심한 양반아!’

이에 대비해도 모자랄 판에 청나라를 치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었다.

심지어 민영환도 이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지 얼굴이 새파래졌다.

“폐하. 지금 그 말 진심이십니까?”

“진심이라네.”

고종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긍하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이 시기 고종이 북방 진출, 특히 간도 또는 북간도로 알려진 두만강 이북 지역에 눈독을 들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원래 이 지역은 오랫동안 청과 조선의 국경 분쟁이 발생했던 장소였고 인삼을 탐낸 조선인들의 월경도 매우 잦은 곳이었다.

그리고 이는 숙종 32년, 서력으론 1712년에 청과의 합의 끝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양국의 국경을 정하면서 일단락되었으나 시대가 바뀌고 의화단 전쟁으로 청이 눈에 띄게 약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이전부터 간도를 호시탐탐 노리던 고종이 본격적으로 간도를 차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고종과 대한제국은 청나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두만강 너머로 조선인 주민들을 보내 간도를 야금야금 집어삼키려 했고, 심지어 청과의 무력 충돌까지 일삼았다.

그리고 이 국경 분쟁에서 수세에 몰린 것은 예상외로 청나라였다.

대한제국이 러시아 제국이라는 불곰 큰형님과 나름 근대화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데 비해 청은 의화단 운동의 여파로 인해 지방 군사력이 개판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간도에선 대한제국이 청나라 정규군을 박살 내고 간도에서 세금과 약탈을 저지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간도에 대한 고종의 야욕과 대한제국과 청나라의 국경 분쟁은 러일전쟁이 터지자마자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화되는 결말과 함께 끝이 났다.

물론 일본 역시 군사적 요충지인 간도를 먹으면 길림과 연해주로의 진출에 유리하고 또 한반도 방어에도 유리했단 점을 알고 있었기에, 대한제국-청나라 간 국경 분쟁을 빌미로 간도에 침을 흘리긴 했다.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도 모자라 간도까지 집어삼키는 것을 원치 않았던 미국의 압박으로 인해 일본은 간도 영유권을 포기했고, 간도는 그대로 중국의 영토로 남아 있게 된다.

어쨌든 고종은 확실히 북방 진출에 대한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종의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도와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폐하. 저는 폐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무어라?”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자신의 예상과는 달랐던 모양인지, 고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설마 내가 손뼉 치며 이를 받아들이리라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어째서인가?”

“미친 짓이니까요.”

“크흠!”

생각보다 과격한 발언에 놀랐는지 고종의 옆에 서 있던 민영환이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다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민영환의 반응이라든가 지금 그의 어두운 낯빛으로 미루어보건대, 민영환 또한 고종의 계획을 내심 무리수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민영환은 온건개화파였던 데다가 세계 순방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고종은 민영환과 달리, 대체 자신의 계획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친절한 나는 그런 고종을 위해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첫째, 러시아와 영국을 비롯한 다른 열강들이 간도에 독일 제국이 개입하는 것을 절대 반길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 제국, 그리고 영국은 나와 거래를 한 상태였다.

그럴 일은 절대 없지만, 대한제국이 독일의 지원을 받아 간도를 집어삼키기라도 한다면 양국은 나와 독일이 배신했다며 난리를 칠 것이고, 결국 내 계획의 전제부터가 무너질 것이다.

“둘째, 대한제국을 도와서 독일 제국에 이득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건……!”

“그리고 셋째, 지금 대한제국은 청과의 전쟁 따위를 할 상황이 아닙니다.”

우선 일본 제국부터가 가만히 안 있을 거다.

오히려 전쟁 명분이 생겼다며 좋다고 1년 빨리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종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지금 병자년의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버리라는 것인가?!”

“폐하. 지금은 철 지난 복수 타령이나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극동을 둘러싼 정세가 어찌 돌아가는지 폐하께서도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그러니 더더욱 그대가 나를 도와야지. 남작, 그대 또한 조선인 아닌가!”

고종이 그리 말하며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민영환은 사촌이자 주군의 추한 모습을 도저히 차마 보기가 힘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 나이에 벌써 위가 아파져 오는 것을 느끼며 고종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폐하. 제 뿌리가 조선인 것은 틀림없고 그렇기에 저 또한 조선이 처한 현실에 동정을 표하지만, 제 조국은 어디까지나 독일 제국이고 제 주군은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 폐하이십니다. 죄송하지만 전 폐하를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무례한……!”

벌떡!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고종.

그러나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향해 말했다.

“폐하. 제 부모님을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조언을 드리자면, 지금 대한제국은 간도 진출 같은 꿈을 꿀 때가 아닙니다. 제발 이 나라가 처한 현실을 깨닫고 정신을 좀 차리십시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나는 그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고종을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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